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학' 의 관점으로 보는 서양미술사

몇 달전부터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다.  사실 읽는다라기보다는 그저 훑어보고 있다는게 옳다.   베개로 삼을 만한 엄청난 분량에다가 깨알 같은 작은 글씨는 아무리 미술 전공자라고 하더라도 책을 펴기 전부터 압박감을 준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오늘날까지도 미술사의 고전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미술사 스테디셀러이지만 단지 미술사를 알기 위해서 이 책 한 권을 통째로 읽는다는 것은 괜한 오기일지도 모르겠다.     

곰브리치 외에도 B.W. 잰슨의 저서 역시 유명한데 기존의 많은 미술사들은 다양한 사조를 시간순에 따라 서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범위한 미술이 변모해나가는 흐름은 한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양식의 변화만큼은 파악할 수 없다.  더구나 미술 지식이 전무한 미술 비전공자들은  '양식의 변화' 라는 중용한 알맹이를 지나쳐버리고 수박 겉핥기로 읽게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서양미술사들의 저자는 대체로 외국인이다보니 서구의 시선과 관점이 다분히 반영되어 있을수 밖에 없다.  서양과 동양의 그림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서로 차이가 있가 마련인데 미술에 대한 서구인들의 미적 취향과 관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점도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더욱 어렵게 만들게하는 원인 중의 하나다.    국내 출신의 미술 전공자들이 기록한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한 서양미술사가 소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존의 서술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감이 있다.

하지만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서술 방식은 독특하다.  미학자답게 '미학' 의 관점으로 미술사를 접근하고 있다.  미술사학에서 널리 알려진 논문이나 저서를 선택, 그것들을 선형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미술사를 구성한 것이다. 서양미술의 원리를 문제영역별로 제시하면서 역사를 통시적으로 함께 서술하는 방식이다.  

 

 

  '예술 의지' 에 따라 달라지는 미술의 양식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십자가 책형> (이젠하임 제단화 중 일부)  1509~1511년  

(진중권 <서양미술사 1> pp 175 수록)

  

 

파블로 피카소 <십자가 책형>  1930년

 

그뤼네발트피카소의 그림이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둘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뤼네발트의 그림에서는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몸에 곳곳이 난 성흔을 생생하게 볼 수 있지만 피카소의 그림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제목을 모른 상태로 보게 된다면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상으로만 볼 수 있다.  그뤼네발트의 표현방식처럼 온전한 형태의 사람과 사물이 그려지 그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피카소의 추상기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림인데도 표현방식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것은 두 화가가 표현방식에서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때 활동한 독일 출신의 그뤼네발트는 인물을 가능한 한 눈에 보이는 것과 똑같이 그릴려고 하였고, 20세기 화가 피카소는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리는 것이 목표였다.  

예술 의지가 다른 것이다.  저자는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가 제시한 두 가지 비례론을 끌어들이는데 그뤼네발트의 그림처럼 실물을 그대료 묘사하려는 ‘객관적 비례’, 실제 인체 비례에서 현저하게 벗어난 피카소의 묘사는 ‘제작적 비례’ 로 부를 수 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예술가들은 신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상적인 인체 비례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객관적 비례)   그러나 시대가 변할수록 창작의 방법으로서의 비례의 의미는 서서히 종말을 맞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창작의 근원을 자신이 표현하려는 의지에서 찾게 됨으로써 현대의 추상미술이 등장할 수 있었다. (제작적 비례)  

  

    

  형태냐 색채냐, 미적 관점의 충돌  

 

 

<푸른 옷을 입은 성모> 프랑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12세기경 

 

색과 빛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시기마다 다르다.  감각적 세계보다 초월적 세계를 중시한 중세에는 예술로 감각적 세계를 재현하기 보다 그 너머 초월적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기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중세의 장인들은 값비싼 재료의 화려한 색채를 초월적 빛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중세 고딕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의 미학인 명료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예술가들의 미감은 다시 형태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그 이후로부터 시대에 따라 미술에서 강조되는 표현방식으로서 '형태' 와 '색채' , 이 두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미술의 역사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크 시대에는 회화의 고유성을 강조했다. 즉 자연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형태보다는 색채의 효과에 중점을 두었다.   바로크 시대에 탄생된 예술작품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에 비하면 더욱 화려하다.   색채를 강조하는 표현양식은 프랑스의 로코코 시대에 이를수록 한층 더 화려한 색감을 더하게 되었다.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 때 유행한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은 화려한 생활을 누리는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미술양식이었다.

 

 

니콜라 푸생 <세례 요한과 성녀 엘리자베스, 기도하는 성 요셉이 있는 성 가족>  17세기경  

 

 

페테르 파울 루벤스 <세례 요한과 성 엘리자베스와 함께 있는 성 가족>  1634년경  

형태를 강조하는 고전주의적 그림들은 고대 조각상을 연상할 정도로 고정적이다. (니콜라 푸생)  하지만 색채를 강조하는 바로크 및 로코코풍의 그림들은 오히려 고전주의적 그림들보다 화려한데다가 색체의 효과 덕분에 생동감이 느껴진다. (루벤스)  이러한 서로 상반된 미적 관점의 충돌은 한 세기동안 예술가들 사이에서 커다란 논쟁의 화두였다.

    

그러나 비평가들 사이에서 화려한 미술양식의 유행에 반발함으로써 예전처럼 형태가 강조되는 미술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예술가들이 색채의 화려한 효과에만 치중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형태의 기본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형태와 윤곽을 강조하는 예술가 및 비평가들로 구성된 '고전주의자' 또는 '푸생주의자' 와 반대로 색체를 강조하는 입장의 예술가들은 '현대주의자' 또는 '루벤스주의자' 로 대립 구도가 형성이 되어 예술적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예술적 논쟁이 불붙던 17세기는 절대왕정의 시기였기에 결국에는 귀족과 왕정들의 인기를 힘입은 바로크, 로코코 양식이 승리하게 되지만 유행의 흐름은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18세기에 터진 프랑스 혁명 이후로 왕정이 붕괴되면서 다시 고전주의적 미적 취향이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솜씨' 가 아니라 '의지' 

  

클로드 모네 <인상-해돋이>  1873년

  

클로드 모네가 <인상-해돋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살롱에 출품하였을 때 관객들은 정확한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은 안개로 가득한 어둠침침한 풍경에 무척 낯설어하였다.  심지어 비평가들은 '정확한 묘사' 를 강조하는 전통적 회화 표현 수단을 저버린 모네와 같은 예술가들을 향해 경멸감에 가까운 악평을 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유래된 단어가 바로 '인상주의' 인 것이다.   

인상주의자들은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처럼 빛의 미세하고 섬세한 효과를 표현하는데 주력하였는데 정확한 형체로 표현되는 고전주의적 예술를 선호하는 관객과 비평가들 입장에서는 인상주의자들의 표현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누그러뜨린 형체들만 그려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추상미술이 등장하였을 때 관객과 비평가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표현양식에 아연실색하였다.  여전히 정확한 사물과 인간이 그려진 고전적 표현이 시각적으로 익숙해져있다보니 추상미술의 등장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보수적 비평가들은 추상미술의 등장에 '예술의 종말' 까지 운운할 정도였다.

오스트리아의 미술사가 알로이스 리글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솜씨' 가 아니라 '의지' 라고 하였다. (진중권 <서양미술사 1> pp 17)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특정한 미술양식이 유행하는데는 예술적 인식, 사고 등 예술가들이 표현하고자하는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고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술 본연의 예술적 감각 그리고 예술 의지를 알지 못한 채 그림을 보게 된다면 중세의 예술양식을 화려한 로코코 양식과 비교하여 어린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정도의 수준으로 평하거나 생각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즉, 예술을 접할 때는 실물과 정확하게 묘사할 줄 아는 화가의 역량만이 무조건 우수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기존의 미술사보다는 내용면에서는 깊이가 떨어지지만 미술의 양식이라면 이해가 깊은 독자라도 흔히 접근하기 꺼려해온 형식적 체계까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쓴 미술사가 유용하다.   

이 책을 통해서 고대 미술,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등 미술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술사조들의 예술적 특징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문적인 미술사에서 볼 수 없었던 미시적인 예술양식과 유행 역시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미술사조에 강조되었던 예술적, 미학적 감각들을 숙지하고 있다면 두꺼운 분량의 곰브리치 미술사와 같은 전문서적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미술사를 입문하는 초보 독자들이라면 진중권표 서양미술사는 미술사의 기본적인 미적 흐름과 미술사조의 특징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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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9-0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예술편이었군요. 저는 모더니즘편 읽고 있는데
읽기야 읽겠지만 리뷰를 어떻게 쓰나 한숨이 나오고 있습니다.ㅠ
근데 이책을 그렇게 빨리 읽었어요?
그것도 모자라 곰브리치도 읽고 있다닛!
저는 내친김에 오래 전에 사놓고 안 읽은 미학오디세이2를
일단 책상 위에 올려놨는데 읽을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어요.흐~

cyrus 2011-09-08 00:32   좋아요 0 | URL
모더니즘 같은 경우에는 철학 지식을 요구하고 있어서
어려운건 사실이에요.. 저도 잠깐 모더니즘편을 훑어봤는데
확실한건지 모르겠지만,, 훑다보니 '벤야민'이라는 단어가
보이더군요. 읽기 전부터 어떤 내용이지 짐작이 가더군요 ^^;;

그래서 오랜만에 고전예술편을 읽어봤어요. 제가 작년에
처음 읽었는데,, 그 때는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때라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었습니다.
고전예술편 같은 경우에는 내용이 어렵지 않을거에요. ^^

맥거핀 2011-09-0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며칠 전에 모더니즘 편 사서 지하철타고 왔다갔다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미술작품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꽤 재밌더군요. 1편 예전에 보고 괜찮은 것 같아서 2편을 샀는데, 2편은 1편보다는 재미가 살짝 덜한듯한..(구성도 그렇구요.)

이 고전예술 편 보고 생각이 든 것은 미술사라는 것도 일종의 필연성이 엿보인다고 할까요. 잘 모를때는 이 미술양식들의 출현이 그저 별 연관없이 나온줄 알았는데, 어떤 사조가 지나간 후 다시 새로운 사조가 나오는 것은 필연적인 연관이 있더군요. 재미있었습니다.

cyrus 2011-09-08 00: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모더니즘은 현대미술에 대해서 다루다보니 현대미술에
생소한 독자들에게는 재미가 덜 할 수도 있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에도 현대보다는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양식을
선호하는 편이거든요.

아이리시스 2011-09-06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맨 윗 그림 진짜 좋아해요. 제가 성경을, 그러니까 성서를 많이 좋아하거든요. 모든 이야기는 성서 속에 있다고 배워서 꼭 읽어내고 싶어 핑크 성경책을 샀는데도 그건 제가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예요. 종교가 없는데 것과 상관없이 성경공부는 꼭 하고 싶어요. 곰브리치는 아는 분께 들었는데 아무데나 관심있는 부분 펼쳐읽으래요. 그림읽기에 관한 책을 많이 내신 분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면 오히려 경기 난다고.

오래 전에 <미학 오디세이>는 신세계를 열어준 인문서였는데, 새로 출간되고 관심이 덜해졌어요. 그치만 저도 꼭 읽어볼래요!

cyrus 2011-09-08 00:35   좋아요 0 | URL
종교에 상관없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자하는 아이리시스님의
모습이 보기 좋아요. 제 생각이지만 시중에 성경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책이 있을거에요. 제목은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는 따로 페이퍼로 소개해드릴께요. (꼭 기억하고 계세요 ^^)
그 책을 보면서 성경 속 주요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곰브리치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관심 있는 부분에만 읽고 있는 편이랍니다.
요즘 인상파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부분만 열독하고 있습니다. ^^;;

yamoo 2011-09-0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의 서양미술사...괜찮은 책이죠. 시루스님 지적대로 어여 우리 미술사가들의 독특한 시각이 느껴지는 미술 평론책들이 많이 출간됐음 합니다~

그나저나, 올리신 그림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하시나요? 리뷰 쓸 때에는 그림이 2개이상 들어가지 않아 이상했는데...그림들을 어찌 많이 넣으셨는지 궁금하네요^^

cyrus 2011-09-08 00: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와 같은 대중적인 서양미술사의 출간은 보기 드물텐데 말이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서양미술사 1>이 2008년인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미 알려져 있던 <미학 오디세이>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중들의 반응이 뜨겁지 않아서
아쉽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 진중권 씨가 한창 독설을
날리는 논객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도 있다고 봐요.

야무님은 작성하실 때 그림을 두 개 이상 넣는게 안 되는가보군요.
저는 아무런 불편없이 잘 되요. 혹시 지금도 안 된다면
알라딘 서재지기에 한 번 문의해보셔야 할 거 같아요.
시스템상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