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쿠르베씨
지난 주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박경신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자 성기사진을 올린데 이어 여성의 음부를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을 게재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 “ 촌스럽게 아직도 이런 것 갖고 논쟁해야하나? ” 라며 “쿠르베의 그림은 원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소유하고 있던 것이며 라캉 사후 유족이 상승세 대신 국가에 헌납했고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있다” 라며 박경신의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박경신 관련한 비방 기사들은 21세기에 참으로 한심한 일이며 " 평소엔 ’하의실종‘ 어쩌고 선정적으로 기사를 쓰다가 왜 이런 맥락에서 갑자기 유교 탈레반으로 돌변하는 건지“ 라고 덧붙였다.
이어 진중권은 “방통심의위원들을 위한 현대예술” 이란글과 함께 남녀 성기가 묘사되거나 이미지가 대입된 명화들을 트위터에 게재하며 “방통심의위 자체를 해체시켜야 합니다. 21세기에 그런 검열기관이 왜 필요한지..대한민국이 무슨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 영토도 아니고..” 라고 전했다.
귀스타브 쿠르베 <만남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1854년
화가 자신의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스를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에 고급스럽게 잘 차려 입고 옆에 하인까지 대동한 사람이 알프레드 브뤼야스이며 왼쪽에 허름한 복장에 등에 휴대용 화구를 메고 있는 사람이 화가 쿠르베이다. 쿠르베는 단지 특별한 것이 없는 경험적인 순간을 화폭에 담아냈지만 출품 당시 관객들로부터 냉담한 반응과 조롱을 받아야했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속한 후원자 앞에서 격조 없이 당당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 속 화가의 모습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쿠르베의 저 당당한 모습은 파리 부르주아들의 눈에는 상당히 도발적인 자세로 보였던 것이다.
남자 성기 사진 게재 논란이 일어나면서 논란의 진상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박경신이라는 이름 석 자가 한동안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올랐지만 '박경신 블로그' 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수백 년 전에 태어난 화가 쿠르베가 자신의 그림 <세상의 근원>과 함께 최고 3위까지 오르는 등 검색어 순위에 랭크되었다. 그것도 자신의 조국이 프랑스도 아닌, 남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비록 검색어 순위에 등장한 순간은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자신과 동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프랑스 츨신의 화가들인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도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Top 10 축에도 껴보지도 못했던 것을 쿠르베는 자신이 그림 그림 한 장과 한국 네티즌들 덕분에(?) 사후 130여 년 만에 첫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되었다.
나 역시 화제의 논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
직접 문제가 된 박경신 블로그의 글을 읽어봤다. 역시 진중권이 왜 이 논란에 대해서 비웃었는지 알 것 같았다. 쿠르베의 그림이 올려진 글에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려져 있었는데 그림의 출처도 모르는채 그저 음란한 그림이라고 규정한 댓글이 많았다. 박경신이 이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진짜 남자 성기 사진처럼 포르노에서 볼 수 있는 '리얼' 여성 음부의 사진이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경신과 진중권이 언급했지만 음란한 그림이라고 규정한 여성의 음부 그림은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작품이며 현재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쿠르베라는 화가와 그가 그린 여성 음부 그림을 네티즌들이 모른다치더라도 더 웃긴 것은 이에 대한 언론매체들의 기사 내용이다. 쿠르베의 그림을 기사 원문에 게재해 당당히 기사 제목에 '음란사진' 이라고 올린 기사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주장, 즉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남성 성기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박경신의 태도는 '오바' 였지만 이보다 더 '오바' 스러운 것은 단지 예술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남자 성기 사진과 같이 음란그림이 아닌, 그것도 '음란사진' 이라고 호들갑 떨었던 언론매체의 과민한 반응이었다.
서양화에 여성 누드가 많은 이유
19세기 인상주의 이전 서양의 화가들이 화폭에 담은 여성의 모습에는 그저 '남성적인' 시선이 많이 반영되었다. 그 남성적인 시선에는 여성을 남성보다는 한 단계 낮은 피지배적이며 인간이 아닌 타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 볼 수 있는 (비록 복제품이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을 보면 대부분 남성 누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만큼 여성이라는 존재는 '인간' 이라는 존재 규정에 벗어난 연약하면서도 별개의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누드로 그림을 그릴 수도, 조각상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이런 남성 모델 중심의 고대 미술의 취향은 근대 미술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지게 된다.
고전주의와 귀족의 취향에 맞춰져 있는 미술 학교에서는 누드 실기를 시행하게 되면 무조건 남성 모델을 사용해야 했으며 절대로 여성 모델을 그릴 수 있는 기회조차 마련되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여성의 신체에 대한 아름다움이 각광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여성 누드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예술의 터부를 깨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 그래서 화가들은 여성의 몸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신화와 종교라는 주제를 빌린 것이다.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비너스나 성녀와 같은 고전적이면서도 신성한 대상을 그린답시고 세속적인 여성의 몸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는 남성적인 소유의 욕망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에 가장 적잘한 장르가 정물화라고 말했는데 존 버거의 말을 그대로 비유하자면 여성의 누드화는 여자의 몸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간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그리고 남성중심 사회에 가장 적절한 장르였던 것이다. 전시회에 찾아오는 남성 관객들은 화가의 여성 누드화를 구경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마네, 그림으로 파리 상류 사회를 도발하다
근대 사회에 접어들수록 여성 누드화는 '남성' 화가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림을 구입하고 후원하는 '남성' 패트런(patron)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865년, 살롱전에서도 이전의 전시회와 다름 없이 벌거벗은 여인의 그려진 그림 한 점이 출품되었는데 관객들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온갖 야유와 비난을 쏟아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이전에는 <올랭피아>의 모델이 창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KBS 1TV <명작 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올랭피아>의 진짜 모델은 <풀밭 위의 점심>의 누드모델로 나선 빅토린 뫼랑이라는 사실이다. 빅토린 뫼랑은 <풀밭 위의 점심>뿐만 아니라 마네의 다른 그림 몇 점에도 등장하는 모델이다. 오늘날 쿠르베의 그림에 대한 음란성 논란처럼 <올랭피아> 역시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노골적인 나체 그림' 으로 조롱을 받아야했다. 수백년 전 '노골적인 나체 그림'은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과 함께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논란의 그림이 바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였다. 평소에 벨라스케스와 같은 선대의 화가들을 모방했던 마네는 여성 누드화의 고전적인 구도를 자신의 누드화에 차용했고 남성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여성의 몸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차디찬 반응을 피할 수 없었다.
살롱의 관객들인 마네의 <올랭피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마네가 <올랭피아>에서 표현한 묘사법에 있었다.
별로 아릅답지도 않은 여자가 홀랑 나체를 드러내고, 그녀의 발치에는 검은 고양이가 눈을 번뜩이고 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흑인 여자가 전달된 꽃다발을 든 채 들어오고 있다.
벌거벗은 여자, 검은 고양이 그리고 하녀로 보이는 흑인 여자.
관객들은 <올랭피아>에 당시 파리 상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폭로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밤이 되면 남성 고객을 위해 몸을 파는 창부의 나체였고 창부의 방을 거쳐간 고객들 중에는 상류층 귀족들, 일명 사회지도층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의 모델은 여성 미의 상징인 비너스가 아니다. 관객들의 눈에는 아름다운 비너스의 누드가 아닌 이름 없는 싸구려 창녀의 누드가 그려진 음란한 그림으로 보였다. 자신들이 은밀하게 보던 창부의 나체를 고급스럽고 격조 높은 살롱 전시회에서 적나라하게 보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고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자신들이 숨기고 감춰왔던 은밀한 성적 욕구의 감정이 <올랭피아> 한 점 때문에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년
그러나 파리 상류 사회에 대한 마네의 도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년 전에도 여성의 누드를 그렸다는 내용으로 커다란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마네는 이 그림을 구상하면서 자신에게 미술적 영감을 제공해준 벨라스케스의 기법을 모방하였으며 그저 단순히 목욕하는 여인이 그려진 그림을 제작하려고 염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롱의 반응은 냉담했으며 끝내 거절당하여 마네는 낙선전에 재출품하는 굴욕을 맛봐야했다. 거절당한 이유는 2년 후에 자신이 그리게 될 <올랭피아> 때 반응과 유사했다.
여자의 누드가 너무 '사실적' 이라서.
여성의 누드가 정중앙에 배치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이 그림을 불쾌하게 본 또 다른 이유는 여성의 누드를 둘러싼 남자 모델들이었다. 당시 파리 남성들이 입고 있었던 댄디 스타일 복장을 입은 채 중앙에 위치한 벌거벗은 여인에 둘러싸 앉아 있는 남자 모델들의 모습이 남성 관객들에게는 자신을 보는 '거울' 이었던 것이다. 2년 후에 <올랭피아>를 본 반응처럼 말이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감출줄만 알았던 자신들의 성적 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공개되는듯한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마네는 그림으로 파리 상류 사회를 도발할 의도는 없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시인인 보들레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한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에 대한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마네는 자신의 이름을 화단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에게도 자신의 미술을 후원하는 패트런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마네의 패트런은 르조슨 사령관이라는 군인이었다. 르조슨 사령관은 파리의 정계의 유력 인사들과 인맥을 맺고 있는 거물급 인사였다. 그는 마네의 그림 한 점을 구입하여 자신의 작업실에 걸어놓았는데 그의 작업실에 방문하는 유명 사회지도층과 귀족들은 르조슨 사령관이 구입한 그림 한 점을 통해서 마네의 예술적 가치를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르조슨 사령관이 구입한 그림이 바로 여성 누드를 사실적으로 그렸다고해서 혹평을 받았던 <풀밭 위의 점심>이었다.
박경신 블로그 사태에 대한 나의 생각
우리나라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대중매체 또는 예술의 음란성 기준에 대해서 사회적인 논란이 많았다. 1992년에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서 시작되어 96년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2003년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까지 음란물로 규정받아 법정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오늘날에는 청소년들이 듣는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 가사에 성적 뉘앙스가 있다고 판단되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박경신이 블로그에 올렸던 말대로 " 현재 대한민국의 음란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 " 하다. 음란한 목적에 올린 사진이라면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어서 공공성에 위반되는 행위이지만 예술의 입장에서 보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로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 불거진 논란에 대해서 ' 내 생각은 이렇다 ' 라고 주장하고 싶은 여지는 없다.
이번 박경신 블로그 사태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될 수 있는 기준의 의미에 대한 합일점을 찾으려한다기 보다 그저 '야하고 음란하다 ' 는 이유만으로 예술을 음란물로 매도하는 대중과 언론의 경박스러운 태도가 마네의 <올랭피아>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19세기 말에 무지한 파리 대중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르베는 " 자신은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 라고 말함으로써 실재하는 현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며 사실주의 미술을 강조하였다. 그가 실제로 에로티시즘에 의도하여 그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사실주의 미술에 대한 쿠르베의 예술적 신념과 '세상의 근원' 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쿠르베는 자궁이 만들어낸 생명 탄생의 경험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구차하게 쿠르베의 그림을 싸잡아서 음란사진으로 규정하여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여성의 음부를 그저 '음란한 대상' 으로만 보이는, 혼자서 은밀하게 즐기려는 폐쇄적인 성 문화에 갇힌 우리들의 어두운 치부를 자신 스스로 만천하에 공개하는 꼴인 셈이다.
P.S> 요즘 사회적 논란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나름 주저리한 글입니다. 그래서 비논리적인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내용이 있다면 필자의 취약한 문제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 생각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빵가게재습격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저는 대학원생이 아니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못한 어느 지방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부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적으로 많이 부족해서 독서나 알라딘 서재에 만나는 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많이 모자란(?) 학생입니다. ^^;;
가끔 제 댓글에 저를 대학원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어서 사족을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