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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그로테스크하다 '
프란시스코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1년
이 그림을 보게 되는 순간,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흡사 오랫동안 굶은듯한 야인(野人)이 간만에 포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지만 그림 속 야인이 손에 쥔 채 먹고 있는 것은 산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저 그림 속 야인의 저 광기어린 두 눈을 보라! 이 그림을 처음 본 관객 입장에서는 식인종을 그린 그림 또는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은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고야가 자신의 '귀머거리 집' 에서 그렸던 연작 벽화 [검은 그림] 중 하나이다. 그림 속 야인은 고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를 그린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 크로노스(Kronos) ' 라고 불리우며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사투르누스에게는 우리에거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제우스와 그의 아내인 헤라, 저승의 신 하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등 6명의 자식을 두고 있었는데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자식으로부터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예언에 미쳐버린 나머지 태어난 자식들을 잡아 먹는(!) 만행을 저지른다. 저 그림이 바로 신화 속 사투르누스의 잔인한 행위을 고야가 표현했던 것이다.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 사투르누스의 부릅뜬 두 눈은 광기를 내뿜으며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림 속 사투르누스의 모습이 더욱 음울하고 괴기스럽게 느껴진다.
나름 교양 좀 있다는 사람들은 고야의 그림을 보면서 얻은 인상을 ' 그로테스크하다 ' 라고 표현할 것이다. ' 그로테스크하다 ' 라는 말에는 그림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투르누스의 괴기스러움을 뜻하고 있다.
그로테스크란 무엇인가?
독일의 문학비평가 볼프강 카이저(1906~1960)가 쓴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1957년)는 그로테스크라는 하나의 예술적 양시을 개념으로 정립하고 그 의미를 역사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책일 것이다.
볼프강 카이저가 태어나기 전에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카를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조경식 역, 나남, 2008)에서 추를 미학에서의 필수적인 요소로 접근하였다. 그리고 예술사 속에서 추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움베르토 에코는 <추의 역사>(오숙은 역, 열린책들, 2008)을 통해서 광범위한 추의 미학을 정립하려고 하였다.
임마누엘 칸트는 추의 개념 중에서도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곧 미적 형상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추가 미적 형상화를 거부하는 경우 일반적인 미의 개념에 반하는 것으로 성립되는데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로테스크 역시 미적 형상화를 거부하는 반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로젠크란츠와 에코가 다루고 있는 추와 그로테스크는 서로 의미가 일맥상통하면서도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추는 미에 대립되는 미적 범주라고 한다면 그로테스크는 개별적 표현양식이다.
15세기 이전에는 그로테스크는 문자, 식물, 기하학적인 모티프가 어울려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라베스크 양식과 동등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16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예술양식으로서의 그로테스크라는 명칭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루카 시뇨렐리 <단테 (오르비에토 대성당 프레스코화)> 1499~1504년
루카스 킬리안 <그로테스크 문양> 1607년
' 그로테스크 ' 는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에게 유희적인 명람함이나 자유로운 환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가 파괴된 세계와 대면할 때의 긴장감과 섬뜩함 또한 의미했다. 사물, 식물, 동물, 인간의 영역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정역학의 질서, 대칭의 질서, 자연스러운 크기의 질서도 사리지고 있다.
-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아모르문디,
1장 [그로테스크: 실재와 용어] pp 45~46 -
그로테스크는 15세기 미술 양식 중의 하나로 그 의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는데 공상의 생물, 괴상한 인간의 형상, 꽃 ·과일 ·촛대 등 일상적인 사물을 복잡하게 결합시킴으로써 형성된 일종의 괴기취미의 유행에서 유래되었다.
몽테뉴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 괴이한 것들, 잡다한 형상에서 따온 조각들을 짜깁기한 것 ' (pp 51)이라고 그로테스크를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현상과 질서에 반하는 왜곡된 형태의 예술양식으로 일반화되었다.
그로테스크 개념의 확장
그러나 유럽에서는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통상적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 기이함, 부자연스러움, 익살맞음, 우스움 ' 등으로 매우 광범위한 의미가 내포되어 이에 대한 확고한 본질의 의미가 제대로 부여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예술 비평가들은 그로테스크를 예술을 자연의 모방으로 보는 원칙에서 벗어나 있으며 예술가의 주관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다소 냉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로테스크 양식은 기존의 예술 관념에 반하는 천박하고 저급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그로테스크는 단순히 장식 명칭의 용어에서 벗어나 점차적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로테스크 양식이 관찰자에게 발휘하는 심리적 영향력의 효과를 최초로 언급, 분석한 인물은 18세기 때 캐리커처 이론가로 활동했던 크리스토프 빌란트였다.
빌란트는 순전히 화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캐리커처를 하나의 유형으로 예를 들면서 초자연적이고 모순된 형상을 통해서 관찰자로 하여금 조소와 혐오감, 충격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함으로써 그로테스크의 효과를 정확히 짚어 냈다.
그리고 빌란트는 그로테스크 예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화가로 피터르 브뤼헐로 손꼽았다.
16세기에서 17세기 때 수많은 화가를 배출했던 화가 일가가 네덜란드의 브뤼헐 일가이다. 농민의 생활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남겨서 ' 농민의 브뤼헐 ' 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대(大) 피터르 브뤼헐(1525?~1569), 지옥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서 ' 지옥의 브뤼헐 ' 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小) 피터르 브뤼헐(1564?~1638)까지 오늘날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브뤼헐 일가의 그림들 중에는 같은 장면을 그린 묘사한 그림이 많아서 오늘날까지도 누가 그린 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이다.
피터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1559년
피터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일부
' 냉정한 관심 ' 이라는 표현처럼 브뤼헐은 인간의 일상이 생경한 것으로 변모하는 광경을 통해 뭔가를 가르치거나 경고하거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세상을 불가해하고 모호한 세계, 우스꽝스럽고 경악스럽고 소름 끼치는 세계로서 그리고 있을 뿐이다.
- 같은 책, 2장 [그로테스크 개념의 확장] pp 68 -
피터르 브뤼헐 <네덜란드 속담> 1559년
피터르 브뤼헐 <네덜란드 속담> 일부 - " 악마에게 고해성사를 하다 "
브뤼헐은 언어 속에 감춰진 섬뜩함을 그림으로 재현했는데, 다양한 속담의 내용을 [네덜란드 속담]에 모아 담음으로써 혼란한 세계상을 그려 낸 것이 그 예이다. 감상자는 그림을 훑어보며 처음에는 조소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림의 한가운데, 정확히 작은 성당의 바로 아래 지점(혹은 이 누각 역시 교회 건물의 일부는 아닐까?)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 악마에게 고해성사를 하다 ' 라는 네덜란드 속담이 묘사된 부분이다. 도시를 찾은 농부가 고해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인데, 자세히 보면 고해 신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다. 괴상한 얼굴에다 머리카락이라기보다 건초다발에 가까운 머리털을 가졌으며 머리에는 뿔인지 나뭇가지인지 모를 무너가가 돋아나 있는 괴물일 뿐이다.
- 같은 책, 2장 [그로테스크 개념의 확장] pp 69 -
피터르 브뤼헐은 이전에 지옥을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브뤼헐은 제단화로 대표되는 기존의 종교적인 회화의 틀에서 벗어나 지옥의 세계를 자신만의 양식으로 표현하였다.
브뤼헐이 창조한 괴기하게 짝이 없는 비현실적인 세계는 당시 기독교적 사상에서 통용되던 무시무시한 지옥의 모습이 아닌 어떠한 이성적, 감정적 해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순적 그로테스크를 유발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 (1802~1885)
그로테스크 개념에 대한 의미 확장의 과정은 낭만주의 시대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여전히 그로테스크는 ' 괴기스러움 ' 과 ' 익살스러움 ' 라는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지만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그로테스크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괴기스러움을 그로테스크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헨리 퓨젤리(퓌슬리) <맥베스와 세 명의 마녀들>
그리스 신화의 에우메니데스(복수의 여신)보다도 <맥베스>에 나오는 마녀가 훨씬 더 섬뜩하다.
- 빅토르 위고, 같은 책, 제3장 [낭만주의 시대의 그로테스크], pp 103에서 인용 -
그리고 그로테스크의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희곡' 을 탄생시킨 작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가리켰다. 위고는 셰익스피어를 비극과 희극, 전율과 공포이 담긴 ' 드라마 ' 의 소유자로 평가하였으며 볼프랑 카이저 역시 예술가들 중에서도 그로테스크를 비극과 희극에 결합시킨 위대한 작가로 셰익스피어를 손꼽고 있다.
현대의 그로테스크
20세기에 이르러 세기말에 대한 유럽의 공포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접하게 되면서 예술에서의 그로테스크는 한층 더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문학계에서는 아르투로 슈니츨러는 그로테스크 연극이라는 새로운 문학양식을 창조하였으며 독자들에게 괴기스러움과 섬뜩함의 정서를 전달하는 소설을 창작하는 공포소설가들이 등장하였다.
예술계에서는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초현실주의의 등장으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드러나게 하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탄생되었다.
특히 볼프강 카이저는 그로테스크의 의미가 연상되게 하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예술가로 조르지오 데 키리고,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를 예로 들고 있다.
조르지오 데 키리코 <어느 날의 수수께끼> 1914년
조르지오 데 키리코 <사랑의 노래> 1914년
키리코의 작품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영역, 즉 기계적인 것과 생물적인 것이 혼합되면서 지금껏 익숙하던 세계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시간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의 혼합이다. 이는 인간의 시간 질서를 통째로 뒤흔든다. 고대의 조각상이현대 일상의 흔해 빠진 도구들과 나란히 놓여 있거나 르네상스 건축물 위로 공장의 굴뚝이 솟아 있는 모습을 보면 역사적 유산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이 흔들릴 지경이다.
- 같은 책, 5장 [현대의 그로테스크] pp 281 -
살바도르 달리 <내란의 예감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1936년
달리의 작품에서 통일성이나 소재가 지닌 독자적 특성을 사라지고 없다. 왜곡되고 뒤틀리고 분해된 형상, 구역질나고 혐오스러운 형상이 의도적으로 '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 묘사된 광경은 감상자가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기도 힘들게 만든다.
- 같은 책, 5장 [현대의 그로테스크] pp 282 -
카이저는 네 명의 화가들의 표현 양식은 우리가 접하는 사물과 현상 간의 익숙한 관계를 파괴함으로써 생경한 세계를 창조하여 관객에게 불길한 감정을 전달하는 효과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로테스크 장식미술의 양식과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이 연상시키고 있다고 평을 내림으로써 그로테스크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의 힘이 20세기에도 여전히 발휘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삶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그로테스크의 시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볼프강 카이저가 영면하기 3년 전에 집필한, 지금으로써 50여 년 전에 쓰여진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로테스크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역사적 범위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으며 비평가답게 문학 작품의 텍스트를 다루는 내용에서는 전문적인 비평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자가 독일 태생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문학 작품의 텍스트들은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은 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리고 문학을 전문적으로 비평하는 그가 회화 예술에서의 그로테스크도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와 분석을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지만 화려한 도판을 담지 않은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원서 자체가 빽빽한 글자로 이루어진 형태로 출간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국내 번역본에는 책 첫머리에 책에서 언급되는 몇 점의 미술 작품들이 실려 있다. 하지만 다양한 그로테스크 예술을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는 만족감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미술과 문학에서 사용되어지는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라는 점 그리고 아직 그로테스크라는 예술적 양식이 생소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그로테스크 양식을 소개하는 책이 아닌 곧 현실에서 실현될 그로테스크의 세계 속에 살아야하는 후세의 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이 내려준 형벌이라고 여겨지던 흑사병의 유행에 유럽 전역이 두려움을 떨어야했고 19세기의 시대가 접어들기 시작하는 세기말에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사회적인 감정으로 유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세기에는 두 차레의 세계 대전을 통해서 전쟁의 참상을 인류는 경험해야했다.
그로테스크의 세계는 현실세계인 동시에 현실세계가 아니다. 그로테스크가 조소와 더불어 섬뜩함을 유발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고정된 질서에 따라 움직이던 세계가 여기서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생경한 것으로 변하고 혼란에 휩싸이며 모든 질서 역시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
- 같은 책, pp 71~72, pp 309 -
불확실한 변화의 세상을 경험한 인류는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공포를 형성하게 되었고 공포를 유발하게 만드는 생경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로테스크라는 악마적이면서도 괴기스러운 형식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테스크의 세계를 정의한 볼프강 카이저의 말대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그로테스크하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싸여 경쟁 체제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온갖 비인간적인 죄악이 동원되고 있으며 안정적으로 돌아가던 경제가 한순간에 붕괴되어 혼란의 정국에 치닫게 되는 나라도 있다. 수많은 인명 살상을 낳게 만드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핵무기 사용에 대한 두려움에 무던해졌으며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화약고 같은 세상. 평화롭기만한 세상의 중심 한가운데 무시무시한 핵폭탄 한 발이 투하되는 동시에 지구 속 세상은 한순간에 모든 질서가 무너질 것이며 그림으로만 보던 지옥의 모습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이 세상이야말로 그로테스크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