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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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썩지 않은 손    

 

 子不語 怪力亂神 

 (자불어 괴력난신) 

공자<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괴이, 폭력, 난잡한 것, 귀신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 이를 ' 괴력 ' 과 ' 난신 ' 으로 나누어 괴이한 힘과 잡귀신들을 믿고 논하는 것을 경계함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자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흥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의 생활에 땔래야 땔 수 없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같이 문명과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 무슨 귀신, 유령 타령이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곳곳에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같은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정말 우연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사소한 자연현상은 이 사건의 뉴스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소박한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어느 야산의 공사 현장에서 죽은지 꽤 오래된 백골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오직 남아있는 건,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유골뿐.  범인을 찾지 못하는 미궁의 살인사건으로 남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손 부위만 전혀 썩지 않고 남아 있었다.  

썩지 않은 손의 지문을 조사하여 백골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5년 전에 실종되었던 여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실종된 여인의 백골이 발견된 지 얼마 안 되어, 드디어 범인이 체포되었다. 여인을 죽인 범인은 바로 그녀의 동거남이었던 것이다.  범인은 말다툼 끝에 홧김에 그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하였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경찰 관계자과 국과수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특정 부위, 하필이면 손 부분만 썩지 않은 변사체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법의학계에서는 시체의 부패 환경에 따라서 특정 부위만 미라처럼 남게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뉴스를 접한 대중들의 머리 속에는 괴담 실화에서 나올법한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여인의 한맺힌 손이 자신을 죽인 범인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일지도.  

 

  

  인간이 괴담에 집착하는 이유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 괴담 ' 에는 단순히  ' 괴이한 이야기 ' 라는 사전적인 의미의 뜻도 담겨 있지만 괴담 자체가 만들어내는 괴이하면서도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현상적인 분위기에 이끌린 대중들의 무의식적인 공포 심리를 반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괴담으로는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유명해진 ' 학교 괴담 ' 을 들 수 있다.  

인적이 드문 한밤중에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동상이 눈물을 흘린다거나 혹은 스스로 움직인다, 학교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 이 터가 옛날에는 공동묘지들이 많이 있던 곳이라서 새벽이 되면 무덤 속의 귀신들이 학교 건물 안을 배회한다는 등 , , ,   지역마다 학교 괴담의 내용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괴담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의 원형은 서로 일치하는 점이 있다.   

 

 

한 때 잔인한 살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무렵에는 90년대에 유행했던 ' 김민지 괴담 ' 이 디지털 시대에도 회자되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였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의 딸 김민지가 납치돼 토막살인 되었고, 이에 한을 품은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가 화폐 곳곳에 김민지의 이름과 잘린 팔 다리를 숨겨 놓았다는 내용인데 사실은 근거가 없는 루머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허무맹랑한 내용은 걷잡을 수 없는 루머로 퍼지게 되었으며 한국은행에서는 공식적으로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국은행 창립 이래 김민지라는 이름의 딸을 둔 고위관계자가 없었으며 결국 루머로 판명되었다.  

이렇듯, 대중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가짜 괴담에 너무 쉽게 반응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 집착 ' 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괴담이 루머로 판명되었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 괴담 ' 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등장하게 된다.  대중들이 괴담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 주위에 발생하는 사회현상들에서 비롯되는 불안감과 공포심에 의해서 믿어버리게 된다.  최근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피해가 커지게 되자 ' 구제역 괴담 ' 이라는 불리우는 루머가 떠돌고 있는 사실이 그 예인 것이다.   

 

 

  괴담을 모티브로 한 괴담  

괴담에 집착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 같은 경우에는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것과 오늘날 탄생되는 괴담까지 합하면 그 수가 어마어마하 며 괴담에서 비롯된 일본 특유의  ' 괴담 문화 ' 가 발달되어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 괴담 문화의 성립과 변천 과정에 대해서 전문적인 학술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특히, 일본의 교고쿠 나쓰히코는 ' 요괴소설의 1인자 ' 로 불릴 정도로 일본의 괴담 및 요괴에 대해서 박식한 미스터리 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에서 발표된 <항설백물어> 시리즈는 일본의 괴담집인 [회본백물어]에 모티브로 재해석한 소설로 대중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평가까지 받게 되었다.  (국내에서 소개된 것은 시리즈의 첫 작품이며, 세 번째 시리즈인 <후 항설백물어>는 2004년 제130회 나오키 상을 수상하였다)

아즈키아라이, 하쿠조스, 마이쿠비, 시바에몬 너구리, 시오노 초지, 야나기온나, 가타비라가쓰지. 

교고쿠 나쓰히코의 미스터리 소설을 처음 읽는데다가 나처럼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고 일본 문화에 익숙치 않은 분들에게는 목차에 등장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괴 이름들을 보자마자 낯설어 할 수 있겠다.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괴담을 재해석했다고는 소개하고 있지만, ' 괴담 ' 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도 결국에는 ' 괴담 ' 이라는 장르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형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요괴의 이름들을 우리말로 쉽게 풀이한다면 ' 팥 이는 귀신, 스님으로 둔갑한 여우, 머리가 잘린 채로 계속되는 싸움, 사람으로 변신하는 너구리 , , ,  ' 정도라고 해야될까 , , , ?   어떻게 보면, 문화적인 배경이 다를 뿐, 우리나라의 전래 괴담과 비슷하기도 하다.   

<항설백물어>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선과 악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악인들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윤리적인 비행과 잔인한 살인을 자행한다.  특히, 억울하게 죽게 된 영혼들은 요괴가 되어 ' 피 ' 의 복수를 함으로써 자신을 해친 악인들을 철저히 응징을 가한다. 그리고,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부터 살해당한 아픈 기억 때문에 한이 맺힌 동물들은 인간으로 둔갑하여 자신이 갈망하던 복수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결국, 일본의 괴담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에서도 볼 수 있는 권선징악형 전개와 결말이 있다는 것이다.  

 

 

  괴담의 탄생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소설 속 악인들이 죄의 대가를 받는 과정이다. 4인조 소악당(모사꾼 마타이치, 신탁자 지헤이, 인형사 오긴, 기담 수집가이며 작가 지망생 모모스케) 들이 꾸민 정교한 계략에 의해 악인들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악인들은 요괴의 마력에 홀린듯이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 점이다.   겉만 사람의 모습으로 가장한 채 어두운 본성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백골이 되어서도 두 손만 썩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본 범죄자도 소설 속 악인들과 같은 심정을 겪었을 것이다.  범인은 백골의 손이 자신을 가리켰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도 감방에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대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보이지 않는 귀신과 유령들이 우리 사회에 어딘가에 숨어 있는 어둡고 추악한 본성에서 만들어질 것일지도 모른다.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 제3자들의 공포심과 상상력이 덧붙여져서 ' 괴담 ' 이라는 이야기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이런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는 여름밤에 보는 것이 제 맛이지만, 지금과 같은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밤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어둡고 불투명한 세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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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19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물어백서 꽤 잼나죠? ^^

괴담이란게 항상,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단 말이예요. 그런데
사이러스님 요즘 괴담이나 공포물에 푸욱 빠져 계시네요. 와아.

좋은 리뷰입니다, 서평으로 냉큼 써도 좋을만큼.

cyrus 2011-01-19 13:32   좋아요 0 | URL
네, 마고님 40자평이 기억나서 읽게 되었는데,, 이 소설은 재미있었어요.
후편과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추리소설도 읽고 싶은데,, 종류와 주제가 다양해서 뭘 읽을지
모르겠어요. 재미난 추리 시리즈물 있으면 추천 해주세요 ^^

양철나무꾼 2011-01-19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르소설계에 발을 들여놓으셨군요.
이 참에 ‘푸욱~’빠져 보세요, 무궁무진하답니다.
전 항물백어설 마고님 리뷰 쓸때부터 넘겨다만 보고 아직 안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군요.
근데,,,마고 처자 이 새벽에 어인 마실~?^^

cyrus 2011-01-19 13:34   좋아요 0 | URL
리뷰 이벤트 때문에 장르소설을 읽게 된거 같아요,
그런데 읽고 리뷰로 쓰는게 쉽지가 않네요, 스포도 주의해야되구요..^^;;
이번 기회에 추리 시리즈물도 읽고 싶은데 추천해주세요 ^^

2011-01-19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1-1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책 다양하게 읽으십니다.
이책 좋다고 하는데 역시 음산한 얘기를 싫어하는 저는 매번
선택에서 제외되요.
어렸을 때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 나를 제외하고 사람들은 겉모양만 사람이지
사실은 요괴일거라고. 그게 다 알고보면 저 자랄 때 '요괴인간'이란 일본 만화영화
영향 때문인데, 이게 또 자라면서 새롭게 재인식 되더란 말이죠.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둘게 못된다는 둥 변형되면서 말이죠.
학교 괴담은 학교에 눌리고 억압된 인간의 내면 때문에 자꾸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학교에 대한 꿈을 어찌나 반복해서 꿨던지 괴담으로 살풀이라도
해야지 싶더라구요.ㅠㅠ
근데 저는 저 책 제목을 아직도 재대로 못 읽어요. '향물어백서'로 읽는다니까요.ㅋㅋ

cyrus 2011-01-19 13:37   좋아요 0 | URL
저도 요괴인간 비디오로 재미나게 봤어요. 저도 예전에
학교에 대한 꿈을 꿨답니다. 스텔라님 말씀대로 우리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억압 때문에 생기는 같습니다.
제목이 좀 어렵죠?? 저는 처음에 요괴 소개하는 책인줄 알았어요.^^;;

stella.K 2011-01-19 13:55   좋아요 0 | URL
오, 그걸 요즘도 볼 수 있나요?
워낙에 오래된 만화영화라 못 볼 것 같은데...
그럼 '아톰'이나 '철인28호' 같은 만화도 볼 수 있으려나요?ㅋ

cyrus 2011-01-19 15:45   좋아요 0 | URL
제가 잘못 말했네요. ㅎㅎ
초딩 때 비디오를 많이 봤는데,
아톰, 철인 28호, 후레쉬맨, 파워 레인저 같은
명작(?)들을 비디오로 빌려서 친구들이랑
같이 본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이런 만화영화를 보기가 드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