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서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곳은 이 곳 나의 서재와 공식 출판사 카페 두 곳, 총 세 곳이다. 다양한 책들을 읽고, 그 독서를 통해서 느낀 감정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장소이다.
비록 서로 얼굴은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글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지향하고 있는 생각, 그리고 삶의 가치관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인터넷 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어두운 골방 속에서 독서를 해서 생긴 내 마음 속의 고정관념들을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는 고정관념을 갖지 않기 위해서 그 골방을 부수기도 하고 말이다. 또, 가끔은 메마른 나의 감정에 단비 내리듯 즐겁게 해주는 글도 있기도 하다. 이렇듯, 이런 만남은 참으로 좋기만 하다.
Scene #1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해도 무조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 괜스레 신경이 쓰이고, 약간의 우울함도 느껴지기도 할 때가 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이름만 알면 다 아는 유명 출판사 카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 '활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렇지만, 내 서재에 글을 올리듯이 카페에서도 책 읽고 쓴 글을 올리는게 나의 카페에서 활동이다.
그 중에서 B 출판사라는 곳이 있는데, 내가 이 곳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출판사 자체에서 주최한 리뷰 이벤트 때문이었다. 그 때는 이제 막 알라딘 서재를 만든지 얼마 안 되었고, 아직 온라인 상 공간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가고 있지 않은 터라 그냥 글 몇 편 올리고 운 좋게 상품이 걸리면 상품만 받고, 탈퇴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우습게 표현하면 그냥 상품만 받고 냅다 튈려고 하는 격(?)이라고 해야되나, , ,
그러다가, 이벤트 참여 리뷰를 카페에 올리면서 우연히 이벤트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일게 되었다. 이 이벤트는 여려 편 글을 올려 응모할 수 있어서 두 세 편씩 올린 회원분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리뷰를 무려 10편 정도 올린 J라는 회원이 있었다.(!) 나는 그 분의 글을 세보니 총 14편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카페 창설했을 즈음에 가입하여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분이었다.
"뭐야... 양으로 승부해서 이번 이벤트에서 상품 받으려고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얼마나 잘 썼는지 글 한 편을 읽었다. 그 글은 헤르만 브로흐의 소설 <몽유병자들> 리뷰였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가나 시인들은 글 한 편 쓰는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감정들을 거기에다가 다 쏟아부어 표현할 줄 아는, 아주 특수한 능력인 줄 알았는데..
J 씨의 글, 아니 리뷰의 문장은 예사 글이 아니었다. 어떻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하나의 글에 간결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더구나 J씨의 표현력에 감탄했던 이유는, 자신이 겪고 있는 병환을 자신의 독서와 결부시켜 정말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 분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사실 카페에서 그 분과의 대화를 좀체 해보지 못한 터라 허락도 구하지 못해 함부로 인용할 수가 없었지만, 그 분이 쓴 문장이 너무 잘 써서 조심스레 공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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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벽에 머리를 박아가며, 때로는 불면증 치료약으로 써가며, 아는 단어인데도 ' 내가 정말 이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걸까' 하고 수백번 단어 사전을 검색해가며, 한 장 한 장 뜯어먹듯이 읽어 해치우고 만 것이다.
(…) 독자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찾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고독에서 구명해내기 위해서라도 이런 예술 작품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뿐더러 늘 생각하는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주의, 타자를 존중하고 배려함으로 획득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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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브로흐의 작품은 '박물 소설'이라는 특수 장르인데, 그의 길고 긴 내용의 작품을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나 J씨는 그런 독서의 어려움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김으로써 어떻게든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자신이 먹고 있는 불면증 치료약을 먹으면서까지,,, 도저히 안 되다보니 이번에는 사전까지 찾아보고 있다.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독서 읽기의 고통으로 승화시키다니. . .
J씨의 긴 글을 다 읽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졌다. J씨의 사연이 안스러워지기도 하였다. J씨는 매일 찾아오는 신체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 어렵다던 브로흐의 작품을, 미친듯이 읽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년에 돌아가신 故 장영희 교수님도 떠올랐다. 교수님의 글에도 자신의 몸 속에서 퍼져나가는 암세포가 주는 고통을 에세이에서 거침없이 토로를 했었는데. . .
하지만 다른 리뷰와 그 분이 남긴 댓글에는 좀처럼 병환의 고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글이 멋지다는 댓글에도 그 분은 겸손하였고, 그 불행의 고통만 없었으면 독서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즐기는 평범한 회원이었다. 하지만 몇 몇 글에는 자신의 투병을 암시하는 문장도 있었다. J씨는 날이 갈수록 아파오는 몸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인 독서와 카페에 리뷰를 올리는 것이 버겁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카페에 본격적으로 활동한 뒤부터는 J씨의 글은 잘 볼 수도 없었고, 카페에도 자주 들어온 일도 없었다. 그나마 간혹 들어오기는 했지만, 다시는 그의 멋진 글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J씨와 댓글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Scene #2
그러다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카페 이벤트 대회의 결과가 나왔다. 역시나 나나 카페 회원들의 예상대로 J씨가 이벤트에서 1등 격인 최고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수상을 카페 매니저의 쪽지로 통해 알게 된 J씨는 정말 오래만에 카페에 들어와, 수상 소감의 댓글을 남겼다. 자신의 글이 높은 상을 받을 줄은 몰랐으며, 정말 감사하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요즘 몸이 아파서 자주 카페에 들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 미안함을 표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 분의 댓글을 보면서 J씨가 예전보다 카페에 좀 들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그대로였다. 간혹 카페에 들릴 뿐, 글이나 댓글을 좀처럼 남기지 않았다.
나는 날이 가면 갈수록 궁금해져만 갔다. 정말 너무 아파서 카페에서 활동을 자제하는 건 아닌지 나름 추측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투병 생활을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정말 몸이 아프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봤다. 본인은 신체적 고통에 괴로울 판에 이 책 읽었다고 한껏 멋을 부린 채 리뷰을 올리고, 서로 희희낙락하면서 댓글을 나누는 사람들이 보기 싫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죽을 거 같다는 고통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나 같아서도 이런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고 있다면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봄직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분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아니, 내가 책 읽고 느낀 감정들을 남들에게 보란듯이 주저리 늘어놓고, 이모티콘을 남발하면서 '좋다'라고 짤막하게 댓글을 달고 있는 나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 일이지 회의하기도 하였다. 의도치 않게 J씨를 신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죄어오게 하지 않았는지 괜히 죄책감도 들기도 했다. J씨에 대해서 사과의 표현을 담은 쪽지나 메일이라도 보내려고 생각했지만, 괜히 그 분에게 되려 누가 될까봐 차마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J씨는 카페에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다.
Scene #3
나에게도 J씨의 존재감과 그 분에 대한 걱정이 잊혀져갈 무렵, 오늘 그 분이 카페에 글을 올렸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자신이 받은 이벤트 대회 상품을 공개한 글이었다.
J씨가 받은 상품은 출판사 문학전집 총 50권과 책장이었다. 그 분은 이번에 받은 50권의 책들도 있고 해서 대대적으로 자신의 대형 서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카페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과 이번에 받은 상품의 책들을 사진으로 공개하였다. (J씨는 예전에 카페에서 자신의 서재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대형 서가를 여러 번 보유하고 있는 애독가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건강상 이유 때문에 당분간은 카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밝혔다. 입원 겸 요양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정말 감사하다는 말도 남겼다.
B 출판사 카페는 이상하게도 회원들이 댓글을 잘 안 남기는 편이다. 그나마 댓글과 글을 맣많이 남기는 회원은 나와 몇 몇 분들밖에 없다. 그래서 J씨의 글에도 그렇게 많은 댓글이 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부터 J씨를 알고 있었으며 댓글로 통해 교류를 한 몇 몇 회원들은 J씨의 쾌유를 비는 댓글을 달았다. 나도 J씨와 제대로 상대 해보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그 분의 건강을 완쾌되기를 바라는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간혹 어느 댓글은 J씨가 올린 사진에만 본 나머지 부럽다는 내용만 남긴 덧글도 있었다. J씨는 이런 댓글을 원하지 않았을텐데...
또 다시 내 마음에 J씨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생겼다. 이번에는 그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평소에 카페에 자주 들어오지 못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글에서 카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적었을까?
이런 생각은 해서는 안 되지만, , , 나는 오늘 J씨의 글이 정말 마지막 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는 이 카페에 찾아오지 못할 거 같은 느낌도 문득 들었다.
나는 댓글에다가 건강해서 다시 카페에 활동하기를 바라는 말을 남겼다. 과연 J씨는 나의 댓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통을 겪지 못한 자가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전하는 걸멋든 연민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서재에 있는 책의 사진들을 보니,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 를 전하는 것도 같았다.
'바니타스(Vanitas)'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그림에는 항상 책이 있다. J씨는 책을 좋아한답시고 책 읽고 글을 쓰는 회원들에게 그런 짓들은 죽음 앞에서는 부질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했을 수도 있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수 백권 모은 책들은 정말 J씨에게는 헛된 물건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서재가 부럽다고 칭찬 일색하는 회원들에게는 따끔한 인생의 진리를 암시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암묵적인 메시지를 알아 차리지 못하지만, 이들도 언젠가는 자신처럼 겪게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J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J씨가 진심으로 병의 고통을 훌훌 털어서 다시 한 번 우리 카페에 활동, 아니 멋진 글을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짧은 글이어도 좋으니, 나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은 글 한 편이라도, , , <몽유병자들>을 읽기 위해서 머리도 박고, 사전을 찢어 먹었듯이 J씨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과 고통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기약은 없지만, 꼭 나아서 예전의 활동적인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기록된 과거의 지나친 감정 모든 것들이 단순한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