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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7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6월
평점 :
평점
4점 ★★★★ A-
취향(趣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표준국어대사전)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난 폴 오스터(Paul Auster)는 ‘작가’라는 직업을 이렇게 정의했다. 작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이 말은 오스터의 자전적 글 《빵 굽는 타자기》(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00년)에 나온다. 글의 원제는 ‘Hand to mouth’다. 하루 벌어 근근이 먹고 산다는 뜻이다. 《빵 굽는 타자기》는 가난과 싸우면서 글을 썼던 작가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전업 작가로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글만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생계비를 벌 수 있는 본업을 유지하면서 부업으로 글을 써야 한다. 오스터는 대부분 작가가 이중생활을 한다고 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는 ‘작가’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부업과 본업을 넘나드는 삶을 살아왔다.
《빵 굽는 타자기》의 부제는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다. 젊은 시절 오스터는 주제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 시, 연극 대본, 서평 등을 썼다. 그는 폴 벤저민(Paul Benjamin)이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썼다. 이 글은 오스터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원래 이 소설은 《Hand to mouth》에 수록된 작품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한 권의 책으로 따로 나왔다. 제목은 《스퀴즈 플레이》(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00년)다.
‘닥치는 대로 글 쓰는 생계형 작가들’을 주제로 큐레이션을 한다면 나는 ‘이 작가’를 반드시 포함할 것이다. ‘이 작가’ 또한 소설, 시, 비평문을 썼다. 그가 남긴 수많은 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시와 ‘탐정소설’이다. ‘이 작가’는 세계 최초로 탐정소설을 쓴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다. 포의 본업은 평론가다. 그는 미국 문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평론을 썼다. 포는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궁핍한 삶이 그의 재능을 막아섰다. 포병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포는 형의 이름을 몰래 빌려서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잡지에 투고한 글의 원고료는 쥐꼬리만 한 수준이었다. 포는 자신의 글을 마음껏 실을 수 있는 신문과 잡지를 발간하기 위해서 직접 언론사를 차렸다. 하지만 경영난에 빠지게 되면서 신문과 잡지가 폐간되었다.
포는 잡지에 게재한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집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 이야기>(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을 발표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포는 자신의 첫 소설집을 펴낸 출판사를 잘못 만났다. 출판사가 포에게 인세(royalty)를 주지 않은 것이다.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고딕소설(Gothic novel)이다. 고딕소설은 공포 소설의 시조에 해당하는 장르다.
포는 소설가보다는 시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단편소설에 시가 삽입되어 있다. <어셔 가의 붕괴>에 나오는 「유령의 궁전」(The Haunted Palace)은 포가 직접 쓴 시다. 포는 자신이 쓴 고딕소설과 탐정소설을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거리’로 여겼다. 포의 고딕소설은 유령 이야기를 좋아하는 대중의 취향에 맞았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그의 소설이 유행한 지 한참 지난 ‘독일풍(Germanism)’을 지나치게 모방한다고 비판했다. 포는 소설집 서문에 비평가들의 냉담한 평가를 반박하기 위해 ‘공포’를 이렇게 정의했다.
“공포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폴 콜린스, 《에드거 앨런 포, 삶이라는 열병》, 81쪽)
대중을 위한 글은 문학적으로 우수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평가받기 쉽다. 그래서 공포 소설과 추리소설은 어린이나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독자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작품, 또는 교육에 유익한 작품은 고전이 될 수 있다는 좁은 편견은 ‘편 가르기 독서’를 조장한다. ‘편 가르기 독서’에 익숙한 독자들은 오랜 세월 인정받은 고전을 아주 좋아한다. 고전에 분류되지 못한 작품이나 책, 특히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여진 추리소설과 공포 소설, SF, 판타지 소설 등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전이 아닌 책을 읽는 일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편 가르기 독서’의 문제점은 독자 본인이 낯설어하는 장르나 주제의 책에 친해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완전히 다른 독자의 독서 취향을 무시한다.
엄격하게 작품을 비평하기로 악명 높은 포는 대중 소설을 관대하게 평가했다. 오히려 그는 대중 소설을 ‘싸구려 오락거리’로 바라보는 비평가들의 고상한 도덕주의와 실속 있는 독서를 지향하는 교양주의를 비판한다.
터무니없음이 고조되면 엽기를 만들고,
두려움의 빛깔이 짙어지면 공포가 됩니다.
재치를 과장하면 우스꽝스러워지고,
독특함이 기괴함과 신비스러움을 낳습니다.
당신은 아마 이 모든 것들을 나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것들이 나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먼저
사람들이 읽는 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원하는 것입니다.
(폴 콜린스, 《에드거 앨런 포, 삶이라는 열병》, 53쪽)
포는 비평가들이 호평하는 문학과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학은 항상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포의 문학론에 독자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된 독자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책을 고른다. 만약 포가 지금 살아서 추리소설과 공포 소설을 가볍게 여기는 독자나 비평가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취향입니다. 취향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존중해주시죠.”
<cyrus의 주석>
* 45쪽
그레세의 『베르베르와 샤르트르 수도원』 [주]
[주] 장 바티스트 그레세(Jean Baptiste Gresset)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다. 주요 대표작은 <어셔 가의 붕괴>에서 제목으로 언급된 작품 두 편이다.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오페라로 만들어진 시 <베르베르>(Vert-Vert ou les voyages du perroquet de la visitation de Nevers)와 <샤르트뢰즈>(La Chartreuse)다. 샤르트뢰즈는 프랑스령 알프스 산악 지대에 있는 수도원이다. 샤르트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과 다른 건물이다. 샤르트뢰즈와 샤르트르는 철자가 다른 명칭이다. ‘샤르트르 수도원’은 오역이다.
* 316쪽
티에스트 → 티에스테스(Thye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