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오후에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가 처음으로 서점 <일글책>에서 진행되었다. ‘두루미’의 의미는 예전에 쓴 <어두운 방, 밝은 방>이라는 제목의 갤러리 감상문에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첫 번째 선정 도서]
* 가와우치 아리오, 김영현 옮김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다다서재, 2023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경계선을 한 걸음씩 뛰어넘으면,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획득한다. 그 결과 세계를 ‘두루두루 보는’ 따뜻한 시선에 아주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가와우치 아리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중에서, 205쪽)
이 문장에 영감을 받아 전시회 및 갤러리 감상문을 모아놓은 카테고리 이름과 예술 책 읽기 모임을 ‘두루미’로 정했다. ‘미’는 ‘아름다울 미(美)’와 ‘나’를 뜻하는 영어 ‘me’,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시회에 가서 예술작품을 ‘두루두루 보는’ 개인적 경험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두루미’다. 두루미 첫 번째 모임 선정 도서는 당연히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다.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은 정오에 마무리된다. ‘두루미’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다. 빡빡한 일정이다. 오전 독서 모임이 끝나면 쉬거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그래도 긴 시간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사이에 나는 책방 <환상 문학>에 갔다. <환상 문학>은 알라딘 서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책방에 미리 주문한 책과 알라딘으로 주문한 책들을 받으러 두 곳을 들렀다.
‘두루미’ 모임을 어떻게 진행할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책을 다시 훑어보지도 않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모임을 잘 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다. 난 평소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주말이면 책방에 가서 (책을 사고), 책방지기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일상이 올해로 13년째로 접어들었다. 처음은 2011년 서울 종로에 진행된 ‘펭귄 클래식’ 고전 읽기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때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의 인연이 이어져서 ‘달의 궁전(달궁)’이라는 모임에 합류했다. 대구 독서 모임은 ‘우주지감’과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으로 같은 해에 시작했다. 지금은 <일글책>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으며 ‘달궁’은 간간이 참여하고 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짧게, 때로는 길게 만났다. 모임에 꾸준히 나오다가 갑자기 불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모임 진행 분위기에 불만을 느꼈다. 이들은 독서 모임이 자신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했고, 끝내 불참을 결정했다. 그런 분들을 봤기에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모임 시작 전에 미리 말했다.
“오늘 모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각자 하고 싶은 말하세요. 모임 다 끝나고 나서야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마세요.”
자유로운 대화 진행에 걸림돌이 될 만한 모임 발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독서 모임은 ‘편안하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임장은 공연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연출가’의 역할과 비슷하다. 단, 내가 언급한 ‘연출가’는 공연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연기와 무대 장치 등에 꼼꼼히 보고 개입하는, 그런 흔한 연출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희곡 전문 가게 <인스크립트>에 갔을 때, 책방지기이자 배우 권주영 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연출가의 역할은 뭐에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봤다. 주영 님은 ‘배우들이 편하게(능동적으로) 연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신이 지향하는 연출이라고 대답했다. 짧게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대화였지만, 배우에게 제대로 배우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독서 모임을 진행하게 되면 저런 연출가처럼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년)
* [마카롱 에디션]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래식코리아, 2015년)
‘두루미’ 모임 진행은 처음이 아니다. 생애 첫 독서 모임 진행은 ‘펭귄 클래식’ 모임에서 시작했다. 그때 읽은 책이 니체(Nietzsche)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그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만든 모임 발제를 입술과 심장이 떨면서 말했던 순간은 잊지 못한다.
* 웬다 트레바탄, 박한선 옮김 《여성의 진화: 몸, 생애사 그리고 건강》 (에이도스, 2017년)
2019년 7월 25일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모임 선정 도서는 《여성의 진화》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내가 추천한 과학책이었다. 모임 장소는 침산동에서 고성동으로 이전한 지 얼마 안 된 <서재를 탐하다>였다. 7월 모임을 위해 발제 세 개를 만들었지만, 그때도 발제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분들에게 당부했다. 완독에 쫓기지 말고, 다 못 읽더라도 각자의 관심사와 관련 있는 내용은 꼭 읽어오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자유롭게 말하기. 5년이 지났는데도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방식이 한결같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 숀 캐럴, 김영태 옮김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공간, 시간, 운동》 (바다출판사, 2024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숀 캐럴(Sean M. Carroll)은 자신의 책 《공간, 시간, 운동》 서문에 자신의 꿈을 밝혔다.
나의 꿈은 사람들 대부분이 현대물리학에 관해 열정적으로 자기 의견을 알리는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친구들과 선술집에 몰려가 무엇이 최적의 암흑물질 후보인지, 또는 무엇이 최상의 양자역학 해석인지를 놓고 떠들고 놉니다.
(서문, 9쪽)
독서 모임에 늘 환영받지 못한 책과 주제가 있다. 과학, 정치, 종교다. 이런 주제는 어렵고, 지루하고,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기 부담스럽게 만든다. 독서 모임 선정 도서 대부분은 소설, 에세이, 또는 읽기 편안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다. 그리고 독서 모임을 위한 책을 추천할 때 신간보다는 이미 많이 알려진 구간 도서를 선호한다. 올해 나의 꿈은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의 책을 읽고, 자기 의견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책들은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에 관한 것들이다.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의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서 좋은 책을 보는 나의 안목을 증명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