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6세 2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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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   C





셰익스피어(Shakespeare) 하면 당연히 4대 비극과 희극을 떠올린다. 그는 영국의 유명한 군주와 주변 인물을 소재로 한 역사극도 썼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역시 종종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작품들은 집필 시기와 초연 시기에 따라 총 4기(또는 3기)로 분류된다. 이 글은 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역사극 헨리 6세 제2에 대한 서평이다. 여기서는 셰익스피어가 본격적으로 극작품을 쓰기 시작한 1기에 해당하는 초기(1589~1594)[]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1580년대 말에 시골뜨기 청년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수도 런던에 정착했다.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연도를 1590년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세네카(Seneca)오늘날에는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Nero)의 스승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알려졌지만,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와 같은 고대 작가의 극작품에 영향을 받아 희곡을 썼다. 그리고 자신과 동시대에 활동한 극작가들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벤 존슨(Ben Jonson), 존 릴리(John Lyly)의 작품도 참고했다.

 

1592년과 1594년 사이에 런던에서 흑사병이 유행했다. 이 시기에 런던의 모든 극장이 문을 닫는다. 셰익스피어는 극작을 잠시 중단하고, 시집 비너스와 아도니스루크리스의 능욕을 발표했다. 이 두 권의 시집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셰익스피어는 전도유망한 시인으로 알려졌다. 1593년에 셰익스피어에게는 기라성 같은 존재였던 말로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다른 선배 작가들의 명성이 주춤해지자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헨리 6세 제2》는 1590년에 발표되었으나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극작품들의 발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5막으로 구성된 헨리 6세 제2헨리 63부작중에서 제일 먼저 집필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는 2부를 1부보다 먼저 썼다. 2부의 초연 시기는 1591년이다. 2부는 하얀 장미의 요크 가문(House of York)과 빨간 장미의 랭커스터 가문(House of Lancaster)이 충돌한 장미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헨리 6세는 랭커스터 가문 출신의 왕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야심 많은 왕비 마거릿(Margaret)에 고분고분 따르는 연약한 심성의 인물로 묘사된다. 요크의 리처드(Richard of York) 공작은 호시탐탐 왕위를 노린다. 2부에 등장한 왕족과 귀족들 모두 실존 인물이다. 요크 공의 계략에 넘어가 농민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잭 케이드(Jack Cade)도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실제로 1381년에 농민 반란을 주도한 와트 타일러(Wat Tyler, 워트 타일러)를 모티프로 한 가공인물이다. 궁핍한 생활고와 장기간 지속된 장미전쟁에 지친 영국의 백성들은 무능한 왕권에 불만을 가졌다. 잭 케이드는 영국 백성들의 민심을 대변하고 있지만, 그도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다.


아침이슬 출판사의 헨리 6세 제2는 시인 김정환 씨가 번역했다. 시인은 자신의 번역본을 한 권의 시집을 대하듯 읽으면 적당하다고 밝혔다. 그래서 인물들의 대사를 읽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읊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역자가 직역한 탓인지 어떤 대사는 매끄럽지 않게 읽힌다. 다음에 나올 인용문은 마거릿 왕비의 애인 서포크(Suffolk, 서퍽) 공작의 대사 중 일부이다. 3막에서 서포크는 헨리 6세를 대신하여 섭정한 글로스터(Gloucester)를 암살한 죄로 추방당한다. 내가 인용한 문장을 보면 이 번역본이 연극 공연용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염병할 놈들! 왜 내가 저놈들을 저주해야 하오?

저주로 죽일 수 있다면, 흰독말풀 비명 소리가 그렇거니와,

내가 뱉어 낼 저주는 못지않게 신랄하고 사무치는 투,

못지않게 저주스럽고, 못지않게 거칠고, 끔찍하게 들릴 터,

악물은 이빨 새로 강렬하게 퍼부어지고,

가득 찬 치명적인 증오의 내색들이 숱하기,

역겨운 동굴에 사는 여윈 여인 시샘과 같을 터.

 

(32105)



이 번역본에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 빠졌다. 기본적인 사항이란 몇 행인지 알 수 있는 숫자시인이 번역하면서 참고했을 원작 텍스트의 출처이다. 그리고 오자와 오역일 가능성이 있는 단어도 보인다.


내가 인용한 서포크의 대사 중에 흰독말풀이라는 식물 이름이 나온다. 흰독말풀에 해당하는 원어는 맨드레이크(mandrake)’. 이 식물은 가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분류된다. 뿌리가 둘로 나뉜 형테인데 사람의 하반신 모습처럼 생겼다. 이런 뿌리의 모양 때문에 맨드레이크와 관련된 불길한 미신과 전설이 많다. 옛 사람들은 만드라고라(mandragora)라는 작은 악령이 맨드레이크에 산다고 믿었다. 그래서 맨드레이크의 이명이 만드라고라이며 학명은 ‘Atropa mandragora’다. 교수대 밑에서 자라는 식물로 알려져 그 뿌리에 교수형을 당한 죄수의 영혼이 숨어 있다고 전해졌다. 흰독말풀(학명: Datura stramonium)은 가지과의 한해살이풀에 속한 식물이다. 만다라화(滿茶邏花)라고 부른다. 꽃과 이파리, 씨앗에 독성 물질이 있어서 악마의 나팔(devil’s trumpet)’이라는 별명이 있다. 일본에서는 흰독말풀과 맨드레이크를 같은 식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 두 종의 풀은 서로 다른 식물이다. 따라서 맨드레이크’로 번역해야 한다.



오 내가 신이라면, 벼락을 내릴 텐데

이 지질한, 비굴한, 비천한 장일 종놈들한테.

사소한 걸로 교만해지지 천한 것들은. 여기 이 악당은,

고작 쌍돛대 작은 배 우두머리 주제에 불호령이

바르굴루스, 그 강력한 고대 일리아의 해적보다 더하구나.

딱정벌레들은 독수리 피를 빨지 않지, 벌집을 약탈할 뿐.

불가능하다 내가 죽게 된다는 것은

네놈처럼 비천한 신분의 종자한테 말이다.

네놈 말은 내게 분노를 일으켜, 후회가 아니라.

 

(41, 119)




두 번째로 인용한 문장 역시 서포크의 대사이다. 딱정벌레들은 독수리 피를 빨지 않지, 벌집을 약탈할 뿐”이라는 대사의 원문은 이렇다.

 


Drones suck not eagles’ blood but rob bee-hives.

 


‘drone’수벌을 뜻하는 단어다. 딱정벌레들은 오역이다.





난 왕비의 전령으로 프랑스 가는 중이다

내 네게 명하노니, 이 해협 너머로 날 무사히 실어 가거라.

 

(41, 119)

 

 

이 인용문도 서포크의 대사이다. ‘프랑스엘’을 프랑스에로 고쳐야 한다.




시저가 쓴 언급에서 [생략]

 

(47, 142)

 



언급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가 쓴 책 갈리아 전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를 말한다. 이 구절도 오역이다. ‘시저가 쓴 언급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 스탠리 웰스 외 셰익스피어의 책(지식갤러리,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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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05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김정환.... 전 90년대 초에 이이를 손절했습니다. 소설 <그 후>, 산문집 <내 영혼의 음악>을 읽고,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이를 위해 지갑을 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고, 아직 다짐을 지키고 있습니다. 80년대 초 무크지 실천문학을 통해 읽은 황색예수가 얼마나 그럴 듯했는지, 마치 배신당한 기분이었습니다.

cyrus 2021-01-06 12:01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저는 처음 듣는 얘깁니다. 시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어요.

Redman 2021-01-05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었네요 확실히 이 역본은 연극용으로는 적합치 않아 보이네요. cyrus님의 서평 덕분에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1-01-06 12:0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람돌이 2021-01-06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글 보면서 항상 많이 배웁니다.

붕붕툐툐 2021-01-06 10:03   좋아요 1 | URL
저두요!!

cyrus 2021-01-06 12:05   좋아요 2 | URL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다행입니다. 저도 배우는 사람입니다. 저보다 먼저 태어나서 책을 읽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배웁니다. 그 글 속에 담긴 유익한 내용이 다음에 태어날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이 저의 역할이며 서평을 쓰는 이유에요. ^^

2021-01-06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