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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ㅣ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평점 :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는 19세기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로 꼽힌다. 그의 연주 실력은 최초의 오빠 부대를 만들어낼 만큼 매우 뛰어났다.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팬들이 연주회장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던 풍경은 오늘날 인기 아이돌 가수의 그것과 꼭 겹친다. 리스트는 문필가로도 활동하여 음악과 관련된 글을 썼으며 쇼팽(Chopin)에 대한 평전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리스트보다 어린 피아노 연주자가 그에게 왜 일기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리스트는 “세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들다. 그런 고통을 글로 남겨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일기는 고문실 안에서 쓰는 기록과 다를 바 없다”라고 대답했다.[주] 모국인 헝가리를 넘어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사교계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그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살았다니 의외다.
아이들은 일기 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들은 보통 쓸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정말 쓸 게 없어요.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보냈는데 뭘 써야 하나요?” 사실은 쓸거리가 정말 없을 수도 있어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특히 겨울에는 추운 날씨와 미세먼지 탓에 야외활동이 줄어들어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일기장을 채울 수 있는 글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기는 매일 써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 때문에 밀리기 일쑤다. 이렇듯 아이들에게 일기는 ‘짜증이 나게 하는 고문’이다.
일기는 평범한 인간이 난생처음 쓰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일기는 쓰기 능력의 기초를 마련해 준다. 아이들이 일기와 친하게 지내지 못한 채 성장한다면 글 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글을 ‘음식’, 글쓰기를 ‘음식을 먹는 일’이라고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쑥쑥 자라면서 점점 단맛이 나는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된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은 좋아하고 단맛이 아니거나 많이 씹어야 하는 음식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문다. 대부분 아이들은 생후 6개월에서 만 3세경에 음식에 대한 호불호를 느끼고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새로운 음식을 싫어하고, 음식의 형태, 혹은 씹는 질감에 민감하게 반응해 편식하게 된다. 부모가 자녀의 편식 습관을 고치려고 강압적으로 음식을 먹이려고 하면 자녀는 식사를 거부하려고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공든 탑을 쌓듯이 차근차근 해나가야 재미가 붙게 되고 실력도 늘어난다. 글쓰기는 일기 쓰기를 통해 기본을 닦을 수 있다. 대부분 부모와 교사는 일기를 ‘매일 해야 하는 숙제’인 것처럼 가르친다. 일기는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자기 글’을 쓰는 경험인 만큼, 일기를 과제의 의미에 맞춰 ‘무조건 써야(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줘선 안 된다. 이러면 아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붕어빵 일기’를 쓴다.
글이란 자신의 내부에 들어있는 것을 쏟아놓는 작업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다양하고 좋은 생각이 많이 들어있는 사람은 좋은 글을 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쩔쩔매게 된다. ‘글 쓰는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글쓰기 훈련법으로 일기 쓰기를 제안한다. 하루 30분씩 일기를 쓸 것. 글쓰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사람에게 《밥보다 일기》를 권한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바쁜데 일기를 써야 하나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생각 속엔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일기에 대한 고정관념이 들어 있다. 틀을 만들어 놓은 일기장은 우리 생각을 틀 속에 가두어 버린다. 《밥보다 일기》는 일기가 ‘귀찮은 글쓰기’의 대명사가 된 이유를 알려준다. 흔히 일기는 반성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일기는 말 그대로 하루의 기록이므로 좋았던 일, 슬펐던 일, 화났던 일 등을 솔직하게 쓰면 된다.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일기를 쓰는 것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다. 따라서 다양한 주제나 방식으로 일기를 쓸 수 있다. 하루의 일과를 소설 형식으로 써보거나 1인칭(‘나’)이 아닌 상대방의 시점으로 일기를 써본다. 잠자기 직전에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 잠잘 시간에 졸음과 싸우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써야 한다. 일기장이 아니어도 좋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노트에 기록해도 된다. 글이든 일기든 뭐든 빨리 쓰고 싶으면 뭘 쓸지 미리 생각하고, 그걸 노트에 기록한다.
어떤 주제를 놓고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주제에 대한 사전 경험이 없으면 훌륭한 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사전 경험은 대부분 일기로부터 온다.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글쓰기는 독립된 행위가 아니라 일기 쓰기와 밀접하게 연결된 일련의 행위다. 일기 쓰기를 가볍게 생각하면서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기본적인 입력도 하지 않고 출력을 시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간혹 어렸을 때 쓴 일기장을 폐기물 처리하듯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 기억할 과거가 없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일기장에 남아 있는 과거의 내 모습은 어른의 눈에는 창피하고 가치가 없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귀중한 추억 보관함이다. 우리는 과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펜과 일기장,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쓰려는 진심,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타임머신을 만들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기록한 일기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를 확인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된다. 한 개인의 역사로 일기장만 한 게 또 무엇이 있을까. 괴발개발 썼더라도, 창피한 내용이 담겨 있더라도 제 손으로 쓴 제 삶의 기록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주] 메이슨 커리, 강주헌 옮김, 《리추얼》, 책읽는수요일, 2014, 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