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건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거였다. 넓고넓은 바닷가에 노인의 배만 한 척 외로이 떠있고, 노인은 며칠간을 커다란 청새치와 대립하다가 그 청새치를 끌고 육지로 돌아가는데, 아니, 이런게 어떻게 지루하지 않을수가 있지? 주변에 낚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나는 한번도 낚시가 재미있을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물만 한참 바라보다가 어쩌다 물고기를 한마리 낚는것이 대체 무슨 재미가 있다는 것일까. 그러니 당연히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노인의 얘기는 기대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노인과 바다』를 그간 읽지 않았던 이유는 '지루할까봐' 였다. 뭔가 대단하겠지만 그래도 지루할거고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을거야, 했던 것. 그러나 오, 지루하지 않더라. 심지어 나는 상어에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졌다. 상어야, 노인을 내버려둬, 노인과 싸우지마, 노인의 물고기를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노인이 잡는 물고기는 청새치인데, 이건 아직 책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알아두는쪽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할 것 같아서 내가 친절하게(응?) 구글 검색하여 이미지를 하나 올려둔다. 읽는 내내 궁금했거등. 



어마어마하게 크단다. 아우..나는 근데 왜 무섭지. 저 파아란 바다와 그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가 무섭다. 어휴. 나라면 저걸 잡을 생각은 못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울었을 것 같아. 하아 ;;


그리고 아래 사진은 초반에 등장하는 만새기.



그리고 아래는 노인이 맛있다고 날로 먹는 날치. 아...나는 날치가 날개가 있다는 거 지금 이미지 검색해보고 처음 알았다. 아니, 날치가 날아다니는 생선이라니. 내가 먹는 날치알밥의 알이 그러니까 이 날치...의 알인건가. 나는 어쩐지 이제 날치알밥을 먹을 수 없을것만 같아. orz




오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다가 나는 지구본을 돌려 이 책의 배경인 쿠바를 찾아보았다. 어제 읽다가 쿠바는 긴 섬 이라고 했던 노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바다에서는 길을 잃는 법이 없어. 게다가 쿠바는 아주 긴 섬이니까." (p.93)



아아아아 나는 또 몰랐어. 쿠바가 저렇게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줄은, 긴 섬인줄은. 쿠바..섬나라네? 아아아아. 나는 『더티댄싱:하바나 나이트』란 영화도 봤고, 제목은 기억 안나는데 쿠바의 음악가가 나오는 영화도 봤고, 체게바라 평전도 읽었는데, 그런데 저렇게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나라인걸 몰랐다. 나는 초등6년 중3 고3 대학4년 총 16년의 교육을 받았고, 세계지리와 한국지리, 세계사와 국사 수업을 들어봤는데 그래도 몰랐어. 쿠바가 저런 위치에 있는줄은. 아..나는 헛교육 받았구나. 아니, 내가 너무 공부를 못해서 그래. 아니야, 나도 잘하는 과목이 있었어. 아니, 나는 단지 지리쪽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야. 뭔가 대단히 절망스럽다. 


쿠바에서 가까운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미국, 멕시코를 가기 위해서는 일단 무조건 바다를 건너야 한다. 맙소사. 새삼 이 책속의 노인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니, 그 바다에서 무섭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상어랑 싸우기까지 해요? 하아-



나는 오늘 지구본을 돌려서 쿠바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사람에겐 저마다 맞는 교육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사나 시계지리 시간에 내가 쿠바에 대해 배우는 것은 나에게 맞는 교육방법이 아니었던거다. 만약 내게 노인과 바다를 읽어주며 칠판에 쿠바의 지도를 그려주었다면, 그리고 그 주변은 모두 바다라고 말해주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쿠바를 좀 더 기억할 수 있었을텐데.

나는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쿠바를 '검색해보고' 알게 된다.


쿠바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 Cuba 레푸블리카 데 쿠바[*], 문화어: 꾸바), 통칭 쿠바 카리브 해 카리브 제도에 있는 가장 큰 섬과 인근 섬들로 이루어진 아메리카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이다. 윈드워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히스파니올라 섬에 있는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이, 케이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케이만 제도와 자메이카가,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가 있다. 수도는 아바나이다.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 포함되지만, 광의의 중앙아메리카에도 포함된다.「아메리카 합중국의 뒷마당」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뒷마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요로에 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성립한 사회주의 정권을 기념하여 「카리브에 떠오르는 붉은 섬」이라고 형용되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참여한 쿠바 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이래 현재까지 사회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경제 봉쇄로 경제의 어려움이 심각하나 자립 경제 체제로 버티면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1961년 자본주의 정치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었으며, 쿠바 섬은 카리브해의 진주라고 불리면서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섬으로 알려진 곳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


노인은 언젠가 청새치 한 쌍 가운데 한 놈을 잡은 일이 생각났다. 청새치 수놈은 언제나 암놈이 먼저 먹이를 먹도록 양보한다. 그래서 낚싯바늘에 걸린 암놈은 공포에 질린 채 필사적으로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 바람에 금세 기진맥진해버렸다. 수놈은 그동안 내내 낚싯줄을 넘어다니거나 암놈을 따라 수면을 빙 돌거나 하며 암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놈이 암놈 곁에 너무 붙어 있어서 노인은 놈이 꼬리로 낚싯줄을 끊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청새치의 꼬리는 큰 낫처럼 날카롭고 크기나 모양도 큰 낫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던 것이다. 노인이 암놈을 갈고리로 찍고 몽둥이로 후려쳤을 때, 그러니까 양날 검처럼 길고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사포처럼 깔깔한 주둥이를 움쳐잡고는 대가리 윗부분을 몽둥이로 마구 후려쳐서 몸통이 거의 거울 뒷면 같은 색깔로 변하도록 만들었을 때도, 그런 다음 소년의 도움을 받아 암놈을 배 위로 끌어올렸을 때도, 수놈은 배 주위를 떠나지 않고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노인이 낚싯줄을 정리하고 작살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수놈은 배 옆에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라 암놈이 있는 자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연보라색 가슴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활짝 펼친 채 연보라색 넓은 줄무늬를 모두 내보이며 바다로 떨어져 깊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p.51)


청새치의 수놈같은 남자와 연애하는 것이 좋겠군.





댓글(37)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2-02-0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코 이 책을 사게 만드는 다락방의 페이퍼. ㅋ

한참 사진이 재미있을때 '쿠바'는 동경이자 로망이였어요. 쿠바..

다락방 2012-02-03 10:48   좋아요 0 | URL
섬나라라뇨, 섬나라라니! 저는 왜 그걸 몰랐단말입니까! 이 책 생각외로 재미있어요, 레와님. 긴장감과 허탈함이 다 들어있다니깐요!

기억의집 2012-02-02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완전구닥다리 세로줄로 가지고 있어서 안 샀는데, 다락방님께 tt하고 사고 싶은 맘은 뭘까요.
종이책 안 사고 싶은데... 이 페이퍼 보니, 완전 사고 싶어졌어요. 지난 번 진새삼촌님의 강력한 페이퍼의 유혹도 물리쳤건만.

지난 번에 밀레니엄 전자책 사면서 다락방님께 tt 하렸는데, 전자책은 tt가 안 되더라구요. 첨 알았어요. 그 날 마고님께도 확신의 함정 사면서 tt하려고 했더니 전자책이라 꽝~

여튼 조만간 이 책은 tt 갈 것 같은 이 불안함.

다락방 2012-02-03 10:49   좋아요 0 | URL
우앗, 저는 구닥다리 세로줄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읽은 책에서는 맨 마지막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거야, 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그 후에 다른 책들을 보니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 로 되어있어서 태양이 맞는걸까 바람이 맞는걸까 혼자 막 생각하고 그랬었는데요. 그때가 중학교 1학년때였을 거에요. 하하하하하.

노인과 바다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무척 기뻤어요. 후훗 :)

heima 2012-02-0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날치에 날개가 달려있다는걸 왜 서른 해 넘게 살면서 지금에야 알았을까요? 게다가 전 생물학전공인데! (학교에서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는다지만 -_- ) 그런데 날치알밥은 포기하기에는 너무 꼬소해요. orz

다락방 2012-02-03 10:51   좋아요 0 | URL
우앗, 생물전공인 헤이마님도 모르셨던 사실이란 말입니까? 흐음...생물전공인 제 여동생에게도 갑자기 물어보고 싶어지네요. 문자 보내봐야겠어요. ㅎㅎ

날치알밥은요 헤이마님, 바로 밑에 굿바이님 댓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글쎄 진짜 날치알이 아니라네요!!!!!

굿바이 2012-02-0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날치알밥에 나오는 날치알은, 날치의 알이 아니라, 날치의 알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단백질입니다. 대부분 사용되는 생선의 알은 진짜 생선의 배를 갈라 얻는 게 아닙니다. 그러기에는 현실에서 소요되는 양이 너무 많지요. 알을 만드는 기계가 있어요. 식용색소를 배합해 만듭니다. 맛도 거의 비슷하고, 식감도 비슷하고, 모양도 거의 비슷한 셈이죠. 걱정말고 드세요^^

아참, '자산어보'를 읽으면 '날치'에 대한 설명이 있어요.
날치(飛魚)
큰 놈은 두 자 조금 못되고 몸은 둥글며 푸르다. 날개가 있어 새와 같다. 푸른 색이 선명하고 한 번 펼치면 능히 수십 보를 난다. 맛은 매우 싱겁고 좋지 않다. 망종(芒種)무렵 바닷가에 모여 산란(産卵)한다. 어부들은 불을 밝혀 가지고 작살로 잡는다. 그 산지(産地)는 홍의가가도(紅衣可佳島)이나 흑산도에서도 때때로 난다.


다락방 2012-02-03 10:53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밑에 소이진님 말씀대로, 날치의 알이 아니라고 하니 어쩐지 더 못먹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네요. 기계로 만들어내는 알이라니..orz

더 좌절스러운건, 저는 자산어보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단 사실입니다. 그런데 날개가 있어 새와 같다, 저 문장은 왜 절대로 제 머릿속에 자리잡지 못했을까요? 네? 뭐가 문제죠? 아이큐의 문제인걸까요? 네?

이진 2012-02-0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날치알을 못 먹을 듯한 기분 ㅋㅋㅋㅋㅋㅋㅋ 굿바이님의 말을 들으니 왠지 더 먹기가 두려워 지는 것은 무엇죠... 후후

그러게 이런 평범하지도, 확 튀지도 않는 소재로 글을 참 멋지게 쓰는 걸 보면 역시 헤밍웨이가 괜히 헤밍웨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일단 소재부터가 .... 후후

다락방 2012-02-03 10:55   좋아요 0 | URL
기계로 만들어내는 알이라니, 뭔가 더 싫어요, 소이진님 ;;

정말 별거 아닌 소재로 흥미진진한 글을 쓰다니, 그 속에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는 것 같아서 놀라웠어요. 소이진님 말씀대로 헤밍웨이는 괜히 헤밍웨이가 아니었는가 봐요. 그의 다른 소설도 읽어볼 용기가 이제는 생깁니다. [무기여 잘있거라] 라니, 이것도 제목만으로는 어쩐지 좀 지루해 보이잖아요? 그래도 이젠 읽어볼래요. 훗.

moonnight 2012-02-0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고교때 읽었던 것 같은데, 다락방님 페이퍼를 읽다보니 역시 책은 주기적으로 다시 읽어주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저렇게 알흠다운 문장들이었단 말입니까!!! +_+ 그나저나, 쿠바가 섬이었던 거 저도 몰랐어요. 아바나에 꼭 놀러가볼 거라고 맘먹었으면서도 쿠바가 섬이란 걸 몰랐;; 크흑 ㅠ_ㅠ;;;

다락방 2012-02-03 10:57   좋아요 0 | URL
저는 헤밍웨이는 처음 읽었어요, 문나잇님. 헤밍웨이란 이름은 저에게 지루함이란 선입견을 동시에 가져왔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 선입견을 부숴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기여 잘있거라 같은 지루해 보이는 책도 막상 읽다보면 엄청 빠져들만한 책이 아닐까 싶어요. 만약 정말 제 생각대로 지루했다면 그 책이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 그런데, 문나잇님도 쿠바가 섬이란 걸 모르셨습니까? 우하하하. 저만 모르는게 아니었군요. 어제 회사 동료에게도 말했더니 회사 동료도 모르더라구요. 아아, 책을 읽는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에요!

당고 2012-02-0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나, 앞으로 다락방님이 데이트했다는 포스팅을 읽으면 청새치 수놈과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장면이 떠오를 거 같은데...... 어떡하죠?

다락방 2012-02-03 10:57   좋아요 0 | URL
청새치 수놈은 반드시 먹을걸 저에게 먼저 양보해야 하는겁니다! 불끈!!! ㅋㅋㅋㅋㅋ

비로그인 2012-02-0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아름다운 물고기네요... (네모박스 구절이 무쟈게 맘에 들어요)

다락방 2012-02-03 10:58   좋아요 0 | URL
그쵸? 끝까지 사랑을 찾고 사랑을 지키려는 물고기라뇨! 하아- 멋져요. 아름다워요.

(그런데 이제 정말 자주 나타날 거에요?)

꼬마요정 2012-02-0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마른발 젖은발 정책이 떠오르네요.. 쿠바인들이 몰래 미국으로 올 때 마이애미로 오는데 바다에서 나와서 마른땅에 있으면 안 돌려보내고, 아직 물 안에 발이 담겨 있으면 고대로 쿠바로 돌려보내는 정책이요... 갑자기 마이애미와 쿠바를 보니 생각납니다.. 허허...

다락방 2012-02-03 10:58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정책이 있었습니까? 그 사소한 것으로 그 사람의 남은 삶이 결정이 되는거였군요. 세상엔 참 어찌할 수 없이 답답한 일들이 많네요, 꼬마요정님. 흐음..

dreamout 2012-02-0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청새치에게서도 남자라뇨 ㅋㅋ

그러고보니 저랑 읽은 순서가 같아요. 저도 파씨의 입문 읽고 이 책 읽었어요. ^^

다락방 2012-02-03 10:59   좋아요 0 | URL
저는요 드림아웃님, 남자를 정말 좋아하는가봐요. ㅋㅋㅋㅋ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분이 일깨워 주실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어머, 나 남자 좋아해! 하고 말이지요. ㅋㅋㅋㅋ

앗, 드림아웃님 지금은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그 책은 저랑 겹치지 않을거라는데 천오백원 겁니다! ㅎㅎ

라로 2012-02-0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은 읽지 못했고 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로 봤어요,,
흑백이었던 것 같은 기억(너무 오래전에 봐서,,ㅠㅠ)이 나지만
전 정말 그 영화가 재미있었어요!!!

그나저나 청새치 수놈이 암놈에게 먼저 양보를 한다니 놀라워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서 알아냈을까요??

기억의집 2012-02-03 09:42   좋아요 0 | URL
아, 맞아 저도 영화는 봤어요. 안소니 퀀. 생각해 보면 한 때 안소니 퀸 정말 날렸던 것 같아요.
우리 어렸을 때 미국 헐리우드 클래식 흑백영화 참 많이 방영해 주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안소니 퀸 모를거에요. 요즘 말로 안소니 퀸은 짐승남 스탈이어서 굵직한 영화는 많이 나와서 여자를 설레게 하는 그런 배우는 아니였던 것 같아요.

다락방 2012-02-03 11:02   좋아요 0 | URL
우앗. 저는 두 분 때문에 지금 막 안소니 퀸을 검색해보고 왔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 역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인물이네요. 예전에도 아버지한테 안소니 퀸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름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외모는 지금에서야 검색해보고 알았네요.

나비님의 댓글은, 같은 날 쓰신 나비님의 페이퍼를 떠올리게 하네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서 알아냈을까, 하는 부분이요.

기억의집님, 짐승남...이미지 보니까 마피아 두목으로도 어울릴 것 같아요!!

무스탕 2012-02-0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바, 그러면 아마야구 최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근데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물고기가 청새치였어요? 전 왜 다랑어로 기억을 하고 있었을까요? --;;;
(또)근데요, 물고기중에 '치'자로 끝나는 물고기가 회로 먹으면 맛있다고 그러는데 그러면 청새치나 날치나 다 회로 먹을까요? 큰 참치 비싸듯 청새치도 비쌀까요? 히히히~~

다락방 2012-02-03 11:04   좋아요 0 | URL
다랑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작은 물고기 같아서, 그런것과 바다 한가운데서 싸울리는 없지 않을까 싶어 지금 무스탕님의 댓글을 읽고 검색해봤더니 오오오오오 다랑어가 참치네요!!!!!!!!!!!!!!!!!!!!!!!!!!!!!!!!!!!!!!!!!!!!!저 또 지금 알았어요!!!!!!!!!!!!다랑어는 참치. 오오. 세상에 제가 모르는 건 대체 얼마나 많은걸까요? 어휴.

이 책속에서 노인이 날치를 잡아먹으면서 아주 맛있다고 해요. 아주 맛있고 영양가도 있다고. 날아 다녀서 그런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스탕 2012-02-03 11:16   좋아요 0 | URL
다랑어 = 참치 = 마구로 = 튜나(Tuna)
다 한 녀석을 일컫는 말이지요 :)

다락방 2012-02-03 11:24   좋아요 0 | URL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 세상은 제가 모르는 것 투성이에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 주연은 안소니 퀸이 아니라 스펜서 트레이시입니다.캐서린 헵번과 주연한 작품이 많은 명배우였죠.안소니 퀸보다 나이도 더 많고요...

다락방 2012-02-03 16:56   좋아요 0 | URL
1990년작 [노인과 바다]는 안소니 퀸 주연입니다, 노이에자이트님.
스펜서 트레이시는 1958년작 주연이구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3 17:50   좋아요 0 | URL
오...그래요...저는 위의 댓글에서 흑백이라고 하길래 70년대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스펜서 트레이시 작품을 말한줄 알았어요.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소니 퀸의 노익장이 대단하군요.75세에 이런 영화를 찍다니...하긴 60을 훨씬 넘겨 아들을 본 남자니까요.

스펜서 트레이시 것도 칼러영화로군요.

다락방 2012-02-06 11:57   좋아요 0 | URL
아마도 흑백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건 그 영화가 오래된 영화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렇겠지' 했던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흑백 영화를 본 게 거의 없어서요. [카사블랑카] 말고는 흑백 영화가 생각도 나질 않네요. 하핫.

버벌 2012-02-04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르소설만을 보던 제가(초등학생시절 이후로) 1984를 보고 완전 놀랬습니다. 위에 다락방님이 쓰신 것처럼 어머 전혀 지루하지가 않아(전 당연히 지루할거라고 생각을 했어요)선입견이 사라져서 그 뒤로 의무적으로 구입하게 된 세계문학은 두꺼운 철판처럼 책장을 넘기기 힘든 책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책이 훨씬 많았어요 (1984 바로 뒤에 읽은 책이 "영혼의집" 인 것도 다행이었어요 ㅎㅎ) 노인과 바다도 보고 싶어요. 움 움 움

그나저나 저도 쿠바가 섬이란걸. 이 페이퍼 보고 알았네요.
저 역시 체게바라도 알고, 더티댄싱2도 봤는데(마야때문에 본거지만요) ㅡㅡ;;

저 요즘 조금 (ㅎㅎ) 우울해서요. 술이 늘었어요. 잉~

다락방 2012-02-06 12:00   좋아요 0 | URL
[1984]완전 재밌죠? 저도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어가지고 ㅎㅎ 특히 그 고문당하는 장면이요. 고문 당하니까 사랑이고 뭐고 술술 다 불잖아요. 그 장면이 막 소름끼치더라구요. 아우.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같은건 좀 나이 들어서 읽는게 더 나은것 같아요, 버벌님. 이 [노인과 바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만약 두 작품 모두 제가 어릴 때 읽었다면 지금 볼 수 있는것을 혹은 느낄 수 있는 것을 그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에요.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소설로 노인과 바다는 지루한 소설로 남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어떤 작품들은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전 술이 딱히 더 늘게된 건 아니지만 요즘에도 변함없이 술이 넘흐 좋아요. ㅠㅠ

버벌 2012-02-06 15:11   좋아요 0 | URL
어른이 되서 만나는 쪽. 그거 동감이에요 ㅎㅎ

전 지금 노인과 바다 결제하러 갑니다.
마천루가. 진도가 잘 안나가서 걱정이네요.
꾸준히 읽어야해요. ㅎㅎ

다락방 2012-02-06 15:31   좋아요 0 | URL
마천루는 제목이랑 표지가..진도 잘 안나가게 생겼더라구요. -0-
노인과 바다는 아주 얇아요. 금세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 진도 안나가는 책들 틈 사이로 살짝 읽어주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버벌님!!

테레사 2012-02-0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설을 읽지 말걸 그랬나봐요. 해설에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 어쩌고 뭐 이런 평가가 있더라고요. 헌데 저는 그런 것보다는, 망망 대해에 던져진 한 외로운 존재와 어쨌거나 결말에 이를 수밖에 없는 시간의 거침없음에 대해 놀랐는데 말입니다. 그게 인생이라고, 작가가 말하고자 했더라도...저는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어쩌면.

다락방 2012-02-06 12:09   좋아요 0 | URL
저도 뒤의 해설을 대부분 읽는데, 그 해설이 도움이 될 때가 많더라구요. 물론 좌절감을 심어주기도 하고 말이지요. 우앗, 나는 이런거 전혀 못느꼈는데 이게 이런 소설이었어? 라는 식의. -_-
그런데 말씀하신것처럼 해설을 읽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 들때도 더러 있지요. 제가 느낀게 더 근사하게 느껴질때 말이에요. 저는 노인과 바다를 읽으니 굉장히 허무하더라구요.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하고 손에 상처를 입어가며 그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는데, 돌아갈 때는 빈 손이잖아요. 와- 엄청 허탈하더라구요. 기절한 듯 녹초가 된 몸을 추스리기 위해 잠에 빠져드는데, 대체 그간 뭘한건가 싶은 그런 생각도 들고 말이죠. 생선을 잡기 위해 기다리고, 커다란 것을 잡기 위해 고통을 당하고, 그것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잃고, 힘이 들고 하는 그 과정이 한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과도 다를바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강인한 의지, 와는 저는 연결시키지 않았네요. 하핫
 
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 노인과 바다와 물고기 만으로도 지루하지 않다니, 이토록 멋진 이야기가 되다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2-02-0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전은 고전일 이유가 있나봐요. ^^

다락방 2012-02-03 11:06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가넷 2012-02-19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는 정말 지루할 것 같은 느낌에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요즘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리면서 많이도 출간되네요. 이기회에 한번 읽어 볼까 싶네요. ㅋ

다락방 2012-02-20 09:12   좋아요 0 | URL
일단 이 책은 분량이 적어서 시도하기에 좋은것 같아요. [노인과 바다] 라니, 제목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습니까? ㅎㅎ 그런데 지루하지 않아요, 정말요.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기, 그러나 따뜻함을 곳곳에 심어두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2-02-0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한정없이 깊어요, 깊은 소설이에요.

2012-02-01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2-02-0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장바구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군요...

테레사 2012-02-0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덕에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밤마다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고 있어요.어제 두 번째 작품을 읽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눈에서 눈물이 살짝 났어요. 왜인지 저도 몰라요.

moonnight 2012-02-0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얘기되던데, 저는 황정은 작가를 몰라요. 부끄럽습니다. ㅠ_ㅠ

버벌 2012-02-04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했어요.^^
 

출근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아주 조용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뜬금없이 제임즈 조이스의 단편, 「죽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서 빨리 들춰보고 싶어서 미칠것 같았다. 파티에 간 부부, 아내를 향한 욕망과 사랑에 가득찬 남자, 아내를 안고 싶은 남자, 아내가 내게 다가온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라 생각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갑자기 이 단편이 너무 생각나는거다. 아마 겨울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자기를 안고 싶어하는 순간 그녀가 떠올린건 그녀의 과거시절, 어느 겨울이었으니까.















왜일까. 왜 함께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걸까. 왜 서로를 향한 같은 욕망에 휩싸이지 못하는걸까. 왜 함께 있는 두 사람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걸까. 그리고 그건 왜 한쪽의 가슴에 구멍을 뚫는걸까.


"당신은 정말 너그러운 사람이에요, 게이브리얼." 그녀가 말했다.

게이브리얼은 그녀의 갑작스런 입맞춤에, 또 그녀가 한 말의 오묘한 멋에 기쁨으로 몸을 떨면서, 두 손을 그녀 머리칼에 얹어 손가락을 거의 대지 않으면서 머리칼을 뒤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아서인지 머리카락이 곱고 광채가 났다. 그의 가슴은 행복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가 원하던 바로 그때에 그녀가 제 스스로 그에게로 온 것이었다. 아마 그녀의 생각이 그의 생각과 똑같이 진행되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아마 그녀가 그의 내부에 있는 그 격렬한 욕망을 느꼈던 건지도, 그래서 자신을 내맡기려는 기분에 사로잡힌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이토록 쉽게 무너져오고 보니, 그는 왜 자신이 그렇게 망설였을까 의아했다. (p.296)


이 소설의 게이브리얼은 꼭 나같다. 나 역시 그랬던적이 있다. 우리가 함께 있을때 우리가 얼마나 자주 웃었는지 나는 알고 있었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눈을 마주쳤는지도 알고 있었다. 함께 있지 않을때는 상대를 생각했고, 통화를 할 때는 보고싶다고 말을 했다. 그를 마주하기 전에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 잡았던 손을 놓아야 했을때는 얼마나 아쉬웠는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상대도 느끼고 있을거라고 생각했고, 이것은 당연히 사랑이 아.닐.수.없.었.고 그렇다면 상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던거다. 내가 차마 사랑이라고 입밖에 내지 못하는것처럼 그도 그런것일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어왔던거였다.


그는 양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한쪽 팔을 재빨리 그녀 몸에 두르고 그녀를 자기에게 끌어당기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그레타, 여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녀는 대답을 하지도 그의 팔에 전적으로 몸을 내맡기지도 않았다. 그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뭔지 말해봐요, 그레타. 난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은데. 내가 아는거지?"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 나는 그 노래, 「오 그림의 처녀」그 노래 생각을 하는 거예요."

(중략)

"왜, 그레타?"

"난 오래 전에 그 노래를 나한테 들려주곤 했던 사람을 생각하고 있어요." (pp.296-297)


물론 매순간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함께있는 사람만을 생각하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해도 여기 지금 이곳에 너랑 나, 둘 뿐이고 나는 너에 대한 애정이 들끓고 있는데, 너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일, 그 말을 내가 듣는 그 순간, 그 순간에 나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까.


게이브리얼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무지근한 분노가 다시 그의 마음 뒤편에 모이기 시작했고 정욕의 무딘 불꽃이 혈관에서 성을 내며 작열하기 시작했다. (p.297)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얼마나 아팠던가. 자존심을  다쳐서 펑펑 울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 아닌거야, 이게 어떻게? 나는 그를 병신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 병신이라고. 이게 사랑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사랑이냐고.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볼줄도 모르는거라고. 나는 그런 병신같은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라고. 병신을 사랑하는 나도 병신이라고. 그렇게 펑펑 울었었다. 분했다. 그 시간들은 다 뭐였지? 그 웃음들은? 그 대화들은? 그게 사랑이 아니란 말이야? 사랑도 아닌채 나를 마주하고 앉았던 남자를 나 혼자 연정을 품고 있었던거야? 그게 말이 돼? 그리고 계속 울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도 싫었다. 아팠고 분했다. 저주를 내렸다. 너는 평생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겠지만, 나처럼 좋은 여자를 만나지는 못할거라고. 사랑하는 틈틈이 자꾸만 내 생각이 날거라고. 뒤늦게 나를 사랑했었다는 걸 깨달을거라고.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었을 거라고. 나는 너를 버릴거라고.


그가 그들 단둘만의 삶에 대한 추억으로 충만해 있었을 때, 애정과 부드러움과 기쁨과 욕망으로 충만해 있었을 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를 다른 자와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수치스럽다는 의식이 와락 달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보였다. 이모들 심부름꾼 노릇이나 하고, 신경이 날카롭고 사람은 좋은 감상주의자, 속물들한테 연설이나 해대고 자기 자신의 바보스런 욕정을 이상화하는, 자신이 거울에서 흘끗 보았던 그 가련한 얼빠진 놈. 본능적으로 그는 더욱 빛을 등지고 섰다. 혹시 그녀가 자기 이마에서 불타고 있는 그 치욕을 보게 될까봐. (p.299)


내가 우리 단둘만의 감정에 푹 빠져있었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것은 곧 나의 무능으로, 수치로 나를 덮쳤다. 아, 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단편 「애러비」로도 나를 들었다놨다 하더니, 이 「죽은 사람들」로도 나를 쥐락펴락한다. 이 단편은 친구의 추천을 받아 작년인가 재작년에 읽은 책인데(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갑자기 오늘, 눈이 온 다음날, 라디오에서 조용한 음악이 나오는 아침에 생각이 나고 말았다.


이 책을 읽고 싶은데 이미 절판이어서 어렵게 친구에게 부탁해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니, 오, 그 뒤로도 새로 나왔네. orz 그래도 나는 내 책이 제일 좋다. 움화화핫.












그리고 오늘 아침 이런 노래도 들었다.





하아- 노래 좋구나. 나는 오늘 해야할 일이 많은데, 그냥 이런 노래들이나 들으며 뒹굴거리고 싶다.





출근하기 전에 이미 근무중이신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길이 얼어서 많이 미끄러우니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신고 나가라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니 길이 온통 얼어있더라. 조심조심 평소보다 훨씬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걸으면서 아빠 생각을 했다. 지금은 아빠가 아파트 경비일을 하시느라 새벽근무를 나가셔서 더이상 그렇게 해주지 못하지만, 그전까지의 아빠는 내 출근길에 길이 얼어 미끄러우면 나를 버스타는 데까지 바래다주곤 하셨다. 아빠 꼭 붙잡고 가, 라고 하시면서. 아빠도 미끄럽잖아, 아빠 신발은 안미끄러운 신발이야. 나는 아빠의 팔짱을 꼭 붙들고 별 걱정없이 버스정류장까지 가곤 했었다. 재작년까지도 그랬었다. 아빠는 이런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설사 너가 넘어져도 아빠가 옆에 있으면 덜쪽팔리잖아. 

어제는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아빠가 주무시다 말고 나오셔서 옷을 챙겨입으시는거다. 아빠 어디가게? 니 동생 아직 안들어왔는데 들어오다가 넘어지면 어쩌냐 현관 입구에 신문 깔아둘라고, 하시는거다. 눈이 오면 현관 입구가 정말 미끄러워서 나도 몇 번이나 휘청였더랬다. 그런데 마침 그때 남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남역에 내려서 회사까지 걷는길을 얼마나 힘들고 멀게 느껴질까, 이 미끄러운 길을 제대로 걷기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지하철역을 올라왔는데 오히려 우리 동네보다 덜 미끄러웠다. 빌딩에서 근무하는 모든 경비아저씨들과 또 모든 관계자분들이 모두 바깥에 나와 눈을 쓸고 삽으로 퍼내고 얼음을 깨고 계셨다. 또 아빠 생각이 났다. 우리 아빠도 지금쯤 눈 치우고 계시겠구나, 하고.


아빠한테 문자 보내야겠다. 넘어지지 않고 출근 잘했다고.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2-02-0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 고마워요.

:)

다락방 2012-02-02 09:57   좋아요 0 | URL
나는 늘 레와님이 고마워요!
:)

치니 2012-02-0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 지금 더블린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 아직 안 읽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빨리 읽고 싶어서 막 신경이 곤두서요. 와 와.

그런데 다락방 님이 아르코를 좋아하다니! 히힛. 저도 좋아하는 노래에요.

다락방 2012-02-02 09:56   좋아요 0 | URL
저 아르코...몰라요, 치니님. 아침에 라디오에서 듣고 음악 검색한거에요. 하하핫. 저 노래 좋더라구요. 그래서 앨범 살라고 했더니 TV CF 컴플레이션 앨범이더라구요. 그래서 김샜어요. 그런건..싫어요 ;;

그래서, 더블린 사람들은 시작하셨습니까, 치니님? 훗.

마노아 2012-02-0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다락방님 아버지 때문에 눈물 왈칵! 저도 고맙습니다아!!

다락방 2012-02-02 09:5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저 방금전에 호두랑 땅콩이 가득 들어간 빵을 마구 먹으며 커피를 마셨더니 치마가 뜯어질 것 같아요. 아아...이대로 살면 안되는데 orz

heima 2012-02-01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브리엘이라고 하지 않고, 게이브리얼이라고 하니 뭐랄까 훨씬 더 근사하고 다정하게 들려요. 아님 다락방님이 쓰셔서 그런건가? (부끄) 엄마아빠의 걱정문자를 마주하다보면, 부모님은 부모님동네 일기예보는 안보시고 저랑 동생이 사는 지역 일기예보만 보는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다락방님 퇴근길 넘어지지 말고 조심히 가세요!

다락방 2012-02-02 09:53   좋아요 1 | URL
아, 제가 영어로 본게 아니어서 생각조차 못해봤는데, 가브리엘이 게이브리얼이군요! ㅎㅎㅎ 그러게요, 게이브리얼이라니까 특이하게 들려서 좋았어요. 가브리엘보다 나은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어제는 한 번 휘청, 하기는 했지만 넘어지지 않고 잘 갔습니다. 저 제 앞에서 무려 세번이나 넘어지는 남자사람을 보았어요. 어휴. 그사람은 물론 술을 마시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때마다 웃으며 친구들이 일으켜 주더군요. 그걸 보면서 추운날은 술을 마시지 말자,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하하 ;;

blanca 2012-02-0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은 사람들> 정말 휘몰아치는 감동. 비 맞으며 소녀를 기다리던 소년. 저는 문득 문득 생각나요.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이해하고 현재도 결국 이 모든 것도 죽음으로 스러져 갈 것을 생각하는 대목도 정말 가슴 저릿하더라고요.

아, 다락방님의 아버지 저희 아버지랑도 닮았어요. 사춘기시절 뭣도 모르고 말대꾸 계속 날려 주며 아빠를 아빠의 인생을 자꾸 평가하려 했던 제 자신이 어리석고 후회어리게 추억됩니다. 다락방님의 아버지에게도 다락방님에고 따뜻한 격려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다락방 2012-02-02 09:52   좋아요 1 | URL
어제는 빙판길을 걸으며 아빠 생각을 하면서 새삼 사랑이 막 솟아나더라구요. 사실 아빠를 이해하지 못할때도 많고 그래서 소리지르거나 대들때도 많은데 말이죠. 왜 아빠는 더 '잘난' 아빠가 되어줄 수 없는건지 원망도 많이 하구요. 사실 이미 충분히 제게 사랑을 퍼부어 주고 계신데, 더 '잘날' 필요는 없는건데 말이죠. 어휴.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도 읽어보셨어요, 블랑카님? 저는 그 단편을 읽고 짝사랑중인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해서 소름이 쫙 돋았더랬어요. 와, 대단하더라구요. 어휴.

기억의집 2012-02-02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오타 발견. 제임스 소이스 -----> 조이스.

아버지 정말 멋져요. 넘어지면 덜 쪽팔릴 거라니. 길 진짜 미끄럽던데. 어제 골목길에서 차 운전하는데 넘 미끄러워서 차바퀴가 그냥 스르륵 미끄러질 정도니깐요. 신발이야 뭐 말할 것도 없겠죠. 박하선처럼 안넘어지고 회사 잘 들어가서 다행!

그나마 남편의 욕망이 아내를 향한 거라.... 그게 연인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다락방 2012-02-02 09:51   좋아요 1 | URL
우앗. 고맙습니다, 기억의집님. 잽싸게 수정했네요. 하핫. 소이스라니 ㅋㅋㅋㅋㅋ
박하선 말씀하시니까 속상하는게, 저 요즘 하이킥 계속 못보고 있어요. ㅜㅜ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그 사이에 박하선과 서지석은 키스를 했다는 소식만 듣고. 하아- 고딩여자애가 좋아하는건 윤계상이라는걸 선배가 알게됐다는 소식도 '듣기만' 하고. orz

저런 순간은 연인사이든 부부사이든 무심하게 아무때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인것 같아요. 딱히 상대를 괴롭게 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또 딱히 다른 사람에게로 가고 싶다는 욕망도 아닌채로, 어떤 음악이나 그림이 잠시잠깐 예전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상대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다들 그러면서 사는거 아닐까요. 대부분은 옆에 있는 사람과 사랑하면서, 그러나 때때로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다만 더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그걸 굳이 입밖에 내지 않으려고 할 뿐.

아, 오늘..정말 대단히 추워요!!

기억의집 2012-02-02 12:26   좋아요 1 | URL
애아빠도 넘 춥다고 문자 왔더라고요. 감기 조심하세요.

하이킥 요즘 얽키고 설킨 러브 라인이라 그저그래요. 어제도 볼까하다가 봤는데, 러브 라인 빼고 안내상하고 윤유선이 웃겨서..실컷 웃었네요.

다락방 2012-02-03 11:29   좋아요 1 | URL
저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오만년만에 하이킥 좀 봐야겠어요. 마트 가서 저렴한 와인도 사가서 마시면서 봐야겠어요. 히히히히히. 행복한 금요일을 보내겠습니다! 불끈!!
 

이 소설은 참으로 놀랍다. 나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게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이 소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책은 총 4세대에 걸친 이야기이며, 그들의 여섯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등장하는 솔, 솔의 아빠인 랜돌, 랜돌의 엄마인 세이디, 세이디의 엄마인 에라.


랜돌의 여섯살, 랜돌은 '악'을 연구하는 엄마 세이디를 따라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간다. 그곳에 가고 싶었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막상 가보고 나서는 하이파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하이파는 어디를 봐도 푸른 물이 보이는 밝고 하얀 도시다. 이쪽에 바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저쪽을 보면 그곳에도 바다가 보인다. 곶인데다 지대가 높아서 어디서나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두 사람이 우리를 태우고 지나는 하츠비 거리는 양편에 가로수가 우거져 있다. 새들의 지저귀는 조용한 거리. 내가 어떤 걸 기대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곳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언어를 통해 의미가 전해지듯이,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아롱대듯 비쳐든다. 하츠비 거리의 햇살이 아롱대듯, 히브리어는 내게 의미가 아롱대듯 전해지는 언어다. 실제로 와보니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p.153)


나는 지하철 안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급기야 스마트폰을 꺼내서 하이파를 검색해보았다.


하이파(히브리어: חיפה아랍어: حيفا Ḥayfā )는 북부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이자 이스라엘 세 번째 크기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26만 7800명이다. 도시 및 그 주변은 하이파 지방에 속한다. 항구 도시이며, 지중해를 접하고 있다. 카르멜 산 자락에 위치한다. (출처: 위키백과, 구글)


얼만큼 아름다운 도시일까 나는 무척 궁금해져서 이미지를 검색해 보았다. 



(사진의 출처는 사진에 표기되어 있음)


랜돌이 본 하이파는 1982년의 하이파. 그러니 내가 지금 찾아본 이미지와는 조금쯤은 달랐겠지만, 사진으로 접한 하이파는 내게 감명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실제로 저 하늘과 지중해를 본다면 나 역시 아름답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랜돌이 말했듯이 '조용한 거리' 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랜돌의 어머니 세이디는 '악'을 연구한다고 위에서 언급한바 있는데, 그녀가 생각하는 '악'은 나치다. 유대인을 학살하고, 생명의 샘을 만들어냈던 바로 그 나치. 생명의 샘이란 걸 내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물론 다른책에 나왔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태 이것에 대해 제대로 인식한 적은 없다), 고맙게도 이 책의 356페이지 [작가 노트]에 생명의 샘에 대한 언급이 있다.


[작가 노트]


1940년에서 1945년 사이, 독일 방위군(Wehrmacht)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국 등 점령 지역에서 20만 명의 어린이를 납치했다. 이 '게르만화' 프로그램은 전사로 인한 인구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히틀러가 직접 지시해 시행된 것이다. 납치된 아이들 중 조금 큰 애들은 특별 센터에 수용되어 아리안 교육을 받았고, 수천명의 영아를 비롯한 좀더 어린 애들은 생명의 샘(Lebensborn)이라는 이름의 유아원을 거쳐 독일 가정에 넘겨졌다. 종전 후 몇 년 동안, 유엔의 자립지원부(UNRRA)를 비롯한 몇 개의 난민 단체들이 약 4만 명의 피랍 어린이를 원래의 가족에게 돌려보내 주었다. (P.356)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인구 감소를 해결하겠다고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납치하는 일이,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일이란다. 맙소사.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지구본에 '팔레스타인'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것은 아니고, 책을 읽다가 내가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본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현재도 대립중인데, 지도에 그들은 어떻게 표기되어 있을까,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몰랐다. 팔레스타인이 지구본에 표기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다가 집에 가서 지구본을 돌렸는데 이스라엘은 있고 팔레스타인이 없다는 것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이 미국을 등에 업어 힘이 더 세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어떤 이는,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지구본에 표시가 안되는 걸 거라고 했다.

어떤 이는, 나라 이름이 아니라 지명 이름이기 때문에 표기가 안되어 있을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팔레스타인을 넣고 검색해봤다.


팔레스타인(히브리어: ארץ ישראל 에레츠 이스라엘아랍어: فلسطين 필라스틴 / 팔라스틴[*])은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와 그 주변 지역을 일컫는 여러 역사적인 지명 가운데 하나이다. 몇천 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정의는 여러 번 변화해 왔다. 현대 역사에서 가장 넓은 정의는 영국이 통치할 당시에 쓰였는데 이 당시는 현재 시리아요르단과 이라크의 땅 일부를 포함한 트랜스 요르단 역시 팔레스타인의 일부였다. 현재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구역인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출처:위키백과, 구글)


아마도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정의는 여러 번 변화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이스라엘의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지구본에 표기 되지 않는게 아닐까. 나는 막연히, 지도상에 남한과 북한이 표기되듯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표기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가 놀랐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팔레스타인 독립', '팔레스타인 난민' 이라는 말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지구본에 팔레스타인이 표기되어 있지 않는다는 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들을 하면서, 어떻게 지구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어린 시절을 겪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어른이 될거야' 라는 정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어린 시절 때문에 당신의 지금이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군요' 하는 이해의 마음은 생긴다. 세이디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면서도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건 뿌리 뽑아야 할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크리스티나가 '에라'로 이름을 바꾼것도, 그들의 여섯 살이 그들에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들이 어른이 되고난 후의 사건들이 다음 세대의 여섯 살에게 들려지기도 한다. 그것들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던 나로서는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랬지, 하고. 그래서 이 책은 네 명의 여섯 살을 모두 읽어내고 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보는게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번 읽고 그것들이 그림처럼 머릿속에서 연결되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말이다.


리뷰를 쓰거나 구매자평을 쓸 때, 별점을 매기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셋을 줄까 넷을 줄까, 넷을 줄까 다섯을 줄까. 이것은 별 셋 반이니 넷을 줄까, 이것은 별 셋 반이니 셋을 주자. 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사소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은 넷과 다섯을 오락가락하다가 다섯을 주기로 했다.


자꾸만 나치 집안에서 자란 여섯살의 크리스티나가 했던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다시 군대로 돌아간다. 우리가 전쟁에서 지고 있고, 예수님이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다른 독일 남자들처럼 아빠 역시 가능한 한 많은 러시아인을 죽여야 한다. 그런데 그게 혹시 예수님이 아니고 모세가 한 말인가? 할아버지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저 죽이든지 죽든지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식전 기도를 할 때면 아빠와 로타르 오빠를 적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하시는데, 그럴 때 러시아 사람들이 자기들의 아빠나 오빠를 보호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들이 말하는 적은 바로 우리일거고, 목사님이 교회에서 히틀러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실 때, 러시아 교회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 텐데, 그럴 때 나는 가엾은 하나님이 구름 속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모든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려 하지만 불행히도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P.283)



남북전쟁이나 6.25전쟁, 9.11테러, 나치 학살. 그 모든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어른들에게도 그리고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 아이들은 혼돈에 빠지고 부모를 잃는다. 그리고 때때로 자기 자신을 잃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내 것인지 아닌지.




나는 때때로 내가 소설만을 너무 좋아해서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한 흐름을 놓치고 있는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들을 모르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다가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도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곰국 때문에 지각할 뻔했다. 아, 곰국을 끓이느라 그런게 아니고, 곰국이 너무 맛있어서..자꾸 한 입만 한 입만, 하고 더 먹다가 그만 식탁에서 일어날 시간을 놓쳐버렸.....5분 지각했다. orz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양물감 2012-01-3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납치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어요. 저도 팔레스타인이 지구본에 없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제목이 확 눈길을 끌지는 않는데 내용은 의외로 읽어보고싶은거네요.

다락방 2012-01-30 18:02   좋아요 0 | URL
아, 팔레스타인이 지구본에 없다는 걸 몰랐던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군요! 저는 단순히 궁금증으로 지구본을 돌렸다가 깜짝 놀랐어요.
전 이 책 좋았습니다, 하양물감님.
:)

turnleft 2012-01-3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있어요!! 히히.
지금 읽는 [All the pretty horses] 다 읽으면 읽어볼께요.
근데 다락방님, [All the pretty horses] 는 절대로 영어책 사지 마세요 -_-

다락방 2012-01-30 23:56   좋아요 0 | URL
우앗, 턴님도 이 책을 가지고 계세요? 우하하하. 곧 읽게 되시면 감상 부탁드려요. 전 좋았어요.
아니 그런데, 모두 다 예쁜 말들은 왜 영어판으로 읽으면 안되나요? 어려워요? 복잡한가요? 그게 대화랑 설명이 따옴표가 없어서 구분이 안되긴 한데, 혹시 그것 때문일까요? 코맥 매카시는 다른 작품들도 그렇던데..아...왜요왜요왜요왜요?

(마치 영어책 살 것처럼 댓글 썼지만 사봤자 읽지도 못해서 사지 않을 확률이 99프로가 넘어요!!)

turnleft 2012-01-31 02:57   좋아요 0 | URL
일단, 대부분의 문장들이 다 복문이에요. 그것도 남들은 5~6 문장으로 끊어서 쓸걸 다 이어 붙여 놨습니다 ㅠ_ㅠ 한글로 읽어도 숨이 차는데 영어로 그런 문장들 읽으려니 죽을 지경이네요;;

게다가 중간중간 스패니쉬 대사를 번역도 없이 그대로 써 놨네요. 번역기 돌려가며 책 읽고 있어요 ㅠ_ㅠ

다락방 2012-01-31 09:11   좋아요 0 | URL
그거 번역본에서도 스패니쉬 대사는 해석 없는데, 그건 작가의 의도인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해석이 필요한 거라면 작가가 주인공들의 입을 빌어 해석해주더라구요. 아, 그런데 저는 쉬운 영어도 못읽는데 다 이어 붙인 문장이라니..아찔하네요. 그렇다면 그 책은 번역의 힘을 아주 많이 빌었겠네요. 그런데 그 책이 제가 위 댓글에도 쓴것처럼 대화에 따로 따옴표 처리를 하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에 읽기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아, 정말 아름다운 책인데 마음이 아파요. 흑흑 ㅠㅠ

레와 2012-01-3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행하는 '악'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이 페이퍼에 등장하는 하이파, 생명의 샘, 팔레스타인이 지구본에 표시조차 안되어 있다는 사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다시금 무섭네, 다락방.

다락방 2012-01-31 09:11   좋아요 0 | URL
내가 모르는 세상은 무섭지만,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게되니 전 그게 또 좋고 신나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역사적 사실들을 알게 되고. 우리가 계속 책을 읽는다면 지금보다 아는게 훨씬 더 많아질거에요. 우리 쫄지 맙시다!

별족 2012-01-3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일 말고, 아르헨티나인가 군부독재하에서 반정부인사들의 아이를 납치해서 강제입양시켰다는 걸 신문에서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다락방 2012-01-31 09:12   좋아요 0 | URL
아....이런식의 납치를 행했던 곳이 또 있었군요! 아..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얼마전에 나온 소설중에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하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건조기후 2012-01-3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이 페이퍼 정말 좋아요.. 아주 사소하게 그리고 또 의미있게 여러모로요. 책도 꼭 읽어볼게요. :)

다락방 2012-01-31 09:13   좋아요 0 | URL
우와. 제가 좋아하는 건조기후님이 제 페이퍼를 좋아해주셔서 저는 아주 신나요! 꺅 >.<

2012-01-30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31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1-30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걸 전방위적 리뷰라고 해야 하나요? 소설이 훠얼씬 커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ㅎㅎ^^

다락방 2012-01-31 09:14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읽은건 후와님 덕입니다. 소설이 훨씬 커졌다면, 그 시작엔 후와님이 계셨어요. 흣 :)

HAE 2012-01-3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꼭 읽어볼래요.


다락방 2012-01-31 09:15   좋아요 0 | URL
네, 꼭 읽어보십시오!! (단호)

기억의집 2012-01-3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팔레스타인이 지구본에 없군요. 여섯살, 사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독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부모의 눈이나 인식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과장님은 좀 늦게 와야 부하직원이 편하답니다~

다락방 2012-01-31 09:16   좋아요 0 | URL
여섯 살, 살게 되는 환경은 부모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어떤것을 부모에게 말하고 또 어떤것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판단이 가능한 나이인 것 같아요. 그것이 다 '맞는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부모나 조부모의 말을 있는그대로 백프로 수용한다기 보다는 그건 좀 이상한데,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하구요. 위에 제가 인용했던 문장처럼 크리스티나는 할아버지의 기도로부터 독립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죠.

제가 늦게 오는게 다른 직원을 편하게 해주는거라고, 다른 직원도 말하긴 하던데...근데 제가 늦게 오면 제가 마음이 참 거시기해져서요. 하하하하하. ㅜㅜ

무스탕 2012-01-3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독서의 방향은 편중이 없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 수용하고요. 늘 그것이 신기하고 부러워요 :)
별점을 별로 표시하는 방법 말고 말로도 표시했으면 좋겠어요. '별 셋과 칠분의 오' 이렇게요. ㅎㅎㅎ

다락방 2012-01-31 16:36   좋아요 0 | URL
우앗, 무스탕님. 참 좋으네요. 별 셋과 칠분의 오, 이렇게 말로도 평점을 내리는거 말예요. 이거 뭔가 좋은데요? ㅋㅋㅋㅋㅋ 아니면 숫자로 표기하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3.75 이렇게 ㅋㅋㅋㅋㅋ
여기 눈 펑펑 와요, 무스탕님. 금세 쌓였네요. 하아..퇴근하고 집에 어떻게 간담..(시무룩)

버벌 2012-02-04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찜해야지~

다락방 2012-02-06 12:21   좋아요 0 | URL
버벌님은 찜쟁이 ㅋㅋ

2012-02-23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9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