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참으로 놀랍다. 나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게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이 소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책은 총 4세대에 걸친 이야기이며, 그들의 여섯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등장하는 솔, 솔의 아빠인 랜돌, 랜돌의 엄마인 세이디, 세이디의 엄마인 에라.
랜돌의 여섯살, 랜돌은 '악'을 연구하는 엄마 세이디를 따라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간다. 그곳에 가고 싶었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막상 가보고 나서는 하이파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하이파는 어디를 봐도 푸른 물이 보이는 밝고 하얀 도시다. 이쪽에 바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저쪽을 보면 그곳에도 바다가 보인다. 곶인데다 지대가 높아서 어디서나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두 사람이 우리를 태우고 지나는 하츠비 거리는 양편에 가로수가 우거져 있다. 새들의 지저귀는 조용한 거리. 내가 어떤 걸 기대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곳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언어를 통해 의미가 전해지듯이,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아롱대듯 비쳐든다. 하츠비 거리의 햇살이 아롱대듯, 히브리어는 내게 의미가 아롱대듯 전해지는 언어다. 실제로 와보니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p.153)
나는 지하철 안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급기야 스마트폰을 꺼내서 하이파를 검색해보았다.
하이파(히브리어: חיפה, 아랍어: حيفا Ḥayfā (도움말·정보))는 북부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이자 이스라엘 세 번째 크기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26만 7800명이다. 도시 및 그 주변은 하이파 지방에 속한다. 항구 도시이며, 지중해를 접하고 있다. 카르멜 산 자락에 위치한다. (출처: 위키백과, 구글)
얼만큼 아름다운 도시일까 나는 무척 궁금해져서 이미지를 검색해 보았다.
(사진의 출처는 사진에 표기되어 있음)
랜돌이 본 하이파는 1982년의 하이파. 그러니 내가 지금 찾아본 이미지와는 조금쯤은 달랐겠지만, 사진으로 접한 하이파는 내게 감명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실제로 저 하늘과 지중해를 본다면 나 역시 아름답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랜돌이 말했듯이 '조용한 거리' 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랜돌의 어머니 세이디는 '악'을 연구한다고 위에서 언급한바 있는데, 그녀가 생각하는 '악'은 나치다. 유대인을 학살하고, 생명의 샘을 만들어냈던 바로 그 나치. 생명의 샘이란 걸 내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물론 다른책에 나왔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태 이것에 대해 제대로 인식한 적은 없다), 고맙게도 이 책의 356페이지 [작가 노트]에 생명의 샘에 대한 언급이 있다.
[작가 노트]
1940년에서 1945년 사이, 독일 방위군(Wehrmacht)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국 등 점령 지역에서 20만 명의 어린이를 납치했다. 이 '게르만화' 프로그램은 전사로 인한 인구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히틀러가 직접 지시해 시행된 것이다. 납치된 아이들 중 조금 큰 애들은 특별 센터에 수용되어 아리안 교육을 받았고, 수천명의 영아를 비롯한 좀더 어린 애들은 생명의 샘(Lebensborn)이라는 이름의 유아원을 거쳐 독일 가정에 넘겨졌다. 종전 후 몇 년 동안, 유엔의 자립지원부(UNRRA)를 비롯한 몇 개의 난민 단체들이 약 4만 명의 피랍 어린이를 원래의 가족에게 돌려보내 주었다. (P.356)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인구 감소를 해결하겠다고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납치하는 일이,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일이란다. 맙소사.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지구본에 '팔레스타인'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것은 아니고, 책을 읽다가 내가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본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현재도 대립중인데, 지도에 그들은 어떻게 표기되어 있을까,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몰랐다. 팔레스타인이 지구본에 표기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다가 집에 가서 지구본을 돌렸는데 이스라엘은 있고 팔레스타인이 없다는 것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이 미국을 등에 업어 힘이 더 세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어떤 이는,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지구본에 표시가 안되는 걸 거라고 했다.
어떤 이는, 나라 이름이 아니라 지명 이름이기 때문에 표기가 안되어 있을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팔레스타인을 넣고 검색해봤다.
팔레스타인(히브리어: ארץ ישראל 에레츠 이스라엘, 아랍어: فلسطين 필라스틴 / 팔라스틴[*])은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와 그 주변 지역을 일컫는 여러 역사적인 지명 가운데 하나이다. 몇천 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정의는 여러 번 변화해 왔다. 현대 역사에서 가장 넓은 정의는 영국이 통치할 당시에 쓰였는데 이 당시는 현재 시리아, 요르단과 이라크의 땅 일부를 포함한 트랜스 요르단 역시 팔레스타인의 일부였다. 현재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구역인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출처:위키백과, 구글)
아마도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정의는 여러 번 변화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이스라엘의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지구본에 표기 되지 않는게 아닐까. 나는 막연히, 지도상에 남한과 북한이 표기되듯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표기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가 놀랐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팔레스타인 독립', '팔레스타인 난민' 이라는 말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지구본에 팔레스타인이 표기되어 있지 않는다는 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들을 하면서, 어떻게 지구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어린 시절을 겪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어른이 될거야' 라는 정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어린 시절 때문에 당신의 지금이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군요' 하는 이해의 마음은 생긴다. 세이디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면서도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건 뿌리 뽑아야 할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크리스티나가 '에라'로 이름을 바꾼것도, 그들의 여섯 살이 그들에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들이 어른이 되고난 후의 사건들이 다음 세대의 여섯 살에게 들려지기도 한다. 그것들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던 나로서는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랬지, 하고. 그래서 이 책은 네 명의 여섯 살을 모두 읽어내고 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보는게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번 읽고 그것들이 그림처럼 머릿속에서 연결되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말이다.
리뷰를 쓰거나 구매자평을 쓸 때, 별점을 매기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셋을 줄까 넷을 줄까, 넷을 줄까 다섯을 줄까. 이것은 별 셋 반이니 넷을 줄까, 이것은 별 셋 반이니 셋을 주자. 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사소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은 넷과 다섯을 오락가락하다가 다섯을 주기로 했다.
자꾸만 나치 집안에서 자란 여섯살의 크리스티나가 했던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다시 군대로 돌아간다. 우리가 전쟁에서 지고 있고, 예수님이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다른 독일 남자들처럼 아빠 역시 가능한 한 많은 러시아인을 죽여야 한다. 그런데 그게 혹시 예수님이 아니고 모세가 한 말인가? 할아버지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저 죽이든지 죽든지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식전 기도를 할 때면 아빠와 로타르 오빠를 적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하시는데, 그럴 때 러시아 사람들이 자기들의 아빠나 오빠를 보호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들이 말하는 적은 바로 우리일거고, 목사님이 교회에서 히틀러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실 때, 러시아 교회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 텐데, 그럴 때 나는 가엾은 하나님이 구름 속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모든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려 하지만 불행히도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P.283)
남북전쟁이나 6.25전쟁, 9.11테러, 나치 학살. 그 모든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어른들에게도 그리고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 아이들은 혼돈에 빠지고 부모를 잃는다. 그리고 때때로 자기 자신을 잃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내 것인지 아닌지.
나는 때때로 내가 소설만을 너무 좋아해서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한 흐름을 놓치고 있는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들을 모르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다가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도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곰국 때문에 지각할 뻔했다. 아, 곰국을 끓이느라 그런게 아니고, 곰국이 너무 맛있어서..자꾸 한 입만 한 입만, 하고 더 먹다가 그만 식탁에서 일어날 시간을 놓쳐버렸.....5분 지각했다.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