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제73호) [시사 IN]에 영화 에세이스트 '김세윤'이 쓴 글을 보면 '자신의 단호한 도덕적 확신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으면서 오직 견고한 의심의 함정에 밀어넣는 것만으로도~'라는 문장이 나온다. '메릴 스트립'주연의 영화 『DOUBT』를 감상하고 쓴 글중의 일부인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내 모든 확신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가 바르다고 믿는 것은 도대체 무엇으로 확신하는가. 나 역시 그저 나만의 도덕적 확신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그 환경을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내가 부당하게 생각하는 몇가지 중의 하나는 바로 '잘못된 말 한마디로 끌려가는' 행위이다.
'트루히요'가 집권하던 시절의 도미니카 공화국. 오스카의 외할아버지 '아벨라르'는 자신이 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마디 말로 유치장에 끌려간다.
" 아니, 시체는 없군. 트루히요가 내 대신 치워준 게 틀림없어."
사실 이 말도 문제였지만(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 말을 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그가 유치장에 끌려가서 심한 고통을 받으며 수감생활을 하게 된 데에는 집권자 트루히요에게 자신의 예쁜딸을 강간하라며 갖다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루히요가 요구했는데도 아벨라르는 재클린을 데려다 놓지 않았다. 그는 결국 유치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역사에 무지한 나는 설마 이 악랄한 지배자가 실존인물인걸까 의심했다. 그러나 책 뒤에 저자의 주석에 그는 엄연히 실재했다. 그걸 읽으면서도 이건 지은이의 유머스런 주석인걸까 또한번 의심했다. 다시 한번 인터넷에 검색해본다.
트루히요-도미니카의 독재자(1930~61).
암살당할 때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했다. 1918년 도미니카 군에 입대했으며, 미국이 이 나라를 점령한 기간(1916~24)중 미국 해병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1919~25년에 육군 소위에서 보안대 대령으로 승진했으며, 1927년에는 장성이 되었다. 1930년 호라시오 바스케스 대통령에 대항해 군부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그때부터 암살되기까지 31년간 트루히요는 자신의 가족을 공직에 임명하고 많은 정적을 살해했으며 군통수권을 통해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절대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1930~38, 1942~52년에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업무 능력이 탁월하고 행정 능력이 있으며 정치적으로 무자비했던 트루히요는 공화국에 전에 없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번영의 대가로 그들의 시민적·정치적인 자유를 희생해야만 했다. 또한 경제 근대화의 혜택은 트루히요와 그의 측근 및 지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불공정하게 분배되었다. 그가 권력유지를 위해 취했던 가혹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반대세력은 정권 말기에 계속 증대했으며, 독재 통치를 완화하라는 외국의 압력도 상당히 컸다. 이때문에 그는 점차 군부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그결과 산크리스토발에 있는 농장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기관총 사격으로 암살되었다. 곧이어 J. T. 디아스 장군을 포함한 많은 암살 혐의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사실, 한마디 말로 인생이 완전히 다른길을 향하게 될수도 있다는 걸 알게된건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었다. '얀'은 언제나 진지하고 심각하기만 한 '마르케타'에게 띄운 엽서에 적었던 농담 한마디로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언제 제대할 지 알 수 없는 군대에 입대한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가 그가 했던 농담. 한때는 그도 회원이었던 학생연맹은 그가 아무리 농담이라고 주장해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한 그는 살면서 계속 지독한 농담에 휩쓸리게 된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다. 체코, 라고 하니 또 역시 한마디 말로 끌려간(대체 어디로?) 남자가 나오는 영화 『줄 위의 종달새』가 생각난다.
'이리 멘젤' 감독의 이 영화는 영화가 담고 있는 휴머니즘이 체코 국민들에게 보여질까 두려워 40년간 상영이 금지 되었었다고 한다. 휴머니즘. 이 영화는 말 한마디로 끌려가는 상황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사랑해서 이제 갓 결혼한 신랑이 끌려간다. 그러나 신부는 이런 체제속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좌절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시간은 흐를거고 그는 돌아오겠죠, 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나는 그 희망이 외려 더, 슬프다. 당신의 희망이 언제나 '희망'인 상태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다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어떠한가!
이반 데니소비치가 수용소에서 조금 더 밥을 먹기 위해 고민하고, 조금 덜 힘들기 위해 노동을 위한 연장을 숨기는 까닭, 그렇게 몇십년을 살아야 하는 수용소에서 그 하루를 묵묵히 또 견뎌내야 하는 까닭은 그가 살인이나 강간, 납치나 유괴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언제 풀려날지 모를 그 모두는 단지 생각이 달랐다는 이유로, 전쟁 포로로 잡혔었다는 이유로 그 수용소안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비즐러를 빼놓을 수 없다. 비즐러가 누구인가. 학생들에게 자백받는 법을 강의하고, 다른 사상을 가진 불온한 인물들을 감시하는 데 도가 튼 인간이다. 그런 그가 다른이의 삶을 지켜보다 그 삶에 동화되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게 된다. 그 누구보다 강인하게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던 비즐러였으나,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에게 동화되었다면, 그 전의 비즐러가 가지고 있던 확신이 쉽게 바뀔 수 있었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확신이 증거 없는 것이었다면, 나랑 반대되는 확신에서 어떤 증거를 찾았다면 그때, 바로 그때 타인의 삶이 내게로 오지 않을까.
이쯤에서, 헝가리에 공산주의 체제가 자리를 잡자 해외로 망명하여 여기저기 떠돌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결국은 뉴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산도르 마라이'에게 유감을 표한다.
혹시, 이런 페이퍼를 쓰게 되면 나도 어딘가로 끌려가게 될까?
처음에 언급했던 [시사 IN] 제73호 에 보면 유럽의 기자들이 "미네르바 구속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던데, 내가 그 글을 읽고 이런 페이퍼를 쓰게 된건 뭐, 아니다.
덧. 제목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서 따왔다. '얀'이 했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