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로빈 월쇼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 미디어일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모든 강간은 권력의 표현이다." 수잔 브라운밀러는 자신의 기념비적 저서 『의지에 반하여: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에서 이렇게 말한다. (p.39)




읽기에 몹시 힘겨운 책이었다. 트윗의 타임라인에서도 성폭행 피해가 줄을 잇는데 내가 굳이 이 책을 지금 읽었어야 했을까 후회했다. 며칠간 삶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에게. 이 여자들이 자기가 속한 곳 그 어디에서든-학교, 직장, 모임등등-, 가해자와 함께 있어야 하면서 겪었어야 할 고통, 또한 다른 누군가로부터 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게다가 가해자가 나 외의 다른 사람에게도 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걱정까지, 이 여자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어느 곳에서나 권력을 쥐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라는 것이 너무 씁쓸했다. 게다가 그 권력으로 약자인 여자를 눌러서 자신이 위치한 곳까지 올라오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 그렇게 자기들끼리의 권력을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나치게 절망적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남자들은, 그들이 가진 신체적인 힘과, 그들이 가진 유명세와, 그들이 가진 이름과, 그들이 차지한 자리를 어떻게든 여자를 압박하고 꼼짝 못하게 하는데 쓰고 있다. 





아는 이에게 강간을 당한 애비는 이렇게 말한다. "그 남자를 때리거나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 나는 '착한 여자'니까 다른 사람이 나쁘게 굴더라도 나는 그렇게 해동하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p.160)



어릴적부터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걸 교육하는 것이 강간과 성폭력을 없애는 방법이라는 것에는 당연히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 이미 너무나 만연한 성범죄에 대해서, 궁극적인 이상향을 말하는 것같아, 너무 먼 얘기로만 들린다. 권력을 제멋대로 성범죄에 이용한 남자들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들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 사실 나는 친구와도 얘기했지만, 죽창 들고 다니면서 남자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입버릇처럼 더 진급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말했었는데, 그때마다 친구가 '네가 더 올라가야해' 라고 말했더랬다. 회사의 다른 여직원들도 '차장님이 임원이 되어주세요' 한다. 내가 있는 회사에 아직 여자임원이 없다. 나는 싫다고, 더 진급하지 않을거라고 늘상 말해왔지만, 내가 올라가야 하는걸까.. 내가 권력을 가져야할까, 지금보다 더한 권력을 가져야 할까. 내가 권력을 가지는 게 답일까. 그렇지만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책임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입맛이 쓰고 갈길도 멀다. 

 



다른 얘긴데,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본다.

절망과 좌절, 스스로를 믿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



이 책에서 드러나는 많은 사례들에서, 강간 피해자들은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얘기하지 못한다. 얘기했을 때 듣게 될 말들이 두려워서. 그런데, 한 피해자의 엄마는, 그걸 눈치채준다. 그 부분 읽다가 울어버렸는데, 쓰려니까 또 눈물나네.



한편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여성 중에는 다행히 가족 관계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한 이도 있었다. 열아홉에 데이트 강간을 당한 로리가 그 예로, 로리의 어머니는 평소 활달하던 딸이 몇 주 동안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고 우울해 보이자 로리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등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로리 어머니와 그녀의 친구가 로리를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던 중에, 어머니의 친구는 자신이 과거에 겪은 데이트 강간 경험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저를 보더니 "너한테도 이런 일이 있었니?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거야?" 라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그냥 "응"이라고 짧게 대답했죠. 그러자 엄마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달라고 해서 설명을 해드렸어요.


이후 로리의 어머니는 데이트 강간에 관해 다룬 기사를 로리에게 주면서 읽어보기를 권했고, 로리는 "그 기사를 읽고 나서야 데이트 강간에 대해,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p.192-193)




어떤 부모는 강간 피해로 자식을 잃었는데, 그 사건을 통해 성범죄를 예방하는 캠페인도 했다. 자식을 잃은 경험으로 고통스러울텐데도, 이런 일이 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액션을 취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늘 벅찰 정도로 감동적이다.



1986년, 레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진 앤은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같은 학교 친구에 의해 강간 및 살해를 당했다. 졸지에 딸을 잃은 하워드, 콘스탄스 클레리 부부(펜실베니아 브린마워 거주)는 그 사건의 영향으로 '안전 관련 질의서'를 만들어, 자녀가 진학을 고려하는 대학 당국에 부모들이 그것을 보내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p.276-277)




우리, 부디 살아있자.



앞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많은 지침과 방법들을 제시했지만, 그럼에도 막상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신이 가해자를 이기거나 그의 통제로부터 탈출하기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는 가해자와 타협하는 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현명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굴복하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당신은 알아야 한다. 강간하겠다는 협박은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기에, 그에 항복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더욱이 가해자가 완력을 써서 당신이 성관계에 동의하도록 만들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동의가 아니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나 강요도 없이, 서로 자유롭게 합의하여 공동으로 내린 결정에 의해 성사된 것만을 동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당신을 강간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스스로를 질책하지 말라. 피해자로서 당신이 유일하게 책임져야 할 것은 당신 자신뿐이다. 당신이 강간당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부상을 입거나 죽을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부디 살아 있으라. (p.259)





포스트잇 플래그를 많이 붙였다. 아래에 죄다 인용하겠다.






우리는 여성에게 괜찮아 보이는 남성들까지 의심하라고 조언해야 할까? 데이트를 하거나 파티에 참석하지 말라고, 술을 마시지도 성적인 감정도 느끼지 말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강간은 피해자가 유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42)

저는 강간을 당한 느낌이었지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어요. 그저 제 자신이 마지못해 그 행위에 참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사실 저는 그 남자보다도 저 자신을 탓했죠. 상대방이 마약을 먹이거나 때려서 여자를 쓰러뜨린 후 강간한 다음 살해했다는 것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여자한테 책임이 있는 거라고 늘 생각해 왔거든요.
사건이 일어난 밤에도, 고환을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눈을 가격해서 그 남자애를 다치게 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착한 여자애는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그 대신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놔두고 결과에 순응해야 하지요. (p.65-66)

니나는 래리를 고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법정에서의 공방을 견딜 만큼 자신이 정서적으로 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73)

타인의 요구에 맞춰 살도록 사회화되었다 하더라도 여성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 신호를 보내는 `내면의 목소리`가 작게나마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을 무시하며 살아가기 예사다. 자기의 내면에서는 조심하라고 경고를 보내지만, 사회화된 자아는 타인을 일단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남자아이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배운다. 착한 여자아이는 남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상냥해야 한다는 것도. (p.73-74)

에이프릴을 강간한 가해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둘은 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 만난 사이로, 데이트를 한 적도 성관계를 한 적도 없었다. 다만 그가 에이프릴이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사건 당일 에이프릴을 바닥으로 밀치며 머리를 구석에 박았고, 몸싸움을 벌인 끝에 강제로 삽입했다.


일을 다 끝낸 다음에 그 사람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원래 섹스할 때 이렇게 많이 싸우는 편이냐고요. 그때 알았죠. 그는 결코 저를 강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p.96)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영향을 받았는지와 무관하게, 많은 남성들이 과도한 남성성을 학습해왔고 여전히 그것을 동경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UCLA 의 연구자 닐 말라뮤트Neil Malamuth는 1986년에 발표한 자료를 통해, 자신이 시행한 설문에 응한 남성 중 30퍼센트가 "검거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강간을 저지를 것"이라 답했다고 보고했다. 또한 절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설문 문항에 쓰인 `강간`이라는 단어를 `강제로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문장으로 바꾸자 50퍼센트 이상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p.107)

미즈에 글을 쓴 앤드류 머톤은 남학생클럽연합의 전국대회에 참가해 "언어는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독일놈, 쪽바리, 구크Gooks(동남아시아인과 동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단어) 혹은 슬로프Slopes(황인종을 비하하는 단어)라고 부르면, 그들을 죽이는 것이 더 쉬워진다. 이는 여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을 비인간적인 형용사를 이용해 묘사하다 보면 그녀들이 실제로는 완전한 인격체임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 순간 그녀들을 학대하게 된다. (p.144)

"폭력은 생물학적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강간은 남성성의 본질이 아니며, 다만 폭력적으로 사회화된 남성들이 자신의 성적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인 거죠.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적 가치와 생명의 숭고함을 존중하도록 교육받은 남성은 결코 여성을 강간하지 않습니다." (p169-170)

"가해자가 아는 사람일 경우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인식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신속하게 상담을 하거나 도움을 찾는 다른 피해자들에 비해 더 오랫동안 후유증이 지속될 수 있다." (p.171-172)

메릴은 이렇게 말한다. "그 끔찍했던 밤이 지나고 제가 배운 것은 제 내면의 자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또한 누구와 데이트를 할지에 대해 정말 주의해야 한다는 걸 배웠죠. 상대에게 어떤 의심이 들 때는 주저하지 말고 돌아서서 가능한 한 빠르게 뛰쳐나와야 한다는 것도요."
어떤 남자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해 `나쁜 느낌`이 들 때, 당신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그것을 당신 내면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믿어라. 그리고 위험을 내재한 그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어라.
"그 작은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파울라는 덧붙여 이렇게 조언한다. "내면에서 어떤 신호가 왔을 때는, 상대를 배려하거나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대신 일단 재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신호는 상황이 정말 위험해질 것임을 암시하는 경고니까요. 다행히 저는 제 안의 소리를 믿도록 배웠어요. 아마도 가끔은 조심하는 정도가 지나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또다시 저 자신이 취약해지는 위험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아요." (p.247)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당신은 자신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술에 취하고, 남자가 차로 태워다주겠다는 제안을 수락하고, 혹은 그 남자의 아파트에 가는 등) 스스로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누구도 당신에게 강간당한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이 세상에 강간당해 마땅한 사람은 없고, 강간당할 만한 행동 또한 없기 때문이다. (p.253-254)

작가 티모시 베네크는 『Men On Rape』라는 작품을 통해 이렇게 쓰고 있다. "강간을 끝낼 수 있는 것은 강간하는 남성들, 집단적인 파워를 지닌 남성들이다."
이는 남성들이 모든 유형의 강간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과, 그러려면 남성 스스로 여성과 성에 관한 믿음을 점검하고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260-261)

흔히 성폭력 가해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자신이 취한 상태였음을 강조하곤 하는데, 그것이 합법적인 변명이 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가해자는 혈중 알코올 함량과 상관없이 그저 가해자일 뿐이고, 따라서 반드시 자기가 저지른 일의 대가를 치러야 함을 명심하라. (p.263)

섹스는 즐거운 저녁 시간을 베푼 대신 받는 보상이 아니다. 당신은 백 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고도 여전히 좋은 섹스나 사랑, 혹은 `진짜` 남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있다. 사정을 하느냐 마느냐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며, 서로의 합의 아래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다.
만약 당신의 친구들이 성관계 횟수를 세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라. 또한 그 친구들이 `정복한 여자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서로 궁금해하며 성적인 `승리`에 대해 떠벌린다면, 당신은 주저하지 말고 새로운 친구를 찾아라. (p.264)

당신 친구들이 항상 하는 이런 말-"여자는 좋아도(혹은 좋을 때)안 된다고 한다"-따위는 사실이 아니므로 이제 잊어버려라. 여자가 "No"라고 말할 때는 정말로 "No"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 (p.265)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묻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이 또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녀가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성관계를 하지 말라.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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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2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빨리 캐치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아니다 싶을 때 강력하게 이의를 표시하고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미적대다보면 상대에게 말리기 십상이죠. 자기 주체성, 빠른 판단력을 키우는데 여성들은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다락방 2016-10-26 10:25   좋아요 1 | URL
그동안 너무 상냥해야 한다고 사회화 되었어요. 절대 상냥할 필요가 없어요. 조신할 필요도 없고요. 저부터 계속 으르렁 거릴 참입니다.

AgalmA 2016-10-26 11:01   좋아요 0 | URL
상냥함, 착함이 일종의 방어나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 오류도 있었죠. 남성 경우 이 특성을 전방위적으로 사용하지 않죠. 학습된 사회적인 영향도 있지만 여성들은 너무 내면화한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주체성이 약해지죠. 남성은 밖으로 표출하는 성향이 강한데 부정적으로 강해진 경우가 마초성이겠죠.
대응이 버겁고 힘들 때 많지만 의지를 잃지 않고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위한 요리를, 내가, 꼭!


그러니까 먼댓글로 연결된 저 때부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오차즈케는 어떨까 생각했지만 한 번도 안먹어봤으므로 뒤로 밀려났고, 나는 그렇게 이 요리 저 요리를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번이 실패했다. 모양도 별로고 맛도 별로인 요리들만이 내 손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영 요리에 재능이 없어, 떡볶이도 김치찜도 바보같이 해...라고 절망했지만, 그러나 좌절하진 않았다. 내 주변의 모두가 내가 요리를 이제 '그만'하길 바랐지만, 나는 고집이 세다. 포기하지 않아, 계속 하겠어! 나는 그렇게 자꾸 시도하고 자꾸 실패했다.


칠봉이와 연애할 때, 나는 칠봉이를 언젠가 나의 집에 오게해서 꼭 따뜻한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다. '김기창'의 『모나코』에서 노인이 배고프다는 여자에게 오차즈케를 금세 뚝딱 해서 내어줄 때, 그걸 잘 먹는 여자가 너무 좋았던 거다. 배고플 때의 따뜻한 음식, 그것이 나를 채워주는 느낌, 얼마나 좋은가! 일전에 나는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치즈파이를 지친 밤에 한 입 베어물고는 감동했던 적이 있다. 아, 이걸 선물해준 친구와 지금의 이 치즈파이는 내 영혼을 달래준다, 왈칵 눈물이 솟았던 기억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런 음식을 꼭 하나 만들고 싶었다. 이거라면 자신있어! 하는 음식. 그러나 나는 정말이지, 지겨울정도로 실패하고 있었고, 칠봉이는 내게 '돈주고 사먹자'라고 몇 번이나 말했더랬다. ㅎㅎㅎㅎㅎㅎ 너는 글을 잘 쓰니까 글을 계속 써, 요리는 못하니까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라고 언제나 따뜻하게 나를 격려해주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이도저도 다 실패하니, 반복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서, 며칠을 오일파스타를 했더랬다. 반복한다고 잘 되진 않았다. 씨댕..


오일파스타도 패쓰...



그러다 나는 이제 지친 영혼을 달래줄 음식, 정성이 들어가지만 어렵지 않은 음식, 그리고 맛이 보장되는 음식을 드디어! 찾아냈다. 



그러니까 지난 주말에 여동생 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데, 여동생이 감자전을 해준거다. 강판에 감자를 가는 일은 남동생과 내가 번갈아가며 했다. 여동생은 하면서 내게 과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갈아진 감자를 체에 받치고, 그렇게 밑에 받아진 물은 시간이 지나면 녹말과 분리가 된다, 이때 물은 버리고 녹말과 갈아진 감자를 섞어서 부쳐내면 끝! 그렇게 먹게된 감자전은 심심하니 맛있었고 좋은 술안주가 되었던 거다. 물론 제부가 해준 제육볶음과 부대찌개가 갑이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안주는 역시 맵고 짜야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그때 보고 나도 감자전 한 번 해봐야지, 하고 다음날 일요일에 도전을 했는데, 우리집엔 강판이 없었던 거다.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여동생은 '강판 없는 집이 어딨어?' 하고 전화기 너머로 말하고,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던 나와 남동생은 동시에 외쳤다.


"우리집!"


하는수없이 믹서에 갈기로 했다. 믹서에 감자를 갈려면 물이 좀 들어가야하고, 그러면 그걸 부쳐내기 위해 밀가루를 조금 넣어야한다더라. 그래, 한번 해보자, 나는 믹서기에 물 약간과 감자를 넣어 갈아냈고, 감자를 체에 받친 뒤에는 밀가루를 크게 두 스푼 넣었다. 그리고 부쳐냈는데, 오, 괜찮은 거다. 그렇지만 밀가루를 넣었다는 게 스스로 좀 껄끄러워... 완벽한 감자전을 해보이겠어!!



나는 그렇게 어제 집에 들어가는 길에 다이소에 들러 2천원짜리 강판을 샀다. 감자의 껍질을 까고는 강판에 갈기 시작했다. 오, 강판으로 감자를 가는 건 정말 더럽게 힘들었다. 무지하게 힘들었다. 두 개만 갈았는데도 녹초가 되는 기분... 게다가 강판에 손을 베어서 피도 났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 강판에 감자를 가는데, 그리고 나는 초짜인데, 피 보는 것쯤은 베이스 아니겠어? 하고는 감자 두 개를 강판에 갈고, 여동생이 했던 대로 체에 받치고, 물과 녹말을 분리하고, 그 덩어리를 달궈진 프라이팬에 투척- 아아, 감자전이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술안주를 만들었다. 달걀후라이 하나와 참치전, 그리고 완성된 감자전!!!





물론, 나는 아직 프라이팬을 들어서 뒤집는 것 까지는 못하는 요리초보이므로, 뒤집개로 뒤집다가 가운데가 찢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이쯤은 감수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한접시에 담기 위해(설거지 거리 더 만들기 싫어서..) 반으로 접어 모양이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저것은 그야말로 백프로의 감자전!!! 


됐어, 감자전이야, 감자전이라고! 이것은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어줄 음식이야!!



그렇지만 너무 힘들었으므로, 내가 집에서 해먹을 때는 믹서기에 갈기로 한다. 매번 피를 보면서 요리할 순 없잖아. 힘도 쓰고 피도 보고...그건 좀 그렇지 않니? 어쨌든 나는 피를 봐가면서 감자전을 완성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이것은 감자와 강판, 그리고 체만 있으면 가능하다. 유후~ 아, 그리고 나의 팔힘과 ㅠㅠ 내가 참...거시기한게 ㅠㅠ 팔힘이 약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쨌든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음식. 하트 뿅뿅 ♡



이제 할 줄 아는 요리가 생겼으니, 집만 사서 독립하면 된다!!!!! 



아아, 토지에서 별당아씨가 구천이에게 진달래 꽃피면 화전을 해주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 버렸어... 



"산에 진달래가 필 텐데 말예요. 그 꽃잎 따서 화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박경리, 『토지 6권, p.360』















감자는 언제나 있으니 말예요, 감자 갈아서 감자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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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6-10-2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엄마가 해주시는 감자전 너무 좋아하는데.. 하튼 한국음식은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참. 여기에 감자전 해먹을수 잇는 가루 팔아요. 물하고 계란 하나 투척하면 끝! 아..마음은.. 그 가루 보내드리고 싶어요.

다락방 2016-10-21 10:04   좋아요 0 | URL
오오!! 다음엔 계란을 하나 넣어봐야겠네요. 계란 넣을 생각은 못했는데 넣으면 맛있을 것 같아요. 다음엔 계란 넣어서 해보고 궁극의 감자전을 완성하겠어요. 히힛

새아의서재 2016-10-2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란 넣으실때 노른자만요! 식당들 감자전이 노르스름한 이유가.. ^^

다락방 2016-10-21 10:13   좋아요 0 | URL
오케이! 꿀팁 감사해요! >.<

붉은돼지 2016-10-2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아아 생각났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종놈 구천이...별당아씨....
저는 솔에서 나온 16권짜리 토지를 읽었는데요..정말 박경리 선생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다락방님 요리책도 하나 내셔야겠어요.. 호호호호

다락방 2016-10-21 14:36   좋아요 0 | URL
제가 요리책을 하나 낸다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손쉬운 요리를 선택하겠어요! ㅎㅎ
그렇지만 제가 요리책을 내기에는 할 줄 아는 요리가 감자전 딱 하나 뿐이라..무리입니다. ㅠㅠ

저 대사 너무 좋아해요. 꽃을 따다 화전을 만들어 주겠다니,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비연 2016-10-2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와인이 더 탐스러워보이는... ㅜㅜ
와인 먹고 싶네요. 감자전은... 만들어 먹기는 역량 부족이니까 가다 사가는 걸로. 쿨럭.

다락방 2016-10-21 14:37   좋아요 0 | URL
제가 저거 한 병을 다 마시고 자가지고 오늘 아침에 머리가 팽팽 돌았어요. ㅠㅠ 모닝케어 한 병 마셨답니다. 흑
집에 와인 또 있어요. 오늘도 가서 마실거에요. 내일도 마실거에요. 계속 마실거에요. 꺅 >.<

망고 2016-10-2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믹서에 갈때 밀가루말고 감자가루 넣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저도 해본적은 없지만요 다락방님 글보고 생각만 해봤어요~ 요리는 쉽게 빨리 해야한다는 입장인데;; 강판에 가는건 너무 힘들거 같아요

다락방 2016-10-21 15:32   좋아요 0 | URL
강판에 가는 건 진짜 너무 힘들어요. 얼굴이 시뻘개지고 몸에서 열이 나요 ㅠㅠ
일단 계란 노른자 팁을 얻었으니, 그걸로 점성이 생기지 않을까요? 제가 믹서에 갈아서 계란 노른자 넣어서 해보고,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감자가루 사다 넣어볼게요. ㅎㅎㅎㅎㅎ

2016-10-23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5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10-2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전을 보니 배가 고파집니다.
다락방님 맛있는 점심드세요.

다락방 2016-10-25 17:25   좋아요 0 | URL
점심은 맛없게 먹었지만 ㅠㅠ 저녁을 맛있게 먹을게요. 고맙습니다!
 



상상해보라. 3만의 도시 인구 중 이제 여자 둘과 태아 하나만 남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지금이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이다. (p.37)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많은 여자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너무 우울했다. 너무 우울했고 모든 상황이 절망적으로 느껴졌으며, 그래서 나는 마르셀 서루의 저 문장을 계속 떠올렸다. 여성을 향한 이토록 잔인한 범죄가 일어난다는 것은, 남자들이 사라져야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지구상에서 다 사라졌으면 좋겠어, 라고 친구와 대화했던 것도 생각난다.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싹 다 없어진 다음 새로 시작해야 상황이 나아질거라고,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르셀 서루도 말하지 않았나. 여자 둘과 태아 하나만 남았는데, 지금이 훨씬 좋다고.



나는 아주 많은 남자들이 성희롱과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어릴적에 피해자였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로 수시로 성희롱과 성추행에 노출되니까. 나만 당한 게 아니었다. 내 주변의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우리끼리만 있을 때' 얘기했었다. 바깥으로 얘기했다가는 오히려 잘못을 '내'가 한 게 될테니까. 니가 치마를 입어서, 니가 술을 마셔서, 니가 밤늦게 다녀서, 니가 택시를 타서...


나 역시 어린이었을 때 당했던 일에 대해서 아주 오래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국민학생이었는데도 내 자신이 음탕했기 때문이라고, 아주 오래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가해자보다 나를 더 원망했었다. 왜 그때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어린 나에게 계속 추궁했다. 이게 너무 아프다. 너무 오랫동안 내 잘못인 줄 알고 살았던 게, 이게 너무 아파서 나는 나한테 미안하다.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건, 최명희의 『혼불』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딱히 관심도 없었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혼불을 읽으면서 자꾸만 화가 나는 거다. 아니, 여자들이 왜 이래야하지? 아, 이 답답함 어떻게 풀어야하지? 혼불을 읽어가면서 그 생각이 점점 강해졌고, 그래서 '아 페미니즘을 좀 공부해봐야겠다, 그러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했던 거다. 그래서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그러고나니 상처받는 일 투성이었다. 정희진은,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그리고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자각이 없을 때부터 내가 페미니스트 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내가 여자로서 살아가는 일이 매우 피곤하다고, 불합리하며 부조리하다고 생각했고, 그때마다 상대가 누가 됐든 따지고 들었던 거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내 주변이 나와 때를 같이해, 동기는 달랐지만, 다들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메갈은 미러링이라는 걸 함으로써 많은 남성들에게 '너희들이 한 짓을 봐' 라며 거울을 비춰주었다. 어떤 남성들은 아, 이것이 내 모습이구나, 했지만 어떤 남성들은 거울을 깨부수려고 했다. 메갈은 미러링의 수위를 높여갔고,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만한 발언들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메갈의 미러링도 약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많이 여자들이 강간당하고, 맞고, 죽어나가는데.... 그걸 그만두라고 세게 '말'한 게, 왜??




며칠동안 트윗의 타임라인이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자기가 속한 집단 내에서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해쉬태그에 숱한 사연들이 올라왔고, 그렇게 미성년자 성폭행 가해자인 '이익'이 수면에 드러났고, 이를 부추긴 이자혜 역시 드러났다. 또 내가 알지 못하는 닉네임이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속속 폭로되었으며,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박진성 시인도 개새끼였음이 드러났다. 이모두가, 성폭행 가해자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기도 했고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고 있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있었다. 




피해자들이 아픈 과거를 힘겹게 고백했을 때, 이제 더이상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러게 왜 그랬어' 라며 피해자를 추궁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나쁘다는 사실을 '정확히', '제대로' 알고 있다. 페미니즘을 접한 후의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며, 2차가해를 걱정한다. 과거에 이자혜를 좋아했던 사람들도 이자혜가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는 순간, 이자혜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며 범죄를 지적하고 피해자를 도우려한다. 또한 신속하고 빠르게 가해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커리어도 쌓고 계속 성범죄를 저지르며 살았던 가해자들은, 이제 더이상 그짓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많은 여자들과 또 남자들이, 연대하고 있다. 귀 기울여주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해주고 있다. 도울 수 있는 건 돕겠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그것을 '내 잘못이다' 라고 자책하지 않고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페미니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알라디너 o 님이 나와 같이 읽고 싶다며 『제르미날』을 주문하셨다는 게 아닌가. 게다가 또다른 알라디너 o 님은 나와 통화하면서 제르미날을 엄청 추천하셨다. 아아, 시적 정의 다 읽고 싶은데, 나 제르미날 주문해야 해??? 라고 갈등하다가, 오늘 아침 트윗을 보고 일단 다 멈추기로 했다. 시적정의도, 나나도, 제르미날도, 일단 스톱.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어릴 적 나를 음탕하다 여기게 했던 일도 '아는 사람'으로부터 일어났다. 이익과 이자혜 사건의 피해자도 '아는 사람'에게 당했다. 박진성 시인도 '아는 사람'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아주 많은 성범죄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일어난다.



미국 내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잡지인 미즈는 이 책이 발간되기 전인 1983년부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즉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이라는 화두를 사회에 던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밤에 갑자기 낯선 사람이 튀어나와 피해자를 납치하듯 끌고 가는 것만이 '진짜' 강간인 양 이야기되던 시대에, 사실은 피해자의 대다수가 아는 사람에 의해 강간당하고 있음을 폭로함으로써 성폭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나아가 미즈는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 기획된 이 책을 발간함을 통해, 강간이라 하면 여전히 낯선 이를 가해자로 떠올리는 사람들의 통념이 잘못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p.8)




너무 아프고 절망적이지만, 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 친구는 트윗에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공부하고 연대하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할머니로 죽겠다는 친구를 응원하며, 나 역시 그 친구 옆에 페미니스트 할머니로 있겠다. 우리 건강하게, 공부하고 연대하자. 건강하게, 페미니스트로 늙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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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6-10-21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불 읽을 때의 그 답답함이, 이 아침에 되살아났어요... 페미니즘은 결국 휴머니즘인데 휴머니즘까지는 가지도 못하는 이 상황들이 아프네요. 페미니스트로 늙어가자에 동감하며.

아무개 2016-10-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페미니즘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서구의 구페미니즘, 신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그 구페미니즘 안에서 또 그 신페미니즘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주장이 있는데
그리고 지금 현실에서 페미니즘은 또 그렇게 진화와 퇴보를 격고 있는데
도대체 그 사람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이란게 뭘까요?

멋으로 시류에 맞추서 페미니즘에 얻혀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인간` 대우 해달라는
너-남성-와 같은 사람이다. 때리지마라, 강간하지마라. 죽이지마라.

이런 요구를 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미러링 일뿐인데,
자신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에게 해왔던 일을 비춰준것 뿐인데
저렇게들 광광 울어대니
정희진씨 말대로 미러링은 실패했습니다.
너무 고퀄이었어요..........


오래오래 함께 공부하고 연대하고 싸웁시다.
페미니스트 할머니로 늙어 갑시다.






2016-10-2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16-10-21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이 늙어갑시다, 매드맥스 씨앗 지키는 할머니들처럼!

레와 2016-10-21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모든 나쁜일들이 내 잘못이 아님을, 저도 아주 나중에 친구들을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어요.
새삼 좋은 책 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수많은 책을 읽으며 잘 못된 생각을 공고히 하는 것만큼 위험한 사유도 없지요.


이제 겨우(!) `말`만 했을뿐인 미러링에 대한 반응들이 놀랍습니다.
아직 돌맹이를 줍기도 던지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필요하다면 기꺼이 돌맹이를 들고 던지는 사람이 될거에요.
물론 이런 순간들이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요.


우리 같이 갑시다.
건강한 페이미니스트로 기쁘게 늙어갈 겁니다!






기억의집 2016-10-21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트윗을 안 해서, 유일하게 북플하나 합니다, 지금 이 페이퍼 읽고 검색해보니 아직 기사는 안 떴네요. 다음 검색에 트윗 검색도 되서 잠깐 읽어보니 트윗은 난리난 것 같은데. 이자혜나 박진성이나 다들 자기작품에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예전에 이문열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사실 줄거리나 캐릭터들 기억 안 나지만, 한 여자애가 무슨 공연을 보는데 아저씨무릎에 앉아 보는데 그 아저씨새끼가 그 여자아이의ㅜ음부를 공연 내내 만진다라는 대목이 나와요. 그 때 그 장면이 너무 충격이어서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덮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여자아이가 얼마나 충격속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 미드 로앤오더 보면서 성폭력에 대해 자각을 많이 한 경우고 아들애한테 로앤 오더는 꼭 보라고 권해준 적 있어요. 이 미드 보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상처를 가지고 사는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서 보게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나라가 가부장제고 엄마들이 가부장제에 영향를 많이 받아 남자애들의 성추행 성희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정말 많아요. 아들이라고 으쌰으싸해준 결과겠죠. 널린 게 고춘데.... 참, 고추만 으쌰으쌰하고 세상 불공평해요.

웽스북스 2016-10-21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자혜 사건이 터지고 많은 사람들이 메갈을 비난하는데 도대체 그렇게 연결할 수 있는 고리는 어디서 나올까요. 저는 메갈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메갈과 이자혜가 관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메갈이 비난받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더군다나 그 사건의 피해자 L님은 `페미니즘 덕분에`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말이죠. 멍청한 사람들이 참 많고, 이 문단내 성폭력, 해시태그 보고 있자니 너무 끔찍한 거 같아요.

에이바 2016-10-21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상을 영위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뭔가 이상한데? 잘못된 것 아니야? 그렇게 느닷없이 페미니즘이 찾아왔고,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니까요. 페미니즘은 삶이고 우리 생활이잖아요. 사람들 성향과 가치관이 다르듯이 각자의 페미니즘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획일적인게 아니잖아요.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답게 살고 싶다, 존중받고 싶다! 는 외침이 있다는 것일테고요. 그래서 니가 하는 페미니즘은 나쁜거야, 잘못된거야 라는 말이 지극히 오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 봐요. 지난 성우 해고 사건이 된 티셔츠 문구도 외국에서는 so what 이랬잖아요? 그러다 밝혀진 게임의 미성년, 정확히는 어린이 캐릭터를 기괴할 정도로 성적 대상화하여 소비한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 트위터에서 폭로된 사건도 오타쿠 커뮤니티 내 폐쇄성에서 비롯한 권력관계와 성별 성향을 주목하더라고요. 그쪽 문화는 취향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만 보기엔... 피해자의 용기가 정말 감동적이었고 마음이 아팠어요... 왜 내가 느끼는 공포와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잘못됐다고 손가락질만 하는 거죠? 생존의 문제인데요. 아 그리고 메갈리아 해체된지가 언젠데요... 전 메갈리아 4가 있다는 사실도 지난 성우 해고 사건에서 기사보고서야 알았어요.

2016-10-24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ㅇㅎ 2016-10-29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등학교 때 있었던 지하철 성추행을 `내가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15년을 살아왔습니다. 대학에 올라와서 남들이 웃자고 하는 섹드립에 웃지 못하는걸 `내가 예민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고 자책했던 저의 과거가 안타깝습니다. 저 같은 피해자가 앞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저 역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대하겠습니다.

칼리 2016-10-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마음에 와닿네요. 여성으로써 열심히 투쟁하고 살아남아가야겠죠... 힘냅시다!

ㅎㅅㅎ 2016-10-30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어요 정말 공감가는 리뷰에요! :) 저도 페미니스트 할머니로 늙어갈래요ㅋㅋ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
정청래 지음 / 푸른숲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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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청래를 응원하는 마음에 샀고 끝까지 다 읽었지만, 재미없었다. 


2. 딱히 내게 유용한 것도 없었고 ..


3. 시민운동가들이 국회의원이 되기도 한다는 부분을 읽고서는 친구1 생각이 나서, 네가 국회의원이 되어주련, 했으나 거절당했다.

 일전에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 나오면서 같이 본 친구2에게 '너는 왜 친구인 나에게 선물할 호텔도 없고 유명화가의 그림도 없냐, 너 왜 부자가 아니야? 절교해!' 한 적이 있었는데, 국회의원을 하지 않겠다는 친구에게 절교하자고 하지는 않았다.

난 부자 친구도 없고 국회의원 친구도 없어...


4. 2017년 대선 개표방송은 한 방향을 보며 같은 걸 염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자리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설레였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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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9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놓고 아직 못읽었어요....2017년 저도 설렘이 큽니다...

다락방 2016-10-20 08:04   좋아요 0 | URL
전 너무 재미없었어요...
2017년, 투표합시다!!!! (불끈)

새아의서재 2016-10-20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팟케스트에 정청래의원이 나와서 요즘 책 팔려고 좌쪽 사이트들 들어가서... 대뜸 저 정청래인데..책좀 사주세요, 해서 사람들이 인증샷 올리라고 난리였다고 하더라구요. 재미는 없군요. ㅜ ㅜ 어쨌든 저도 응원하는 일인입니다. 오늘, 이대 총장 사퇴하는 동영상보고 조금 울었구요.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울더라구요..

암튼 내년 대선이 기대되긴하지만 그 전에 정권퇴진시키는 민중의 힘이 응집되면 좋겠다해요. 하지만, 정말..우리모두 다 먹고살기가 힘든 세상이라서... 음...^^;

다락방 2016-10-20 08:06   좋아요 0 | URL
이대 총장 사퇴한것처럼 대통령도 ..

저 역시 대선 전에 정권이 바뀌길 바라지만 .. 가능할까요? 지금 이렇게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 거, 알고 있을까요?

정청래 의원은 필리버스터 때부터 인상 깊었거든요. 아주 가끔 팟캐스트 듣는데 그때마다 정청래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샀건만 너무 재미없어서 ㅎㅎㅎㅎㅎㅎㅎㅎ 재미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막 뽐뿌질 하는 글도 써서 더 많이 팔리게 조금이나마 돕고 싶은데.... 저부터 재미없어서... 하아-

새아의서재 2016-10-20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다니까 어떻게라도 읽어야할 이유를 좀 말해주는 글을.. 주변에 재미있는사람 많은데.. 왜 정청래의원은 재미없게 썼는지..쩝.. 안타깝네요.

다락방 2016-10-20 08:20   좋아요 0 | URL
정청래 의원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 책 읽으면 그게 느껴지거든요. 요령도 있고요. 그런데 이 책은.. 글쎄요. ㅎㅎㅎㅎ 정청래의 다른 책이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yureka01 2016-10-2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인이 쓴 책 치고 재미가 있는 소설같은 책은 어려울 겁니다.정치가 워낙 재미 없거든요.ㅎㅎㅎ 아닌게 아니라 다락방님의 전문가적 독서의 경향으로 봤을 때 그간 얼마나 많은 재미를 준 책이 있었겟어요..그러니 비교 어렵겟지요.^^.그런데 정치를 외면 했을 때 받는 대가는 참 크더군요.지금 한 대학이 훅 갈 지경 이더라구요.

다락방 2016-10-20 08:18   좋아요 1 | URL
정치인이 쓴 책도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치도 관심을 가지면 아주 재미있을 수 있고요. 김어준이나 안철수, 정봉주의 책은 제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어도 흥미롭게 읽었거든요. 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이런 거구나, 하면서요. 근데 이 책은...........읽기전과 읽고난 후에 별로 달라지는 게 없는 책이더라고요. 정청래 의원의 다른 책을 읽는다면 또 어떤 느낌을 받을지는 모르겠어요.

비연 2016-10-2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에 찬성이네요^^

다락방 2016-10-20 09:03   좋아요 0 | URL
아 진짜 두근두근하지요?

웽스북스 2016-10-20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012년에 그랬다가... (이하생략)

다락방 2016-10-21 07:52   좋아요 0 | URL
ㅠㅠ
 















나는 소설을 읽는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 소설을 소설 자체로 좋아하지만, 그것이 결국엔 긍정적 영향을 갖고 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설은 정말로 긍정적 역할을 한다. 김영란은 '쓸모없는' 독서라고 했지만, 그것이 김영란이 일을 하는데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너무 좋다.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읽고, 김영란은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저는 그동안 제가 소설을 많이 읽어온 것이 전혀 쓸모없는 일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에서 왜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느냐,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거든요. 스스로도 소설이 나에게 주는 효용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소설 속으로 도망가는 것은 아닐까 자문하기도 하고 또 어느정도 자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스바움은 내가 읽어온 책들이 내게 '공감'이라는 훈련을 시켜주어서 내가 현실에서 사건을 보고 판결을 하는 자세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직업적으로도 꽤나 쓸모가 있었던 셈입니다. 제게 큰 위로가 되어준 것이지요. (p.80)




나 집에 『시적 정의』 있는데, 어서 읽고 싶어서 좀이 쑤신다. 이거 읽으면 어쩐지 나는 내 자신을 지금보다 더 긍정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다른 많은 책들처럼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이 막 나왔을 즈음에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 남자 사람을 보았더랬다. 그때 뭔가 참 좋아보였다. 뭐랄까, 오오, 시적 정의를 읽는 남자사람이라니...하면서 좀 달리 보였달까. 그렇지만 지금은 그 남자사람의 얼굴도 옷도 나이대도...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던 남자사람을 보았었다는 사실과, 그 때의 내 느낌만이 기억날 뿐...



오만년전에 사귀던 남자랑 거리를 걷다가 까페 앞을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까페 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나는 나도모르게 멈춰서서는, 저 책 읽는 남자 좋다, 했었는데, 아하하하하하하하, 내 옆에 내 남친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 잊고 있었던 거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란 녀자... 결국 남친으로부터, '너는 어떻게 니 남친이 옆에 있는데 다른 남자 보고 좋다고 멈추냐..' 라는 말을 들었더랬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란 녀자는 어쩔 수가 없어. 어 미안..널 잊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소개된 책이 많지 않아 아쉬운데,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 판결들의 배경과 의미, 일부분의 소개라니.. 아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다.



원제는 '법과 삶의 기묘한 연금술'(The Strange Alchemy of Life and Law)인데, 그 제목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책의 편집자가 미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법의 기술적인 문제를 다룬 글에 관심을 보일 만한 출판사를 찾기가 어렵다고 하자, 그는 전세계 모든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공통적인 요소가 무엇일지 탐색하다가 문득 '기묘한 연금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원고가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다고 하지요. (p.131)


이 책은 그가 한 판결들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고 판결문의 일부분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한줄 한줄 모두 밑줄을 긋고 싶었을 정도로 재미있고 따뜻하면서도 지혜가 번득이는 책인데, 제가 소개하자니 너무 딱딱해지는군요. 직접 읽어보는 것만이 이 책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에 감동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요약이 의미가 없는 책이지요. 그야말로 그가 살아온 삶과 그의 판결이 연금술에 의해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느 연금술사도 만들어내지 못한 황금이 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p.133)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 책들이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소설은 알게모르게 스미듯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데, 얼마전에 『목로주점』을 읽으면서도, 그저 목로주점의 제르베즈 이야기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 가난이란 것에 대해서, 가난 때문에 사랑이 끝장나는 상황에 대해서도 자꾸 생각해보게 되지 않나. 단순히 그렇게 멈추는 게 아니라, 삶은 왜 이런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고 자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은 나는 그것이 철학적인 질문에 가 닿는다고 믿는다. 문제를 인식하면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서 질문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그냥 유부녀가 바람피는 이야기..같은 게 되는 거고, 레 미제라블은 빵 훔쳤다가 감옥간 이야기...로 그치는 거다.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 있는데, 

이 영화에서 섹스를 나누던 친구들이 각자의 데이트상대를 찾기로 한다.

그때 남자주인공은 공원에서 책을 읽던 여자를 가리키며 '나는 저 여자로 할래' 라고 하는데, 옆에서 여자주인공이 '저 책 소설책일걸' 하고는 무시하는 거다. 자막은 그렇게 되어있어서 원어로 뭐라고 한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때 진짜 너무 싫었다. 바보들...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빵꾸똥꾸들...지들이 못읽고서 어디서 소설 욕이야...

이 영화를 볼 당시에 나는 아마도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읽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야, 위고의 책을 읽어본 후에 소설 무시해라...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싶었더랬다.






이 책,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가 전체적으로 재미있지는 않다. 어느 부분에서는 강하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힘껏 응원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토니오 크뢰거 얘기 하면서 사람을 두 유형으로 분리할 때는 좀 멘붕이 와서, 알듯 말듯 했다. 그렇지만 그 책이 김영란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궁금해졌다.



















제 경우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판사라는 직업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계속해왔습니다. 제가 처음 판사가 된 게 1981년 3월이었으니까, 그때는 판사라는 직업이 지금보다 훨씬 드물고 사람들이 가까이 접하기 어려운 직업이었지요. 그러니 주변에 롤모델로 삼을 만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조차도 낯선 판사라는 직업을 해나가면서 저는 늘 '이건 한스의 세계이고, 나는 여기 맞지 않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토니오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한스의 세계를 계속 관찰하고 있어야 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판사를 그만두지도 않은 거죠.

병 주고 약도 주는 것이었을까요? 책이 주는 영향력이 그렇게 강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그런 책을 찾은 사람도 있고 아직 못 찾은 사람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토니오 크뢰거』가 그런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은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요. (p.52-53)



나도 이 직업을 꽤 오래 해오고있긴 하지만, 이 직업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그런면에서 나 역시 이 책, 『토니오 크뢰거』를 읽는다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며 고민하게 될까. 너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을 인용한다. 사실은 이 부분을 먼저 다른 서재에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거였다. 



저는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했지만, 초기에는 함께 일하려는 '남자' 판사도 드물었고 '남자' 직원도 드물었습니다. 판사이지만 그냥 '판사'가 아니라 '여자' 판사였기 때문이지요. '여자' 판사는 종종 출산휴가를 한달도 채우지 못한채 재판장의 전화를 받고 출근해야 했고, 사무실에서 반말 전화를 받기도 했고(그때마다 항의를 했지만 사과를 받은 일은 거의 없습니다), 때로는 법정에서 재판 진행권을 침해당하기도 했습니다. 판사인데도 그랬으니 다른 직종에서는 얼마나 더 심한 일들이 벌어졌을지 뻔하죠.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는 직종의 사회적 평가는 급속도로 낮아질 것이므로 판사라는 직종도 머지않아 인기 없고 존경 받지 못하는 직종이 될 것이 틀림없다는 말을 여자 판사들 면전에서 하는 남자 판사들도 많았습니다. 자신들에게는 그것이 경험적 진리이니 반박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성으로서의 삶 자체가 소수자로서의 삶이었던 시대(지금은 다른가요?)를 살아왔던 제게 소주자의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은 따로 계기가 필요하거나 배워야 할 필요가 없는, 마치 평상복처럼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p.128-129)




어제 비염 때문에 끙끙대느라 잠을 한숨도 못잤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 병원에 들렀다 늦게 출근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버리고 말았다. 나란 사람은... ㅠㅠ

병원도 가기 싫고, 일 많은데 일도 하기 싫고, 코나 훌쩍이는 아침.....

창밖을 보며 멍이나 때렸으면 좋겠다.....



멍-







책을 한권 읽습니다. 재미있으면 그 저자가 쓴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갑니다. 그러는 동안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분야에서-예를 들면 프랑스 소설가의-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다음으로 읽어나가면, 종착역은 아니어도 언제고 도착 지점은 다가옵니다. (`오오에 켄자부로오, 「젊은이가 알고 있다면! 나이 든 사람이 행동할 수 있다면!」138면, 재인용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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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10-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의 `쓸모 없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저로서는, 제목부터가 반가운 책이었어요.
효용으로만 가성비로만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책읽기처럼, 혹은 소설 읽기처럼 쓸모없는 일은 없을테죠.

다락방님이 제일 좋았다고 하셨던 부분에서는 머리속으로 장면들이 막 그려지더라구요.
막말하는 남자들, 재판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여자 판사. 그런 모습들이 너무 잘,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혹시 내가 소설을 많이 읽었나, 이런 생각도 해보았더랬죠.ㅎㅎ

어서 이 환절기가 지나가야 다락방님 비염이 나아질텐데.... ㅠㅠ

다락방 2016-10-18 10:43   좋아요 1 | URL
저는 직급이 과장이고 차장일때도 거래처로부터 반말 전화 많이 받았어요. 옆에 여직원이 제 목소리가 어리게 느껴져서 그러는 것 같다는데, 설사 제가 어리다고 해도 반말을 하면 안되죠.
게다가 같이 근무하는 상사중에는 나이 차이 얼마 안나긴 하지만 술 취할때마다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는 개같은 사람이 있어요. 아 너무 싫어. 제가 오빠라고 하고 자기는 나를 동생으로 대하면서 반말하고 싶어해요. 어디서 개수작인지.. 싫다고 계속 말하고 있어서 아직까지 저한테 그러고 있진 못해요. 직장생활은 원래 힘든거라지만, 여자로서 직장생활하는 건 더 힘든 것 같아요.


소설 많이 읽고 우리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생각해요. 이 책은 단발머리님 덕에 읽었어요. 우리 서로에게 계속 자극을 주는 독서친구가 돼요! 사랑해요 단발머리님! 우.윳.빛.깔.단.발.머.리!


좀전에 병원 다녀왔어요. 약 받아왔어요. 약의 힘을 빌어야지, 너무 힘들어요 ㅠㅠ

다다 2016-10-1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에게 ˝내 인생의 책˝은 어떤 책이 있을까요?
비염 때문에 고생이시군요. ㅜㅠ
얼른 나으시길-

다락방 2016-10-18 14:21   좋아요 0 | URL
모르겠네요.

cyrus 2016-10-18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킬링타임용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설의 긍정적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소설 속에도 우리 독자들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한데, 그걸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우리가 살면서 몰랐던 또 다른 삶의 이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

다락방 2016-10-18 14:22   좋아요 0 | URL
전 그래서 소설을 즐겨 읽고 잘 읽는 사람들이 좋더라고요.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꼭 좋은 사람인 건 아니지만, 같은 소설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건 너무나 기쁘잖아요. 그걸 함께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얼룩말 2016-10-18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ㅋ..미친놈들 많아요. ^^ 대체 왜살까요. 그런 분들은

다락방 2016-10-18 14:23   좋아요 0 | URL
진짜 피곤하게 하는 놈들 많죠. 그리고 그런 놈들은 말귀도 못알아먹어요. 싫다는데도 왜 자꾸 그러는지..싫다는 걸 싫다는 걸로 제발 좀 알아먹었으면 좋겠어요. --^

책읽는나무 2016-10-1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ㄷ님의 리뷰를 통해 이책 읽었었는데 저도 그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앗!!
ㄷ님이 두 분이셨군요?
ㅋㅋㅋ

다락방 2016-10-18 14:2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ㄷ 님 덕분에 읽었는데 D 님이라고 해도 되겠죠? 후훗.
물론, 저 역시도 ㄷ 이며, D 입니다만! ㅎㅎㅎㅎㅎ

저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어요, 책나무님.

아무개 2016-10-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못`읽는 아무개..ㅡ‥ㅡ
상상력과 공감력의 문제인듯해요.

다락방 2016-10-19 11:09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더 읽어보면 어때요, 아무개님? 그러면 뭔가 트레이닝 되지 않을까요?? (라면 소설읽기를 강요한다 ㅎㅎ)

감은빛 2016-10-1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을 많이 읽는 사람이 감성이 풍부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듯 해요.
저는 최근 몇 년간 거의 문학을 못 읽고 살고 있지만,
예전에는 다른 책은 안 읽고 문학만 읽었던 적이 있었고,
그때의 경험이 이후 제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틈틈히 소설을 더 읽어야겠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설을 읽어야겠죠? ㅎㅎ

다락방 2016-10-20 08:01   좋아요 1 | URL
문학을 많이 읽으면 공감능력을 더 발달시킬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물론 단순히 읽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이 되어보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얘기를 들어보기도 하는 훈련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 이야기를 자신이 소화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을 열심히 읽읍시다!
네,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요. ㅋㅋㅋㅋㅋ

비로그인 2016-10-20 0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만 읽는 저를 종종 반성합니다만, 소설을 읽는 저는 좋아합니다... 그래서 다락방님 글에 좋아요 꽝! 할 수밖에 없네요~

다락방 2016-10-20 08:02   좋아요 1 | URL
저는 요즘 소설외의 책도 읽기는 하지만 세상에 소설만한 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 모두 소설이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