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아버지가 당뇨 판정을 받으시고 나서 급격히 우울해지셨다. 당신은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하며 자주 등산으로 운동도 해주는 데 왜 대체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거냐며. 식구들 모두 같이 우울해했고, 또한 우울해하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달래주려 애썼다. 그러나 병원에 가 약을 받아오며 음식 조절까지 하시게 된 아버지는 기분이 나아지질 않으셨다. 여전히 예민하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리셨다. 이제 맛있는 걸 더이상 먹지 못하고 계속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하니, 이것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말씀도 곧잘 하신다. 마치 인생이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도 더러 드시는 모양이다. 장염이라든가 감기등 금방 낫는 질병에도 사람은 쉬이 우울해지는데, 계속해서 치료를 요하고 관심을 요하는 병에 걸린다면 얼마나 더 우울할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뭐, 그에 대한 옆에서 보는 가족 혹은 '나'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느날, 식도암 판정을 받는다. 게다가 이미 전이가 많이 된 상태라 항암치료를 하는데도 몸이 나아지질 않는다. 그는 이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토록 몸이 아프고 괴롭고 또 당신은 곧 죽을겁니다, 라는 선언을 마주한 뒤에 히친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절망하고 좌절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어떠한 위로에도 마음이 나아지질 않는 것. 줄리언 반스가 아내의 죽음 앞에 다른 사람들의 모든 반응들을 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했듯, 히친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히친스는, 자신이 가졌던 신념이나 사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꼿꼿하다. 나는 히친스를 이 책,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처음 만나봤고, 그의 이름은 지나가다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그는 종교 혹은 신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거다. 



자신의 병 앞에, 줄어드는 삶 앞에 그가 어떤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여전히 위트와 지성이 넘치는 글을 써낸다. 고통이 극심한날에는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그이지만, 이토록이나 날카롭고 유머 있는 글을 써내는 그라면, 그간 그가 어떤 이야기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를 이렇게 늦게 알게 된 것이 안타깝다.



그가 기독교 혹은 신에 대해 어디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이나 글이 종교인들에게 커다란 빡침을 주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는 식도암을 판정받고 살아가던 어는 날, '신자들의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된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말기 목구멍 암[throat cancer, 원문의 오류를 그대로 적음]에 걸린 것을 두고, 그가 목소리를 이용해서 신을 모독한 것에 대한 신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또 누구일까? 무신론자들은 사실을 즐겨 무시한다. 그들은 마치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행동한다. 정말로 그런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몸의 여러 부위 중에서도 특히 신성모독을 할 때 사용했던 부위에 암이 생긴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그래, 계속 그렇게 믿어라, 무신론자들이여. 히친스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하찮은 존재로 시들어가다가 끔찍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 뒤에 진짜 재미가 찾아온다. 그가 지옥불로 보내져 영원히 불에 타며 고통받을 테니 말이다. (p.32-33)



일단, 히친스와 별개로 내가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건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음의 선고를 듣고 어떻게 악담을 퍼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욕할지언정 그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싫어했던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그것을 '잘됐다'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의 마음엔 이미 '악'이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히친스는 이런 게시물의 글을 읽고 이렇게 써낸다. 



경전과 종교의 가르침에는 수백 년 동안 이렇게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심보를 주류 신앙으로 만들어버린 구절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와 관계된 일이 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런 주장의 뚜렷한 문제점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첫째, 고작 영장류인 주제에 신의 마음을 안다고 어찌 그리 확신할 수 있는가? 둘재, 위의 글을 쓴 익명의 필자는 아무 잘못도 없는 내 아이들이 자신의 글을 읽기를 바랄까? 아이들 역시 같은 신 때문에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말이다. 셋째, 이 글의 대상에게 벼락을 내리거나, 하여튼 그것과 비슷하게 경외감을 일으키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어떤가? 복수심에 찬 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고작해야 내 나이와 예전의 '생활방식'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암을 내려주는 것이라면 그의 무기고는 슬플 정도로 비어 있음이 분명하다. 넷째, 애당초 왜 암인가? 나이를 많이 먹으면 거의 모든 남자가 전립선암에 걸린다. 품위 있는 병은 아니어도 성자든 되인이든, 신자든 비신자든 상당히 공평하게 걸리는 병이기도 한다. 신이 각자에게 걸맞은 암을 내린다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백혈병에 걸리는 많은 아기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독실한 신자들도 젊은 나이에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반면 버트런드 러셀과 볼테르는 마지막까지 팔팔했다. 많은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신벌은 끔찍할 정도로 임의적인 듯하다. 위에 인용한 글의 기독교인 필자에게 서둘러 장담하건대, 아직 암에 걸리지 않은 나의 목구멍은 내가 신성모독에 사용한 유일한 기관이 아니다. 그리고 설사 목숨보다 목소리를 먼저 잃는다 해도, 나는 적어도 어둠과 맞닥뜨려 '안녕'하고 인사를 건넬 때까지는 종교적 망상에 맞서 논박하는 글을 계속 쓸 것이다. (p.33-34)



물론 모든 종교인들이 그의 고통을 바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그의 쾌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한 지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웃었던 이런 부분도 있다.



세속주의자 또는 무신론자인 수많은 친구들이 내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이걸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네야." "자네 같은 사람 앞에서 암은 상대도 안 돼." "자네는 틀림없이 극복할 수 있어."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물론 좋은 날에도 이런 간곡한 말들은 살짝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 모든 동지들을 실망시키는 꼴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또다른 세속적인 문제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병을 이겨낸 뒤에 신앙인들 쪽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자기네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어쩌지? 그것도 왠지 짜증스러울 것이다. (p.39-40)




나는 히친스를 좋아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서 러셀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러셀이 제일 멋진 줄 알았더니 이렇게 히친스 아저씨가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네.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믿는 건 아니다. 대체적으로 나는 그게 뭐든, 믿는 사람에게는 보인다, 라고 믿는 쪽이다. 그러나 러셀과 히친스처럼 무신로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내가 더 많이 설득됨을 느낀다. 그들에게서 더 많은 타당함을 본다. '신이 없는' 혹은 있다면 그건 내가 생각하는 신적인 존재와는 그다지 없는 쪽이 더 신빙성 있게 느껴진달까. 



앰브로즈 비어스(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옮긴이)가 《악마의 사전Devil's Dictionary》에서 내놓은 '기도'의 정의와 정신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지극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도:스스로 무가치하다고 고백하는 탄원자가 자신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켜달라고 탄원하는 것. (p.43-44)


여기에 대해 히친스는 성경을 인용함으로써 타당성을 더한다.



첫째, 기독교의 신은 전지전능하다. 둘째, 신도들은 그 신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필사적으로 필요로 한다. 기초적인 구절을 하나 인용하자면,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되어 있다. <신명기>32장 4절은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라"라고 선언한다. <이사야> 64장 8절은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하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신도들에게 절대적인 의존을 고집스레 요구해놓고, 그다음에는 진한 찬사와 감사를 바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기도를 이용해서 세상이 바로잡히기를 기원하거나 신에게 은총을 내려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은 사실상 심각한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는 것과 같다. 아니, 적어도 신을 한심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일개 인간이 신에게 충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애석하게도 종교에 부패라는 혐의를 추가로 덧붙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기도가 신자들에게 만족을 안겨주려고 의도딘 것이 아님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기도의 대가로 헌금을 받을 때마다 사실은 믿음에 대한 심각한 부정否定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그들의 믿음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달라는 신자들의 요구가 아니라 신자들의 수동적인 수용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여러 분파들이 격렬한 싸움을 벌인 끝에 교회는 결국 '면죄부 판매'같은 악명 높은 행위들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런 지독한 신성모독이 그토록 화려하게 이윤을 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많은 훌륭한 바실리카와 예배당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p.46-47)



히친스는 저명한 인사답게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암에 대한 치료방법, 그에 해당하는 격려와 응원을 받게 된다. 알려지지 않은 약초와 치료법등이 그에게 마구 쏟아져들어오는 가운데-그 제안들 가운데는 '냉동인간'이 되는 방법도 있었다-, 그는 쓸만한 방법을 제안한 사람도 있음을 밝힌다.



이런 조언들과는 대조적으로, 샤이엔 족과 아라파호 족 인디언의 피가 섞인 내 친구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 부족의 치료법에 의지했던 사람들이 모두 거의 순식간에 죽어버렸다면서 혹시 누가 미국 인디언 식 치료법을 제안하거든 "반대방향을 향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움직어야"한다고 친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개중에는 정말로 받아들여서 실천할 수 있는 조언도 있는 법이다. (p.51-52)



유머감각이 똑똑한 사람의 전유물인건 아니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유머감각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나는 히친스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날카롭고 지성적이며 유머스럽다. 또한, 느껴야 할 것을 제대로 느낄 수도 있는 사람이다. 생각과 느낌이 골고루 섞였을 때 사람은 최대한의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의학문헌에서 성대 vocal cord 는 단순한 '주름'에 불과하다. 연골 한 조각이 제 쌍둥이를 향해 열심히 손을 내밀어서 마침내 닿는 것에 성공하면 음향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chord'(화음-옮긴이)라는 단어와 틀림없이 깊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음악을 만들어내고, 사랑을 이끌어내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군중을 연민으로 이끌거나 폭도들을 열정으로 이끄는, 공명의 떨림. 과거에 우리가 자랑하던 것처럼,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 우리만은 아니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전히 즐거움과 오락을 위해 목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을 이용하고, 여기에 우리의 또다른 자랑거리인 이성과 유머를 결합시켜 고등한 혼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물은 우리뿐이다. 이 능력을 잃는 것은 곧 많은 능력을 박탈당하는 것이고, 분명히 말하건대 작지 않은 죽음이다. (p.82-83)



시간이 흘렀고, 그는 점점 더 쇠약해졌다. 그리고 병실에 누워, 이제 요구사항을 말로 하는 대신 글로 적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는 아내에게 이런 메모를 전한다.



'니체, 멩켄, 체스터턴의 책. 그리고 아무 종이나...아마 낡은 여행가방에 있을 거야. 서랍도 봐! 협탁 등등. 위층과 아래층.' (p.137)



그는 결국 생을 다했고, 그의 아내는 그의 남편을 그리워하며 이 책을 마친다. 



남편의 완벽한 목소리가 그립다. 밤이든 낮이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남편이 잠에서 깼을 때 기쁜 듯이 가볍게 떨리던 목소리가 그립다. 신문에서 화가 나거나 즐거운 기사들을 내게 읽어주던, 그 나직한 '아침 목소리'. 그가 기사를 읽는 도중에 내가 끼어들면 그는 기쁘거나 짜증스러운(짜증을 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목소리를 냈다. 점심식사를 준비하면서 부엌에 있는 전화기를 통해 라디오방송에 출연할 때 재즈의 악절 같던 그 '전화 목소리'.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이하던, 높은 새소리 같은 목소리. 그리고 늦은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아주 작은 소리로 달래듯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목소리. (p.139-140)



우리는 죽음 앞에 숙연해지지만, 누군가 함께 했던 기억을 안고 사는 그 그리움 앞에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목소리가 아주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한 사람에 대해, 그가 가진 목소리는 그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의 기분과 상태, 감정 같은 것들. 실제로 얼마전에도 나는 '그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으려고 했지만 상대로부터 '왜 심란하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라고 해봤자 다 들키고 말았다. 목소리는 내가 내 상태를 말로 꺼내기 전부터 내 상태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남편의 완벽한 목소리가 그립다, 라는 문장에서 '완벽하'다는 것은 그의 목소리가 정말 '완벽'에 가까운 목소리여서가 아니다. 그가 그였기 때문에 그 목소리가 완벽했던 것.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는 문장 자체로 그의 죽음이 확 느껴진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 그 그리움 앞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함께 살았고, 숱한 목소리들을 서로에게 들려주고 들었으며, 거기에는 수많은 상황들이 놓여있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 민낯을 마주하듯,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잠에 취한 목소리를 그들은 서로에게 들려주고 들었을 것이다. 잠들기 전에 귓가에 속삭이던 나지막한 목소리 같은 것들도,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음의 고저로, '우리만이' 알 수 있는 톤으로 들려주고 들었을 것이다. 이제 한 쪽이 생을 다했고, 그러므로 아직 생을 살고 있는 이쪽은 그 목소리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단, 죽음만이 둘을 갈라놓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세상에 둘 다 발 붙이고 굳건히 살아있다해도,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또 당신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날이 언젠가 올런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내내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에 대한 많은 것을 그리워할 것이고, 특히 목소리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레이든 카터'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의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올봄 로스앤젤레스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 에밀 허시라는 젊은 배우가 잔뜩 흥분해서 다가왔다. 내가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히친스의 자서전 《히치-22Hitch-22》를 읽었고, 그가 쓴 키신저 책에 푹 빠져 있다면서 히친스의 글처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글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p.7)



나는 '에밀 허시'라는 배우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바, 당장 스맛폰으로 그를 검색해보았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니 내가 본 영화가 없더라. 그러나 보지도 않은 채, 나는 이 에밀 허시라는 배우를 아주 높이 사기로 했다. 히친스를 읽고 히친스의 글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배우라니. 이 얼마나 근사한가! 나는 이제야 고작 히친스의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이지만, 히친스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 책 한권을 읽고, 나는 고작 이만큼만 읽고, 히친스를 그리워한다. 그의 신랄한 비판과 유머감각에 즐겁게 책을 읽어가다 결국 숙연해지고 말게 한 히친스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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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신나지?
    from 마지막 키스 2016-02-02 16:01 
    아하하하. 이 책 재미있다. 처음부터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성경을 이미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지만, 어릴적에 교회 다니면서 잠깐 들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또한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도 이미 아는 이야기들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유명한 성경속 이야기들에 대해 주제 사라마구는 '깐다'. 성경과 여호와에 대한 이 신랄한 비판에 어쩐지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랄까.'도킨스'의 책, [만들어
 
 
레와 2014-12-1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어볼게요!

다락방 2014-12-19 08:42   좋아요 0 | URL
네, 러셀만큼 좋더라고요.

2014-12-18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9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12-1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저도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좋아할 수 밖에 없네요!
앞서 글을 쓸 당시 다락방님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책, 좋은 작가를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4-12-19 08:44   좋아요 1 | URL
그치요, 감은빛님? 저 지성과 위트 덕에 저는 히친스 아저씨에게 푹 빠졌습니다.
다른 책들도 찾아서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분명 러셀 만큼이나 근사한 아저씨입니다.
감은빛님도 얼른 읽어보시고 리뷰 적어주세요! 히히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흥미로운 글을 쓰는 작가네요. 덕분에 저도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음 앞에서 위트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니. 그런 면에선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ㅎㅎ
전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히친스의 글에 동의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신앙이 종교가 될 때 그 역시 틀에 박힌 제도가 되어 버리니까요.

다락방 2014-12-19 08:47   좋아요 0 | URL
네, 그간 모르고 살았던 게 속상할 만큼 흥미로운 글을 쓰는 분이시더라고요. 저 분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어릴적에 교회를 아주 성실히 다니는 아이었는데, 제가 신앙으로 다닌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그래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주변 어른들이 다 절실한 신앙인들 이었거든요). 굉장히 열심히 다니고 전도를 하고 했는데, 그때의 기억으로 제가 더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 된 건 아닌가 싶어요. 그 일들이 제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뭐, 이제와 어쩔 수는 없지만요. 전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서요. 좋은 기억이라곤 일절 없어서 그 시절을 쑥 내 인생에서 빼내고 싶은데, 그러나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된 거겠죠.

수이 2014-12-1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습니다. 다락방님 블로그 오면 이것도 읽고싶고 저것도 읽고싶고_ 아주 난처해져요. 제 독서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말이죠;;

다락방 2014-12-23 14:2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얇아서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야나님. 한 번 읽어보세요. 히친스 아저씨 정말 근사해요!
>.<

moonnight 2014-12-1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에서 책에 대한 소개를 읽고 솔깃했었어요. 무신론자로서. ^^ 보관함에 잠들어 있는 책을 이제는 깨워야 할 때가 온 듯 싶네요. 다락방님 덕분입니다. 고마워요. ^^

다락방 2014-12-23 14:29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읽고 또 글 써주세요. 문나잇님 글 읽고 싶어요!!
 

돌겠다..

















이 두 책을 읽었고, 읽으면서는 각각의 권에 대한 페이퍼나 리뷰등의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는데 어휴- 마음이 막 너무 거시기해져서 도무지 쓰지를 못하겠네. 히친스 아저씨한테 반했고, 그걸 꼭 표현해야 겠는데, 지금은 마음이 너무 울렁거려서 못쓰겠다 ㅠㅠ 


나는 내 삶에서 '이성과 함께 알콩달콩 사는 것'을 배제해놓고 있는데- 그것은 자의적 선택이었고, 이제는 상대를 위해서도 그게 낫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훅- '60년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노라니 무슨, 가슴속에 말뚝 박힌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절대 이 두 책을 같은 시기에 읽지 말라는 팁을 꼭 드리고 싶다. 후폭풍이 너무 세다. 


각각의 책에 대한 글은 이 마음이 좀 진정이 되면 쓰는걸로.



아..기운없어..


고기 먹으러 가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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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1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천국엔 히친스가 없어서 안가기로 했어요. 히친스히친스히친스

다락방 2014-12-17 15:40   좋아요 0 | URL
아 히친스 너무 좋아요. 휘모리님 덕에 히친스를 처음으로 읽어봤어요. 러셀한테 반했는데 히친스도 러셀 만큼 좋아요. 멋져.. ㅠㅠ 고인이 됐다니 슬퍼요 ㅠㅠ

다락방 2014-12-1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마음이 너무 힘들어 ㅠㅠ

라파엘 2014-12-17 16:13   좋아요 0 | URL
토닥토닥 ㅠㅠ

다락방 2014-12-17 16:19   좋아요 0 | URL
ㅠㅠㅠ

Mephistopheles 2014-12-17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과 함께 알콩달콩 사는 것`을 배제....정말요,,,????

다락방 2014-12-17 16:20   좋아요 0 | URL
네? ( ˝)

Mephistopheles 2014-12-17 16:36   좋아요 0 | URL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라는 사실은.........으흠..

다락방 2014-12-17 17:15   좋아요 0 | URL
네? ( ˝)

Mephistopheles 2014-12-17 17:18   좋아요 0 | URL
아..네...!

blanca 2014-12-17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빨랑 써줘용.

다락방 2014-12-17 17:30   좋아요 1 | URL
블랑카님, 저 두 책 모두 블랑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전 저 두 권에 별 다섯씩 줍니다. ㅎㅎ
네, 마음을 좀 잠재우고 쓸게요. 지금은 너무 아파요 ㅠㅠ

감은빛 2014-12-1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승전 고기~~ ㅎㅎ
어떤 책일지 다락방님이 어떤 기분이신지 무지 궁금하네요 ^^

다락방 2014-12-18 09:02   좋아요 0 | URL
오늘은 적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실 그 감정일 때 바로 적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쵸?

감은빛님, 안녕?

그렇게혜윰 2014-12-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이 다섯개! 좋소이다!문제는 7세 남아의 취향엔 어떻겠소??

다락방 2014-12-18 09:18   좋아요 0 | URL
제가 아이들의 눈높이를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혜윰님. 그치만, 이 책이 그렇게혜윰 님께는 좋을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제게` 좋은 책이었으니까요. 전 이 책을 조카가 아니라 여동생 읽으라고 주려고요.

에르고숨 2014-12-17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장바구니로- `쓰지 못한` 리뷰에 미리 막 감동;; 다락방 님 고기 많이 드시고 멋진 글발 날려주세요!

다락방 2014-12-18 09:18   좋아요 0 | URL
고기를 어제 먹지 않았으므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늘 멋진 글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화가 나는 건 당연해! 마음과 생각이 크는 책 1
미셸린느 먼디 지음, R. W. 앨리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에 적힌 대로 이 책이 `슬기로운`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바에 좀 못미치는 것 같은데..그래도 어쨌든 조카에게 주기로 한다.
더 슬기로웠으면 좋겠는데..이건 딱히 슬기롭지 않아.
더 슬기로울 수 없나요?
좀 더 지혜로울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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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애인(혹은 남편)이 바람을 핀다면 나는 그와 헤어질 것인가, 하는. 그때 나는 뭐, 나 모르는 데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상관없다, 의 마인드였지만 여기에 구체적 인물을 대입시키면 대답이 달라진다고 말했었다. 그저 막연히 나를 사귀면서도 다른 사람을 또 사귄다면, 뭐 순간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할거라 여겼는데, 여기에 그당시 내가 좋아하던 남자를 대입해버리니 대답이 달라지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랑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여자를 만나길 기대하며,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고 섹스를 하고 다음날 아침 민낯을 마주하는 걸 생각하니, 정말 돌아버리겠는거다. 이미 다른 여자한테 그런 마음을 품은 남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다시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못하겠는 거다. 그래서 그전까지의 개념적인 대답으로는 '그러든 말든 괜찮다' 였다가 구체적 인물을 대입해보고 '아니 나는 그 사람을 떠날 것이다' 로 바뀌었다, 는 대화를 친구랑 했었던 거다.


일전에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고 나서도 그랬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젊음을 포기하는 장면을 보고, 저건 너무나 모성을 강요한 영화잖아, 뻔한 결말이야, 했었더랬다. 왜? 나는 젊음이 좋으니까, 젊음을 포기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젊음을 움켜 쥐고 싶을 테니까. 그러나 그 뻔한 결말에 구체적 인물을 대입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만약 내 젊음을 반환하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 라면, 이를테면 조카나 여동생 남동생 이라면, 그렇다면 나 역시 영화속 할머니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은 거다. 이렇듯 개념적인 것에 구체적 인물을 대입하면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내 사고방식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 '토머스 캐스카트'의 《누구를 구할 것인가?》에서 바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면, 답도 내려주지 않는 이 책이 뭔가 다르게 느껴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저 구체적 대입에 있어서만큼은 무릎을 탁, 쳤다. 나는 '절대'를 말하는 사람 앞에서 '구체적 인물'을 대입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이 달라질 거라고. 이 대입은 공감능력과도 연결되어 질텐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개인의 능력일런지도 모르겠다.



자, 일단 이 책의 소재가 되는 '전차 사건'에 대해 옮겨보겠다.



어제 클리블랜드의 커닝햄 지방검사(샌프란시스코)가 2012년 10월에 체스터 '쳇' 팔리(샌프란시스코)가 전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대배심이 대프니 존스(오클랜드)를 기소했다고 발표했다(미국 사법제도에서 대배심은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소배심은 유무죄 여부를 결정한다-옮긴이).

대프니 존스는 선로 전환기 손잡이를 당겨 폭주 전차의 경로를 지선으로 바꾸는 "뛰어난 순발력과 용기를 발휘한"공로로 12월에 시장에게 상을 받은 바 있다. 전차가 본선本線으로 계속 달렸다면 다섯 명을 치어 사망케 했겠지만, 존스 덕분에 지선에 서 있던 쳇 팔리만이 목숨을 잃었다. 커닝햄 검사는 다섯 명 대신 팔리가 죽는 것이 낫다는 존스의 판단에 대해 대배심이 "존스 양은 신처럼 행동할 권리가 없다"라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p.15-16)



이 책은 이 일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또 그렇게 끝난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이해가 되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또 그 말도 이해되는 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건 퍽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중 내 관심을 끌었던 건 책 속의 '스텔라'의 대답이었다. 



(니체의 '선과 악'에 대해 언급하다가) 저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회가 더 도움을 베풀어야 할 것 같아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나 나이들었거나 허약하거나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그리고 니체의 철학을 나치가 악용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럼에도 니체의 말에는 일말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티 파티(미국의 보수 단체-옮긴이)보다는 <오프라 윈프리 쇼>나 <닥터 필>같은 토크쇼에 가까운 것 같네요. 예, 알아요, 하하, 그래도 끝까지 들어주세요. 남의 밑씻개가 되지 않는 건-특히 우리 같은 여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뺨을 돌려 댔어요(니체의 선과 악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누가 한쪽 뺨을 대리면 다른 뺨도 돌려대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해요' 라고p.96 언급한 바 있다) . 니체의 말이 맞아요. 그건 '좋은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거였죠! 우리에게도, 우리의 딸에게도 건강하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이게 선로에 묶인 사람과는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손잡이를 당겨서 전차가 자신을 치게 하는 건, 안 그러면 다섯 명이 죽더라도 자연적이지 않고 건강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그녀는 지금 이타주의로 혼자 있는게 자신이었어도 다섯명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마브 라는 남자에 대해 반박하는 중이다). 전차가 저 말고 생판 모르는 사람을 치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참, 전차가 우리 아이나 남편이나 엄마나 심지어 이웃을 치게 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건 자연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가족과 친구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에, 낯선 사람 다섯 명을 구하려고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건강하지 않게 느껴져요. (p.99-100)




내게 인상깊었던 부분은, 정확히는 스텔라의 이 대답이라기 보다는, 스텔라의 대답을 분석한 '세라'의 말이라고 해야 옳겠다.



남녀가 서로 다른 윤리적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 결과를 읽은 적이 있어요. 여자는 도덕적 딜레마에 맞닥뜨렸을 때 여기에 어떤 인간관계가 결부되어 있는지를 먼저 따진대요. 이 방법 말고 저 방법을 선택했을 때, 저 방법 말고 이 방법을 선택했을 때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고민한다는 거죠. 그런데 남자는 같은 딜레마를 추상적 사안으로 바라본다고 하네요. 무엇이 정의로운가? 무엇이 공평한가? 누구의 권리가 침해되었는가? 이런 식으로요.


마브와 스텔라의 얘기를 들으면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 것은 문제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브는 대체로 자신이 전차에 치일 의향이 없으면 전차가 쳇 팔리를 치도록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마브는 다섯 명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과 손잡이를 당겨서 전차가 친척이나 친구나 자녀를 치도록 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선로 위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다르게 판단했을 거예요.) 하지만 선로에 누가 있는지, 그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 - 그리고 내 행동에 따라 그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스텔라에게서 눈에 띄는 점은 지선에 누가 있는지, 그 사람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거예요. 자녀, 남편, 엄마, 이웃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잖아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요.

두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전혀 다른 행동을 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마브는 실제 상황에서 정말로 자신을 희생할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요점은 여자는 남자에 비해 문제를 추상적 도덕성의 사안으로 바라보려는 생각을 덜 한다는 거예요. 남자는 문제를 (구성 요소를 넣고 뺄 수 있는) 일종의 수학 문제로 보려는 반면에 여자는 (실제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이야기로 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p.105-107)



나는 구체적 인물을 대입했을 때 대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학처럼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남자들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들을 개념적으로 접근하고 추상적으로 대답하는 것보다는 구체적 인물을 대입하고 그 사람이 되어보고 그 상황에 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 문제 해결에 좀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내가 '특별히 남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아니다. 감정에 흔들리는 게 여자의 전유물이고 이성으로 판단하는 게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것처럼.

실제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장미와 주목》에서는 감정에 이끌리는 걸 혐오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화자인 '휴 노리스'의 형수가 바로 그녀인데, 그녀는 시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감정에 빠지는 걸 질색 하니까요, 언제나." 


(‥‥‥)


"감정이 내 의지나 이성을 밀어내고 앞자리를 차지한다는 느낌을 참을 수 없거든요. 난 행동을 제어할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사고도 통제할 수 있어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질 못해요. ‥‥‥내게 굴욕감을 준다고요." (p.173)



책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휴 노리스의 좋은 말벗이 되고 사람에 대한 대단한 통찰력을 보여주는데, 그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에 이끌리는 걸 이성에 이끌리는 것보다 더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부터도 그랬고. 그러나 이성적 판단을 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이끌리는 것이 감정이라고, 누군가의 글에서 봤는데..아무개님의 [바른 마음]에 대한 페이퍼였나..여튼. 나는 최근까지 내가 감정이 앞서는 사람인 것이 좀 속상했더랬다. 휴 노리스의 형수처럼 혐오하는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을 보면 마냥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이제는 감정에 이끌리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추상적으로 개념적으로 내놓는 답보다 좀 더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감정이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감정적 인간인 것이 전혀 굴욕스럽지 않다. 내 자존심은 나를 용납한다. 내가 내 자존심을 용납하듯이.







크- 

그러나 그런 한편 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

아무리 필립 클로델을 사랑한다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이 재미가 없어...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건지 내게 전달이 잘 안돼...

애정하는 작가에 나는 기꺼이 '필립 클로델'의 이름을 적어넣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든 작품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나는 당당하게 그 앞에서 그건 별로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칼같은 여자...인 것이다. 나는 이 책 읽기를 포기한다.

나는 얼음나라 공주..인 것이다. (응?)






- 아침엔 친구로부터 '캬라멜 마끼아또' 기프티콘을 받았다. 안그래도 출근길에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 집에서 텀블러를 챙겨왔는데, 아니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신나서 원래 5번 출구로 나가 2,900원짜리 아메리카노 마시려던 걸 포기하고 8번 출구로 나가 스벅에 가서 기프티콘을 내밀었다. 씐나! 출근길에 마시라며 보내주는 센스! 우히히히히 우걀걀걀걀 그리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회사까지 걷는다. 에피톤 앨범을 한데 모아 재생목록을 만들었는데, 요즘엔 거기서 랜덤으로 듣고 있다. 마침 어제 듣다 말았던 '꿈에 네가 보인다' 가 나오는데, 이게 끝나고 뭐가 나올까 두근두근 하는데, 꺅 >.< '눈을 뜨면' 이 나오는 게 아닌가! 아 좋아 ㅠㅠㅠㅠㅠㅠㅠ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러면서 생각했다. 8번출구로 나오면 나는, 대체적으로 행복하구나, 하고. 8번 출구로 나와서 걷는 길은 그러고보면, 계속 행복함을 느끼게 해줬던 것 같다. 물론 8번 출구로 나간 것은 오늘, 커피를 준 친구 덕분이고, 커피를 바로 지금 마시겠다는 나의 의지 덕분이었다. 또한, 에피톤 재생목록을 랜덤으로 듣기로 한 것도 나의 의지였고. 그러니 이 행복은 내가 만들어낸 것.




- 아침에 ㅊ님의 트윗에서 '행여나 지각할까 쫄깃한 출근길' 이란 글을 보았는데, 하아- '쫄깃한' 이란 단어를 보자 그냥 막 좋았다. 두근두근. 일전에 T 님이 내게 멘사에 대한 페티쉬가 있다고 했고 며칠전엔 B 가 내게 손에 대한 페티쉬가 있다고 했는데, 아, 나는 뭐 이렇게 늙어갈 수록 페티쉬가 늘어나. 나는 '쫄깃한' 이란 단어에 페티쉬가 있는 것 같다고, 오늘 아침 생각했다. 실제로 쫄깃한 그 무엇 보다는 '쫄깃한' 이란 단어와, 말. 나란 인간, 변태 인간...




- 어제 남동생과 대화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무지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가 **라면 진짜 정 떨어질 것 같아. 나는 그 사랑을 포기할거란 생각이 들어. 더이상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그러고보면 나는 사랑을 머리로 하나봐, 라고. 가슴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무엇이든,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못그러겠더란 말이지, 그건 안돼. 그러자 남동생은 '그건 나도 그럴 것 같은데?' 라고 했다. 나는 사랑을 머리로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안되는 기준 같은게 있는 건 좀 괜찮은 것 같다. 






이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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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일하기.....

무해한모리군 2014-12-16 10:50   좋아요 0 | URL
ME TOO

다락방 2014-12-16 10:57   좋아요 0 | URL
하지말까요... -0-

무해한모리군 2014-12-16 11: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얘기를 하자면 저는 조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다락방 2014-12-16 11:31   좋아요 0 | URL
아..조퇴라니..Orz

조퇴하는 만큼 푹 쉬세요, 휘모리님. 허리 빨리 나아야지요. 얼른 가요, 얼른, 얼른!

무해한모리군 2014-12-1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만 먼저 향수에 대한 얘기를 다락방님께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ㅎㅎㅎㅎ

다락방 2014-12-16 10: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는 궁금해서 사서 읽었을 거에요. 이건 포기! 이긍..

라파엘 2014-12-1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읽어보고 싶은 책이 또 생겼네요. 공감이란 것에 대해서 요새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4-12-16 15:25   좋아요 1 | URL
혹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셨다면 이 책이 뭐 더 특별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재미있게 읽긴 했어요. 워낙에 생각해보는 걸 좋아해서요. :)

뽈따구 2014-12-1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소설책을 굳이 구해서 읽지는 않아서,
서평 책으로 ˝향기˝가 올라왔을 때 쿨하게 넘겼는데,
필립 클로델을 좋아라하며 ˝향기˝를 구입하는 ˝다락방˝님을 보면서
`나도 신청할 걸 그랬나?` 하고 살풋 후회했는데
˝향기˝ 재미없다니 왠지 다행스럽네요.
재밌다고 올리셨으면 계속 후회했을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4-12-16 15:26   좋아요 0 | URL
필립 클로델의 [향기]는 소설책은 아니고요 산문집이에요. 저는 대체적으로 산문집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는 편이긴 한데 `필립 클로델`이란 이름만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한 거지요. 그렇지만 .. 정말 재미가 없... ㅠㅠ

향기 대신 다른책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뽈따구님! ㅎㅎㅎ

아무개 2014-12-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내가 너를 사랑하니 나의 모든 것을 받아 들여라!` 라는 것은 굉장히 유아적인 사랑이라고 합디다.
그 반대도 다르지 않을꺼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꼭 그렇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람이 하면 싫은 행동도 `그 사람`이니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뭐...

2.<누구를 구할것인가> 왠지 제목만으로 짜증이나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게 만드는 선택지를 주는게 너무 싫어요.
그게 삶의 `부조리` 이겠지만....싫어 힝~

3.<바른마음>은 두껍긴 해도 어렵지 않아서
저도 충분히 읽을만 했어요.
다락님도 도전해보심이 ^0^

다락방 2014-12-16 15:31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은 댓글을 `에미`같이 달아요. 번호 붙여서 ^^ 그래서 아무개님이 번호 붙인 댓글 읽을 때마다 에미 생각나요. 나의 에미. 난 레오가 더 좋지만. 근데 레오 밉기도 하고...미아랑 섹스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삼천포로 가는 날 말려줘요! ㅠㅠ)

1. 별 생각 없다가 최근의 뉴스들을 보고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만약 저렇게 한다면`을 대입해보고 나니,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별 도리없이 돌아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제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 라는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용납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실제로 며칠 전에는 누군가에게 물어봤어요. `너 혹시 **냐...` 라고. 아니, 라는 만족스런 답변을 얻었습니다. 아닌 줄 알았지만 그래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더라고요. 우히히히

2. 아무개님이 저 제목을 짜증낼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오히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기는 힘든 거군요. 갈 길이 멀어...전 좋았어요. 전 막 책 읽다가 혹은 누군가의 얘기 듣다가 생각해보는 게 너무 좋아요. 만약 나라면? 만약 당신이라면? 내가 뭔가 잘못 생각했나? 이러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게 너무 즐거워요! >.<

3. 바른마음은...비싸서..패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몽테뉴의 수상록도 사놓고 회사에 처박아 두고 있어놔서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샀냐 ㅠㅠ)

moonnight 2014-12-1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구체적인 누군가를 대입했을 때 맘이 확 바뀔 때가 있죠. (불현듯 어떤 생각이 ㅠ_ㅠ;;)
지금 더 드롭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다음 책을 못 정해서 우왕좌왕 하다가 창비세계문학을 잡았는데, 다락방님 글을 읽으니 <장미와 주목>을 읽고 싶어졌어요. ^^

다락방 2014-12-16 16:41   좋아요 0 | URL
문나잇 님도 장미와 주목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아 빨리 또 책사고 싶어요. 더 드롭...저 오늘 산 책 아직 배달도 안됐는데..내일 배달 될텐데 벌써부터 또 사고 싶어지는 이 미치고 조급한 마음... ㅠㅠ

2014-12-16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7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12-17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새로운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인용하신 저 책의 내용은 정말 궁금하네요.
5명대 1명이라.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아마 큰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였을텐데,
문득 아내가 물었어요.
만약 바다에 자기와 아기가 빠졌다면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아! 난 이런 류의 질문을 무척 싫어하는데, 그때 좀 고민을 했죠.
처음엔 당연히 아기를 먼저 구할 거라고 말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아내를 먼저 구할 거라고 말했죠.
지금 나에게는 자기가 그만큼 더 소중하다고 말이죠.
아내는 내 어깨를 쎄게 때리고는 무조건 아기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어요.

과연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아니 어떤 선택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궁금해지는 아침이네요.

다락방 2014-12-17 09:3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의 댓글을 읽고 저도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만, 어쨌든 어떤 선택이든 하긴 해야 둘 중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은 변함없네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둘 다 잃게 될테니까요. 그렇다면 그 `하나`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느냐 하면...하아- 역시 감은빛님, 생각하기 싫은 질문이에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생각하기 싫은` 이라고 써놓고 나니 생각이 나서요.
저는 앞으로 조카가 살아가면서 어떤 위험이 닥치진 않을까 생각하다가 되게 힘들어지곤 해요.
되게 심하게 힘들 때는, `그런 고통-조카가 다치거나 상처받거나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것-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나의 죽음`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을테니,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건 내가 없어져 버리는 거라는.
`생각하기 싫은 선택`에 대한 댓글을 읽고 나니, 그때의 기억이 나네요.
한참 우울하던 때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다시 힘들어질라고 해요.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면 딱히 새로울 건 없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것 같아요.

좋은 아침 보내고 계십니까, 감은빛님!
 

일전에 여차저차해서 신경정신과에 방문한 일이 있었고, 그때 닥터는 내게 걸으면서 책을 읽지도 말고 영화도 보지 말라고 주의를 줬던 적이 있었다. 나는 네, 라고 답했고 나름 지키려고 생각했지만 그게 잘 되진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걸으면서 문자메세지를 보내다가 상대로부터 걸으면서 문자메세지 보내지 말라는 주의를 듣고는, 이제 꼭 멈춰서서 문자메세지를 보내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이 잘 안바뀌는지라, 토요일에 외출하면서 나는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기다렸고, 책을 읽으면서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읽었고, 갈아타기 위해 내리고 또 타는 과정에서도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려서는 대한극장이 나오는 1번 출구로 쭉쭉 나갔다. 나는 워낙에 길치랑 방향치인지라, 낯선 곳이라 느꼈지만 내가 언제 어디는 익숙했냐 싶어 그냥 계속 나갔다. 사람이 평소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리고 극장은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고....뭐여, 왜이래, 하고 걷는데 벽에 이정표가 그려졌는데, 거기에 '충무로'란 단어가 보이는 거다. 으응? 나는 충무로에 와있는데 왜 충무로 가는 노선을 표시해주는 거야? 원래 그랬나? 그러면서도 나는 병신같이 계속 걸었다. 걷다가 또 충무로를 가기 위해 4호선을 타야 한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아니 그러니까 왜, 충무로에서 충무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거지? 나는 멈춰 선다. 그리고 이 역이 충무로 역이 맞는지 확인해보려는데, 어디에도 역 표시가 없다. 계단을 오르면 1번 출구로 나가니 올라가서 볼까 하다가 간이매점 하시는 분께 여기가 어디에요? 물어볼까 하다가, 에라이, 이정표대로 되돌아 가보자 싶어 화살표가 끄는 대로 다시 '지하철 타는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야 비로소 내가 '동대문'에서 내렸음을 알게 된다. 하아- 두 시에 영화 시작이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나는 조금 일찍 내려 여유롭게 책을 읽기 위해 출발했었고, 충무로인줄 알고 내렸던 동대문 역에서도 내리자마자 벤치에 앉아 책을 조금 더 읽었던 터다. 시간이 촉박할 듯 한건 아니지만 몹시 지쳤다. 나란 인간, 대체 뭐야?

 

다시 표를 대고 들어가 지하철을 탄다. 친구에게 이러저러한 일로 다시 되돌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충무로 가는 열차를 탔어야 했는데, 반대 방향 열차를 탔다고 말했다. 그나마 한정거장 이라는 걸 알고 무조건 한정거장 가서 내린 거다. 하아- 다시 되돌아가는 길, 그리고 되돌아나와 대한극장으로 가면서 한숨이 나왔다. 나중에 저녁 먹을 때 친구는 내게, 영화 시작 전에 한숨을 너무 크게 쉬더라, 고 말했다. 하아- 나는, 나한테 너무 상처를 받았다. 나, 진짜 뭐냐. 그때, 닥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하철에 타면 그때만 책을 읽으라고, 걷는 동안에는 읽지 말라고, 큰일 난다고.

 

반대방향의 열차를 탄 것이 사실 그렇게 큰 일은 아니지만, 그런 조언을 들었으면서도 병신같은 짓을 한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실망했다. 히융- 으, 쓰다보니 그때의 지친 기분이 지금 다시 확- 올라와...싫어...

 

 

그때 내가 읽던 책은 이거였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그래서 읽다보니...저런 멍청이 같은 짓을.. Orz

 

이 책을 읽으면서는 《봄에 나는 없었다》와 《딸은 딸이다》에 조금 못미치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뒷부분을 다 읽고나니, 끝까지 읽고나니, 느낌이 달라졌다.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도 어렴풋이 알게 됐달까. 이 책 속의 화자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고통스러워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나는 '조조 모예스'의 책, 《미 비포 유》의 남자주인공을 떠올리기도 했다. 결국 이 책속의 화자 휴 노리스는 자신이 자살하기 위해 모아둔 약을 버렸던 것처럼, 미 비포유의 '윌'도 삶을 선택했다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더 불편하고 더 아픈 게 윌 쪽이긴 했지만, 그도 삶을 선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도 '다시 산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그 '좋다'는 기준은 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내 생각만 하고 그가 삶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거다.

 

 

별채에서 아득하게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와는 전혀 다른 여름밤의 삑삑대고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동물들이 제 할 일을 하면서 기어다니는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저 멀리 부엉이 우는 소리‥‥‥

막연한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테리사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과거와 제니퍼는 빛나지만 실체가 없는 꿈 같았다. 그 꿈과 나 사이에는 고통과 암흑과 무기력의 늪이 있었고, 나는 이제야 겨우 거기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단절은 확실했다. 내가 시작한 삶은 새로운 삶이었다. 이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새로운 휴 노리스는 누구이며 어떤 인간일까? 흥미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p.197-198) 

 

 

 

사람에게는 포지션에 따른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 같은 포지션을 가졌다해도 상대에 따라 또다른 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기적인 쌍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바보처럼 착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똑똑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식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차갑고 무심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모습들 중에 어떤 것이 나이고 어떤 것이 내가 아닌것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 모습 모두가 다 나인 것이다.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며 못되기도 했고 착하기도 한 것이 모두 나인 것이다. 이 모두가 진짜 나인 것이며 이 모두가 진짜 나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는 것이다.

 

휴 노리스에게는 이사벨라가 그랬다. 그는 자신이 보는 이사벨라와 사람들로부터 듣는 이사벨라가 다르다는 것에 크게 혼란스러워한다.

 

 

"정말 당황스러운 건, 누군가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사벨라만 해도 그래요. 앤 모돈트는 이사벨라가 똑똑하다고 했어요. 나는 전에 이사벨라를 바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나는 그녀의 두드러지는 성질 가운데 하나가 정직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하지만 카스레이크 부인은 이사벨라가 교활하다고 말하더군요. 교활이라니! 혐오스러운 단어예요. 또 존 게이브리얼은 이사벨라를 무례하고 거만하다고 말해요. 형수 ‥‥‥형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타인의 사적인 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으니까요. 아무튼‥‥‥사람에 따라 그렇게 다르게 보이는 인간의 진면목이란 대체 어떤 걸까요?

웬만해서는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 로버트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불쑥 말했다.

"그게 핵심이지 않을까? 한 인간이 상대에 따라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인다는 게? 사물도 마찬가지지. 나무나 바다도 그렇고. 두 화가가 세인트 루 항구를 그리더라도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을 내놓을걸." (p.153-154)

 

 

내일모레면 나이 마흔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내 자신을 잘 모르겠다. 내가 모르겠는 나의 어떤 면들을 이제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하-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새로이 발견되는 면들을 보며 내가 나한테 놀라는데, 이런 나에 대해서 누가 잘 알수 있을까. 내가 아직 나를 잘 모르듯이,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일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것일 테다. 사랑에 빠진 상대가 특별한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내가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처럼. 어차피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고나면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그놈이듯이, 사랑에 빠진 순간에는 '이 남자는 달라'가 아니라 이 남자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면을 보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함께 먹고 마시면서, 우리는 관계에 대해 얘기했다. 아마 영화를 보고나서 더 할 말이 많았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나는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 자기가 얼마나 약한지, 아픈지, 힘이 드는지를 주구장창 얘기하는 걸 듣고 있는게 때로 힘이 들기도 한다고. 일대일의 관계에서 만나면 내가 말을 하고 또 네가 말을 하고가 균형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때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 힘든 애기를 들어주기만 하다가 돌아오게 된다고. 그럴 때 얼마나 지치는지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처음엔 힘을 내게 도와주려고 해보지만 반복되는 징징댐 앞에 더이상 듣기 싫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 나는 사람을 만나서 기빨린 채로 돌아오는 건 싫기 때문에, 주고받고가 적절히 이루어지는 관계를 원한다. 끊임없이 관심을 호소하는 사람들 앞에 겁나게 피곤해진다. 왜 저사람의 삶은 다른사람들의 삶보다 더 불행에 가까운가? 왜 그들은 항시 불행하다 말하는가? 그들은 정말 불행한가?

 

 

"난 제니퍼가 그 일에 대해 자책하길 바라지 않아요. 불행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고요."

"그녀는 그러라고 내버려둬요!" 테리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녀는 불행을 원해요. 그걸 모르겠어요?"

 

(‥‥)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만해요. 제니퍼는 앉아서 매사에 어떻게 잘못됐는지 애태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불행을 곱씹기를 좋아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살아가길 원하는데, 안 될 이유 있나요?" (p.41-42)

 

 

나도 아프고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다. 우울하고 외로울 때가 있고, 그럴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의 한 마디 말이, 혹은 그 순간의 내 말을 들어주는 조용한 태도 같은 것들이 위로가 되고 또 그 시기를 버텨내고 견뎌내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힘들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궁극적으로 한 사람이 힘을 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빈번하게 한쪽만의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일방적인 청자가 되어줄 수만은 없다. 네가 힘든 만큼 나 역시도 언제나 이십사시간 행복한 채로, 에너지가 넘치는 채로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지친 상태로 한숨까지 쉬어가며 보기 시작해서였을까. 이 영화는 그냥 남녀간의 사랑 영화인데 중간에 나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눈물을 닦았다. 닦으면서도 나는 미쳤나..했다. 왜 이 장면에서..하고. 그러니까, 로지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자신의 단짝 친구인 알렉스와 미국에 공부하러 가기로 했는데, 덜컥 임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알렉스에겐 비밀로 한 채로 로지는, 호텔경영학을 배워 호텔의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한 채, 아기를 낳기를 선택한다. 낙태수술은 종교상의 이유로 선택할 수 없고, 아이를 키우자니 꿈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그녀는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기로 하는데, 막상 태어난 아이를 그녀는 보낼 수가 없었던 것. 이제 막 태어난 아이, 뱃속에 열달간 품고 있었던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결국 로지는, 그녀의 좋은 엄마가 되는 삶을 선택한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은 때때로 들곤 하는데, 케이티가 로지의 딸로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살아야 할 운명이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녀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일상을 포기해야 했지만, 케이티를 낳았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그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알렉스에게 말한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로지가 이해되기도 하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품에 안는 로지를 보는 순간, 그때가 그렇게나 좋았던 거다. 울었어 ㅠㅠ 아마 나에게는 앞으로 결코 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걸 해보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장면에서 했으니까.

 

 

로지와 알렉스는 어릴때부터 친구였다. 단짝 친구였고 그렇게 같이 성장해간다. 서로의 비밀을 알고 서로의 꿈을 안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서로 상대를 이성적인 마음으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상대가 나를 친구로만 생각한다고 알고 있으므로 그들은 각자 다른 연인들을 갖는다. 다른 사람과 잠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과 결혼도 하고. 그 과정들 속에서도 알렉스와 로지는 관계를 끊지 않는다. 그러나, 매번 엇갈린다. 이제는 고백해야 겠다고 생각해 달려가면, 항상 그때마다 상대에겐 다른 사람이 옆에 자리를 잡은 거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한다면 해피엔딩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로지와 알렉스는 결국 서로를 선택했다. 서로를 기다렸고, 그렇게 서로에게로 향한 채 결국은 마주서고 함께 하게 됐다. 그러나 그 긴 시간동안 그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결혼과 이혼하는 과정들이 그 사이에 그들에게 있었다.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들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일 수 있다. 결국은 너에게 오기 위해 나는 그동안 그 사람들과 그런 일들을 겪었는가봐, 하는 그런 거. 그렇지만 이 영화가 알렉스와 로지의 포옹과 키스로 끝난다고 해서 앞으로 그들의 삶이 포옹과 키스로 연결될 거란 보장은 없는 거다. 로지와 알렉스도 어쩌면, 시행착오 중일지도 모르니까. 그걸 대체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운명의 상대란 게 정말 있다면, 그 상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시행착오는 그러나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되어 지금의 이 상대를 만날 수 있게 해준 건, 그 시행착오들 덕분이었을 테니까. 내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었듯이, 당신 역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지금 우리가 서로의 운명이라 호들갑 떤다 한들 우리 역시 서로의 상대이기 보다는 시행착오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최종적으로 누군가를 만나 함께하기를 선택하며, 우리가 서로의 상대임을 확신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시행착오였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로지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결국 꿈에 그리던 호텔 사장이 된다. 바닷가 근처의 작은 호텔을 사서 수리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그 호텔로, 가장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든다. 사실 아버지의 유산으로 호텔을 살 수 있다니, 진짜 일이 너무 잘 풀리는구나 싶긴 하지만, 뭐, 영화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_- 나는 가만히 앉아서 꿈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화딱지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저 꿈을 똑같이 나도 꾸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마음이 몰랑몰랑해졌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낯설고 먼 어느 나라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꿈. 그 미래에서 나는 조용히, 언제 찾아들지 모를, 아니 찾아올 확률보다는 찾아오지 않을 확률이 더 큰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일흔이 되어서라도, 언젠가 한번은 그가 여기를 들러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그런 마음으로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읽고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싶어 찾아보았다. 아, 여기 있다! http://blog.aladin.co.kr/fallen77/5022039

 

 

크- 뭔가 갑자기...아흑-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렇지만 안터진다고, 나의 구원이 말했더랬지.

 

 

친구랑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역시 사랑은 타이밍, 이라고 얘기했는데, 금요일밤 여자 넷이 모여 술 마시고 깔깔대면서도 사랑은 타이밍, 이라고 했던 게 생각나 웃었다. 사랑은 타이밍! 크- 소주 마시고 싶네.

 

그리고 친구와 와인을 마시면서 영화속 댄스파티에 대해 말했다. 아흑 싫어. 나는 댄스 파티 같은 거 정말 싫다고.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트와일라잇 영화속에서 에드워드와 벨라 얘기도 잠깐 하다가, 우리는, '우리에게 댄스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할 사람이 없을 텐데' 라는 공통적인 고민을 하게 됐고, 그랬을 때 나는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를 생각하니, 댄스파티 없는 우리나라 학교가 나에게는 더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ㅠㅠ 나는 수줍은 여인이라 남자에게 먼저 가서, 나의 댄스파트너가 되어주지 않겠냐는 말을 결코 하지 못했을 거고, 어쩌면 내게도 아무도 그런 말을 건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럴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마도 다른 아이들이 댄스 파티에 가서 서로의 파트너와 깔깔대고 웃다가 저쪽 방에 들어가 서로의 몸을 탐험하는 그 시간에, 내 방에서 텔레비젼을 보며 캬라멜 팝콘만 잔뜩 먹고 있었을 것이다. 그 나이가 십대 후반쯤 됐을테니 아마도 술을 마시지는 못했을 것 같고, 세숫대야 한 가득 팝콘을 먹다가 목이 마르면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뭔가 처량해 좀 울다가, 아니야 나는 똑똑한 여자니까 하고 책을 보다가, 외로운 마음에 불을 끄고 야한 동영상을 좀 찾아 보다가, 욕구불만에 생크림 케익을 먹다가 아마 백키로를 찍게 되겠지................문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해져서 더 안에 처박혀 책만 파고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니, 그때부터 삼류 포르노 소설을 쓰는 거다. 그 소설이 대박 터져서 전격 영화화 되고, 나는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전신성형을 감행하여 드디어 문 밖으로 탈출.........

 

 

일요일 밤이다. 책이나 읽자꾸나.

 

 

토요일엔 여동생 가족들이 와서 어찌어찌하다가 나와 여동생, 첫째 조카와 둘째 조카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여동생은 허니버터칩 먹어봤냐며, 먹어보라고 올 때 가져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두 개쯤 먹고 조카들 옆에서 잤다. 새벽에 조카와 나는 동시에 깼는데, 크- 혹시 자기 동생이 깰 새라 조용히 내게 속삭이더라.

 

이모, 허니버터칩 먹었어?

 

나는 응, 이라고 답하고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궁, 귀여운 나의 조카.

 

 

 

 

아, 그리고.

 

 

이 핸드폰 케이스 <갤럭시 s 5>용 하나 새걸로 있습니다. 그 기종 쓰시는 분중에 이 케이스 갖고 싶으신 분 댓글 달아주시면 보내드릴게요.

 

 

 

 

 

 

 

그날 밤은 그 여름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다. 사람들이 롱 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휘스트 드라이브뿐만 아니라 가장假裝을 하고 댄스도 즐겼다.
내가 구경할 수 있게 테리사가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모두가 들떠 있었다. 게이브리얼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사람들 틈에서 말을 받아치거나 재치 있는 대답을 던지며 이야기하고 있엇다. 그는 유난히 쾌활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나는 그것이 게이브리얼의 영악한 면모라고 생각했다. 그의 전염성 있는 활력이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전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p.194)

"일이란 이미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그런데 지레 걱정하는 사람이 있죠‥‥‥"
그러는 것조차 이사벨라에게는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난 일을 가지고 고민하는 건‥‥‥그래요, 그건 들판에 산책을 나갔다가 소똥을 밟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 말은 산책하는 내내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안 밟았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길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앞을 잘 보지 않고 걸었기 때문이야, 하며 맨날 바보 같은 짓만 저지른다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뜻이예요. 소똥은 이미 신발에 묻었고 그 사실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니 그 일을 마음속에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거긴 다른 것들이 있잖아요‥‥‥들판, 하늘, 울타리, 같이 걷는 사람‥‥‥거기 다 있잖아요. 다시 소똥을 떠올려야 하는 때는 집에 돌아와 신발을 닦아야 하는 순간밖에 없어요. 그때는 물론 다시 생각이 나겠죠‥‥‥" (p.259)

"그를 많이 좋아하죠, 밀리? 그렇죠?" 내가 물었다.
그녀의 갈색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그래요‥‥‥정말 그래요. 이제까지 전‥‥‥그런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나도 존 게이브리얼 같은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밀리 버트처럼 그에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분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거예요. 정말 그럴 거예요."
"그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그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그냥 내버려둬요." (p.264-265)

"`난 정말 바보짓을 했어`하면서 웃어넘기는 건 정말 마음이 강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예요. 마음이 약한 사람은 뭔가 지탱해줄 것이 있어야 해요.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그저 어쩌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명백한 결점, 비극적인 죄악으로 보죠."
그녀가 불쑥 덧붙였다. "나는 악 자체가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요. 이 세상의 해악은 약자들이 불러오는 거예요. 그들은 선의를 지니고 있고 아주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죠. 난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들이야말로 위험하니까. 암흑 같은 바다를 떠다니다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는 표류선 같아요." (p.2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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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12-1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도 걸으면서 책 읽고 그랬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넘어지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냥 전철에서만 책을 읽어요. 대신 요즘은 걸으면서 오디오북 들어요. ^^ ㅋㅋ 점점 나이들어서 오디오북도 못 들어으면 왠지 슬플듯.

허니버터칩은 전 아직 못 먹었어요. 별로 궁금하지 않더라구요. ^^;;뭐, 찾아서 먹기 귀찮기도 하고 누가 한봉지 주면 그때나 먹어보려나???

다락방 2014-12-15 13:16   좋아요 0 | URL
위험하다는 거 뻔히 알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거 보면 왜저러나 싶으면서도 제가 그러고 있네요. 게다가 그 버릇을 버리지를 못하고..이젠 진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어요. 반대방향의 열차를 탄 게 한두번도 아니고, 사실 그다지 별 일이 아닌데, 그런데 토요일에는 진짜 엄청 스스로가 싫어지더라고요. 계속 말했어요. 내가 나한테 너무 상처를 받았어, 라고요. 히융.

허니버터칩은 저도 관심 없었는데, 먹어본 후에도 별로 관심 없네요. ㅎㅎ

마립간 2014-12-15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다고 내려야하는 역을 놓치는 일이 일 년 1~3번 정도 꼭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책을 너무 많이 읽지 말라는 충고를 받죠. 그러나 내가 책을 읽은 이유는 도피와 안식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는 한 독서는 계속되겠죠.

다락방 2014-12-15 13:18   좋아요 0 | URL
독서 자체를 금하진 않아도 되겠지만, 갈아타는 과정, 즉 걸으면서도 읽는 건 자제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일상에 피해를 주니까요. 뭐, 그렇게까지 큰 피해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말이죠. ㅠㅠ

아무개 2014-12-1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가끔 읽던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전철에서 내려서 역사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계속 책을 읽었던 적은 있지만, 걸어가면서 까지는 못읽겠던데요.
안그래도 잘 엎어지는데 책까지 읽다간...

2.흠...왠지 내가 기빨아 가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ㅠ..ㅠ

3.`너는 내 운명` 이라고 서로 속고 있는 동안이 사랑이겠죠.
한 쪽이라도 먼저 제정신이 든다면 뭐....

다락방 2014-12-15 13:22   좋아요 0 | URL
저도 역사안 의자에 앉아서 읽을 때가 더러 있어요. 한꺼번에 사람들 우르르 내리면 같이 올라가기 싫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람들 다 빠질 때까지 책을 읽을 때도 있답니다. 걸어가면서 읽다가 전봇대에 부딪힐뻔한 적도 있어요, 저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도 정신 못차리고 이게 무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봤자 또 반복되려나요...

기빨리는 거에 대해서는 만나서 얘기합시다. 뭐, 토요일에 친구한테 다 말해서 또 말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ㅠㅠ

저는 사실 사랑에 빠진 동안 `네가 내 운명이다` 라고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고요, 그보다는 일전에도 한 번 페이퍼에 쓴 적 있는데, 내 운명의 흐름에 있는 사람, 정도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길을 걸어갈지 모르지만, 그 과정속에 존재해야 했던 사람, 이라고 말이지요. 저는 사랑의 실패가 저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한다고 믿는 편이라, 시행착오들에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마찬가지로 저 역시 누군가에게 시행착오였을 수도 있다는 걸 기꺼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래도 물론, 서로의 시행착오는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때가 오기는 하는 것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4-12-15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자주 그래요 ㅎ 부끄럽게도 삼국지를 25살에 처음 완독했는데 그때 몇번이나 출근길에 내릴 역을 지나쳐서 지각을 했어요 ㅎㅎㅎ

또다시 부끄럽게도 제 마음이 힘이 들면 어디론가 숨어요. 모두에게 연락을 끊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투덜투덜대는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말이 잘 나오지를 않아요... 그러다보니 숨어버려요. 아마도 저 역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은 아니겠구나 싶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함께인 순간이 짧더라도 삶에서 품고 살 인연을 갖는다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락방 2014-12-15 13:29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저 같은 경우에는 힘이 들고 고민이 되는걸 분위기에 따라 말하느냐 마느냐 결정하긴 하는데, 말한 후에 위안을 얻은 적도 많았어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상대가 억지로 끌어내려고 할 때, 굉장히 힘들게 머뭇거리다 시작해서는 줄줄줄 내뱉으며 후련한 적도 있었고요. 그러나 제가 말한 것보다 제가 듣는 게 더 많다고 저는 생각되어집니다. 제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또 단단하게 생각되기 때문에 의지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을테고요. 저는 약한 사람에겐 힘이 되어주는 게 도리임을 알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제가 계속 힘을 줘야만 하는 관계라면, 저 역시 도망치고 싶어져요. 역시 제 살 길을 제가 잘 찾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않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한 순간이 짧더라도 삶에서 품고 살 인연을 갖는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휘모리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결국 짧고 강하게 곁에 있다 멀어진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반면에 그런 사람이라면 놓치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때요, 휘모리님?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하루에도 열두번씩 지옥과 천국을 오락가락 하고 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4-12-15 14:32   좋아요 0 | URL
왠지 다락방님 댓글을 읽는데 눈물이 나요.
잘못지내나봐요.
지금은 겨울잠 자는 곰처럼 행동을 최소화해서 마음의 힘을 싾는 중이예요.

다락방 2014-12-16 10:53   좋아요 0 | URL
마음을 단단히 단련시켜요, 휘모리님.
그래야 이 추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지 않겠어요?
추운 겨울 단단히 버텨내고 나면 또 봄이 옵니다.
기운내요.

2014-12-15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6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12-1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댄스파티, 카라멜팝콘, 아이스크림, 구절구절 제 마음과 똑같네요.
저도 선택받지 못하는 그런 여자애였을 거예요. 파티는 싫은데...
그래도 드레스는 입고 싶어요.
어떻게 안 되겠어요?

다락방 2014-12-16 10:5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언젠가 제가 파티를 열겠습니다. 제가 여는 파티는 결코 댄스파티가 아닐 것입니다. 하하핫
그냥 먹고 마시자 파티가 되겠지요. 그때 드레스를 챙겨입고 오세요. 가슴과 등이 기이이이이이잎게 파인 드레스로요. 오케?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