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료 직원과 함께 퇴근후 술을 마셨다. 이 직원과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직급도 다르지만 남자 얘기를 하며 마음껏 씹어댈 때 한 마음이 되기 때문에 서로 얘기하기를 즐긴다. 어제도 끝나고 술이나 마실까? 했더니 좋다고 하면서 뭐 먹을지 생각해봐, 라는 나의 말에 고심하며 맛집을 검색하더라. ㅋㅋㅋㅋㅋ 그러면서 퇴근시간을 얼마 남기고서는 '아 벌써부터 설레어요'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전에 한 친구가 직급이 있고 나이도 많아지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하직원들 술마실 때 빠져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나 역시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직원을 보면서 나는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좋아해 ㅋㅋㅋㅋㅋㅋㅋㅋ 직원들이 좋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른 부하직원들도 먼저 술 마시자고 하고 술집 검색하고 하는걸 보면 나는 아직까지 현역에 몸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철이 안들어서 그런지도?? ㅋㅋㅋㅋㅋ


암튼 어제도 이 직원이 찾은 족발집으로 가서 족발을 주문하려는데 메뉴에 '반족발'이 있다. 원래 양의 절반만 나오는 거란다. 이게 뭐여...우리는 그냥 온전한 걸 먹자, 하고 시켰다. 반은 무슨. 그런데 둘이 이야기를 하며 먹다보니 이 온전한 족발이 좀 양이 부족한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 둘다 말했다. 아니, 이것도 부족한데 반을 시켜서 누구 코에 붙이지? 하고. 그래서 메뉴에 있던 순대볶음을 추가 주문했다. 그런데 순대볶음이 다 떨어졌다는 거다. 그러고서는 주먹밥을 우리한테 권하는데, 아니, 내가 그래도나름 다이어트 중인데, 주먹밥을 먹을 순 없지..(응?)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1차를 쫑내고 2차로 순대국집을 가서 계속하자, 라고 말을 했다. 직원은 꺅 소리지르며 너무 좋은 생각이에요, 과장님. 이러면서 흥분해가지고 여튼 우리는 계산을 마치고 나와 순대국집으로 향했다. 그래서 순대국과 소주와 맥주를 시키고는, 밥을 갖다주길래 '밥은 됐어요' 라고 말하며 바로 돌려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다이어트 중이니까. 고기를 먹어도 밥은 먹지 말자...주의랄까. 이거슨 내 나름의 다이어트. 


주문한 순대국이 나왔는데 우리는 한 숟가락씩 뜨고 나서야 서로 마주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건...무리였어. 이건 .. 실수였어. 우린 이걸 다 먹을 수 없어.....우리가 ....이러는 게 아니었는데..........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소설 《스타킹 훔쳐보기》시리즈 중에 '할'과 '로라'가 주인공인 게 있는데, 할은 상원의원인가 그렇고 로라는 자수성가한 디자이너였다. 이 둘은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사랑하게 되는데, 할이 의원인만큼 결혼 상대가 정해져 있던 터. 여차저차해서 그들은 헤어지게 되고 각자의 삶은 산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로라는 폭력남편에 힘에 겨워 센트럴 파크에 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 '언젠가 한번은 여기서 마주칠 줄 알았다'며 할이 말을 걸어온다. 가끔, 이곳에 들르면 당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다면서. 그들은 오랜만에 재회했고 호텔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로라가 작게 말한다.


'우리가 이러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자 할은 이렇게 대꾸한다.


'괜찮아, 행복했잖아.'




순대국을 앞에 두고 갑자기 이 생각이 나서 나는 직원에게 이 스토리를 말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순대국집에 온거, 우리가 이러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자 직원은 빵터져서 이렇게 대꾸했다.


괜찮아요, 행복했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국 우리는 순대국을 거의 다 남긴채 순대국집을 나왔다. 하아- 아까워. 그러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다. 우리가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족발만 먹고 집에 가자고. 


그런데 내 젊은 시절의 책, 《다락방의 꽃들》이 다시 나왔으니 《스타킹 훔쳐보기》도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다시 나오면, 제가 사겠습니다!!!!! (엘리자베스 게이지 책은 검색하면 다 이미지가 안뜬다 ㅠㅠ)



암튼 우리는 서로서로 누구 전남친이 더 찌질한가 이런거 얘기하다가 현재 남친과의 고민을 말하는 직원에게 비블리아 고서당 얘기를 예로 들어가며, 내 나름의 생각을 얘기했다. 직원에게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지만 스포일이 될까봐 대충 뽝- 줄여서 얘기한다면, 그건 이런거였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이란 책에 보면 여자가 남자의 고백에 답을 보류하는 장면이 있어. 여자는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에게 예스란 답을 못하는 거지. 그녀가 생각하는 건 불행한 결말이었으니까. 그래서 내내 고심하다 나중에 그에게 '내가 언젠가 너를 떠나게 될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고민과 걱정을 얘기하는 순간, 남자는 뜻밖의 대답을 하게 돼. 여자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고, 남자로서는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대답이었지. 이 대답에 여자는 큰 위안을 얻게 되고, 자신이 생각한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거야. 그러니 s씨도 미리부터 걱정해서 혼자 불행한 결말을 생각하지 말고, 그 일이 정말 닥쳐올 것 같단 생각이 들면 그에게 말을 해봐요. s 씨가 그와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면, 아마 남자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거야. 그렇다면 그 남자는 나름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방법은 불행한 결말에 이르지 않을지도 몰라. s 씨가 생각한 백개의 불행한 결말이 아니라, 생각해내지 못했던 하나의 행복한 결말일 수 있다고. 연애는 함께 하는 거고, 혼자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보다 얘기하는 쪽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할과 로라 때문에(스타킹 훔쳐보기), 쟈니와 프란시스 때문에(더티 댄싱), 홀든과 피비 때문에(호밀밭의 파수꾼), 익스트림 때문에(when i first kissed you), 젊은 시절 내게는 그토록이나 뉴욕에 가야할 이유가 많았다. 사실 쟈니와 프란시스는 '뉴욕'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암튼 그랬다. 

이번주 굿모닝 팝스의 팝스잉글리쉬가 when i first kissed you 였고, 아,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책상 서랍마다 초콜렛을 가득 채워두고 싶다. 

김육갑 족발은 양이 너무 적다. 여자 둘이 먹어도 모자라는 양이야..

나는 내가 고양이 상이라고 생각하고 고양이 상이길 원하는데, 모두들 나에게 개(강아지) 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어제는 곰 상이라는 말도 들었.........내가 바라는 나와 현실의 나와의 거리는 이토록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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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2-1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우리 나이가 술자리에서 빠지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시점인가요? ... 다락방님의 깨알 같은 조언이 참 좋네요. 더불어 책도 함께 읽고 싶어집니다. 강아지상이 난 더 좋아요 ㅋㅋ

다락방 2015-02-17 11:52   좋아요 0 | URL
강아지상은 `치명적인 매력`이 없고 그저 착하고 충실한 것만 같아 저는 싫어요. 저도 요염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고요. 흙흙 ㅜㅜ

마태우스 2015-02-1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술자리 얘기는 정말 생동감이 넘치네요. 제가 족발을 먹은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거기서 나온 대사를 책과 연결시키는 능력은 정말 최고입니다. 제가 이래서 다락방님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다락방 2015-02-20 18:35   좋아요 0 | URL
오오! 저는 마태우스님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예뻐서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언제나 폭풍칭찬 감사합니다, 마태우스님. 저의 가장 강한 아군이세요. ㅠㅠ

nomadology 2015-02-1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hen I First Kissed you는 정말이지 짱이죠! 제 훼이보릿이었는데.

다락방 2015-02-20 18:35   좋아요 0 | URL
크- 진짜 짱이죠. 진짜 최고에요. 이 노래를 들을때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져요. ㅠㅠ

아무개 2015-02-1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전 아직도 제가 이나이에 막내......................

2.다욧하더니 위가 줄었나요?
고작 족발따위를 먹고 순대국을 남기다뇨!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니잖아요? 아닌데 킁!

3.제 정신일땐 안그러는건지 못그러는건지 모르겠지만서도
꼭 술이 취했을때 읽었던 책의 내용들이 기억나곤해서
술자리에서 책인용을 더 많이 하게 되는거 같긴해요.
그래서 애들이 나 되게 똑똑한줄 알아요. ㅠ..ㅠ

다락방 2015-02-20 18:37   좋아요 0 | URL
1. 전 `막내` 란 타이틀을 달아본 적이 거의 없네요.. 왜 나는 늘 첫째인가...

2. 위가 줄었으면 좋겠네요. 줄이고 싶어서 노력중이긴 합니다만. ㅠㅠ

3. 아무개님 똑똑해요. 그리고 더 똑똑해지기 위해 그런 책들 열심히 읽잖아요. 아무개님의 책 선택에 언제나 놀라고 감탄한답니다. 아무개님은 좀 더 자신에 대해 관대해져도 좋을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5-02-17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족발과 순대 이야기는 항상 좋아요~~

다락방 2015-02-20 18:37   좋아요 0 | URL
족발과 순대가 항상 좋기 때문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5-02-18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일하고 같이 맛난거 먹고, 그리고 같이 연애상담할 수 있는 다과장님 같은 분이 계셨더라면 저도 더 오래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을텐데... 끄응... 그 직원이 완전 부러워요. 물론 족발도 부럽구요. ^^

다락방 2015-02-20 18:38   좋아요 0 | URL
다 제가 예쁘고 좋은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요. (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맛난 거 먹으면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다는 건 진짜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삶에 있어서 이런 작고 행복한 순간들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야겠어요. 헤헷 :)

레와 2015-02-1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족발집에서 한접시 먹고 부족할때 반족발!! ㅎㅎㅎㅎ

다락방 2015-02-20 18:38   좋아요 0 | URL
메뉴에 반족발이 그래서 있는거구만 잉? ㅋㅋㅋㅋㅋ
근데 여자 둘이 족발 한접시 먹고 부족한 거...괜찮은 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