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삼바》를 예매해두고 보러 가기 위해 나선 길, 나는 이번호 시사IN 을 뒤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있더라. 오호라. 보기 전에 읽을까 말까를 잠깐 갈등하다 읽어내려갔고, 책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이 리뷰를 보며 했다.
작가 델핀 쿨랭이 한동안 난민 관련 단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쓴 소설, <웰컴, 삼바>(열린책들)는 이주민의 고단한 현실을 전하는 데 좀 더 집중하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영화로 각색하면서 앨리스의 역할을 부쩍 키우고 삼바와 '썸'을 타게 만들었다. 올리비에르 나카체와 에리크 토레다노, <언터처블:1%의 우정>을 함께 연출한 두 감독이 이번에는 '언터처블:1%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사IN 제388.389호 p.87, 김세윤의 <건드릴 수 없는 1%의 사랑> 中
얘기인즉슨, 영화속의 사랑-썸타는- 이야기는 영화의 재미를 위해 끼어든거란 건데,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라면-사실 대부분의 원작을 두고 있는 영화가 그렇지만- 책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프랑스라는 선진국에서 이주민이 이토록 험한 취급을 받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내게는 놀라웠다. 저나라에서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이렇게 함부로 대한다니. 십년간 설거지를 죽어라 해도 추방당할 형편에 놓이게 되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하고 잘난 나라이길래 저토록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걸까. 왜 그들로 하여금 죄지은 사람처럼 거리를 걷고 지하철을 타는데도 조심조심하게 만드는 걸까. 이런 이야기들 틈틈이 로맨스가 끼어들 수 있겠지만, 저 위에 인용한 표현대로 그 이주민의 상황과 내면에 대해 좀 더 집중하는 쪽이 읽거나 보는 입장에서 더 좋지 않을까 싶어졌다.
사실 내용적으로는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영화다. 누군가의 불행으로 혹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운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은 비단 이주민에 대한 얘기만은 아닐 터. 삶이란 모름지기 그렇게 흘러가는 거다. 노력한 자에게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지 않고, 묵묵히 견뎌냈다고 행운이 따라주는 것도 아니니까. 누군가는 온 힘을 다해 어떤 목표를 이루었는데, 이루자마자 눈앞에서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은 그동안 인생이 우리에게 알려준 게 아닌가. 이런 진지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그러므로 나는 이 내용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지만, 아주 개인적으로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극중 삼바는 간혹 '심하게' 장난을 치고 횡설수설 한다. 십년간 쫓기듯 살아온 삶이니, 긍정적이고 농담하고 웃으며 그 삶들을 버텨와야 했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브라질 출신'이라고 말했던 이주민 친구가 사실은 '중동' 출신이라고 했을 때, 그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삼바는 그걸 소재 삼아 장난을 쳤다. 친구의 여자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꾸만 그가 중동 출신이라고 밝히려고 장난을 치는데, 그때 중동 친구는 그러지 말라고, 나는 들키는 순간 끝장이라고 말하는데도 계속해서 웃으며 장난을 치는 거다. 삼바가 친구의 비밀을 진짜로 밝히려는 악의가 있었다고는 물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에서 삼바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 내가 감추고 싶은 단 하나에 대한거라면, 게다가 내가 얼굴 표정 바뀌어가며 '제발 그러지마' 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을, 나는 친구로 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삼바가 이러다가 결국 누군가에게는 친구의 출신을 밝히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삼바를 신뢰할 수 없었다. 삼바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가 그동안 살아온 세월들이 힘들었고 고되었으며, 그러므로 오히려 더 밝아지려고 하는 것은 물론 나름의 생존 방법이겠지만, 그래도 중동 친구 앞에서, 그 표정 변한 친구 앞에서 그렇게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나는 좀 불편해진 것이다.
지난주의 괌 여행에서 나는 사랑의 절벽에 갔었다. 사랑의 절벽에는 전망대가 있고, 그 전망대는 꽤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전망대로 올라가고 나서는 난간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바다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고, 한 걸음을 떼서 이동하는 것이 몹시 힘들고 무서웠던 거다. 만약 그때, 내가 그렇게 무서워, 돌아, 이렇게 말하고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는데, 누군가 거기서 나를 미는 시늉을 하며 장난쳤다면 나는 울어버렸을 것이고, 진심으로 그 사람을 향해 화를 냈을 것이다. 누구나 극도로 예민한 부분이 있고, 극도로 예민한 부분- 두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내 친구라면, 내게 확신을 주는 사람이길 원한다. 거기에 대해서는 너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 거기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라고.
삼바가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는데, 이건 진짜 완전 슈퍼울트라 프라이빗 한거라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동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삼바의 입술이 마음에 들질 않아...나는 이성의 손이나 입술에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인데, 삼바의 입술이 너무 두꺼워서...뭔가 좀 ... 힘든거다. (응?) 극중에서 여자와 키스를 하는데, 좀 감당 안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극중에서 여자는 삼바를 처음 만나고 난 후부터 호감을 느끼지만, 나로서는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스타일이랄까. 나는 이성의 얇은 입술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삼바를 보고나니 저렇게 두꺼운 입술도 영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똭- 드는 거다. 뭐, 삼바가 나 좋다고 따라다닌 것도 아니지만, 여튼 그랬다는 거다. 킁킁.
암튼 샬롯 갱스부르는 너무 예뻐서, 나도 저렇게 예쁘게 늙어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헤어 스타일부터 .... 예쁘게.... 를 하려면 미장원에 가서 돈을 들여야하겠고, 미장원에 돈을 들이자니, 나는 돈이 없고....이쁜건 잠시 보류...
설날인 어제, 이모와 남동생과 아빠는 고스톱을 쳤고, 나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잠시 시청했다. 텔레비전 에서는 개그 프로그램이 하고 있었고, 그중 한 코너 <사망토론>을 보게됐는데, 사망 토론의 주제는
'무인도에 김태희와 단둘이 떨어져있는데 구조선이 보인다면 나는 구조를 요청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였다. 여기서 '김태희'는 어떤 이성적인 이상형, 그러니까 정말 만나보고 혹은 함께 있어보고 싶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기는 힘든 상대, 라든가 이상형의 결정체, 등등으로 상징되므로 개인에 따라 '김태희' 대신 다른 사람을 넣어도 될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몹시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친구 한명은 자신의 이상형인 배두나와 무인도에 둘이 남는다면 구조 요청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구조요청을 하겠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라는 답변도 있었고 '이상형 한 명이라면 구조요청을 할 것이고 두 명과 함께 있게 된다면 구조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대답도 있었다. '하루정도 함께 있다가 구조 요청하겠다' 는 대답도 있었고. 뭐, 이 모든 대답들은 절반쯤은 농담이 섞여 있었을 것이므로 어떤 대답엔 웃기도 했는데, 오늘 나는 여동생에게 똑같이 물어봤다. 여동생은 내가 질문하고 답을 듣고자 했던 의도랄까, 그 마음이랄까, 여튼 그런 걸 가장 잘 이해했다고 보여지고 그러므로 가장 진지하게 답해줬는데, '나는 구조 요청 할거야' 라고 답했다. '언니, 나는 무인도에서 단둘이는 못살아, 다른 사람도 필요해, 나는.' 이라고 말했다.
내 대답은 여동생과 같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혹은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무인도에 둘이 떨어진다고 해도, 나는 행복할 것 같진 않았다. 나는 그 사람 외에 다른 사람도 필요하니까. 이건 구체적 인물을 대입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재이슨 스태덤과 단둘이 무인도에 떨어져도 나는 구조 요청을 할 것이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무인도에 떨어져도 역시 마찬가지. 나는 구조 요청을 할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뭐든 했을 거다. 내가 혼자 있기를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정말로 아무도 없으므로 혼자가 되고 싶진 않다.
또 하나. 내가 내 이상형과 무인도에 떨어졌다는 상황. 그 상황으로 내가 사랑받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상황이 만들어준 사랑은, 나로서는 거부한다. 내 자존심은 만들어진 사랑을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것.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는 상황 속에서 내 사랑이 나를 선택하기를 원하지, 아무도 없으므로 나와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런건 싫다. 내가 '나' 이기 때문에 나는 사랑받아야 하는 것이지, '나밖에 없었으므로' 사랑받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 질문이 무척 재미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물어보고 싶어졌다. 너라면, 구조요청을 하겠느냐, 하고. 분명 어떤 사람들은 '절대 구조요청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하기도 할것인데, 그들에겐 '단지 그 한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 하나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체하고도 남는. 그러나 나는 '너만 있으면 돼' 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너'가 필요하다. 물론 '그중에 네가 제일 좋아'겠지만.
설날인 어제 조카들이 집에 놀러왔고, 둘째 조카는 어제 페이퍼를 올렸듯이 내 책장에서 책을 빼내 난장판을 만들었는데, 첫째 조카는 그 책들이 정리되고 난 후에,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왜, 도대체 왜....네게는 수첩도 있었건만, 왜 이모 책장에 있는 달력을 가져다가 굳이 연필로 마구 낙서를 한거니? 이 꼬맹이는 이렇게 하면서 내 반응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연필로 그어대면서 계속 내 얼굴을 보고 실실 웃더라. 아, 이 장난끼 많은 녀석. 이쁜 조카. 알러뷰뿅 ♡
그나저나 책장을 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내가 분명 중고로 열심히 팔아 책장을 비워뒀건만 언제 다시 저렇게 아무데나 쑤셔 박아 넘치는 상태가 되었을까. 이제 진짜 책 안사고 사둔 책 읽고 처분하리라. 그래서 다시 책장을 좀 비워두리라. 이런 식으로는 안돼!!!
그러나 연휴동안 하루에 한 권씩 책 읽겠다는 나의 미친 다짐은 역시 미친것으로 드러나,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한 채 벌써 사흘째가 지나가고 있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