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에 겨우겨우 다 읽었다.
지은이 미셸 자우어에게는 한국인의 정서가 흐르고 있으니 읽기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응?) 그렇지 않아서 당황했다. 독서괭 님은 '유의어 사전 옆에 두고 책 쓴 느낌이다' 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다. 단어를 찾아보면 다 비슷한 뜻인데 그걸 최대한 다른 단어로 쓰기 위해 노력한 느낌이랄까. 어쩌면 그것은 미셸 자우어가 학교의 쓰기 수업 중에 배운 기술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 학교에 다니면서 쓰기 시간에, 접속사에 대해 한 번 쓴 단어를 다시 쓰지는 않도록 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But 이 문장에 나왔다면 그 다음에도 똑같이 but 을 쓰지 말고 however 를 쓰라는 식으로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니 접속사도 많이 알면 알수록 쓰기가 더 유려해지는 건 뭐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책 맨 끝에 감사의 말에 보면 글쓰기를 가르쳐준 스승님에 대한 언급이 있다.
I must first thank Daniel Torday, a vital mentor who had to read a lot of really, really horrible writing while I was in college and somehow still managed to believe in me after it all. I owe what seems like everything I know about writing to your teaching. -p.241
가장 먼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멘토 대니얼 토데이에게 감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시절에 당신은 엉망진창이 내 글을 무수히 읽었는데도 어떻게든 나를 믿어주고, 글쓰기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전자책 중에서
아마도 저 대니얼 토데이 선생님이... 같은 단어 쓰지 말라고 조언한게 아닐까. 진짜루 모르는 단어-그러나 같은 뜻-가 많이 나와서 당황스러웠는데, 처음엔 사전 찾아가 안되겠다 싶어서 번역본 전자책 샀다가, 그래도 읽기가 더뎌서 다음부터는 그냥 안찾고 번역본도 안보고 대충 눈으로 훑고 감으로 읽었다. 그만큼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이번엔 쉬운 책 골라보자고 고른건데도 어려우니, 어쩌면 그것은 영어이기 때문인가봉가..
엄마에 대한 책이라면, 사실 읽기 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여자사람들은, 눈물이 나올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아프고 병든 엄마,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거라면, 뭐 그건 말 다했지. 반칙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당연하게 몰입하며 읽게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사춘기시절 엄마에게 반항하고, 젊은 시절 마음대로 살려고 하다가 엄마의 암 소식을 듣게 되고, 그 후에 엄마의 옆에 있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엄마는 돌아가신, 그런 미셸 자우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은 어린 시절 엄마랑 다니면서 한국 음식도 먹어보고 또 2년마다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가서 외할머니, 이모들, 그리고 사촌 오빠랑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은미 이모도 암으로 사망하고, 그리고 엄마까지 돌아가신 지금, 서로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나미 이모와 미셸이 핏줄로 얽혀있다. 미셸은 나미 이모랑 계속 연락하고 나미 이모는 미셸이 올 때면 언제든 환대해준다. 음악으로 성공할 지 알 수 없었던 미셸이 드디어 음악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미셸의 밴드가 이제 아시아 투어를 가게 되었다. 당연히 마지막 목적지는 한국이다. 회사에서 그들을 공항으로 픽업하러 오고, 숙소를 마련해주고, 밥을 사준다. 이렇게 되길 꿈꿔왔는데, 드디어 이렇게 된 순간, 300 명이라는 외국의 사람들이 내 공연을 봐주러 오게된 지금, 내가 성공한 모습을 가장 보여주고 싶은 엄마는, 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When we got onstage, I took a moment to take in the room. Even at the height of my ambitious I had never imagined I'd be albe to play a concert in my mohter's native country, in the city where I was born. I wished that my mother could see me, could be proud of the woman I'd become and the career I'd built, the realization of something she worried for so long would never happen. Conscious that the success we experienced revolved around her death, that the songs I snag memorialized her, I wished more than anything and through all contradiction that she could be there. -p.232
무대에 올랐을 때 나는 잠깐 서서 홀을 둘러보았다. 내 야심이 정점에 달했을 때조차 엄마의 모국,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엄마가 이런 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란 여자, 내가 쌓은 커리어, 내가 절대로 이루지 못할 거라고 엄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걱정한 일을 이렇게 떡하니 이루어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을까. 우리가 맛본 성공이 엄마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고, 내가 부르는 노래가 죄다 엄마를 추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완전히 모순이긴 해도 엄마가 공연장에 있었으면 좋겠다느 생각이 더더욱 간절했다. -전자책 중에서
미셸의 안타까움, 아쉬움이 내게도 전해졌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공유하고 싶은 감정이 '자랑스러움'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슬픔을 나눠주고 짊어지는 건 사실 내가 별로 좋아하는게 아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움이라면 다르다. 내가, 네가 사랑하는 내가, 이렇게나 잘 해냈어, 나를 봐, 자랑스럽지? 나는 내가 자랑스러울 때 그 감정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다. 그래서 나를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게 잘못된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다. 자랑스러운 일을 해서 그걸 자랑하려면, 나쁜짓을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미셸이 성공했을 때, 밴드를 만들고 한참 시간이 지난뒤, 자신도 그리고 가족도 그 성공을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엄마의 나라에 가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그 누구에게보다 더 엄마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 공연장에 엄마가 계셨다면, 그러면 얼마나 엄마는 미셸의 성공을 기뻐했을까.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을까. 그래서 그 성공에 함께 하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나 역시도 마음이 아팠다. 나의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의 부모님과 다르지 않다. 결국 어떻게든,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부모님의 죽음은 현실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그 전에 내가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을 차마 다 보여드리지 못할 확률이 아주 높다.
버락 오바마 생각이 났다. 버락 오바마의 어머니 역시,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걸 보지 못한채 돌아가셨다. 오바마에게는 오바마를 지지하고 또 자랑스러움과 고통까지 함께 나눌 가족이 있었지만,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난 후였다. 미국의 대통령이 된 걸 보여드렸다면, 오바마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장 자랑스러운 모습을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대한 열심히 자랑스럽게 살아볼 일이다.
그러나 미셸에게는, 여전히 미셸을 지지하고 환대해주는 나미 이모가 있다. 이모와 이모부가 이 공연에 와있다.
Before our last song, I thanked my aunt and uncle for coming, looking up at them on the balcony. "Emo, welcome to my hoesa," I said, extending an arm to the crowd. Welcome to my office. The band posed for a picture with our fingers in the heart pose Nami taught us, the sold-out crowd in the background. Dozens of kids left the venue with sleeves of vinyl hedl under their arms, fanning out into the city streets, my mother;s face on the cover, her hand reaching toward the camera like she's just let go of the hand of someone below. -p.233~234
나는 마지막 노래를 남겨두고 이모와 이모부가 계신 발코니를 올려다보며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모 제 회사에 오신 걸 환영해요." 그리고 청중을 향해 한 팔을 내밀어 환영의 인사를 했다. 밴드는 이모가 가르쳐준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홀을 꽉 채운 관객을 배경으로 사진 찍을 자세를 취했다. 청년 수십 명이 겨드랑이에 레코드판을 낀 채 공연장을 떠나 거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레코드판 재킷 사진 속 엄마는 마치 잍에 있는 누군가의 손을 막 놓은 것처럼 카메라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전자책 중에서
어휴,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나서 혼났다. 마침 이 부분에서 까페에 있었는데 울컥 눈물이 차올라서.. 이모가 거기 있어서 너무 좋은거다. 엄마에게 성공을 보여드릴 순 없지만, 그 누구보다 우리 엄마를 사랑했던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는 이모에게 이 성공을 보여드릴 수 있고 또 감사를 전할 수 있다니. 이모가 거기 있어서 정말 얼마나 다행이고 또 얼마나 좋은지.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어쩐지 슬픈데 그런데 어쩐지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이런 감정은 뭔지 모르겠다. 내가 이모이기도 해서 이러는건지, 이모가 조카의 성공을 볼 수 있는 이 장면이, 이모에게 애정과 감사를 드러내는 이 장면이 나는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이제 미셸의 엄마는 세상에 없고, 이제 나미 이모의 동생은 세상에 없지만, 그러나 미셸과 나미 이모는 깊은 유대로 얽혀있다.
이모와 이모부, 미셸과 미셸의 남편 피터는 함께 식사를 하고 노래방으로 간다. 이모는 <커피 한 잔>을 부른다. 미셸은 분명 전에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모는 이 노래가 이모와 엄마가 참 좋아하던 노래라고 했다. 이모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어떻게든 따라 부르려고 노력하는 미셸. 거기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I could feel Nami searching for something in me that I had spent the last week searching for in her. Not quite my mother and not quite her sister, we exist in that moment as each other's next best thing. -p.238~239
이모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지난 한 주 동안 내가 이모에게서 찾으려 하던 것이었다. 이모가 나의 엄마도, 내가 이모의 동생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그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전자책 중에서
We exist in that moment as each other's next best thing.
아, 진짜 밑줄 그었다. 너무 좋지 않은가. 그리고 너무나 다행이지 않은가.
다섯살 조카에게, 아니 이제 여섯살이 되었구나. 그 조카에게 나는 고모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 아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준다는 것이다. 남동생의 집에 놀러가서 조카랑 놀다보면, 조카는 항상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시간이 좀 흐르면 나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가서 수많은 인형들과 함께 놀기를 청하는데, 그렇게 놀다보면 조카 안에 나에 대한 사랑이 쑥쑥 커지는가 보았다. 놀다보면 어느새 안겨와서 내 볼에 자기 볼을 댄다. 나는 이 접촉이 너무 감사하다. 나는 너에게 필요한 존재도 아닌데, 나는 너의 부모도 아닌데,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나에게 애정을 표현하니.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거다. 물론,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는건 당연하지만, 그러나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내가 주는 사랑만큼 그 아이에게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애정이 느껴질 때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감동이다.
물론 첫째 조카, 둘째 조카들에게도 그랬다. 그 조카들에게 나는 이모인데, 조카들이 어릴 때 우리 집에 오면 이모랑 헤어지기 싫다고 엉엉 울고, 내가 자기네 집에 간다고 하면 오기를 기다렸다가 옆에 찰싹 달라붙는 것이다. 나는 사랑을 주러 가는데, 그런데 사랑으로 충족되어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내가 소중한 존재가 된 느낌, 그들에게 소중하다는 느낌. 그것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미셸과 이모가 서로에게 '그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또 너무나 감사한 것이다. 그들에게 서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잃는 상실감을 살면서 언젠가는 경험하게 되지만, 그러나 여전히 사랑하며 지지하는 사람이 내게 속해있다는 것 역시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그런 순간들을 놓치고 살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소중하다는 느낌,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게 소중하다는 느낌. 이것은 아무때나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누구나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도록 노력해야지.
아, 그런데 공부해야 되는데 진짜 너무 하기 싫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려면 공부 좀 해야 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