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9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피아노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그것을 가지고 이사해 본 사람들만이 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첫 부분에서 이런 문장을 만난다.

 

아무리 절실해도 함부로 독스를 손볼 순 없었다. 그가 나무 아래에 밤색 토러스를 세워놓고 나를 감시한다 해도, 다른 좋은 방법이 떠오를 때까진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해결책이라곤 하늘에서 피아노가 뚝 떨어져 그를 깔아뭉개는 정도였다. 불행하게도 그런 행운을 기다리는 것 외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p.42)

 

 

하늘에서 피아노가 떨어지다니, 대단히 참신하지 않은가!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나는 피아노가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그러니 그 피아노 아래에 깔린다면 말 그대로 '깔아뭉개질 수 밖에'없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독스에 대한 증오심, 그를 없애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바라는 부질 없는 기도가 그대로 느껴져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덱스터는 살인 본능을 가진 남자다. 스스로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자신이 정상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그는 규칙을 정한다. 자신의 살인 본능을 평소에는 억누르고 정상적인 인간처럼 살되,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는 자신의 본능대로 할 것. 그래서 그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달밤에 응징한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그는 용서할 수 없다. 그는 가차없이 그들 앞에 나타나 결코 용서하는 법이 없다.

 

 

나는 이런 그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내 안 어딘가에서도 역시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면서도 이런 그를 응원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드라마로 나왔을 때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전편을 읽고도 느꼈던 것처럼 이토록 흥미진진한 소재가 책으로는 그다지 훌륭하게 쓰여져 있질 못하다. 전 편에서는 무조건 '본능적으로' 살인범이 어디서 죄를 저지르는지를 알아내곤 하는게 영 찜찜했는데, 이번 편에서는 그가 아무리 저주하는 상대였다한들, 그가 아무리 그의 위로 피아노가 떨어지길 바랐던 상대라 한들, 엄청난 살인범에게 잡혀간 독스를 구하러 가지 않는 그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는 독스에게 '너가 인질이 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지 않았던가.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건, 어느틈엔가는 덱스터가 독스를 향해 달려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덱스터는 보통 사람들처럼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지만, 나는 독스를 그대로 둔 덱스터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질 않았다.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책의 등장인물들이 당연히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 책의 '내용상'으로 책을 싫어하게 되는 일은 뭔가 부조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덱스터에게 이별을 고했다.

 

 

안녕, 덱스터. 당신하고는 이제 끝이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2-10-0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 절교선언을 듣다니!!! 덱스터 큰일 났네요. ㅋㅋ

다락방 2012-10-08 13: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덱스터도 좋아할지도 몰라요. ㅋㅋㅋㅋㅋ
 
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본문은 345페이지에서 끝나는데 나는 192페이지까지 읽다가 포기했음을 미리 밝힌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의 일기다. 그녀는 소련 외교관인 S 를 만나는동안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를 만나면서 그녀가 경험하게 되는 욕망과 집착과 불안과 고통에 대한 것들. 아니 에르노는 역시나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데 거침이 없다. 그녀는 그녀의 다른책에서 그랬던것처럼 이 책에서도 더할나위없이 솔직하다. 불편할만큼.

 

그녀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별난 감정을 가져서 불편한게 아니다. 나는 그녀가 쓰는 감정이 내가 갖게 되는 감정과 지나치게 같아서 불편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는 거침이 없어, 하고 읽어가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다. 이토록 솔직한 글들을 '더는' 읽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에 대한 기억들이 '허구'가 아니어서 더 불편하다. 그녀가 기록한 것들에 '그 남자의 아내'에 대한 묘사가 있는것이 나를 못견디게 만든다. 내가 하지 않아도 좋을 걱정들이 자꾸 생긴다. 맙소사. 적어도 S 와 S 주변의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얘기인지 혹은 누구의 얘기인지 알 수 있을텐데. 이 책을 읽는 S 의 아내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할까. 나는 아니 에르노가 느낀 감정에 내 감정을 덧씌워 읽으려다가도 자꾸만 튕겨져 나오고 만다. 이토록 솔직한 책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걸까. 나는 겨우 절반을 가까스로 읽어내고 이 책을 읽기를 포기했다.

 

 

오래전 나의 연인은 내게 '지나치게 솔직한게 좋은건 아니야' 라고 했다. 아니, '솔직한게 꼭 좋은것만은 아냐' 라고 했던가. 아니 에르노는 나를 불편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닌데 나는 불편한 것처럼, 나 역시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의 솔직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들에 가끔 놓이게 된다.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더, 나와 같은 아니 에르노의 감정들을 읽어내기 버거운건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이 책을 읽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int236 2012-10-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를 포기한 다락방님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은 그런 경험이 있어서 책 읽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거든요.

다락방 2012-10-08 09:53   좋아요 0 | URL
책을 포기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죠. 이번처럼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대체적으로는 재미 없어서 포기하곤 하죠. 저는 재미없다는 이유로 책을 포기할 때가 여러번 있었어요. ㅎㅎ

blanca 2012-10-0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지독하게 솔직하죠. 때로 민망할 정도로요. 혼자 읽고 있는데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저도 주변 인물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런 류의 책을 처음 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하여 담담하게 읊조리던 아니 에르노와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끝가지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눈물나는 결말이랍니다.

다락방 2012-10-08 09:53   좋아요 0 | URL
윽, 블랑카님. 이 솔직한 누군가의 일기를 이만큼 읽은것도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단순한 열정] 이나 [집착] 정도의 분량이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탐닉]은 정말이지 너무 길더라구요. 그런데 눈물나는 결말이라니..궁금해지잖아요!! 흐음..다시..시도해볼까요? 휴..

프레이야 2012-10-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도 회자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않아서 더 호기심 나요. 이 책은 전에 불랑카님 리뷰인가로도 담아두긴 한 책인데 다락방님이 그만 뒀다는 그 이유가 더 끌리게 만드네요. 역시 불편할까요ㅠ

다락방 2012-10-08 12:04   좋아요 0 | URL
소설이었다면, 허구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더 잘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레이야님. 실제의 이야기, 실존 인물이라는 게 자꾸만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아서 내내 불편하더라구요. 아니 에르노의 글은 죄다 이렇게 솔직하거든요. 그나마 [집착]과 [단순한 열정]은 분량이 얇아서 읽어내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이 [탐닉]은 그것들의 두 배 분량이에요. 누군가의 지독하게 솔직한 일기를 그만큼 읽어내기가 제게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런데 블랑카님의 댓글을 보니 마저 읽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프레이야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아니 에르노의 글을 프레이야님은 결코 싫어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오히려 그녀의 내면을 아주 잘 캐치하실 것 같아요.

moonnight 2012-10-0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을 때 참 괴로웠던 기억이 나네요.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 안 남. 단지 괴로웠던 것만 -_-;;;

다락방 2012-10-08 13:44   좋아요 0 | URL
끝까지 읽어야하나 지금 또다시 망설이고 있어요. 너무 솔직한 글이 분량이 많으니까 참 지독한 기분이..orz
 
첫사랑
페르 닐손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언제나 어른인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내 사랑이 언제나 더 현명해지는 건 아니었던거다.

 

여기, '그'가 있다. 미국에 있는 한 달 동안 스웨덴에 있는 그녀에게 열두 통의 편지를 보낸 그. 그녀가 그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던 그.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자신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그녀의 집에서 바지의 단추를 잠그며 나타나는 다른 남자를 보고, 그리고 그녀가 그의 침대에서 함께 누웠던 일을 '실수'라고 말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는 이제 파란 알약 한 통을 준비해놓는다. 그는 자신의 비극적인 사랑을 견뎌낼 수 없었으니까.

 

 

단순히 첫사랑이어서 이 사랑이 비극이었을까? 첫사랑이어서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쪽은 사랑이라 말하고 한쪽은 영원히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은 친구이길 원한다면 이건 어떤 식으로 결론지어져야 할까. 그는 알약통을 눈 앞에 두고, 그녀와의 추억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그리고 전화기를 바라본다.

 

 

분명 나도 사랑의 비극에 있어서 가해자가 된 적이 있다. 내가 아팠던 만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 그 모든 비극들속에 내가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만큼 누군가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비극들이 있기 전, 거기에는 햇살 찬란한 기억들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나. 우리는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상대를 용서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 비극 역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말것이다. 사랑을 잊고 상대조차도 잊혀지는 순간들. 그건 십 대여도 삼십대여도 마찬가지. '햇빛 가득한 어떤 기억'(p.188) 이 그를 녹여준다. 그는 알약통을 눈 앞에서 치운다. 사노라면 다시 눈 앞에 알약통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통을 다시 치우게 되는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다. 햇빛 가득한 일들은 다시 찾아와서 켜켜이 기억으로 쌓일테니까.

 

 

 

그의 몸속에 있는 커다랗고 무거운 덩어리는 콘크리트로 된 것이 아니었다.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그의 햇빛 찬란한 기억이 덩어리를 녹이기 시작하는 지금, 그는 그 사실을 깨닫는다. (p.189)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2-10-0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받았던 상처보다는 내가 상처를 줬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져가더군요.

도서관에 신청한 '소수의견'이 얼마전에 왔길래 주말에 읽었어요. 법률쪽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작가가 쓰면서 공부 많이 한듯 하더군요. 전 소설이 너무 현실적이면 '에잇, 소설에서라도 좀 비현실적이게 해피앤딩이면 안돼?' 이러다가도 또 해피앤딩의 소설을 만나면 '뭐냐 이게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세상에 해피앤딩이 어딨어?'이러면서 혼자 투정을 부려요. 소수의견도 그랬답니다 '에잇!!!'하고 말이에요.

월욜 아침부터 머그잔을 씻다가 놓쳐서 홀랑 깨뜨려 먹었네요. 에잇!!

다락방 2012-10-08 09:55   좋아요 0 | URL
마중물님, 저도 그랬어요. [소수의견]을 읽을 때, 에잇, 소설에서만이라도 좀 다르게 끝나면 좋잖아, 했다가 아니 그러면 현실적이질 못하지, 현실은 이따위인거야, 하고.

아니, 그나저나 머그컵을 깨버리셨다니!! 흑흑. 그런 기억은 빨리 잊으세요, 빨리. 마중물님 다음 책은 어떤걸 읽으려고 골라두셨나요?

아무개 2012-10-08 10:11   좋아요 0 | URL
<생의 이면> <굿바이 카뮈> <인간의 굴레에서> <이반데니소 비치,수용소의 하루>를 대출해왔어요.
지금 회사에서 읽고 있는 책은 <굿바이 카뮈>입니다.

머그컵이 깨져서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까봐 신경쓰였는데
'김치찌개'를 먹고싶다는 생각으로 올인 되버렸습니다.
다락방님 덕.분.입.니.다! ^^

다락방 2012-10-08 12:05   좋아요 0 | URL
[굿바이 카뮈]는..뭔가요. 제목 되게 어렵게 생겼어요. ㅎㅎ [인간의 굴레에서] 도 어려울 것 같고. ㅎㅎ

저는 어이없게도 [연애와 결혼의 원칙]을 시작했어요. 이게 좀 황당한게, 이런 책(?)인줄 모르고 읽었는데 이런 책(?)이라서 당황스러워요. 그런데 좀 재미있기도 해서 일단 끝까지 읽어보려구요. ㅎㅎ

moonnight 2012-10-0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책부터 보관함에 넣고;;
저는요. (뜬금없지만;;) 파란 알약 한 통. 이 무척 부럽습니다. 뭐랄까.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질 것 같아요.

다락방 2012-10-08 12:36   좋아요 0 | URL
전화벨 소리를 기다리면서 파란 알약을 한 통 준비해놓은 주인공 때문에 애가탔어요, 문나잇님. 이것은 그의 첫사랑이었고 또 아팠죠. 그가 이 순간을 견뎌내야하는데, 그걸 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더라구요. 애잔하다고 해야하나, 여운이 있는 책이에요, 문나잇님. 게다가 아주 빠르게 읽히고요.
 















윤보인의 『뱀』을 읽다보면 김이설이 떠오르고, 박연준이 떠오르고, 김사과가 떠오른다. 그들 사이의 어디쯤, 을 작가가 노린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나 윤보인은 그들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김이설의 고발성을 가졌고 김사과의 하드코어를 가졌다. 그런데 박연준같은 아련한 슬픔도 있다. 윤보인의 책속에서 외로운 사람들은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비참함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희망은 저 멀리 있는 것. 해피엔딩은 그들에게 생소한 단어. 만약 내가 일본 소설인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책, 『뱀』은 끔찍할 정도로 하드코어인 건 아니다. (하드코어를 좋아한다면 이 세상에 '뱀에게 피어싱'만한건 없다고 생각한다. 의미는 없는 하드코어였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첫 단편 「뱀」에서 주인공의 외로움보다 내게 더 끔찍하게 느껴졌던건 어항에서 키우던 뱀이 없어진걸 발견하게 된 순간이다. 허물을 벗고 탈출한 뱀. 으악, 그 뱀이 어디로 간걸까. 난 절대로 뱀을 키우지 않겠어. 엊그제 만난 친구가 키우던 개구리가 밤사이 어항을 탈출한것을 여동생이 잡아서 다시 넣었다고 한 말도 생각났다. 으악. 난 개구리도 안키울거야. 일전에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 악어를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너무 커져서 차 트렁크에 싣고 달리던 장면도 생각났다. 난 악어도 안키우겠어!



뱀 
악취 
줄 
일요일 
꼽추의 장례식 
바실리 사원 
살풀이춤 



이 책에는 총 여섯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나는 어젯밤 네 번째 단편인 「꼽추의 장례식」까지 읽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단편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단편도 짧지만 하나의 이야기인데, 그 단편을 한 편 씩 읽어야 되는게 아닐까? 나는 항상 단편집을 한 권의 책으로 대하고 손에 잡으면 다 읽었기 때문에 많은 단편들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게 아닌가. 그래서 단편은 기억날만큼 강렬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렇게 읽었어도 피츠제럴드는, 로맹 가리는, 줌파 라히리는 여전히 기억나잖아. 윤보인의 단편들은 강렬하니 한 권을 다 읽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 그걸 떠나서 이건 한꺼번에 주루룩 다 읽어내기엔 좀 벅차. 이것들을 단숨에 다 읽는건 내가 나한테 좀 못할짓인것 같아. 하루에 한 편씩만 읽어도 충분히 우울해지는데 이걸 죄다 읽자고? 어림없는 소리. 네 편이면 선방했어. 그만둬. 그리고 이건, 그러니까 나머지 두 편은 나중에 한 편, 그리고 또 나중에 한 편 읽도록 하자. 그렇게 나는 책장을 덮고 침대에 책을 두었는데, 그건 베개 옆이었다. 그리고 표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화장대 의자 위로 책을 치워놨다. 꿈에 뱀 나오면 어떡해.



책을 치웠기 때문인지 꿈에 뱀이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꿈에 나는 갈비를 데웠다. 그리고 약한불로 데워, 약한불로, 라고 잠꼬대를 하다가 내 잠꼬대 소리에 놀라 깼다. 갈비는 약한불로.



자, 다시 단편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나는 며칠전부터 피츠제럴드의 「리츠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읽고 싶었다. 분명 일전에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단편으로 읽었는데 어째서 기억나지 않을까? 리츠호텔만큼 큰 다이아몬드 얘기는 당연히 아닐테고, 그것은 상징이나 은유일테지, 어떤 내용인지 다시 읽어보자 싶어서 민음사의 단편을 꺼내들었다.


















아, 그런데 리츠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상징이나 은유가 아니었다. 정말 그런, 그토록 큰 다이아몬드였다. 일전에도 피츠제럴드의 단편 「낙타의 뒷부분」을 읽고, 정말 낙타의 뒷부분의 얘기라며 놀라서 페이퍼를 썼던 기억이 나면서, 그래, 피츠제럴드는 정말 그것에 대해 얘기했었지!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자, 보자.



존이 열심히 말을 이었다. "다이아몬드도 있었어. 신리처 머피네 집에는 호두만 한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

퍼시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우리 아버지한테는 리츠칼튼 호텔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가 있는걸." (p.136)



아, 정말 그런 다이아몬드에 대한 얘기였어. 정말 큰 다이아몬드에 대한 얘기. 이 단편의 등장인물인 존이 시골에서 보스턴의 명문학교로 진학하는 얘기는 선명히 기억났다. 맞어, 이건 읽은 기억이 있어! 그런데 왜 정말 저렇게 큰 다이아몬드에 대한 얘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을까. 자, 다시 다이아몬드.



존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침대야, 아니면 구름이야? 퍼시, 네가 나가기 전에 사과하고 싶어."

"왜?"

"네가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말했을 때 의심했던 거." (p.145)



나도 의심했다. 그러니까 어떤 허영의 표시이지 정말로 그렇게 큰 다이아몬드가 있을거라고는(아무리 소설이라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퍼시를 의심했다. 퍼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뭐, 결과적으로 보자면 퍼시가 존에게 미안하다고 오백 번 사과해도 모자라지만. 아니, 사과 따위로 될 일이 아니지만.





요즘 나의 남동생은 '하림'의 「출국」이란 노래에 뒤늦게 푹 빠져있다. 어제와 오늘, 생각난김에 친구들과 그 노래를 주고 받으며 하림에 대한 이야길 했다. 한 친구는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자기는 미친다고 했다. 출국도 좋고 같은 앨범에 실린 난치병도 좋다고. 나는 하림이 [ven] 이란 그룹으로 활동했던 시절의 노래, 「키보다 큰 사랑」을 엄청 좋아한다고 했다. 맙소사,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나는 십년도 훨씬 더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노래를 처음 라디오에서 듣게 될 당시의 나는 대학 4학년이었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재수생 남자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하를 어떻게 남자로 보겠느냐고 코웃음치며 다녔는데, 나는 그때 단단히 빠졌더랬다, 정말. 이런일이 내게 있을 수 있다니 놀라울 정도였다. 녀석은 편의점에 적힌 연락망을 보고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겠다고 온 날 부터 내게 매일매일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나는 귀찮아 핸드폰을 꺼놓기도 했다. 다른 알바생들은 원래 알던 아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처음 본다고. 처음에 나는 그런 녀석이 귀찮고 싫었다. 몸에 딱 맞는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싫다는데도 들이대는게 싫었다. 그런데 어느틈엔가 녀석의 전화가 오지 않았던 날,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래서 나는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왜 전화 안해? 그 문자를 받자마자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 전화 기다렸어? 라고. 그 때, ven  의 노래를 듣게 된거다.



사랑했었어 너 떠나지만 
함께한 시간 너라서 나 행복했어
이젠 슬픔만 남게 됐지만 
너때문이면 아파도 나 견딜거야
내 친구의 누나였던 너를 
처음 만나서 시작된 사랑
빨리 어른이(어른이) 되고 싶었어 (싶었어)
뭐든 널위해(널위해) 다해줄 내가 되도록
이별이(이별이) 먼저 오게 됐지만(됐지만) 
니가 있어서(있어서) 그때는 난 행복했어

*내 친구의 누나였던 너를 
누나라곤 한번도 부를수가 없었던거야
사랑했지만 내 전부였지만 
너보다 키도 큰 나였지만 
내 넓은어깨로 아무리 안아도 
언제나 너에겐 부족했겠지

너를 사랑해도 너의 어려움에도 
달려가 도울수 없었던 혼자서 
울어야 할 시간들이 더 많던 사랑이야
사랑해~~~

널 사랑해 세상 누구에게도 
너라고 말할수 없었던 웃음에 
가려진채 잊혀질 내사랑을 너만은 
너만은 기억해줘 

나의 사랑을



아,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 노래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내내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이 노래를 들었던 대학 4학년때도 이 노래는 몇년전 발표된 노래였던지라 내가 간 레코드샵에서 이 앨범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 때의 나는 시디가 아닌 테입을 들으며 다녔다. 보다못한 친구가 자신의 동네에 있던 허름한 레코드 가게를 찾아가 다행히 하나 남아있던 테입을 사다 내게 주었었다. 오늘 다시 이 노래를 찾아듣는데, 하아- 






몇 년 전,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다시 다른 직장으로 옮겨서도 꽤 오래 근무했을만큼 그때로부터 오래된 후에,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청나게 오랜만이라 우리는 반갑게 통화를 했는데, 녀석은 내게 말했다. 

그때, 너도 나 좀 좋아하긴 했어? 

나는 녀석에게 당연하지, 그렇게 매일 전화하는데 어떻게 안좋아해, 라고 답했다. 그러자 녀석은 '그러면 지금 다시 매일 전화하면 우리 잘 될 수 있어?' 라고 하는거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진 않다고.


아, 이게 다 하림 때문이야. 방금전에, 오전 09시 40분. 나는 충동적으로 까페로 달려가서 생크림이 얹어진 뜨거운 커피를 사왔다. 생크림을 좀 더 넣어달라고, 많이 좀 넣어달라고 컵의 뚜껑을 닫기전에 말했다. 지금은 이걸 꼭 마셔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생크림이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아, 원래는 제목을 [단편을 읽는 방법]으로 하고 문학적인 페이퍼를 쓰고 싶었는데, 이게 뭐람.


다 하림 때문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0-05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5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2-10-0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리츠호텔만한 다이아몬드 저도 읽었어요 ㅋㅋ 굉장히 특이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생크림 얹은 커피는 역시 커피 지름신을 부르네요^^ 다락방님이 러브 스토리는 언제나 들어도 달달해요. 생크림보다 더요

다락방 2012-10-05 17:26   좋아요 0 | URL
네, 블랑카님. 굉장히 특이하고 섬뜩한 작품이에요. 그 엄청나게 부자인 집에 친구를 초대해서 다이아몬드 산을 보여주고 대신 그 말이 밖에 새지 않도록 그들을 나중엔 가두거나 죽여버리죠. 어떻게 이 이야기가 그렇게 전개될 수 있는지 새삼 피츠제럴드에게 감탄했지 뭐에요!!

달달한 부분만 적어서 달달하지, 저 뒤는 아주 썼답니다. 흑흑 ㅠㅠ 내게 사랑은 너무 써~♪

테레사 2012-10-0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근데 다락방님, 다락방님은 주로 언제 이런 글을 쓰세요? 진짜 부지런하시고, 기억력 좋으시고, 문장력도 짱!!

다락방 2012-10-05 17:49   좋아요 0 | URL
저는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시간에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다다다닥 씁니다. 뭔가 생각나면 긴 글이어도 쓰는데 시간이 걸리지는 않아요. 다다다닥 쓰면 되니까ㅎㅎ 부지런하기 보다는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고 있...............인용문은 책 봐가면서 쓰는거니 기억력은 패쓰고, 음, 문장력은 .. 어디...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칭찬 들으니 짱 좋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당고 2012-10-0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다른 소설집에서 윤보인의 <악취>를 읽고 충격받았더랬어요. 저한테는 좀 강렬했나 봐요. 흠-

다락방 2012-10-05 17:52   좋아요 0 | URL
우앗, 저 악취를 빼놓고 읽은 것 같아요! 어떻게 건너뛴거지? 오늘 집에 가서 책을 다시 봐야겠어요. 바로 [줄]로 넘어갔는데..

유부만두 2012-10-0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하림은 그저...닭;;;;

다락방 2012-10-05 17:5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아까 제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맞나 싶어서 검색창에 하림 쳤더니 닭이 먼저 뜨더라구요. ㅋㅋㅋㅋㅋ

가연 2012-10-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극적인 재수생이네요. 근데 나이차가 쫌..ㅎㅎ 대학교 4학년과 재수생이면 한 4살 차이나지 않나요? 제 친구 중에 그 정도 나이차보다 조금 더 심했던가 덜했던가 어쨌든, 그렇게 사귀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여자애가 나이가 어린 쪽이에요. 그런데 풋풋하기는 한데 싸우기도 많이..ㅎㅎ 저야 그저 부럽.. 지만, 아아니, 그게 아니라 어쨌든 먼 훗날의 이야기보다는 사귈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구먼요

다락방 2012-10-06 12:23   좋아요 0 | URL
나이차는 세 살이었어요. 저는 스물셋 그 친구는 스물. 이건 뭐 나이차 나는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실제로 띠동갑으로 나이많은 남자를 만나보기도 했고 네 살 어린 남자를 만나보기도 했는데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 생기는거지 나이는 크게 장애가 되거나 불편하진 않은것 같아요. 전 누굴 만나든 별로 싸우면서 사귀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자주 싸웠다는 친구는 다른 사람을 만나도 자주 싸울것 같은데요? 그건 나이들고 이별과 사랑을 반복하면서 점차로 나아지겠지만, 사람 성향문제인 것 같아요.

다 지나가버린 일이라거나 다가올 일들에 대한 얘기는 부담없이 할 수 있지만 진행중인 얘기는 좀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건 엄청나게 (제 개인적으로는)오글거리는 일이에요. ㅎㅎㅎㅎㅎ

크크크 2013-06-1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덕분에 이 노래 듣네여... 감사여...

제이제인 2015-01-2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저와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물론 전 반대의 남자역할이였지만 ㅋ

하림을 좋아해서 틴휘슬이란 악기도 접해보고 ㅎㅎ 키 보다 큰 사랑에 푹빠져 살았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산다. 저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저마다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다르다. 한 사람을 보는 시선도 다르며 하나의 사건을 놓고 대응하는 법도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나랑 다르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때로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훗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되었다면, 나는 그런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을 원망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사랑한 내 탓이라고? 포악하고 사납고 괴팍한 그 사람의 탓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 사람을 혹여라도 사랑한 적이 있다면?


"아담, 난 가끔 아내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하지만 그게 아내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내가 아내를 찾은 거잖아. 안 그래?"
"무슨뜻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만날 사람을 찾아내. 안 그래?"
그가 멍한 표정으로 시든 장미 꽃잎 몇 장을 뜯어냈다. (pp.194-195)

그는 아내로부터 학대를 당한다. 아내의 사상은 그가 가진 생각과 저 멀리 떨어져있다. 그는 아내 때문에 얼굴에 온통 멍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 그가 아내를 선택한거다. 그러므로 그는 아내의 탓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시든 장미 꽃잎을 뜯어냈다면, 나는 남자의 이 말, -아내의 책임이라 할 수 없다, 아내를 찾은건 자신이므로- 때문에 멍해졌다. 정말 그런가? 정말?


아니,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만날 사람을 결국은 찾아내는걸까? 진짜?

















이미 세상 사람들이 숱하게 말하여왔던 걸 또 말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색다르게 진부하지 않게 아주 잘 말하여야 한다. 작가는 나치를, 게토를 이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이미 비극인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자 한다면, 일단 작가는 그 소재 자체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 일전에도 나는 『사라의 열쇠』를 읽으며 생각한 적이 있었더랬다. 이 소설, 『아담의 사라진 여인』은 그 소재를 가지고 '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더 재미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생각하고 기대했던 딱 그만큼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 에드워드가 자신의 작은 할아버지인 아담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 때문일까, 나는 읽으면서 내내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가 생각났다. 물론, '티티아나 드 로즈네'의 『사라의 열쇠』도 생각났고. 어쨌든 이 소설은 특별하진 않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에다의 관점은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 그 자체에 건배를 외칠 수 있는 바로 그 자세.


"안나에게 건배, 사랑에 건배."
"안나도 나를 사랑하는지는 전혀 몰라요."
"아니라면 뭐 어때? 네가 사랑하잖아. 내가 언제나 사랑의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랑을 포기해야 했을까? 아담, 네가 사랑하잖아. 사랑에 건배!" (pp.214-215)


그러고보니 나 역시 그랬다. 응답을 받지 못해도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더랬다. 그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었던거다. 반드시 내가 주는만큼 받는 사랑이 아니라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술잔을 높이 들어올리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사랑은 주는 만큼 받아서,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기 때문에, 그래서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경탄할만한 감정이 아닌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쁨이 아닌가. 그래, 아담, 너의 사랑에 건배. 물론 나는 이 책을 통틀어 아담을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아담은 안나를 사랑한걸까? 잘 모르겠다.


"안나가 나를 바라보면, 잠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 아니, 내가 아주 크게 느껴져요. 너무 거대해서 스스로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럴 때 나를 다 비출 수 있는 거울은 존재하지 않아요. 잠시 내 안에 온 세상이 들어오는 느낌이에요. 대륙과 산맥과 바다와 강들 ‥‥‥. 그리고 내 안에서 수백만 마리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지요." (p.246)


이게..사랑이라고?



오늘 점심은 해물볶음우동이었다. 사무실로 배달을 시켜서 먹고 있었는데, 아, 젠장, 그 안에 들어있던 홍합을 건져내다가 나의 핸드폰에 그 홍합을 떨어뜨렸다. 살짝 열려있던 홍합 사이로 볶음우동의 국물이 쏟아져나왔고 핸드폰은 금세 시뻘게졌다. 냅킨으로 헐레벌떡 닦아내긴 했지만, 흑, 앞으로 전화 통화 할 때마다 전화기에서 홍합 냄새가 나는건 아닐까. 해물볶음우동의 양념 냄새가 나는건 아닐까. 나는 손병신인가. 왜 그걸 핸드폰 위로 떨어뜨린걸까. 물론 아주 잠깐, 이 참에 다른 핸드폰으로 바꿔? 하는 생각을 했다. 약정이 20개월도 넘게 남았는데! 

아..

미친 약정.. 난 약정이 진짜 싫어.



아, 연휴 후유증인가(라고 해봤자 나는 2일에 출근했지만). 도무지 일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그나마 내일이 금요일이라는게 기쁨. 조금만 더 견디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주의 2012-10-0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약정 약10일 남았습니다. 그 휴대폰은 2Gㅋㅋ
바꿔도 될텐데 이상한 집착같은게 생겨서 그냥 쓰고 있습니다.^^
가끔은 스마트 아니라서 다행같단 생각도 하면서요.

사랑이 뭘까.
저는 외수할아버지랑영자씨가 말하는 전우애가 와닿아요.ㅎㅎ


다락방 2012-10-04 15:56   좋아요 0 | URL
저도 2G 였다면 바꿀 생각 아예 안하고 집착을 보였을 듯 ㅎㅎ 그런데 이미 4G 라서 집착이 안생기네요. 지금 핸드폰은 무척 마음에 들어요. 얼마전에 액정필름을 유광으로 바꿨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고 바탕화면도 바꿨더니 막 이뻐져서 ㅎㅎㅎㅎㅎ 우아 이쁘다 이쁘다 이러면서 초만족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쁘다고 막 혼자 감탄한 지 이틀만에 음식물을 떨어뜨린 겁니다. -_-

사랑이 뭘까. 전우애..라. 흐음. 사랑은 일단, 언제고 사라지는 것 같아요. 변하는 것, 사라지는 것. 그게 사랑인 것 같습니다.

레와 2012-10-0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점점 더 모르겠어요.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게 사랑.

난 목요일이 제일 좋아요! 내일이 금요일이라..ㅋㅋ
퇴근합시다!

다락방 2012-10-04 17:27   좋아요 0 | URL
사랑은...없는 것 같어. -0-

여섯시 되야 퇴근하죠. 벌써 퇴근할라고? 날나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