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경향신문>에 난 신간 시집 출간 소식을 옮겨 놓는다. 지난 번 출간 소식과 리뷰를 전했던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에 이은 창비시선 297번째 시집으로 고영민의 『공손한 손』이 출간됐다는 소식이다. 토요일 마다 전하는 '책과삶' 지면이 아닌 평일 신문 지면에서 만나는 시집 소식은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아쉬움이기도 하다. 여러 신문 매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책 소식을 몰아서 전하는데, 시집 얘기는 자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나는 못내 아쉽다. 고영민의 시집 소식은 <경향신문>과 <연합뉴스>에 실린 두 기사를 옮긴다.
마음을 덥혀 주는 ‘유년의 향수’…고영민시집 ‘공손한 손’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시 ‘공손한 손’)
고영민 시인(41)의 시집 <공손한 손>(창비)은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와 유기체적인 삶의 추구, 생명에의 경외감으로 채워졌다. 그의 시를 읽으면 웃음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인생의 비애가 느껴진다. 상상력과 언어유희로 씌어진 도시풍 시들과 달리 철저히 경험에서 나온 시들은 착실하고 소박하다.
“충남 서산에서 살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왔거든요. 도시의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과수원과 양계장을 했던 부모와 열두 남매의 시골생활, 밥과 생명과 자연에 대한 감탄과 순응과 연민이 그의 시편 곳곳에 스며있다.
여물지도 않은 풋모과 몇개가
낙태된 듯 떨어져 있다
집어들고 코에 대보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
이걸 나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허공에 향기를 걸어보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 새끼와 같은,
이 슬픈 것을.(시 ‘모과라 부를 수 없는 것’)
그런가 하면 의뭉스러운 유머도 있다.
추석 전날, 환갑이 지난 맏형이 어머니께 드린다고 선물을 꺼낸다. 난데없는 바바리맨 인형, 잔뜻 옷깃을 세우고 검은 안경을 낀 바바리맨이 식구들 앞에 나타났다. … 인형은 소리를 치면 반응을 하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바바리맨을 향해 영민아, 하고 소리를 친다. … 방 안은 온통 으하하하! 이어 여섯 아들들이 한명씩 차례대로 불려나와 어머니 앞에서 자랑스레 심벌을 흔들어댄다.(시 ‘효자’)
그가 가장 아끼는 시는 ‘해감’. “아버지를 여읜 슬픔으로 쓴 시”이자 “시가 감정을 정화해준다는 걸 가르쳐준 시”이다.
민물에 담가놓은 모시조개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몇번을 소리쳐 부르자 당신은 간신히 한쪽 눈을 떠 보였다 눈꺼풀 사이 짠 물빛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를 몸속에 새겨넣겠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르렁, 그르렁 입가로 한움큼의 모래가 토해졌다 간조선을 지나 들어가는 당신의 흐린 물빛을 따라 축축한 한 생애가 패각 안쪽에 헐겁게 담겨 있었다(시 ‘해감’)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한 고씨는 직장생활을 하다 시인으로 등단(2002년 월간 ‘문학사상’)했다.
<경향신문> 2009.01.22.
高榮敏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에 시 「몰입」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악어』가 있다.
<갓 지은 밥처럼 따뜻한 詩>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 출간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공손한 손')
추운 날 언 손을 녹여줄 따뜻하고 신성한 밥 한 공기. 2002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고영민(41) 씨의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창비 펴냄)은 표제시가 주는 느낌처럼 전체적으로 따뜻하다.
시인의 일상과 추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60여 편의 수록작들은 잔잔한 웃음과 애틋한 슬픔을 동시에 주고 있다.
웃음과 슬픔을 자아내는 시편 속에 담긴 주된 감성은 고향과 부모님,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함께한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릴 적 나도 호되게 생선가시 하나가 목에 걸린 적이 있다 밥이 삼켜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직접 밥 한 숟가락을 떠 꿀꺽, 씹지도 않고 삼켜 보였다 그리고 아, 입을 벌려 당신의 입속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당신의 입속' 중)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서 출발했지만 단지 뒤를 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한 성찰로 뻗어나간다.
시골집에서 상자에 찰옥수수를 담아
소포로 보내왔다
포장이 단정하다
옥수수를 내려다보니
옥수수는 단단히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
몇겹 포장지에 겹 싸여 있다
포장지를 벗기니
다칠까
또, 실뭉치가 가득하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여
옥수수는 이토록 스스로를 꼭 감싸안았을까
나는 나를
이만큼 사랑하지 못했다('푸른 고치')
빨간 헬멧에서 앵두를, 검어진 유두에서 머루를 떠올리는 시인의 독특한 연상법은 선명하고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앵두' 중)
너도 나처럼
유두가 검고,
머루는 익고,
너는 새끼를 두 번 지우고
유두가 검어졌대지('머루' 중)
<연합뉴스> 2009.01.20.
이와 더불어 기다렸던 『2009 신춘문예 당선시집』출간 소식과 시는 아니지만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간 소식을 전한다.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문학세계사에서 펴낸 것으로 2000년 ~ 2008년까지의 것을 가지고 있고, 1990년대의 것은 태학사에서 모은 것을 가지고 있다.(1990~1999년까지의 당선작들을 모았다.) 매년 사 모으고는 있는데, 자료 삼아 싸놓고 있을 따름이다. 이와 더불어 어느 늦깎이 시인의 등단 소식을 깜짝 뉴스로 올라온 것이 있어 덧붙인다.
2009 신춘문예 당선시집 출간
올해 새로운 시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2009 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 펴냄)이 22일 출간됐다.
문화일보 당선작인 강지희 씨의 '즐거운 장례식'을 비롯해 9개 중앙ㆍ지방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9편의 시와 5편의 시조가 실렸다.
또 당선자들의 신작시 5편씩과 당선소감, 심사평도 함께 실려 새내기 시인들의 시적 경향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1990년부터 매년 출간되고 있는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시인 지망생들의 호응 속에 매권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자리잡고 있다.
<연합뉴스> 2009.01.22.
올해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간
올해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문학사상 펴냄)이 21일 출간됐다.
이번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인 김연수의 표제작을 비롯해 작가가 고른 대표작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문학적 자서전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 15매' 등이 수록됐다.
이번 이상문학상의 심사경위와 김윤식, 윤후명, 권영민, 조성기, 최윤 등 심사위원 5명의 심사평, 문학평론가 김형중, 손정수가 각각 쓴 김연수의 작품론과 작가론도 함께 담겼다.
이와 함께 우수상 수상작인 이혜경의 '그리고, 축제', 정지아의 '봄날 오후, 과부 셋', 공선옥의 '보리밭에 부는 바람', 전성태의 '두 번째 왈츠', 조용호의 '신천옹', 박민규의 '절(龍龍+龍龍)', 윤이형의 '완전한 항해'가 수록됐다.
<연합뉴스> 2009.01.21.
"시골 건강원 주인 시인 됐네"
붉은 맨살로 쌓인다. 얼굴 수줍어 흰 가리개 속 선녀 같은, 아낙네에 부드러운 손안 들어서, 청정한 괴산 땅, 붉은 고추들이 동산 이루어 쌓인다('괴산청결고추 축제' 중에서)
환갑을 지난 나이에도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서 감초식약 동원당이라는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안(61.사단법인 한국추출가공식품협회 충북명예회장) 씨가 최근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 화제가 되고 있다.
김씨는 '괴산청결고추 축제', '탄생', '미움은 정든다', '천사 닮은 달', '사철 푸른 몸', '산딸기 입술' 등 주옥같은 6편의 시가 서울문학예술상 신인상 공모에서 당선돼 지난 13일 당선증을 받았고 이 시들은 문학예술 봄호(2월)에 실릴 예정이다.
그는 '천사 닮은 달'에서 아내들이 고생하는 마음을 표현했고, '탄생'에서는 빈손으로 태어나 늙어서도 빈손으로 가는 인생을 노래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김씨는 젊어서는 유선사업을 하는 부모의 일을 돕다가 건강원을 운영하게 됐는데 요즘에는 난초와 수석 모으는 취미에 흠뻑 빠져 있다.
특히 괴산을 흐르는 괴강에서 부모의 유선사업을 돕던 1967-1981년 사이 익사 직전에 있던 피서객 30여명을 구조, 보건사회부장관 표창을 비롯해 수 많은 상을 받는 등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해 물개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1975년께부터 사물을 보는 눈이 뜨이고, 행한 보람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자아와 보고 느낀 점 등을 일기로 옮기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이를 농축시키고 혼을 불어 넣어 수필과 시로 승화시켰다.
아름답고 행복한 봉사자를 자임한 그는 기쁜 자리, 슬픈 자리를 찾아 시를 낭송하면서 이웃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김씨는 "산자수려한 괴산을 고향으로 가진 점, 그리고 괴산문인협회에 가입해 문학을 공부하면서 글을 다듬은 것이 시인이 됐다"며 "앞으로도 한국춘란과 수석을 얻기 위해 산과 강을 많이 다니면서 좋은 시를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