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WBC 대만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이진영의 만루 홈런을 앞세워 9 : 0의 대승을 거뒀다. 우리 언론도 그렇지만, 역시나 일본 언론에서는 여간 호들갑이 아니었다. 다음(DAUM)에 올라온 기사 중에 "日언론 '이진영 특대 아치, 이것이 올림픽 패자의 힘'"(<조이뉴스24>)이란 기사가 있었다. 가관인 것은 이 기사에 달린 의견 중 하나다. '호돌이'란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안쓰러운 듯이 "올림픽 패자가 아니고"란 제목으로 댓글을 달았다. 내용은?
"올림픽 승자다...아 답답하다..."
이 댓글에 추천이 55나 됐고, 댓글이 151개가 달렸다. 151개의 댓글이 하나같이 성토의 글인것으로 봐서 55라는 추천수는 다분히 냉소적이다.
'호돌이'란 사람을 답답하게 한 것은 이 기사를 쓴 기자가 아니고, 다른 데에 있었다. 이 기사의 소제목에 그 단초가 있었다.
'이것이 올림픽 패자(覇者)의 힘.'
이 소제목에서 '패자'라는 단어의 한자를 보면, '覇', '으뜸'이란 뜻을 가진 '패'이다. '호돌이'란 사람이 이해한 것은 다른 '패'다. '패'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법한 것이 있으니, 바로 '敗'다. 훈음은 '패할 패'가 된다.
여기에 간략히 '패'로 발음되는 동음어 몇 가지를 구분하여 정리해 보도록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패'의 동음어로 5개의 표제어가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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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01(敗)[패ː]
[Ⅰ]「명사」
어떤 일을 실패함. 또는 싸움이나 승부를 가리는 경기 등에서 짐.
[Ⅱ]「의존명사」
운동 경기에서, 진 횟수를 세는 단위.
패02(牌)
「명사」
「1」어떤 사물의 이름, 성분, 특징 따위를 알리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거나 새긴 종이나 나무, 쇠붙이 따위의 조그마한 조각. ≒표패(標牌).
「2」주로 좋지 못한 일로 인하여 붙게 되는 별명.
「3」어떤 표적으로 만든 쇠붙이.
패03(牌)
「명사」
「1」같이 어울려 다니는 사람의 무리. ≒패당「1」.
「2」((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무리를 세는 단위.
「3」『역사』입번(入番)할 때 번(番)을 갈아서던 한 무리. 대개 40~50명이 한 조를 이룬다.
「4」『역사』군대의 가장 작은 부대를 이르던 말. 입번한 그대로 군대를 편성한 데서 유래한다. ≒패당「2」.
패04(牌)
「명사」『역사』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중국 동북 지방에 조직한 보갑 제도의 말단 조직. 열 집씩 묶어 놓은 것으로, 한 패 속에서 한 집이라도 인민군과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면 모두가 처벌을 받게 하였다.
패05(霸)[패ː]
[Ⅰ]「명사」
「1」남을 교묘히 속이는 꾀.
「2」『운동』바둑에서, 서로 한 수씩 걸러 가면서 두어 잡으려고 하는 한 집. 또는 그렇게 된 경우.
[Ⅱ]「의존명사」『북한어』
‘판01[Ⅱ]「2」’의 북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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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기사에서 쓰인 '패(霸)'의 의미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패'는 홀로 쓰이는 일이 거의 없기때문이다. '연패(連覇), 패자(霸者), 제패(制覇)' 등으로 결합한 형태로만 쓰이고 있다.
패05의 「2」와 같이 바둑에서의 '패'를 가리킬 때에도 覇를 쓴다. '팻감(覇ㅅ감), 만패불청(萬霸不聽)'과 같이 쓰인다. 그런데 '패(覇)+감'이 '팻감'이 되는 것은 좀 안쓰럽다. 사이시옷 표기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것이다.
화투를 칠 때 쓰이는 '패'는 패02에서 찾을 수 있고, 패04는 패03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어쨌거나, '호돌이'란 사람이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확실히 해두자. 승자(勝者)의 반대는 패자(敗者)이고, 유의어는 패자(覇者)이다. 그런데, 승(勝)과 패(覇)는 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한국은 전승(全勝)으로 금메달을 땄다. 9경기였던가? 이때 한국은 9번이나 승자(勝者)가 된 것이다. 1번의 패자(覇者)가 됐다. 올림픽의 패자(覇者)가 되기위해서 9번의 승자가 되었어야 했으니까.
敗/覇와 관련해서 좀더 잘(?) 혼동할 수 있는 것은 연패(連敗)와 연패(連覇)다. 거의 반대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도 큰 차이가 있다. 연패(連敗)는 어떤 경기나 싸움에서 연이어 지는 것을 말한다. 연패를 하더라도 패자(覇者)는 될 수 있다. 연패(連覇)는 우리가 다음 올림픽에서도 야구 우승을 한다면,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한국, 올림픽 야구 2연패(連覇)'.
'호돌이'란 사람에게 한자도 모르느냐고, 욕할 일은 아니다. 문맥이나 상황 속에서 이 단어는 충분히 제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우리는 이 의미를 잘 구분해서 이해한다.) 하지만, 어떤 제목이나 짧은 문구에서 단독으로 쓰일 때, 혹은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 할 때, 이런 오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한자 하나 병기해 주는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뭐, 대강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