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시인은 누구일까? 그는 바로 이기형 시인이다. 이기형? '아 「낙화」를 쓴?' 시인은 이형기 시인이다. 이형기 시인은 2005년에 작고했지만, 이기형 시인은 그 보다도 연배가 높다. 1927년 생이니까 올해 아흔세 살의 老老 시인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설다. 아무튼 최고령 시인의 '늙지 않은' 시혼이 다시 불탔다. 가장 '늙은' 시인의 아흔 둥이가 태어났으니, 이건 망령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새생명은 귀하다. 그의 시도 그렇다. <경향신문>(2009년 1월 17일)에서는 단신으로 이 소식을 전했는데, <연합뉴스>에 보다 세세한 소식이 있어 옮겨 놓는다. 더불어 얼마 전에 고은 시인은 산문집 출간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고은 시인의 시작 50년의 정수를 김형수 시인이 엮은 시선집 『오십 년의 사춘기』가 출간됐다는 소식도 함께 옮긴다. 

신작 낸 최고령 시인 이기형
"젊은 시인들, 통일문제에 관심 가졌으면" 

 "이 나이에도 여전히 매순간 시가 터져나옵니다. 죽는 순간까지 시를 쓸 것입니다"
'통일시인' 이기형 시인이 열 번째 신작시집 '절정의 노래'(들꽃 펴냄)를 출간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세 살이 된 이씨는 지난해 시집을 낸 황금찬 시인보다도 한 살이 많은 국내 최고령 현역 시인이다.

망백(望百)을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풍채도, 목소리도 정정한 이씨는 "'해연이 날아온다' 이후 불과 1년 9개월 만에 내는 시집이라서 태작이라 빈축을 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며 "그러나 단 한 편도 억지로 쓴 것이 없고 스스로 터져나온 것들"이라고 말했다.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이씨는 도쿄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에서 2년간 수학한 후 1947년 '민주조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후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하다가 33년 만인 1980년 다시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남북이 분단되고, 친일정권이 들어선 잘못된 세상에서는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60세를 넘기고 친구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 속에 담기 시작했던 시인은 이후 재야 민주화 통일운동에 참여하며 현실참여적인 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1989년에는 시집 '지리산'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북쪽에 어머니와 처, 아들, 딸을 둔 채 월남한 시인에게 가장 큰 시적 관심사는 '통일'이다.

통일에 대한 염원은 이번 시집에서도 짙게 묻어난다.

    오늘을 사는 형제들아
    언제까지 분단 순응이 미덕일까
    사천만이 손에 손을 잡고
    막힘의 봇물은 터 주고
    통일과 평화의 성문은 열어 젖혀야 할지니
    백두 성산 해돋이를 가슴에 품고 떠난다
('해돋이를 가슴에 품고' 중) 

이미 백발이 된 북쪽 딸은 2003년과 2005년 시인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만났지만 어머니와 아내는 분단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말았다.

    조국 해방 싸움에 생이별 36년만에
    슬픈 사연 많은 삶을 접고
    차마 감아지지 않는 눈을 감았다고
    망백 나이 허망한 세상
    그대 높은 혼령 앞에
    구만리  장천을 바라 터지는 가슴
    내 뭔 말 하리오
('북쪽 아내에게' 중) 

경색된 남북관계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날선 비판을 시집 속에 담아낸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이 통일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한다. 

 

 

 



"젊은 시인들은 내 시를 보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요즘 시인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침잠해서 헤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문학적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역사,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학교에서부터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인은 해방 후 동신일보, 중외신보, 민주조선, 농민신문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김구, 이승만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김남천, 임화, 안회남 등 월북문인들을 가까이 지켜봤기 때문에 우리 근대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경험한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이를 증언해야할 책임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주위에서 회고록을 쓰라는 권유도 많은데 아직도 다른 일이 많아서 선뜻 손대지 못하고 있네요. 꼭 써야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언젠가 꼭 기록으로 남길 작정입니다"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고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며 "여러 문학행사와 통일행사에 참여해 낭송했던 80여 편의 기념시를 모아 올 봄 새로운 시집을 한 권 더 묶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9.01.16. 

<고은 詩의 정수를 만나다>
시선집 '오십 년의 사춘기' 출간

고은 시인의 시력(詩歷)은 한국 현대시 역사의 딱 절반이다.

그 반백 년의 기간에 시인이 이뤄낸 문학적 성취는 그 깊이도 깊이지만 양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간간히 쓴 소설과 산문, 평론까지 포함하면 고은 시인의 저서는 150여 권에 이르기 때문에 뒤늦게 고은이라는 산에 올라보려고 마음 먹은 독자들도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헤매기 십상이다.

'오십 년의 사춘기'(문학동네 펴냄)는 이렇게 만만치 않은 고은 문학의 성취를 후배 문인이 고른 고은 시의 정수(精髓)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게 한 시선집이다.

시인 겸 소설가, 평론가인 김형수 씨는 고은 시인이 1960년 펴낸 첫 시집 '피안감성'부터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맞아 내놓은 '허공'까지 전작을 통틀어 "그의 문학적 유골로 추정될 몇 토막"을 추려낸다.

고은 시인의 50년을 세 시기로 나누고 여기에 고은 시인의 역작인 '만인보' 수록 작품들을 따로 묶어 총 4부에 걸쳐 66편의 시를 담았다.

'허무주의'로 특징 지워지던 시인의 초기 시에는 생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면 중기라고 할 수 있는 1970-1990년대의 시에는 뼈아픈 현실 인식이 반영됐다.

중기 시 가운데에는 2002년 김영사에서 출간한 고은 전집에는 빠졌던 '벽시'도 수록됐다. 1980년 '실천문학' 창간호에 '무단'이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시다.

    오오 두근거림으로 그리움으로 오랜 세월 흘긴 눈 원한으로
    우리가 모든 거짓과 깡패 쫓아낸 자리에
    아픔의 시여 아픔으로 읽는 시여 진리의 울음이여
    어떤 신놈도 어떤 우상놈도 지우지 못하는 민중의 시가 되자
    시인이여 마지막 진실이여
    오오 어이할 수 없이 열렬한 향기의 인내인 밤이 가면 새벽인 담벼락이여
('벽시' 중) 

김 시인은 "국민적 애송시가 된 것들을 찾아서 모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오판이었다"며 "답답한 시대의 기슭에서 귀신이 쓴 시를 발견한 느낌이던 옛 감동의 기억들을 줄 세우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하고 후기를 밝히기도 했다. 

<연합뉴스> 2009.01.14.

김영사에서 2002년에 펴냈다는 고은 전집을 알라딘에서 찾지 못 했다. 어쩌면 그것을 찾지 않아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것은 전집이 아닌 셈이 되어버렸으니까. 지금부터 좀더 착실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고은 시인의 전집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고은 시인의 그 방대한 시적 결과들만 아울러도 엄청난 양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한국 시문학사에 있어 걸죽한 한 이름임에는 분명하니까, 그의 오롯한 전집을 기다리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에 다름이다. 아직 살아계신 분한테 이 무슨 망발? 아참, 비슷한 의미에서 신경림 시인의 전집도 이른감이 있었다. 제대로된 전집이 아직 나올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감사한 일임은 분명하다. 

 <고은 시인의 세상 보기> 
고은 에세이 '개념의 숲' 출간

"광기 : 예술에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에 반드시 불필요하다." "시 : 시는 17세부터 나의 북극성이다. 시는 나에게 길을 걸어가는 자이게 한다."
고은 시인이 여러 개념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한 철학 에세이 '개념의 숲'(신원문화사 펴냄)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250여 개의 단어에 대한 시인만의 사유가 간결하게 담겨있다.

시인은 '절대'라는 단어에 대해 "만약 절대에 갇혀 있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자유하겠는가. 다행히도, 대지에 절대가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절대가 없다. 절대는 무(無)이다. 있는 것은 오직 상대를 벗어나려는 바닥 모를 욕망이 있을 뿐이다"라는 단상을 풀어냈다.

'정의'에 대해서는 "정의는 힘인가. 아니, 정의는 가장 힘 있는 꿈인가.", '미래'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미래에 내맡겼구나. 미지의 미래야말로 얼마나 나를 도취하게 하고 얼마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는가."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제시어에 대해서는 "인간을 정의하지 말자. 인간은 개념화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에세이집에는 시인이 그간 일간지에 연재했던 산문과 함께 지난해 시인이 등단 50주년을 맞아 열었던 그림전 '동사를 그리다'에서 선보인 35점의 그림도 수록돼 있다. 

<연합뉴스> 2009.01.09.

'고독은 인간에 남겨진 유일한 육친'… 고은式 개념사전
고은 에세이집'개념의 숲'… 김형수가 엮은 고은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도 

시집 50여 권을 포함한 저작이 200여 권을 헤아린다는, 그것을 셈할 시간에 차라리 무언가를 쓰거나 읽는다는, 다산성의 문필가 고은(76) 시인이 저작 목록에 또 두 권의 책을 보탰다. 에세이집 <개념의 숲>(신원문화사 발행)과 평론가 김형수씨가 엮은 그의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문학동네 발행)다.

<개념의 숲>은 수년 전 프랑스의 한 출판사에서 고은 시인을 포함한 세계의 지식인 20여명에게 250여 개의 개념어를 지정해주고 그 풀이를 요청해와 만들어진, 일종의 '고은 식 개념어 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고은 시인의 시적 상상력의 토대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절묘한 비유와 수사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고독은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육친이다'(고독),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육체이다. 그러나 부상 당한 육체이다'(혼),'이것은 인간의 자(尺)이다'(죄책감),'나는 말한다. 환상은 내 반려자라고'(환상2)와 같이 인생과 예술에 대한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가, '소수 민족의 비애가 있는 한 세계는 비애의 행성이다'(마이너리티), '신경증은 문명의 선물이다/ 현대인 전체/ 네티즌 전체가 신경증의 친구이다'(신경증),'서구인에게 세계는 서구였고, 서구의 부록인 오리엔트가 있다'(서구)와 같이 역사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어린 시절 먼 길의 가로수 포플러나무, 또는 겨울밤 별들'(영원), '두고온 꽃'(순결)처럼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낭만적 아포리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청탁을 받은 뒤 일필휘지로 달려 이 책을 썼다는 시인은 "지금 쓰면 또 다를 것이다. 멋대로 적어봤다"고 했는데, 그 같은 겸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에세이집은 멋대로 쓴다는 것 혹은 빨리 쓴다는 것이 대충 쓴다는 것과 등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에 실린'꽃대궐' '어느 부부'등 지난해 9월 그가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열었던 그림전시회에 내놓았던 작품 35점도 특별한 볼거리다.  



"어떤 텍스트를 선정해도 흐르는 강에서 한 바가지를 퍼오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는 선자(選者) 김형수씨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고은 시인의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는 국맛을 보려 할 때는 한 국자로도 충분하다는 옛말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고은 시의 고갱이들을 벼려놓았다.

김씨는 고은 시인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누고 여기에 그의 기념비적 인물시집인 <만인보> 수록작품을 따로 묶어, 4부에 걸쳐 66편의 시를 담았다. '언제나 오는 것은 없고 떠나는 것뿐이다'같은, 불가에 귀의한 20대 젊은 사내의 뼛속깊은 쓸쓸함이 구절마다 스며있는 등단작 '폐결핵'(1958)을 비롯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화살')과 같이 강렬한 현실참여 의지를 드러낸 1970~80년대의 작품들, '소월 형/ 지용 형/ 당신네들 어렴풋이 알았을거요/ 인류 맨 처음의 언어가/ 아아/ 였던 것'('눈 내리는 날')처럼 시인으로 걸어온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근작시까지 그의 시력(詩歷) 50년의 전모를 한눈에 톺아볼 만한 시들을 모았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완간을 위해 경기 안성 자택에서 시작에 몰두하고 있다. 30권을 목표로 한 이 시집은 현재 26권까지 나왔다. 그는"올해초부터 사람 만나는 것도 사절하고 이 안에만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국일보> 200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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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1-18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오랫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1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에도 자신의 스물을 부정하는 사람이 천지인 세상에서 아흔에도 자신의 젊은 날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인듯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고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건강 비결" → 저도 맑은 정신으로 죽는날까지 버티려면 술좀 줄여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