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 기독교가 정신을 못 차렸나보다. 하긴 애초에 한국 기독교는 정신을 차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혀서는 자기들만이 지고지선이었으니 말이다. 그간의 세찬 몰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떳떳이 버티더니, 언제 맞았나 모르게, 요샌 더 발광을 하는 듯 하다. 가만 보면 이들이 이러는 데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하늘이 아닌 다른 데) 있는 것도 같다.

먼저 내가 서두에 "(우리) 기독교"라고 가로 안에 살포시 '우리'를 집어넣은 데에 대한 의도를 밝혀야겠다. 나 자신 '심정적'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교회=기독교'가 된 지금 겉으로 난 기독교인이 아닐지 모르지만, 어려서는 교회를 다녔고, 몇 년 전부터는 여차저차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지금도 나는 여저히 심정적으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멋진 말을 생각해 놨는데, 그게 바로 "다원적 기독교"라는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내 종교를 물을 때 '기독교' 앞에 꼭 이 수사를 붙여 대답하는 버릇이 생겼다. 멋지잖은가? 기독교가 다원적일 수 있다면.

참 세월이 하수상해서 100일이 100년 같다는 자조섞인 우스개소리도 나오는 판국이다. 나 조차도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아프간에서 피랍되고 살해된 사건이 언제적 일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가 무진장 욕을 먹었다. 자성의 목소리도 분명 있었다.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 방식에 대해 여러모로 문제가 제기되었고,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내가 볼 때, 이때의 기독교 비판이 기독교의 총체적 문제들을 건드리지는 못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렇게 발광하는 몇몇 인사들이 살아남아 있는 것은.

이후 우리의 '공영방송' 문화방송에서는 이 기독교(특히 개신교)의 오랜 문제였던, 세금, 탈세, 족벌체제, 세습 등의 문제를 추적 보도하면서, 한국 교회들에 공격을 가한다. 여론은 급격하게 달아오르고, 내가 볼 때 한국 교회는 찍소리 못하고 KO 직전까지 간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 대형교회, 특히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 일부의 문제로 치부되면서 오래지 않아 유야무야된 듯 하다. 순복음교회의 다소간 쇼맨쉽 덕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국 여기서도 살아남았다. 삼성의 쇄신책은 어쩌면 순복음교회의 전례를 따온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그때 조용기 목사도 좀 쇄신한다는 뜻에서였는지 은퇴를 선언했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요새 들리는 소식으로는 조용기 목사가 신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에 일선으로 되돌아올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이들은 다시 살아 남았고, 어느새 이것도 좀 잠잠해졌다.

그러는 사이에, 리처드 도킨스 등의 저작들이 유명세를 탔다. 아프간 피랍, 문화방송의 기독교 비판 등과 더불어 기독교(나아가 종교)의 허구를 논리적으로 문제삼는 도킨스의 저작(특히 『만들어진 신』)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면적이 되지는 못했던 듯 하다.

일련의 기독교 문제들은 최근에 생겨난 것이 전혀 아니다. 말하자면 고질병이랄 수 있는데, 좀체 그것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일부 기독교 지배층들의 고도의 정치적 수단의 강구로 말미암아, 유야무야되어 온 것이다. 한국 기독교 초기의 부흥의 물결 속에 성령이 불같이 강림하사 온 천하에 예수천국이 건설된 것만은 아니다. 성령의 강림도, 부흥의 물결도, 간혹 정치적 유착의 구름과 배를 타고야 가능했던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이 단지 신앙의 힘만으로 가능했다고 주장할 사람은 여전히 살아남아 발광하는 그들뿐일테다.

문제는 알게 모르게 작동해온 기독교의 정치적 유착관계가 드디어 본격화(상스럽게 말하면 '대놓고')가 뻔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그간의 기독교 비판은 전혀 아랑곳없이 대담하게 말이다. 그 기점으로 본다면 바로 장로 대통령의 탄생 전후라고 보여진다. 온갖 기독교를 가장한 무리들이 절실히 장로 대통령을 염원했고, 마침내 거룩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장로 대통령이 탄생했다. 마치 무슨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의 등장처럼 그들은 가열차게 기뻐했다.

이전에도 기독교의 몰지각한 정치적 행태들은 여전했었다. 지극히 친미적이고 반북적인 이념의 불쑤시개를 휘젖어 왔던 그들이, 드디어 정권을 잡아 쏟아내놓는 배설물들이 온 세상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쯤해서 그들은 두 가지를 믿는 것이 드러났다. 하나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삼위일체 포함)이고, 또 하나는 이 땅을 하나님께 봉헌할 장로 대통령이다. 장로 대통령의 자신의 제사장들을 몇몇 내각에 포함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진 해도 최근의 촛불집회가 정치권 일각에서 그 배후를 의심받아 오다가, 그것이 터무니없는 소리임이 판명나서, 그들도 말을 바꾸었다. 그런데 다시 장로 대통령의 호위부대를 자처하는 장로 대통령의 제사장들이 나서서 다시 배후론을 조장한다. 말이 좋아 배후론이지, 이 배후론은 '사탄론'으로 결집된다. '사탄론' 일파만파. 친북, 좌파, 용공으로 안 돼서, 허공을 떠도는 사탄이 배후라는, 전근대적 발상, 아니 고대 토테, 애니적 발상으로 무장한 제사장들이 장로 대통령의 친위부대를 자처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수십만에 달하는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조 목사를 필두로 감리교의 수장격이 김 목사, 장로 대통령의 내각에 입각한 추 목사 등이 그들이다. 말하자면 기독교(일부 대형교회 개신교) 무리들을 결집해 장로 대통령을 호위하자는 계산일 게다. 어쩌면 이들은 개신교 VS 비개신교의 싸움으로 현 정국을 몰아갈 심산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쪽수에서 밀리는 개신교는 발악을 하다가, 결국 안되면 종교 탄압으로 몰아갈지 모르겠다. 여하간 이들이 지켜야 할 것은 이땅을 봉헌할 장로 대통령일 따름이다.

한국 기독교(특히 개신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전략은 크게 밀착화, 정치화, 특성화(차별화)라고 생각된다. 나라 곳곳, 도심과 시골을 막론하고 이것저곳에 붉은 십자가를 밝히며 그물망처럼 온 땅에 기독교를 퍼트리는 이들은 사람들과 가깝게 밀착해왔다. 이것은 정치적 유착을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타 종교와 좋게 말해 특성화를 해왔다. 말이 좋아 특성화는 이것은 지극히 극단적인 차별화였다. 천주교도 이단이고, 불교도 이단이고, 지들과 다른 것은 죄다 '틀린 것', 바로 이단이었다. 이단은 처부서야할 대상일 따름이다. 기독교에서 열성적 부흥성회에서 불려지는 노래 중에는 이런 노랫말도 있다.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원수를 완전히 물리쳐서 승리를 외치며 찬양하세" 어쩌구 하는 노래다. 좀더 강렬하게 개사를 해서 부리기도 하는데, '물리쳐서'를 '밟아 어쩌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결국 그들을 사랑으로 포용하라고 한 것인데, 이 노래는 좀 문제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기독교 내에서도 좀 기피하는 모양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의 기독교 행각은 지극히 이 노랫말 대로다.

그렇잖은가? 촛불집회에 모인 사탄들. 그들은 밟아 없애야할 못된 것들일 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염력은 지극히 커서 이들의 말 한마디에 목숨도 내걸 신도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발언을 있는 그대로 '아멘'으로 받아드시는 신도들이 수십만에 이른다. 이들은 성령의 전신갑주를 해입고 사탄과 전투에 임해, 가히 일당백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태세다. 이들을 촛불집회에 모인 사탄들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개신교의 순한 양들을 매도하자는 목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나도 강력한 염력을 발휘하시는 조 목사, 김 목사 들일 뿐이다. 결국은 그들을 끌어내려야 이 나라 기독교가 바로 설 것이다. 여태까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올곧이 그들이 감내했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들이 여전히 살아 발광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닌가?

나는 그래서, 최근 조중동과 관련하여 일고 있는 불매운동이 이 몰지각한 기독교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 목사, 김 목사 등이 쥐고 있는 일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불매운동, 이른 바 불신운동으로 이어져서, 그 정권에 아부하는 몰지각한 목사들을 끌어내릴때까지 끝없이 기독교 불매/불신 운동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기독교 비판, 개혁 운동을 유야무야로 만든 가장 큰 인식은, 그것이 기독교 일부의 문제일 뿐, 기독교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 일부로 인해 기독교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꾸 일부로 축소하고, 작은 문제로 치부하면서 곪아터져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곪아 터져서 온 몸으로 번질 지경인데, 어찌 이게 기독교 전체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전신마취를 하고 응급수술에 들어가야할 지경이다.

아마도 일부는 비판받는 그들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아닐까?(최근의 기독교장로회 등)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싸잡아서 욕먹어야한다.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맴돌고 있는 판국에 내부의 목소리가 잘했다고는 못할 것이다. 큰 세력을 형성한 이들의 무리가 너무 거세고 무섭겠지만, 죽을 각오로 이들은 싸웠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사회를 이처럼 골병들게까지는 막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는 당시 이런 무리들을 일컬어 욕설을 퍼부었다. 당대의 통치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구분짓고자 하기도 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란 유명한 말이 성경이 있잖은가? 가이사과 유착하는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에 의해 비판받았다.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종의 불매운동과 어쩌면 맥을 같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로 대통령의 호위부대를 자처하는 일부, 그러나 거대한 기독교 세력에 대해서 이제 예수처럼 강력하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을 때는 아닐까? 욕하면 우리 입이 더러워지니, 좀 효율적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특히 대형교회)에 대한 불매운동, 불신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촛불문화제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촛불집회, 촛불시위로 염연히 불리우고 있다. 그러면서 미친소에 대한 반대의 한 목소리는, 현 정권의 무식한 정책들에 대한 반대, 나아가 정권의 퇴진을 주창하는 목소리까지 가세하고 있다. 조중동에 대한 비판, 절독, 그 신문들에 광고를 내는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불신 불매 운동과 구호가 여기저기로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하나를 더 추가해야할 것이다. 기독교 불매/불신 운동이 그것이다.

염려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언제나 순전한 기독교가 싸잡아 욕먹는 것이긴 하다. 구분하자면, 한국의 대형교회들, 헛소리하는 목사들, 뉴라이트라고 뻘짓하는 인간들에 대한 불매/불신 운동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책임은 순전한 기독교(기장같은)에 있다. 이들은 불순한 기독교에 차별화되는 닉네임(혹은 프레임)을 개발해야할 것이다. 싸잡아 욕먹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기독교가 거듭나는 마지막 방법의 해법이 이 촛불집회에 있다. 촛불집회는 이제 엄연한 종교개혁 운동으로 우뚝섰다.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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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8-06-10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순오기 2008-06-10 05:35   좋아요 0 | URL
~~ 아멘!

마늘빵 2008-06-1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2008-06-10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사진을 보았습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울어버렸습니다. 그간 무자비한 폭력진압을 보면서도 울컥 했지만 꾹 참았습니다. 짓밟아도, 몽둥이로 내리쳐도, 방패로 찍어도, 물대포로 쏘아대도, 많이 가슴 아프지만, 참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 또 참아서, 마침내 우리 시민이 이기는 그날까지 끝까지 참고 싸워서 이길 때까지. 이 독단과 독선과 반민중의 정권이 항복하고 용서를 빌고, 국민의 말을 들을 때까지, 그 날까지 싸워서 우리가 이긴 날, 그 날 기쁨의 울음을 울어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울어버렸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어린 아이까지 피를 흘려야 하나요? 저 헤맑은 아이의 눈을 보면서 더욱 눈물이 납니다.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요? 저 아이의 머리에서 흐르는 저 붉은 피는 누구때문입니까?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요? 정말 너무합니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고 노인이고 가리지 않는 이 나라, 이 정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 아이에게 어떻게 사죄해야 할까요? 어른들때문에 피흘리는 저 아이에게 무엇으로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저 아이를 안아줄 수도 쳐다볼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아이를 위로하고 안아주어야 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런 참혹한 지경을 그 대통령이란 사람은 알기나 하는 것일까요? 더이상 이 싸움을 웃으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흐릅니다. 참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끝까지 이 무자비하고 무식한 정권과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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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0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끝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

2008-06-06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까 낮에 어떤 분이 "쩐다쩔어" 들어봤냐고 물었는데, 뭐 그런게 있나보다 했죠.

진중권 교수의 진보신당 칼라TV 촛불집회 생중계를 보다가 어느 대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봤는데, 참 적절하게 재밌더군요.ㅎㅎ

원더걸스 테레테테퉤 텔 미 만큼이나 중독강 강합니다.

우리모두 듣고 배우고 익혀서 번개때 한번 쩔게 합창합시다.ㅋㅋㅋ



쩐다 쩔어
작사 : 윤민석 작곡 : 윤민석
제작 : 송앤라이프

1.우리 국민들이 열라 싫다는데
꼭 그래야 하겠니
광우병 쇠고기 먹여야만 하겠니

우리 국민들이 완전 싫다는데
꼭 그래야 하겠니
꼼수를 써가며 대운하 파야겠니

쩐다 쩔어
조삼모사 청와대

쩐다 쩔어
후안무치 조중동

쩐다 쩔어
개념상실 캐안습

쩐다 쩔어

2.우리 국민들이 열라 싫다는데
꼭 그래야 하겠니
국민의료보험 민영화 해야겠니

우리 국민들이 완전 싫다는데
꼭 그래야 하겠니
우열반 가르고 0교시 해야겠니

쩐다 쩔어
조삼모사 청와대

쩐다 쩔어
후안무치 조중동

쩐다 쩔어
개념상실 캐안습

쩐다 쩔어

   
 

노래이야기

 

이 노래의 노랫말에 쓰인

'쩐다 쩔어' 와 '캐안습' 혹은 '열라''완전' 같은 말은

10 대 네티즌들이 쓰는, 말하자면 '비속어'이지만

쥐새끼 한 마리와 그 똘마니들의 행태를 표현하기에는

기가 막히게 딱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려니와,

(중간에 나오는 욕설도 같은 맥락에서 양해해주시길... ^^;;;)

 

굳이 변명하자면,

못난 어른들 탓에 바람 부는 광장으로 나가

가녀린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우리 아이들의 정서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서 굳이 쓴 것이니  

귀에 좀 거슬리시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널리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처럼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신 분들은

위에 적은 말들의 뜻이 궁금하실텐데  

이 참에 아이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는 건 어떨런지요... ^^

 

'정의로운 싸움' 의 현장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송앤라이프 : http://www.cyworld.com/songnlife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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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6-0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이거 너무 웃겨요

마늘빵 2008-06-0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흔히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누군가 아이러닉하게 비유를 붙였습니다. 애초에는 정말로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라고 그들에게 민중은 지팡이를 쥐여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이 쥐여준 그 지팡이로 시민을 때리고, 민중이 준 그 방패로 시민들을 내리 찍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고 있는 그 묵직한 군화는 과연 누구로부터 나온 것일까요? 그 군화로 연약한 여자의 머리가 짓밟혔습니다.

비폭력을 외치며 평화롭게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 얼굴에 대고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고, 몽둥이로 때리며, 도망가는 시민들을 쫓아가 몽둥이로 내리찍고 여럿이 둘러 짓밟습니다. 할아버지고, 여자고, 아이고 없이, 너무나 무참하게 그들은 '진압'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과연 그들이 '민중의 지팡이'입네 할 수 있을까요?

시위가 연일 격해지고 있습니다. 아니 시위 진압이 연일 격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정부와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반정부' 시위라는 말들을 합니다. 예 맞습니다. 이것은 반정부 시위가 분명 맞습니다. 이 나라의 국민, 이 땅의 민중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정부에 맞서는 반정부,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고 독단과 독선으로 국가를 주무르고 있는 대통령과 정권에 맞서는 반대통령, 반정권 시위 맞고도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먼저 물어보아야겠습니다. 국민이 하지 말라는 것을 독단과 독선으로 밀어부치고, 국민의 생명권까지 팔아넘기고, 평화로운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시민들의 얼굴에 피를 흘리게 하고, 쓰러진 여자의 머리를 짓밟고, 노인,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다 잡아가고, 시위하는 사람의 옷을 벗기고, 그 얼굴을 겨냥하여 물대포를 난사하고, 도망가는 이들까지 쫓아가 몽둥이로 때리고 군화로 짓밟고, 시위하는 시민들에게 진압하는 전경들은 욕을 하고, 가만히 있어도 방패가 날아오며, 니들 때문에 잠못잔다고 악이 받친 전경들, 이렇게 시민들이 고통받고 피흘리고 있는데, 아직도 버팅기고 있는 대통령이란 작자. 이것들은 어떻게 말하시겠습니까?

이것은 반민중이요, 반시민, 반국민 행위입니다. 이 정권과 정부와 경찰과 여당이 먼저 반민중, 반시민, 반국민 했던 것 아닙니까? 친정부건 반정부건 그건 국민들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 정권이 반민중할 수 있습니까? 이 정부가 경찰이 반시민할 수 있습니까? 여당이 반국민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이나라의 정권도 정부도 경찰도 여당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반민중 정부, 반시민 경찰, 반국민 여당을 지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정부 맞습니다. 아니 반 반민중 정부 맞습니다.

피 흘리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물대포에 쓰러지고 실신하는 민중들을 보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나서서 이 몰상식과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서, 전경의 몽둥이에 맞고, 군화에 짓밟히고, 옷이 발가벗겨지고, 눈을 실명하고, 방패에 찍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보기만 하면서, 죄스럽게 분노하고, 안타깝게 눈물이 흐르려 합니다. 그러나 울컥하는 눈물을 참아야하겠습니다. 아직은 눈물을 보일 때가 아닐 것입니다. 내 손으로, 우리 손으로, 이 반민중 정부를 정신차리게, 아니 통째로 갈아엎어놓고 나서야, 나는 눈물을 한꺼번에 쏟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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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그러니까 십 만의 시민들이 모인 집회 현장과 거리 행진에 동참하고 12시가 못 되어 돌아왔다. 돌아와서 소식을 들어보니, 이루 말 할 수 없는 분노와 함께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못내 죄스러움을 느낀다. 그 현장에서 끝까지 남아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죄스러움. 아마도 5.18의 공간에 동참하지 못한 이들이 가지는 부채감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러나 오늘도 이 "상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동참하지 못하고, 이렇게 나마 넋두리를 하고 있는 내가 못내 가엾다.

김명인 교수는 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두고 "상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했다. 그렇다. 세살배기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그 상식을, 이 정부는 외면하고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몰상식의 눈에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 비상식, 무지, 바보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이, 진실이, 민중의 힘이, 끝내는 언제나 이긴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6.10 항쟁이 그러했고, 가슴 아픈 5.18의 기억 또한 그러했으며, 4.19 혁명이 그러함을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싸움도 우리가 이길 것"이 분명하다. 이 몰상식 정부는 우리 시민들에겐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

그러나, 나는 4.19와 5.18이 우리에게 남긴 그 기억들 중에 시민들의 고통과 희생과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21세기 이 사회에서 더이상 사람이 희생되고 고통당하고 아파하고 죽어가서야 변화하고 끝내 이기는, 그런 20세기의 유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몰상식이어도 21세기의 몰상식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21세기의 몰상식은 시위하는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그 무자비하고 무식한 폭력과 억압과 통제를 재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이것을 보면서 이명박 씨가 더 이상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21세기 대통령이란 사람은, 시위하는 시민들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만약 이를 어기는 경찰이나 전경이 있을시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발할 것이라고, 천명해야 하지 않을까? 시위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주건 안 들어주건간에 말이다.

이렇게 가다간, 다시금 역사는 반복된다. 민중은 피를 흘리고, 고통받으며, 죽어가면서도, 이 몰상식한 20세기의 정부와 대통령은 끝내는 몰아내고야 말 것이다. 적어도 이명박 씨가 대통령입네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1세기적으로 무식하거나 멍청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것, 이것은 21세기의 ㄱ, ㄴ, ㄷ이며, a, b, c, d임을 정말 모르는가? 대통령이기를 포기하지 않고서야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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