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2일)은 제33회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한국어문회 주관)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 한자시험 치르시는 분들은 자~알 보시기 바랍니다.

  대학 조교를 하면서, 함께 맡게된 업무가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인천 인하대고사장 담당 실무입니다. 그래서 인하대학교에서 보는 한자시험을 준비하고 고사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토요일의 휴무를 반납해야 하지만, 나름대로 부수입도 되고, 경험도 되고 해서 나쁘지 많은 않습니다.

  한자시험을 담당하다 보니, 접수나 시험 때 저런 아이들이 한글이나 제대로 알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유치원이나 초등1년생 정도로 보이는) 시험을 보겠다고 오는 것을 보면, 대견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그 이면의 학부모들의 극성의 극치가 아닐까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은 한자시험 업무로 출근 전에 잠깐 짬을 내어 글을 올립니다.

  저는 딱 한 번 한자시험을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똑 떨어지고 말았지요. 그 동안 한자에 관심도 많이 가지고, 나름대로 안다고 생각하지만, 한자시험 문제들을 보니 참 어렵기도 하더군요. 제가 지금 본다면 한 3급은 딸 수 있을 않을까 하기도 한데, 2급은 엄두가 나질 않네요. 게다가 한자시험을 담당하고 있는 저에겐 한자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지질 않으니, 지금은 차츰차츰 실력을 쌓아서 나중에 1급에 직접 도전을 해 볼까하기도 한답니다.

  오늘 보는 시험은 <교육급수>입니다. 8급에서 4급을 응시하는 분들이 시험을 보는 날이지요. 시험 보시는 분들 잘 보시기 바라고, 특히 인하대학교에서 보시는 분들은 더욱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인하대학교 고사장은 5호관 서쯕 측면 강의실을 고사장으로 이용합니다. '5서'라고 부르죠. 약간 건물이 복잡해서 찾기가 어려우실 수도 있어요. 간편히 오시는 방법은 고사장 본부가 마련되는 서호관을 찾아 오시면, 안내 편지나 안내요원이 배치되어 있어서 찾기가 보다 수월하실 겁니다. 이점 감안하시기 바라며, 적어도 시험시작 30분 전에 오셔서 고사실을 확인하시고 입실하시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겁니다.

  수험표와 신분증을 꼭 지참하시고, 잃어버리셨을 경우에는 고사본부에서 재발급 받으셔야 한다는거, 잊지 마세요. 제33회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자~~알 보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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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째 내린 비는 비가 아니었다. 악마적 테러리즘이라 불러도 좋을 만치, 9.11 테러보다도 사실은 더욱 위협적인 그런 비. 非였다.

  비가 어쩜 그렇게 무서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기독교도라는 특히 잘 알고 있는) 노아의 홍수라는 성경적 사실로써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연 재해의 역사에서도 이 물은 아주 큰 자리, 그 역사의 장을 마련해 놓고 있다. 불보다 물이 더 무서운 법인 것은 또 새삼 느끼게하는 계절이다.

  비에는 우리가 다양한 속성들을 내포시켜 놓았다. 홍수와 폭우 등에서 그러하듯이 여기에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입혀 놓았으며, 차가운 겨울날의 비에는 인생의 고통을, 촉촉한 봄날의 소나기에는 어렴풋 한 어린날의 추억을, 가을 추적추적거리는 비에는 어느 중년의 쓸쓸함을 달아 놓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사실 인간만이 피하고 막으며 산다. 동물들도 비를 피해 움직이지만 본질적으로 비를 피하지는 않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은 가장 극한적으로 비를 피한다. 비를 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듯이. 대지와 푸른 초장의 풀과 나무들은 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어서일까? 발이 땅 속 깊이 매어있으니 피할길이 없어서인가? 과연 그럴까?

  비 오는 날 비를 맞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움이다. 우리는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기고, 문 밖을 나설 때면 우산을 펼쳐들고, 혹여 바람에 우산이 날아나 갈까봐 꼭 꼭 붙들어 잡고, 행여나 비가 우산의 방패를 피하여 내 몸으로 새어들까봐, 우산의 그늘 밑으로 움츠려든다.

  그런데, 나는 가끔 비를 맞고 싶어진다. 특히 따사로운 봄날에는. 비를 맞는 다는 것은 촉촉히 젖을 수 있다는 것. 촉촉히 젖는다는 것은, 내 마음과 몸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감동적인 한편의 시와 소설을 읽어가는 그 기분처럼 말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아 촉촉해 지는 느낌은 산뜻하고 감동 깊은 글을 만나는 느낌과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요즘 연이어 비를 맞으며 집에 오게 되었다. 이것은 순간 짜증스러움이다. 젖은 옷과 신발, 온 몸을 적셔놓은 빗줄기. 이것은 촉촉히 젖는 느낌은 없다. 그러면 왜 비를 맞은 것이냐? 내 우산을 준비하는 준비성이 적은 탓이던지. 우산을 준비할 수 없었을 때에 비가 테러처럼 낙하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에게는 촉촉히 비에 젖는 저 들판의 한 떨기 야생화처럼, 일 년의 어느 한 날에는 자연스러움으로 비를 맞아보자. 마치 감동의 책 한 권 만나는 그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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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6-07-2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산성비를 많이 맞으면 머리가 빠지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무섭죠. --;;

멜기세덱 2006-07-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산성비!! ㅋㅋ 그걸 몰랐네. 그래도 가끔 한 번 맞아줘도 괜찮지 않을까요...ㅎㅎ
 



서재지수
: 2565점
 
 마이리뷰: 21편
 마이리스트: 5편
 마이페이퍼: 785점
 7분께서 즐겨찾고 있음

  누군가 날 이렇게 '즐겨찾고' 있다. 자그만치 7'분'씩이나. 7분이 나를 즐겨찾고 있는데, 나는 그 귀하신 분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이곳 알라딘 서재에는 좋은 기능이 있어서, 누군가를 '즐겨찾기'에 등록을 해서 단번에 찾아갈 수도 있고(물론 그 사람의 서재를) 또는 누가 나를 자주 찾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여기서 후자의 기능, 곧 누가 나를 즐겨찾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능은 참으로 정당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왜 정당하지 않은가?

  <즐겨찾기>에 대하여

  '즐겨찾기'라는 것은 아마도 인터넷이라는 허공, 혹은 비공간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네트워크를 형성함에 있어, 허공 속을 헤매는 적막함을 벗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기능이라고 본다. 그만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결속을 강화시켜주는 기능이겠다. 이런 좋은 기능을 나 또한 사용하고 있다. 좋은 리뷰와 페이퍼를 남기고 있는 멋진 분들의 서재를 나 또한 즐겨찾기에 등록해 놓고, 하루에도 수시로 찾아뵙고 있는 중이다.

  불합리한 기능 추가

  이런 '즐겨찾기'에 나는 다소 불합리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즐겨찾기를 당한 당사자에게 자기가 즐겨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지 말지를 정하는 권한이 즐겨찾기를 하는 본인에게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왜 불합리한가?

  '즐겨찾기' 하는 사람인가? 당하는 사람인가?

  누가 나를 즐겨찾기 하는가를 알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즐겨찾기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기가 누군가를 즐겨찾고 있음을 알리지 않을 권리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가? 나는 이것이 즐겨찾기 당하는 사람에게 있어야 함이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누가 내 서재를 방문했는지 크게 알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방문자 수가 10명이면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 서재를 방문해서 좋은 것을 얻어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즐겨찾기 수준에 이르면, 당연히 지극히 알고 싶어지고, 그러다보니, 알 권리가 나에게 없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고, 그것은 왠지 불합리해 보이고, 나는 나는, "내 귀의 도청장치가 있다"고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서재를 도청당하는 기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서재를 즐겨찾기에 등록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고, 그들또한 당당히 누구인지를 밝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난 김에 투표를 해 보자.

  누군가를 즐겨찾고 있는지 당사자에게 공개해야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투표기간 : 2007-07-30~2007-07-31 (현재 투표인원 : 47명)

1.
42% (20명)

2.
57% (2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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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6-07-1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 싶던 말을 다 해주셨네요. 1번에 투표했습니다.

마법천자문 2006-07-1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겨찾기 해주시는 건 물론 고맙지만 정확히 어떤 분들인지 모르니까 꼭 감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해리포터7 2006-07-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멜기세댁님! 저두 맨날 이 즐겨찾기 때문에 고민에 빠져듭니다..제가 즐겨찾는걸 공개해? 말어? 하지만 이 알라딘에 서재를 연이유가 저자신에게 외로움을 덜어주려고 맹글어서요..전 뭐 다른님께서 즐겨 찾아주시면 감사합니다. 이러고 기뻐한답니다.ㅎㅎㅎㅎ

마늘빵 2006-07-20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는 접니다.

멜기세덱 2006-07-2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7님 > 물론 찾아주니 고맙죠. 그런데 저는 그분들이 왜 나를 비밀리에 찾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해 지더라구요. ㅎㅎ 혹시 알아요, 절 좋아하는 데 말하진 못하고...그럴까봐요...ㅎㅎ
달의눈물님 > 전 그 사람들과 좀더 긍정적 관계가 이뤄질 수 있으리라고 봐요. 감시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당당히 공개하고 즐겨찾으시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아프락사스님 > 그 하나로 무게추가 확 기울어 버렸어요. 감사!!

멜기세덱 2006-07-2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 님>결국 우산을 파는 아들과 나막신을 파는 아들을 둔 어머니와 같은 슬픔을 가진 건가요.^^ 해법도 그곳에 있겠죠. 나를 즐겨찾아 주는 이들이 과연 누굴까 하는 궁금증은 오히려 행복일 듯 싶어요. 그 궁금증이 이렇게 바람구두님께 찍히는 영광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위의 글이 저를 즐겨찾아 주시는 분들께 괜한 오해 없기만을 바랍니다. 저는 그분들께 고마울 따름이에에요.ㅎㅎ 아웃팅! 전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데요.

sayonara 2006-07-22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갠적으론 궁금하기도 하고, 공개된다는 것이 뭐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1번이지만...
뭐,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니까요... ㅎ

부엉이 2006-07-25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지 늘 궁금해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인듯해요. 넘 변태적인가..^^;;

조선인 2006-07-27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즐겨찾기를 했습니다만, 제가 누굴 즐겨찾고 있는가를 늘 공개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즐겨찾기를 하는 목적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
 

  결혼이란 무엇일까?

  '結婚' 즉 혼인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인다. 혼인이란, 남녀가 부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부부의 관계를 맺는 것이 결혼이다. 부부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일종의 관계맺기이다. 이 관계맺기는 사회의 주된 유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계맺기가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질 때 가능한데, 결혼이라는 관계맺기는 가장 기초적 사회 성립의 단위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결혼에는 따라서 사회성이 크게 작용한다. 흔히들 사랑의 결정으로서의 결혼은 근대적 산물에 불과하다. 아니 그것이 사실적 산물, 실체하는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근대적 관념에 불과하겠다. 현재까지, 결혼에는 사랑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에도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사랑이라는 요소가 이 결혼을 결정짓는데 어느 만큼 작용한는지를 조사해 본다면, 머리를 갸웃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결혼이란 것이 사랑의 결론,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한국전후 7~80년대까지만을 생각해보더라도, 결혼이라는 관계에서 사랑은 그 성립조건이 되지 못했다. 거기에는 사회적 위상과, 상호 가문의 동급성에 따라, 혹은 경제적 여하에 따라 성립되었고, 그 결정과 판단은 부모라는 가부장의 몫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볼 때 결혼은 사랑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라는 결론 도출이 가능한가? 여기에 불만을 갖는다면, 현대라는 시간을 제쳐놓고, 이전까지의 결론으로만 본다면, 인정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결혼에 관여한 것이 사랑이 아닐진대, 성의 문제는 또한 더욱 크게 소외더었다고 볼 수 있다. 성이라는 것이 자손번창, 즉, 유전자번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볼 때에도 결혼은 이 요소와 밀접히 연관되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여기에서는 자손번창의 유리성을 가진 여성의 간택이 중요했을 따름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왕비 간택을 생각하며 확실해지는 듯 하나, 왕비 간택에서 이런 자손번창의 요소는 단지 일부분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결혼에서의 결정 요소는 자손번창도 그 큰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쉽게 결론을 말하자면 결혼이라는 행위, 사회적 관계 맺기에는 원천적으로 사회적 요인만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성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며, 유전자 번식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성의 측면, 여기에도 다양한 요소가 있을테지만, 여기서는 크게 논하지 아니한다.

  얼마전에 <<섹스의 진화>>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섹스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양한 의문점들을 도출하고 해설하고 있다. 나름대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 왜 일부일처제를 택하고, 결혼을 하며, 일생을 한 명의 배우자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사느냐? 그것은 대부분의 동물(인간의 일부를 제외하고, 일부를 포함한)들과는 다르지 않느냐?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물음 들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섹스나 결혼 등을 크게 작용한 요소가 유전자 번식이라는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섹스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유전자 번식을 위한 본능의 작용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 역사의 길을 들어선 후부터는 이 유전자 번식의 목적은 큰 폭으로 축소되어 졌다고 본다.

  여자를 많이 거느리고,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은 사회적 위세를 드러내는 효과적 방법으로 작용했고, 그것은 현재에도 비공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에는 권력과 경제적 부를 드러내는 또다른 측면에서 기능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한 것인지 나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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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점 못 받으면 교사자격증 안준다?
 

[한국일보 2006-07-09 18:51]    

관련기사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8&article_id=0000336883§ion_id=110&menu_id=110

나는 현재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인천소재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같은 과 조교를 하면서 2번째 임용고사를 준비중에 있는, 말하자면 임고준비생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현재 교육부가 추진중이고, 각계에서 찬반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 <교원자격부여 제한> 논란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자 한다.

현재의 교원양성체계를 살펴보면, 복잡해 보이면서도 간단하고 단순하다. 우선 가장 손쉬운 방법이 목적형 대학이라고 하고 사범대학 및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졸업하면 된다. 또는 중등교원의 경우(나는 초등교원 양성 체계에 대해서는 잘 모름으로 여기서는 언급을 가급적 하지않겠다.) 사범대학이 아니더라도 일반 학부 및 학과에서 교직이수를 통해 교원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또는 사범대학의 학과를 복수, 부전공 할 경우 자격증이 부여된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졸업하는 또하나의 손쉬운 방법이 있다. 정리해보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에는 크게 3가지, 즉 사범대학 졸업, 교육대학원 졸업, 그리고 교직이수 등 기타방법이 있다. 이런 관문아닌 관문을 거쳐 교원자격증이 부여되는데 여기에는 거의 유명무실의 '교원자격 무시험 검정'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이것은 거의 졸업심사 수준과 비슷해서, 졸업여건에 충족한지, 또는 교원자격증을 부여하는데 최소한의 결격사유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 그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교원자격증을 무제한 적으로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사범대학 졸업자의 경우만을 놓고 보면(다른 경우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사범대학 진학 자체만으로 이미 교원자격증을 따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졸업하는 데 문제가 없으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사범대학을 졸업한다는 것 또한 별반 어려움이 없다. 학점이 어떠하건 졸업학점만 이수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학사경고을 맞을 정도가 아니면 다 졸업이 가능한 실정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고, 그러하기에 교육계 일각에서 교원자격증 부여에 어느정도의 제한을 두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초등학생에게 "오늘 받아쓰기 70점 못맞으면 집에 못간다."식의 방법으로는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감당해야할 교원을 양성하는 대사에 걸맞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바로 교육부의 무책임성 정책이라는 비난이 또 등장해야 옳다.

지금의 교원양성 현실을 보면, 경쟁력 있는 교원 선발이라는 미명아래 지금의 무분별한 교원자격증 남발을 교육당국이 주도적으로 실행해 왔다. 그래놓고 단 한번의 시험으로 서열을 매기고 그 시험의 성적에 따라 교사로 임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선발된 교사는 바로 경쟁력이 '뛰어난' 교사들인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원양성의 중심이 '양성'에 있지 않고 '선발'에 있다는 것이다. 경쟁력이라는 것은 키워야 하는 것이지, 여러사람가운데서 그나마 난 X을 가려내는데 있지 않다. 그렇다고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순차를 매긴다면 경쟁력을 키워놓고 그 다음에 가려야 하는 것이다. 키울 생각은 안하고 좋은 교사를 뽑겠다는 교육당국의 단순한 생각은 오히려 경쟁력 떨어지는 오늘날의 교육계 현실을 만들어 놓은 주범임에 틀림없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교원자격부여 제한> 논란 또한 이런 측면에서의 교육당국의 무책임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학점이 어느정도는 되어야 교원자격증을 줄 수 있다는 논리는 일반적으로는 매우 타당한 것이지만, 이 결과론적인 방법은 마찬가지 교육당국의 단순무식한 구상이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현재 사범대학의 몇가지 현실을 살펴보면 이것은 왜 무식한 발상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여기저기서 사범대학이 목적형이니 어쩌니 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 목적형 대학이라면 그에 부합되는 특성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하지만, 이 목적형 대학의 유일한 특수성은 교원자격증을 부여한다는 것일 뿐 운영 및 교육일반이 다른 일반대학과 거반 다르지 않다. 일례로 국어교육과와 국문학과의 차이는 국어교사 자격증을 주느냐 주지 않느냐의 차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상에서 외형적으로는 차이가 있어보이지만, 그 속을 보면 또한 별발 다르지 않다. 국어교육과의 과목에는 단순히 '교육론'자가 붙을 분 그 내용이나 성격이 국문학과의 과목과 거의 일치한다. 거기에는 전문적인 교수진의 부족을 큰 이유로 들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교원자격증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한 사범대학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 교육당국의 생각이 아닐까한다.

그런데, 현재 교원양성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교원자격증이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놓은 문제도 있다. 교원자격증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교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치룰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임용시험 응시 자격증에 다르지 않다. 교원자격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어디가서 가르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하늘의 별따가 만큼이나 어렵다는 얘기다. 무분별한 자격증의 남발로 인해 임용시험은 그만큼 경쟁률이 높아졌고, 그것을 통하지 않고는 교사가 되기 매우 힘들다. 임요시험이 아니라면 사립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사립학교를 들어가는 것도 이래저래 임용고사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교육당국은 경쟁력 있는 교사를 '선발'하기 위해 '경쟁률'만 기하급수적으로 높여놓은 것이다. 그러니 자격증이 있으면 무엇하리요?

이런 현실에서 교원자격증을 부여를 제한하느니 하는 발상은 있으나 마나한, 결국 쓸데없는 탁상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며,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만을 대안으로 내놓는, 교육당국. 교원자격증을 부여하는데에 제한을 둔다는 것은 또다른 측면에서 전시행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는데, 이 얼마나 교육당국의 얕은 잔머리 굴리기가 아니겠는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교육당국의 정책은 돈 안드는 경쟁률을 높이는 잔머리를 굴렸고, 이제는 또 돈 안들게 경쟁력 있는 사람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겠다고 학점 제대로 따라고 하는 잔머리를 굴리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다.

학점. 그것은 또한 신뢰할 수 있는가? 나는 신뢰할 수 없다. 현행 대부분의 사범대학에서 전공과목이나 교양선택과목의 경우 상대평가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 또한 문제가 있다. 교사를 양성하는 데에는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자질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상대평가라는 것은 그 전문성과 자질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다시말하면, 전문성과 자질이 충분한 경우에도 교사가 못될 수 있는 반면, 전문성과 자질이 떨어지더라도 전공공부만 잘하면, 즉 학점만 좋으면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상대평가의 맹점이다. 이런 학적을 가지고 교원자격증을 부여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꾸준히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기르게 하고 자질을 함양하며, 좋은 교사를 만들기 위해 교육당국은 전력을 다해야 한다. 우수한 교원양성 교수진을 구성하고, 교육과정도 이에 걸맞게 고쳐야 하며, 우수한 교원을 기르기 위해서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라야 경쟁력이 생기고, 그리고 그들가운데 '선발'해내면 되는 것이다. 이럴때 교사의 경쟁력은 강화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교원자격증을 남발하라는 것은 아니다. 교사로서의 자격이 안된다고 판단될 때는 당연히 자격증을 줘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학점을 가지고 자격이 되느니 안되느니 판단하는 것이 가당키난 한 것인가 말이다. 교육당국은 이런 잔머리 굴리기 이제 벗어버렸으면 한다. 이제라도 교육현실, 교원양성의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할 방법을 구상해야지, 돈안드는 쓸데없는 잔머리만 굴리지 말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교원자격증을 부여하는 데에 그 자격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그 자격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한 후에, 즉 바람직한 교원양성체계의 확립과 대안이 마련된 후에야나 가능한 것이지, 교육당국이 망쳐버린 이 교육현실 안에서는 그것은 어불성설, 말장난, 잔머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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