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임시 상사가 갑자기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어차피 앞으로 길어야 몇 개월 밖에 안 남았으니 '임시 상사' 맞지 않나.( -_-)
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같이 밥을 먹자니.
마주 앉아 밑반찬 주워 먹으며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결혼은 언제해?"
".....ㅡ_ㅡ..."
결혼 안 하는 것을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하게 알고 살아온 나에겐 당혹스러운 오랜만의 질문.
순간, 왜 이런 질문을 하나, 내 나이가 올해 몇이더라 등의 여러 생각이 빛의 속도로 촥- 스쳤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결혼할 일은 없어요. 아니, 못해요.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빌어먹을, 짝이 있어야 생각이라도 하지)"
아, 귀찮다. 상대방이 부연설명을 원하는 표정이 되면,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대충 넘기면, 으레 나이 많은 한국인답게 '그래도 결혼 해야지~' 라고 목적도 이유도 없는 우기기를
자행하거나, '너도 나중엔 생각이 달라질걸~' 하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보이기 때문에, 그 꼴 보기
싫어서라도 나는 부연설명을 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설득력 있고,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서, '난 외계인이라 안 됨'이라는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숟가락으로 맞을 수 있다.. -_-)
"나는....20대 부터 생각해둔 여러 사업도 있고...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전문기술을 한 번에 습득해야
하고.. 난 40 전에 글로벌 사업가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결혼, 내 인생에는 없어요. (없기는 개뿔, -_- 솔직히 말해봐, 눈 뒤집어지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런
마음 안 들을 자신 있어? 응? 하지만, 지금은 안돼. 지금은, 안돼,어쨌든)"
딱 보기에 그저 평범한 학생같이(머리 모양도 고등학생같이 해가지고 -_-) 생긴 녀석이 이런 대찬 소리를
하면 보통은 무시부터 하기 일쑤지만, 이 분은 나한테 그렇게 못한다. 내가 그 동안 보여준 모습들 때문에.
단번에 믿는 눈치다. 오히려 무슨 사업 할 거냐고, 자기한테도 뭐 줄 거 없냐고 그런다.
대충 이야기했다. 어쩌고 저쩌고, 와베와베와베아바바~
국내선 테스트용이고, 진짜 목적은 전부 수입.수출이라고. 줄줄이 다 말하기 싫어서 대충 3개 까지만 말했다.
앞으로 10년 계획이 어떠하기 때문에 나는 놀 시간이 없다고. 연애? 꿈도 못 꾼다. 늘 갈구하면서도!!!!
낮술도 안 먹었구만,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 이야기로 나를 귀찮게 할까봐 너무 오버해서 내 속내를 비췄나?
한 마디 한다.
"넌...무서워.."
ㅡ_ㅡ..!!!
켁, 무,무섭다뇨. 아니, 내가 왜? 야망과 포부를 가진 게 뭔 죄라고...;;;
이런 표현을 전에도 들은 적이 있어서, 아, 조금, 상처스럽다.
전에도 친구가 나의 10년 계획을 듣거나 나의 일 처리 하는 방식, 혹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무섭다는 생각 들은 적 없으세요?"
그러니까, 아, 왜. ㅜ_ㅡ
내가 세계 제일의 악당이 될 거야! 하고 야무진 꿈을 외치는 것도 아니잖아?
어째서 '무섭다'라는 표현을, 그렇게들 쉽게 하는 거야?
결혼 안 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은 '무서운' 건가?
결혼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 사항'이지, 누구나 해야만 하는 '의무 사항'이 아니잖아.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나도 눈물나게 이쁘고 안타깝고 아름다운 사랑 해보고 싶어.
근데, 그게 좀 힘든 거 같단 말이지. 인연이다 싶으면 묘하게 엇나가고, 나는 아무 생각 없는데
혼자서 로맨스 소설 서너 권 쓰고 자빠진 사람들만 주변에 있고,(사랑은 강요로 되는게 아니야)
게다가 내가 먼저 겁이 나서 사랑? 따위 못해.
아, 어릴 때 부터 상처 많이 받아봐. 사람한테 마음 여는 거 쉽지 않아.-_-
에라이~ 지구인답게 사랑 한 번 못해볼 거 사는 거나 멋지고 재밌게 살아야지.
그래서 일한다고. 맨날 죽어라 일만 해. 일 없으면 못 견뎌. 솔직히 일을 좋아하도록 태어났어.
'나는 공부가 제일 재밌어요' 하면 솔직히 좀 재수없지.
'나는 일이 제일 재밌어요' 하면 뭔가 좀 부족한 사람 같아 보여.
왜 그래, 나만큼 노는 거 좋아하는 놈도 없어. 나중에 실컷 놀려고. 아주 화끈하게 거창하게 놀려고
그러는 거야. 사업도 나한테는 일종의 놀이야.(아, 정말 재수없다.-_- 그래도 사실이야..;;)
아, 내가 좋아서 하면 되었지.
"나이 40 되었을 때, 니 마음대로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을 거 같아?"
왜 그래, 정말, 아마추어 같이~
난 할 거야. 두고봐, 멋지게 사랑할 거니까. 결혼은 장담 못 해도.( -_-)
그러니까 제발, 누구도 나한테 결혼 이야기 안 꺼냈으면 좋겠어. 대차게 한 마디 더,
"옛날이나 4,50대가 중년이었죠. 우리가 그 나이 때 되면 지금의 30대 정도 밖에 안 되요.
지금도 봐요. 옛날엔 30대면 완전 아저씨, 아줌마였잖아요. 중년이었다고요.
그런데, 요즘의 3,40대 보면, 그냥 청년이에요. 생각하는 거나 육체적인 거나.
지금, 누가 50대를 중년으로 쳐주는지 알아요? 경로원 가봐요. 70세가 가도 안 받아준대요.
좀 더 있다가 오라고." (이러면 대부분 반론을 못해, 왜? 자기들도 '젊다'에 들어가니까.ㅋ)
청, 중년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늘어난데 비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니까, 나는 20대 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더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간사하게도, 문득 문득 키스따위 하고 싶을 때는 하고 싶기도 해, 연애가.
글쎄, 명동에서 [Free Hug] 간판을 들고 있는 사람한테 냅다 뛰어갈뻔 했다니까..;;;
사랑 말고 좋아하는 것까지, 아슬아슬하게,
깊지 않고 키스하는 것까지, 두근두근하게,
지금 내가 누굴 좋아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빠지면, 내 성격에 다 팽개치고 사랑만 할지도 모르잖아.
태평양의 물을 다 퍼내고 그 생선들을 다 네게 바치겠어, 뭐 이런 미친 짓 할지도 모르잖아.( -_-)
하지만 결혼은 안 할거야, 아니, 못 해.
서로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서 애처롭게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 진하게 포옹할 때의 그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현기증 나는 기쁨을 버릴 순 없는 거야.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소유'하고 난 이후에서 오는
'안도'와 '나태'로 사랑이 식어가는 것 보다는, 늘 왈랑거리는 마음으로 매달리고 싶...
(아, 제길, 방금 누구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고 말았다. 그 사람과 한 집에서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바람에, 흔들리잖아. ㅡ.,ㅡ)
어쨌거나, 난 무서운 사람이 아니야.
그저,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리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