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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경계가 있다.  

새파란 하늘을 가르는 가르고 지나는 구름이라든가,  

허공을 가르는 전선 말고도. 

오르막 좁다란 골목 끝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동네 다닥다닥한 집들에도 

보글보글 된장찌게에 하하호호 웃음 한 바탕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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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2-03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건 그림으로 그리면.. 분위기가 좋을 것 같은...
묘하게 운치 있는데요.
아마, 50년 뒤 혹은 100년 뒤의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저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의 삶과는 별개로
좋다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들이 중세의 그림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무스탕 2010-02-0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진이 요즘(혹은 최근에) 찍으신 사진인가요?
이사 들어가고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저 끝집 건너엔 뭐가 있을까요? 거기부터 시작일까요?


순오기 2010-02-0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데요. 역시 프레이야님.^^

메르헨 2010-02-0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저는 사진을 보니 서글프고...그러네요. 흠...
도시의 한 모퉁이에 웃음이 가득하길 ...
 

초등학생 시절에 언니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는데 엽서를 많이 사모았답니다. 

그걸 보고 자라서인지 중학교 들어가니 저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자주 엽서를 사모았지요. 

제가 들어가면 아저씨가 엽서 새로 들어온 것 있다고 알려주시기도 했어요.  



세로 두번째 줄의 오성과 한음 시리즈는 코팅을 해서 구멍 뚫고 고리로 연결하기까지 했답니다. 한때는 책상 옆 벽에 붙어 있던 녀석들이지요. 약 20여 년 전에 말이에요. 어떤 엽서는 비닐에 싸여 있기도 하고, 저 녀석들을 뒤집어 보면 누군가에게 쓰고서 못 부친, 혹은 누군가에게서 받은 편지 글도 남아 있지요.  

저런 엽서가 상자 하나 가득 있으니 꽤 많아요. 몇 장인지는 세어보지 않았지만요. 

들여다 보면 당시 유행했던 게 뭐였는지도 나온답니다. 88년 달력도 있고, 89년도 땡칠이의 일기~도 있고, 

스누피 시리즈도 보이구요.  

그리고 단골 메뉴는 꽃과 악기가 함께 놓여 있는 풍경이에요. 제법 그림이 되거든요. 저는 특히 바이올린이 나오는 걸 좋아했답니다. 왠지 그럴싸 해 보여서요.  

가끔 엽서에 써져 있는 글귀가 너무 좋아서 일기장 한 귀퉁이에 옮겨 적기도 했었지요. 

그걸 내가 쓴 시인줄 알고 담임샘이 칭찬해주셔서 이실직고한 적도 있답니다.(네, 중1이었는데도 일기 검사가 버젓이 진행 중이었거든요ㅠ.ㅠ) 



홀로서기 엽서 시리즈는 모두 갖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정수리 부분 엽서 한장이 안 보여요ㅠ.ㅠ 엽서가 너무 많아서 찾다가 포기, 한쪽이 비었답니다. 저렇게 늘어놓으니 좀 엽기적이군요. 안에 시가 담겨 있어요. 저걸 다 늘어놓으면 참 기분이 좋았답니다. 발레라는 게 여자 아이들의 '로망'이거든요.  

맨 위 다섯 장의 엽서도 제가 좋아했던 시리즈에요. 다른 엽서보다 좀 비싸긴 했지만 일러스트가 참 맘에 들었거든요. 이야기가 살아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그림이었어요. 모두 천사라고 부르곤 했지요.  

요새는 편지 쓰는 일이 참 드물어졌어요. 저는 중고샵에서 주문을 받으면 구매자 분께 엽서 한장씩 쓰긴 합니다.  

최근에 아주 정성들여 쓴 편지 글을 반은 까칠한 남성이 무려 '반품'을 접수시켜서 대략 버럭이었지만 말입니다. (그 양반이 일주일 째 저를 성질나게 만들고 있어요ㅠ.ㅠ) 

이십 대 때에는 누군가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그곳에서 한국에 있는 나에게 엽서 한장 써달라고 부탁하곤 했지요. 프라하에서 도착한 인상깊은 엽서는 참 소중했어요. 엽서 대신 편지를 쓰거나 엽서를 쓰는 대신 엽서를 사온 친구도 있었지요. 

요새는 우표 한 장이 얼마인지도 모를 만큼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엽서를 부치는 일은 참 드물어졌어요.  

너무나 빨라져버린 문자와 이메일이 몇 배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엽서를 한 장 두 장 사 모으면서 기뻐하던 소녀적 흔적이 제게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겨요.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저 녀석들도 골동품같이 느껴질까요. 옛 기억과 추억과 유행마저도 보여주는 예쁜 친구들을, 덕분에 오랜만에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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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2-10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저도 엽서가 많아요.
아 저 시절의 미적 감각은 왜 저 수준이었을까 싶은 것들이 가득. ㅋㅋㅋ

마노아 2009-02-10 10:43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런 엽서들이 너무 많아서 당황했어요. 땡칠이 수준인 것들이 하나 가득..ㅋㅋ

프레이야 2009-02-10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맞아, 저도 많이 모았어요. 또 있죠.. 성냥곽 모으기요.^^
다방 성냥곽을 몇상자나 모았었죠. 뭐하려고?ㅎㅎ

마노아 2009-02-10 10:43   좋아요 0 | URL
성냥곽도 예쁜 것들이 많았어요. 별로 모을 기회가 많진 않았지만 구경하긴 쉬웠던 것 같아요. ^^

L.SHIN 2009-02-10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천사 엽서 좋은걸요~
저도 예전에 본 기억이 납니다. 너무 너무 예뻐서 정신을 잃고 쳐다보게 되죠.
저도 엽서 모으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도 방을 뒤져보면 어딘가에서 나올까요? (웃음)
그러고보니 요즘은 엽서를 보기가 힘듭니다. 그것도 디지탈에 밀린 탓이겠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마노님의 엽서들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엽서를 써서 보내거나 받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적인 내용들이 공개되잖아요~
엽서나 편지 위의 우표를 통해 세계 여행을 하는 아이들의 어드벤쳐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자, 마노님의 아날로그에게는 ☆☆☆☆

마노아 2009-02-10 10:4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엽서 한 귀퉁이가 접혀서 편지 내용을 감출 수 있게 된 엽서들도 나오곤 했어요. 좀 더 비싼 걸로요^^ㅎㅎㅎ
엽서와 우표 등은 어쩐지 환상의 세계와 잘 어울려용.
제가 엽서를 앞으로도 쭈욱 잘 보관해야겠습니다. ^^

Mephistopheles 2009-02-1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라디오 프로그램엔 인터넷이 아닌 엽서로 사연을 보낸 적이 있었죠..^^
해마다 예쁜 엽서 선발대회 같은 것도 했는데..

마노아 2009-02-10 10:45   좋아요 0 | URL
예쁜 엽서 선발대회~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하고...
제 친구 중에는 이름 공모전에 엽서에 그림까지 잘 그려넣어서 2등 상을 받았는데 상금이 50만원이었답니다.ㅎㅎㅎ

stella.K 2009-02-10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거 침대에 놓고 찍은 거죠? 근데 잘못 보면 꼭 벽에 도배를 한 걸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ㅎㅎ
예전엔 찻집이나 문구점 같은데 가면 예쁜 엽서 있으면 그냥 가져가라고 두기도 하던데,
물론 다 마케팅 전략이긴 하지만...지금도 그런데가 있나 모르겠어요.
이걸 통해서도 세월의 흔적을 볼 수가 있군요.^^

마노아 2009-02-10 21:00   좋아요 0 | URL
침대는 아니고 이불 위에 올려놓고 찍은 거예요. ㅎㅎㅎ
한때 벽에 도배를 하는 꿈을 꾼 적도 있는데 굉장히 지저분할 것 같더라구요.
파란색만 쫙 모으기...이런 망상을 했거든요.
요새도 엽서 비치해 두는 데가 있는 것 같아요. 대학로 설록에서 본 것 같아요.

깐따삐야 2009-02-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추억이 모락모락.^^ 홀로서기 엽서 시리즈는 탐나는데요!

마노아 2009-02-10 21:00   좋아요 0 | URL
홀로서기의 완성은 저 한 장이 좌우하는데 대체 어디 있을까요...ㅎㅎㅎ
 

 

요즘도 석유난로라는 것이 있긴 있는가 보다. 검색창에 석유난로를 치니 모회사에서 나온 신제품 이미지가 있어 퍼와봤다. 

하지만 저거 쓰는 집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희안하게 생긴 두줄짜리 펌푸식 석유 호스로  한쪽은 빨아 들이고 한쪽은 그 빨아들인 석유를 난로에 집어넣는 그 번거로움을 아직 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 자랄 적만 해도 그 추운 겨울을 석유난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희고도 큰 네모난 고무통을 들고 주유소를 찾가는 모습은 그리 낮설지 않은 광경이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저 사진의 난로는 어떻게 석유를 집어 넣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고 우린 한동안 난로라는 것을 잊고 살았더랬다. 외풍이 심한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지금의 공동주택을 와 보니 외풍이 없는 것만으로 우린 한 겨울을 추위 걱정없이 날 수가 있었다. 그때만해도 가스값이 지금만큼이나 비싸지 않아 먼저집에서는 비싼 기름 보일러를 썼지만 지금의 집에선 가스 보일러 썼고, 이사 온 첫해 우린 정말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늘 손발이 찻던 우리 엄마가 이사 오고 그 증세가 없어졌을라고... 

그런데 가스값은 그후 꾸준히 올라 지금은 오히려 전기를 쓰는 것이 가스를 쓰는 것 보다 나을 정도가 됐다. 그래서일까? 결국 우린 이 집도 춥다하여 3년 전 결국 온풍기를 사고야 말았다. 그것을 산 첫해에 그 물건을 쓰고, 작년에 안 쓰다 결국 올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작년에 안 쓴 이유는 온풍기가 건조하여 피부에 안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정말 안 쓰고 버텼다. 

그런데 이 물건 올 겨울을 나는 동안 다시 썼는데 역시 그다지 좋은 줄 모르겠다. 전원을 누르면 3초 안에 금방 훈훈한 기운을 내뿜지만 그 앞만을 따뜻하게 해 줄 뿐 실내 전체를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썼던 석유난로가 생각이 났다. 

혹자는 난로에 석유를 잘못 넣으면 석유냄새가 나 머리가 아픈 수도 있다고 하고, 오래 전 사고중에 난로의 불을 끄지 않고 석유를 넣다가 화재 났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곤 하지만, 따뜻하고 아련한 옛 생각에 젖어들게 만드는데 이만한 물건이 또 있을까 싶다. 

더 깊은 추억을 떠올리자면, 연탄 난로나 학교 교실에서 썼던 갈탄 난로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난로에 찬 양은 도시락 얹혀 놨다 먹었던 추억이란...! 특히 첩첩이 쌓인 급우들의 도시락 중 누구의 도시락인지는 모르겠지만 맨 밑에 있는 도시락은 그 난로의 직접적인 열기 때문에 누룽지가 되고마는 비극(?)을 격기도 하지만 그건 역시 도시락의 추억중 백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석유난로를 처음 본게 언제였을까? 

정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온 까까머리 중학생 머리통 만한 램프(?) 같은 것이 있어 그것이 빨갛게 변하면서 열을 발산했다. 뒷면은 움푹 파인 반사판이 있어 보다 많은 열기를 앞으로 내보낼 수 있게 설계되었고, 망이 있어서 손잡이로 위로 들었다 내렸다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불조절도 수동이어서 시계 반대방향이면 불이 세지고,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불을 약하게 하거나 끌 수 있게 되어있다. 

아, 여기에 잊을 뻔한 것이 있는데, 그 램프 밑둥에 심지가 둘러있어 수동으로 불을 올리거나 내리면 심지가 그에 따라 올라오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불을 킬 것 같으면 그 심지를 올려서 일단 그곳에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긴 하지만 당시론 최신형 일제라나 뭐라나. 우리는 그것을 구닥다리가 될 때까지 썼다. 

아무튼 이것이 참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데가 있었다. 우스운 건, 덧씌운 망 정가운데 동그란 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에 물주전자나 찌개 냄비 같은 것을 올려 놓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당연히 엄마는 물주전자를 올려놓고 거기서 나오는 수중기로 한 겨울밤의 건조함을 해결할 수 있게 했고, 간혹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진지상에 올릴 찌개냄비를 올리곤 했다. 또 가끔 아버지는 출출할 때 컵에 계란 하나를 깨고 난로 위에 얹은 뜨거운 물주전자를 부어 소금으로 간을 한 계란탕을 후루룩 마시곤 하셨는데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있는 어린 나와 내 동생에게 한 모금씩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러면 그때 먹은 계란탕이 왜 그리도 맛있던지? 어른이 돼서 뜨거운 물 붓고 계란탕을 마셔봤지만 아버지가 컵 기울여 마시게 해준 그 계란탕 맛은 온데 간데 없다. 

어디 그뿐인가? 그 난로의 쓰임새는 많아서 그 열기로 가끔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먹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출출한 밤 가래떡을 노랗게 구워 먹기엔 정말 안성마춤이었다. 지금도 가끔 가스불에 가래떡을 구워 먹곤하지만 아무리 잘 궈도 군데군데 까맣게 타기 일쑤여서 그것을 긁어내고 먹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그 어린 시절 난로불에 가래떡 구워 먹었던 추억이 새삼 그립다. 그리고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그 내린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지나가는 아저씨의 "찹쌀떡, 메밀묵" 소리를 다시 듣는다면 그 겨울밤이 정말 안온하고 정겹지 않을까?  

그런데 "찹쌀떡, 메밀묵" 아저씨의 구성진 소리도 작년 재작년을 거쳐 오면서 잘 못 듣겠더라. 특히 올 겨울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쓰임새가 많았던 난로. 그 많던 난로는 어디로 간 걸까? 건조할 때 물주전자 하나만 올리면 되는 것을 지금은 가습기를 굳이 써야하니 미관상으로야 가습기가 보기는 좋다만 주전자에서 하얗게 뿜어내는 그 정겨움만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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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2-1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근무한 학교 교무실에 저 난로가 있었어요. 석유 넣어서 쓰는. 화력이 엄청 세더라구요. 가끔 석유 떨어지면 교무실이 냉골이 되곤 했답니다..;;;
어렸을 땐 가스렌지 없던 시절에 석유 곤로도 썼는데 말이지요. 팔각 성냥갑에서 성냥을 그어서 불을 붙이는데 어릴 땐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요새는 케이크에 촛불 꽂을 때나 성냥을 쓴답니다.

stella.K 2009-02-10 13:29   좋아요 0 | URL
아, 난로를 쓰는데가 있긴 있군요. 우리집이 안 쓰면 다 안 쓸 것 같은 저 근거없는
확신은 뭘까요? 흐흐

프레이야 2009-02-10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해요, 스텔라님^^
갑자기 캠프화이어 할 때의 모닥불과 호일에 싸서 구워먹던 고구마 생각이 왜 나죠.ㅎㅎ

stella.K 2009-02-10 13:30   좋아요 0 | URL
캠프화이어의 백미가 그거 아니겠슴까? ㅎㅎ
아직도 그런 낭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L.SHIN 2009-02-10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릴 때 다니던 학교에서는 나무를 난로에 넣었습니다. 눈 내린 추운 겨울날, 단짝과 함께 하루종일 피울
장작들을 양동이에 담아올 때가 좋았습니다. 확실히 요즘의 할로겐 난로보다 예전의 아날로그 난로가 훨씬 더
따뜻한거 같습니다.(웃음) 갑자기 모닥불을 피우고 싶네요.^^
그런데 왜 겨울에 찹쌀떡과 메밀묵을 함께 팔았을까요? 떡은 이해가 가는데..묵은..? (긁적)

자, 스텔라님의 아날로그에게는 ☆☆☆☆

마노아 2009-02-10 10:42   좋아요 0 | URL
찹살 떡만 먹으면 목 메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stella.K 2009-02-10 13:3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그런데 그 소리 안 들으면 서운하다니깐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 소리는 변함이 없어요.
그 소리의 역사가 언제부털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별표 고맙슴다.^^
 

 

 22년 전 가난한 대학원생 그는 입학 때 샀다던 에스콰이어 검은색 책가방을 늘 들고 다녔다. 모서리가 날강날강 닳고 코를 대면 구무렁한 가죽냄새가 풍겨나오는 그 가방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와 모종의 미래를 꿈꾸던 대학 졸업반 새초롬한 그녀는 그를 만나는 날이면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하는, 말하자면 약간의 권태기 같은 시기에 줄을 타듯 대롱대롱 매달려 혼돈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취업 걱정도 조금 되고 결혼이라는 단어도 떠올리며, 좀 더 나은 미래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헛된 생각들도 하며 하루하루 내달리고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생리통으로 몸이 좋지 않아 아랫목에 배를 대고 엎드려 누워있자니 그가 긴 골목을 걸어오는 것 같은 발자국, 분명한 환청을 경험했다. 그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고 아직까진 마지막 경험이었다. 만나고 돌아온 날이면 밤에 긴 편지로 못다한 이야기를 했고 만나지 못한 날에는 스프링 노트 일기장에 만년필로 빽빽하게 뭔가 적어대기도 하며 연애 ‘감정’에 빠져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 감정의 문제였던 것 같다.  유치하고도 사랑스러웠던 그들.  

 

 그녀의 집에 그는 좀 자주 오는 편이었다. 예비처제더러 피아노를 쳐달라고 부탁하고 그 가락에 맞춰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재끼곤 했는데 자주 부르던 노래제목이 바로 '철없는 아내'였다는 것. 왜 그 노래 부르길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제대로 골랐던 것 같다.  노래방의 기계음에 맞춰 기계의 박자와 음정에 끌려가야하는 것과는 달리 자기멋대로 꺾고 늘이며 노래 부르길 좋아했다. 그는 미성을 가졌다. 그 고운 음색에 끌렸던 그녀는, 화이트데이 때 사탕 하나 사줄 줄 모르고 길가에 앉아 모종을 팔던 어떤 할머니에게서 춘란 한 촉을 사서 뿌듯해하던 그에게 서운해 속으로 울었던 때도 있었으니. 또 하루는 그가 대학원 논문 준비를 위해 수동타자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그녀의 집에 왔다. 그날은 엄마에게 허락 받고 밤샘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먹끈을 갈아끼워가며 타닥타닥 토닥토닥 경쾌한 수동타자기 소리를 들으며 옆에 있던 그녀는 꼬박 졸기도 했던가. 그렇게 새벽이 밝아왔다.  


 둘은 버스를 타면 맨 뒷자리로 갔다. 그렇게 종점에서 종점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아예 침묵의 대화로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보며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여겼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집 앞까지 10분여를 걷고 다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나가고 그러다 캄캄해졌다. 가랑비가 오는 날이면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고 그 비를 맞았다.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촉촉이 젖고 등짝에 약간의 냉기가 느껴지는 정도로 비를 맞고 걷는 가난한 연인의 데이트. 지금은 자동차가 있고 핸드폰이 있고 이메일이 있으니 이런 일들이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렸다. 그와 그녀는 그로부터 2년 후 결혼식을 치른 옆지기와 나.^^ 올 3월이면 20주년이 된다, 어느새?

 핸드폰! 지금은 유치원생도 가지고 있는 그게 없었던 시절의, 웃지 못 할 일화가 있다. 우리가 만나곤 했던 장소는 주로 대학교 앞 혹은 서로의 집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서면(부산의 다운타운)의 어느 찻집에서 만나고 싶었다. 지금은 그 찻집의 이름도 다 잊어버렸다. 둘은 시간약속을 했고 학과사무실에 있던 그에게 내가 정한 찻집 이름을 분명 말해 줬는데 어디선가 혼선이 생겼다. 그와 나는 각자 다른 찻집에 앉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나는 나대로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이러며 부아가 났고 그래도 일이 좀 늦어지나 보다 하며 기다렸는데 그는 그대로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결국 그의 집으로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고 우리집에도 전화해서 내가 지금 앉아있는 곳을 말해 놓았다. 찻집 카운터 전화기에 몇번을 더 불이 나게 왔다갔다, 어떻게어떻게 연락이 닿아 거의 두 시간 가량이 지난 시각에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부글부글 화도 났지만 어쩐 일인지 기다림에 지친 나는 오히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처럼 핸폰만 있었더라면 애당초 있지도 않았을 일이다. ^^

 서로 주고 받았던 수많은 편지들은 이제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일기장만 한 권 서랍 맨 아래쪽에 누워있다. 손으로 깨알같이 써서 주고받았던 편지를 차곡차곡 상자에 담고, 가랑빗속을 거닐며 깔깔거리고, 약속을 해놓고도 연락이 닿질 않아 애를 태우며 동동거리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는 건 무슨 영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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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2-0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부러운 아날로그 추억이에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프레이야 2009-02-09 09:03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그런때가 가끔은 그리워요. 지금은 소 닭 보듯(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하게 ㅎㅎ

stella.K 2009-02-08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디지털 시대에도 연애편지만큼은 꼭 아날로그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메일 수신함에 차곡차곡 모아둘 수도 있겟지만 눈으로만 볼 수 있지
만질수도 냄새 맡을 수도 없잖습니까.
물론 혜경님 그 연애 편지 잃어버리셨다고 하시지만 그렇게 아날로그로 편지를 주고 받은 기억은
평생 안 잊어질거라고 생각합니다.^^

L.SHIN 2009-02-09 05: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메일은 만질수도 맡을수도 없으니까. 표현이 딱이군요.^^

프레이야 2009-02-09 09:11   좋아요 0 | URL
그래요. 글자에 감정이 충분히 담겨있죠.
군에 가 있는 동안에 제가 쓴 편지에는 언젠가 눈물방울도 떨어져 마른 흔적이
있었더랬지요. 글자가 흔들리고 휘청이기도 하구요.
그것도 병장으로 갈 즈음에는 뜸해졌지만요. 그때의 맑았던 심성이
때로 그립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0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당분간 서재에 오지말던지 해야지~~
이 싱글의 울적함을 자극하는 얘기들로 흘러넘치는군요 흑흑

L.SHIN 2009-02-09 05:21   좋아요 0 | URL
나도 같이 ㅜ_ㅜ

프레이야 2009-02-09 09:10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반가워요. 여기서 만나네요.^^
싱글이시라면 앞으로 기회가 많을 것 같아 더 부러운 걸요.
엘신님도요.

chika 2009-02-09 11:1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말입니다...
남들 삐삐차고 다니고 핸폰 들고 다닐때도 '난 필요없어'주의로 암것도 없이 댕겼었던 저로서는 서로 어긋난 약속장소로 인해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추억이 연인과의 데이트 추억이 아니라 직원과의 약속이었음을 떠올려야 함이 참으로...흑흑.

프레이야 2009-02-09 19:55   좋아요 0 | URL
치카님 흐흑 ㅜㅜ

L.SHIN 2009-02-09 0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동타자기! 덕분에 기억이 나는군요. 저는 16살경에 수동 타자기를 주로 쳤었는데,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 컴퓨터도 일반화 되어 있었지만, 저는 그 특유의 소리를 좋아했거든요.
한 편의 짧은 연애 소설을 읽는 듯 했습니다. 결혼하신지 20년이 되었다는데 그렇게 선명히 기억하시다니.
예전엔 커피숍이나 가게에서 전화를 빌려 쓰는 모습이 흔했죠. 요즘이라면 점원의 표정이 이럴겁니다.
"핸드폰 없나?"
추억이란 역시 아름답습니다.(웃음)

자, 혜경님의 아날로그에는 ☆☆☆☆☆☆

프레이야 2009-02-09 09:07   좋아요 0 | URL
와와!! 엘신님도 수동타지기 좋아하는군요. 저도 무지하게 좋아해요.
당시 옆지기는 언더우드 것이었는데 무척 아껴서 이사를 몇번 하면서도 들고 다녔어요.
그런데 언제가부터 사라졌어요. 지금도 집에 하나 있는데요, 스미스-코로나 것으로..
그건 시댁에서 우연히 줍다시피해서 집에 장식으로 갖다놓았죠. 아마 먹끈만 구할 수
있다면 타자가 가능할 거에요. 가끔 지나가면서 토닥토닥 쳐보기도 해요. 묵직하니
손끝에 와닿는 느낌이 참 좋아요. 소리도 그렇지만요.^^

전호인 2009-02-0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하게 겹치는 사연이 있어 공감 백배로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련한 아름다움이었지요.
가끔 허스름한 재래시장 뒷골목의 족발집에서 소주를 같이 기울이기도 했던 무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가난한 남자와 그것도 행복이라고 마냥 신나했던 여자도 있었지요.
결혼 20주년! 陶婚式(도혼식)
서로 사기그릇을 선물로 주고받고, 질그릇은 깨져도 다시 붙여 쓸수 있다는 의미라네요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09-02-09 09:10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감사합니다. 도혼식, 도자기혼식이라고 하더군요.
그 이름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군요.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네요.
행복,이란 세월따라 의미가 달라져가기도 하지만 본래의 그 마음만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많이 무뎌졌다고나 할까요.
무드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가난한 남자, 전호인님이요?ㅎㅎ

순오기 2009-02-0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랑은 추억입니다. 20년이 지나든 30년이 지나든...
공연히 남의 아름다운 연애사에 눈물이 글썽~~ ㅠㅜ

프레이야 2009-02-09 20:48   좋아요 0 | URL
눈물을 글썽였던 적이 정말 있었지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날들에 그랬어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었네요.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색깔의 사랑이니까요.

Mephistopheles 2009-02-0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를 쓸 틈도 없이 만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 여기 있어요~~

프레이야 2009-02-09 21:04   좋아요 0 | URL
만나고 돌아와서도 썼다니까요 ㅎㅎ
군에 가 있는 동안 많이 썼지만 그것도 상병 달고부턴 뜸해지기 시작했죠.
결혼 후에도 가끔 화장대 위에 편지가 올려져있곤 했는데 그것도 뜸해지고
이젠 아예 서로간에 없지요.ㅋㅋ

니나 2009-02-0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따뜻해~ 냐~옹! (괜히 고양이가 되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ㅋ)

프레이야 2009-02-09 19:58   좋아요 0 | URL
니나님, 여기서 만나 반가워요.^^ 냐옹~

BRINY 2009-02-0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같아요~
저희집에도 수동타자기가 있었어요. 아주 무겁고 낡은 사무실용 미제 영어타자기가 있었는데, 중학생때 엄마가 아주 날렵하고 휴대용케이스까지 있는 한글타자기를 사다 주셨죠. 힘을 꽉 줘야 글자가 뚜렷하게 찍히던 낡은 타자기에 비해 얼마나 터치도 부드럽던지...대학1학년경까지도 그 타자기로 리포트를 작성하곤 했었는데, 곧 PC에 자리를 내주곤 말았네요.

프레이야 2009-02-09 23:19   좋아요 0 | URL
다 못한 이야기가 참 많아요. ㅎㅎ
저도 처음 타자를 배울 때 수동타자기로 시작했어요. 그 묵직하고도 경쾌한 느낌이 참 좋았어요.
그 다음 전동타자기 그리고 컴이 자리를 차지했죠. 갈수록 힘 덜 들이고 가능한 세상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아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아요. 우린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 받고, 가끔 전화 통화를 했으며 한 두번 만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 아인 늘 짧은 머리를 하고 있어 정수리 부근이 파르스름했던 기억이 나요. 그 아이를 생각하면 속엣말을 못하는 사람의 머뭇거림과 이제는 재생을 할 수 없는 테이프가 기억이 나요. 그리고 여전히 가끔씩 머리에 꽂는 큐빅달린 머리핀도. 

 우리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제 생일인적이 있었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생일 축하한다는 전화를 했어요. 전화를 받고 며칠이 지나자 불룩한 편지봉투가 배달됐죠. 편지 봉투 속엔 자신이 고른 노래들이 빼곡하게 담겨진 테이프가 있었어요. 미안하게도 전적으로 내가 다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테이프의 속지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제목과 가사를 적고, 다시 한번 생일을 축하한다고 했을때는 투박한 맘이 정해져 가슴이 찡해지고 말았지요.  

 어느 날엔가는 자신이 직접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가 실려있기도 했고, 시를 녹음하기도 했고,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두서없이 들어있기도 했죠. 상큼하거나 톡톡 튈 정도로 센스있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 맘이 참 예뻤어요. 상큼하고 톡톡튀는걸 해줄 수 있다는 자의식 과잉인 저도 가끔씩 그 아이에게 테이프를 선물하기도 하고, 시나 노랫말을 편지지에 빼곡히 적어 보내기도 했죠. 그 아인 그것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을까요? 

 그렇게 모은 테이프가 5개. 남녀관계의 일반적인 패턴대로라면 우린 몇번을 더 만나 서로의 맘을 끌어보려고 하거나 상대의 맘이 어떤지 궁금해 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 아인 그 아이대로 난 나대로 서로 평행선만 긋고 있었어요. 테이프를 다섯개 보내고 난 뒤 그 아이는 이제 연락을 못한거 같다는 말을 했어요. 그렇게 짧게 끝난 편지 속엔 돌돌말린 종이가 있었어요. 그 속에 머리핀이 들어있었구요. 머리핀은 여전히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카세트 역시 뽀얀 먼지를 먹으며 서랍 한켠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때의 그 아이는 조금 특이했던 이름 말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컴퓨터에 있는 노래를 간추려서 굽고, 자판을 튕겨 평하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데도 요새는 이런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지금보다 어렸던 내가 자, 아날로그식으로 살아볼까 했던 것도 아닌데 속속들이 느리고 한번씩 숨을 참고 있다 훅하고 내뱉는 느낌이 드는건 그 당시의 소통 방식때문이었겠죠. 지금은 그때보다 즉각적이고 신속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서랍 속을 채우며 먼지를 먹고 자랄만한 것도 없고, 배달이 안 되는 편지로 애가 타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죠. 무형의 파일이 왔다갔다하고, 메시지는 숨찰 정도로 짧죠. 가끔씩은 자신의 취향을 곤고히 해주는 물건들을 위풍당당하게 짊어지고 등장하는 사람의 옆에서 '왜 나를 만나는걸까.'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혹은 각각의 네트워크 기계를 만지작거리며 밥을 먹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보다는 좀 딱하단 생각도 들구요.

 뭐가 좋다, 옳다란 기준은 없지만 왠지 난 그때가 좀 그리워요. 지문이 잔뜩 묻은 편지봉투를 끈적거리는 손으로 뜯는 순간이, 지웠다 돌렸다 다시 녹음해댄 테이프를 빨리감기, 되감기, 정지, 다시 재생을 해대며 들었던 순간이, 삐삐 전에 있던 사서함(혹시들 알아요?)에 시를 녹음해주고 조용히 고백을 했던 순간이, 고백을 한 다음 날 부리나케 다시 사서함으로 달려가 지우려다 들었단 그 한마디에 얼굴이 시커먼 다크서클로 뒤덮이던 순간이, 무전기처럼 생긴 무선 전화기를 어떻게 하면 내 방에 숨겨서 전화통화를 할까 고민했던, 그게 그런대로 내 세상을 덮은 색이 되던 그 순간이 가끔씩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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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2-08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기억이 나는군요.
저도 어릴 때는..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선곡해서, 일일히 10여장의 CD에서 하나의 테이프로 더빙한 후,
정성스럽게 손으로 제목과 가수를 적어서 선물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죠.
공테이프도 최고급만 사고..그렇게 몇 시간 동안 공들여 선물하는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요.^^
그랬던 내가..요즘은 정말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이젠 테이프 데크가 있는 오디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흔하지 않아서 그 선물도 힘들겠죠?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삐삐 소리,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향해 달려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자, 아치님의 아날로그에게는 ☆☆☆☆☆

순오기 2009-02-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가 잘가던 클래식 다방의 디제이 친구가 내가 원하는 곡만 6개의 카세트네이프에 담아준 걸 아직도 갖고 있어요. 아마도 L.SHIN님의 아나로그 이벤트에 올라온 사연의 종합편을 내가 다 갖고 있을 듯... 더구나 인증샷이 가능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죠.^^

L.SHIN 2009-02-09 05:10   좋아요 0 | URL
인증샷 요청입니다.(웃음)
그러니까, 오기님의 아날로그도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어서어서~

Arch 2009-02-0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그그 최고급 공테이프 나도 알아요. 속지 자체의 질감부터가 달랐죠. 삐삐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불편했는데도 그때는 세상과 연결된 끈같았죠. 엘신님이 아무 생각없이 사는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든 기술이 불편할 틈을 안 주는 것 같아요.

순오기님, 제가 감히 상상컨대 우리 순오기님은 이벤트에 응모되는 작품의 면면을 살피다 아날로그 종합편 사진전을 떡하니 열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인증샷으로 이벤트계를 평정, 저같은 피래미들은 달나라로 보내버릴 강력한게 있을거란 짐작. 아님 말구요~ ㅡ,.ㅜ; 좀 더 자야겠어요.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

L.SHIN 2009-02-09 05:1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불편할 틈을 안준다라..그렇다해도 요즘, 전 너무 게으르다구요. ㅜ_ㅡ

참, 내가 말했던가요? 아치님의 지금 이미지 무척 마음에 든다는거.(웃음)

순오기 2009-02-09 11:25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역시 아치님은 똑똑해!
글발로 따라 잡을 수없으니 인증샷으로 평정할랍니다!ㅋㅋㅋ

Arch 2009-02-09 13:05   좋아요 0 | URL
저도 열게으름 해요^^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자기 좋으라고(웃음)

순오기님 2년만에 처음으로 똑똑하단 소리 듣고 우쭐해져있어요. 히히 아마 곧 평정될 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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