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석유난로라는 것이 있긴 있는가 보다. 검색창에 석유난로를 치니 모회사에서 나온 신제품 이미지가 있어 퍼와봤다.
하지만 저거 쓰는 집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희안하게 생긴 두줄짜리 펌푸식 석유 호스로 한쪽은 빨아 들이고 한쪽은 그 빨아들인 석유를 난로에 집어넣는 그 번거로움을 아직 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 자랄 적만 해도 그 추운 겨울을 석유난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희고도 큰 네모난 고무통을 들고 주유소를 찾가는 모습은 그리 낮설지 않은 광경이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저 사진의 난로는 어떻게 석유를 집어 넣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고 우린 한동안 난로라는 것을 잊고 살았더랬다. 외풍이 심한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지금의 공동주택을 와 보니 외풍이 없는 것만으로 우린 한 겨울을 추위 걱정없이 날 수가 있었다. 그때만해도 가스값이 지금만큼이나 비싸지 않아 먼저집에서는 비싼 기름 보일러를 썼지만 지금의 집에선 가스 보일러 썼고, 이사 온 첫해 우린 정말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늘 손발이 찻던 우리 엄마가 이사 오고 그 증세가 없어졌을라고...
그런데 가스값은 그후 꾸준히 올라 지금은 오히려 전기를 쓰는 것이 가스를 쓰는 것 보다 나을 정도가 됐다. 그래서일까? 결국 우린 이 집도 춥다하여 3년 전 결국 온풍기를 사고야 말았다. 그것을 산 첫해에 그 물건을 쓰고, 작년에 안 쓰다 결국 올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작년에 안 쓴 이유는 온풍기가 건조하여 피부에 안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정말 안 쓰고 버텼다.
그런데 이 물건 올 겨울을 나는 동안 다시 썼는데 역시 그다지 좋은 줄 모르겠다. 전원을 누르면 3초 안에 금방 훈훈한 기운을 내뿜지만 그 앞만을 따뜻하게 해 줄 뿐 실내 전체를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썼던 석유난로가 생각이 났다.
혹자는 난로에 석유를 잘못 넣으면 석유냄새가 나 머리가 아픈 수도 있다고 하고, 오래 전 사고중에 난로의 불을 끄지 않고 석유를 넣다가 화재 났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곤 하지만, 따뜻하고 아련한 옛 생각에 젖어들게 만드는데 이만한 물건이 또 있을까 싶다.
더 깊은 추억을 떠올리자면, 연탄 난로나 학교 교실에서 썼던 갈탄 난로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난로에 찬 양은 도시락 얹혀 놨다 먹었던 추억이란...! 특히 첩첩이 쌓인 급우들의 도시락 중 누구의 도시락인지는 모르겠지만 맨 밑에 있는 도시락은 그 난로의 직접적인 열기 때문에 누룽지가 되고마는 비극(?)을 격기도 하지만 그건 역시 도시락의 추억중 백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석유난로를 처음 본게 언제였을까?
정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온 까까머리 중학생 머리통 만한 램프(?) 같은 것이 있어 그것이 빨갛게 변하면서 열을 발산했다. 뒷면은 움푹 파인 반사판이 있어 보다 많은 열기를 앞으로 내보낼 수 있게 설계되었고, 망이 있어서 손잡이로 위로 들었다 내렸다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불조절도 수동이어서 시계 반대방향이면 불이 세지고,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불을 약하게 하거나 끌 수 있게 되어있다.
아, 여기에 잊을 뻔한 것이 있는데, 그 램프 밑둥에 심지가 둘러있어 수동으로 불을 올리거나 내리면 심지가 그에 따라 올라오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불을 킬 것 같으면 그 심지를 올려서 일단 그곳에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긴 하지만 당시론 최신형 일제라나 뭐라나. 우리는 그것을 구닥다리가 될 때까지 썼다.
아무튼 이것이 참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데가 있었다. 우스운 건, 덧씌운 망 정가운데 동그란 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에 물주전자나 찌개 냄비 같은 것을 올려 놓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당연히 엄마는 물주전자를 올려놓고 거기서 나오는 수중기로 한 겨울밤의 건조함을 해결할 수 있게 했고, 간혹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진지상에 올릴 찌개냄비를 올리곤 했다. 또 가끔 아버지는 출출할 때 컵에 계란 하나를 깨고 난로 위에 얹은 뜨거운 물주전자를 부어 소금으로 간을 한 계란탕을 후루룩 마시곤 하셨는데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있는 어린 나와 내 동생에게 한 모금씩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러면 그때 먹은 계란탕이 왜 그리도 맛있던지? 어른이 돼서 뜨거운 물 붓고 계란탕을 마셔봤지만 아버지가 컵 기울여 마시게 해준 그 계란탕 맛은 온데 간데 없다.
어디 그뿐인가? 그 난로의 쓰임새는 많아서 그 열기로 가끔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먹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출출한 밤 가래떡을 노랗게 구워 먹기엔 정말 안성마춤이었다. 지금도 가끔 가스불에 가래떡을 구워 먹곤하지만 아무리 잘 궈도 군데군데 까맣게 타기 일쑤여서 그것을 긁어내고 먹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그 어린 시절 난로불에 가래떡 구워 먹었던 추억이 새삼 그립다. 그리고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그 내린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지나가는 아저씨의 "찹쌀떡, 메밀묵" 소리를 다시 듣는다면 그 겨울밤이 정말 안온하고 정겹지 않을까?
그런데 "찹쌀떡, 메밀묵" 아저씨의 구성진 소리도 작년 재작년을 거쳐 오면서 잘 못 듣겠더라. 특히 올 겨울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쓰임새가 많았던 난로. 그 많던 난로는 어디로 간 걸까? 건조할 때 물주전자 하나만 올리면 되는 것을 지금은 가습기를 굳이 써야하니 미관상으로야 가습기가 보기는 좋다만 주전자에서 하얗게 뿜어내는 그 정겨움만 같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