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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가미 2 - 출정 전야
마세 모토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3월 19일
"당신의 사망예고장을 배달하러 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늘 일상과 똑같은 날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
아니, '어쩌면 나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1%라는 확률은 누구에게나
'나한테 올리가 없어' 라는 근거없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므로 '왜 나야?' 라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이키가미(사망예고증)를 내미는 배달원을 쳐다보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반응.
(*이키가미 : 이쿠(죽다) + 가미(종이) 의 합성어)
일본 정부는 [국가번영법] 이라는 이름 하에 매년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아이들에게 예방 접종을 하는
주사 속에 1,000명의 1명꼴로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 죽음의 씨앗'을 심는다.
누가 그 '씨앗'을 받았는지도 모른채 아이들은 자라게 되고. 평균 18세~24세 사이에,
사망하기 24시간 전에 이키가미는 배달되어 그 사람의 죽음을 알린다.
"생명의 가치"를 알려 범죄 예방을 줄이자라는 차원에서 시행되었다는 이키가미.
그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하여 '생명이, 인생이 얼마나 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극약 처방'의 가엾은
희생자들의 몸속에는 나노캡슐이 혈관을 유유히 떠돌다가 심장에 다다르고 처음에 '죽는 날'로
정해진 일시가 되면 캡슐이 파열하여 심장이 터져 죽는 것이다.
하나같이 희생자들이 갑자기 정지된 로봇처럼 뚝-하고 멈춘 채 쓰러지는 것이 고통은 없는가보다.
그것은 국가의 1mm도 안되는 아주 얇은 배려심인가.
자신에게 앞으로도 수십년 이상의 시간과 삶이 있을 것이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살고 있었던
희생자들은 자신이 앞으로 24시간 안에 죽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남은 시간중 몇시간을 백지 상태로 멍하니 있기도 하고, 방 안의 가구들을 다 부수는데
쓰기도 하고,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짐 정리하는 등 쓸데없는 곳에 아까운 시간을 써버린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주인공이 미쳐 발광을 하거나 세상에 멋진 일을 남기거나 하는 등 -
'저 상황이면 이럴거야.' '마지막인데 멋지게 죽고 싶지 않을까?' 라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반영이라도 하듯 꾸미는게 '정석'같겠지만, 현실속의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덤덤하다.
그러다 정신차리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진정이 되면 -
그들은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고 움직이게 되는데.
자신을 괴롭혔던 과거의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는 폭주형도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꿈을 향한 모습을 고집하며, 뜨기 시작하는 신인 스타의 코러스 대신
자신이 정말 원했던 노래를 라디오 생방에서 멋지게 부르고 쓰러져버리는 이상가형도 있고,
눈이 보이지 않는 여동생에게 자신의 각막을 죽기전에 기증하는 희생형도 있다.
자신은 몇시간 후면 죽을 운명인데도, 자신이 돌보던 요양원의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없이 찾으러 다니는 그는 남은 시간을 남을 위해 다 써버리기도 한다.
억지로 멋있게 꾸미지도, 지나치게 어둡고 우울한 모습을 그리지도, 죽음을 앞둔 자들의 머릿속에서
삶과 죽음의 철학적인 멘트를 끄집어 내는 것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늘 일상과 같은 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 오히려 눈물을 떨어트리게 만들었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국가번영과 범죄 예방을 통한 생명의 가치 인식' 이라는 그럴싸한 제목으로 국민들의 생명을
너무나 쉽게 '희생의 단두대'에 올려버리는 그 독선적임이 마치 영화 [배틀로얄]을 보는 것 같았다.
섬에 어느 중학교 한 반의 학생들을 가두고 '혼자 살아남을 때까지 동료를 죽여라' 라고 무서운
'생존법칙 교육' 속에 어린 학생들이 총과 칼로 무장한 채 서로를 죽이는 소재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배틀로얄]이 '한 사람'을 위해 나머지가 희생하는 것이라면, [이키가미]는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다를 뿐, 억울하게 죽는 것은 같다.
그 죽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든 악당이든 상관없이 죽음을 선택받는 것은 '공평하다'.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도 다른 생물을 심판하고 죽일 권리는 없다.
단순히,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최고봉에 위치해 있는 생물로서 다른 생물을 양식으로 삼기 위해
살생을 하는 것과, 같은 인간 혹은 다른 생물을 재미 목적이나 어떤 사상에 의해서 죽이는 것은
허락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 '좀 더 잘난 생물'로써 그 자만심을 구역질나게 되풀이하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뿐' 이라는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로 다가온 [이키가미].
그것은 누구에게나 언제 어느 때든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의 존재를 알리는 것과 동시에 -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귀하고 의미있고 보람되게 보낼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 때 친구들과 종종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
"만약 하루밖에 못 산다면 뭐할거야?"
대답들은 가지각색이다. 맛있는 것을 실컷 먹는다든가. 멋진 곳을 여행한다던가.
평소 못했던 것을 해본다던가. 가족과 함께 있는다는 등등.
나 역시, 이 만화책을 통해 다시 한번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우숩게도 곧바로 생각나는게 없다.
좋아하던 공원을 너무 사랑하는 개와 산책하면서 종일 '남은 시간동안 뭐하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에 '난 어떤 사람이지?' 라고 생각하게 되어 조금 우울하다.
옥상에 올라가 세상을 보았다.
오늘도 '매일 똑같은 하루'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들.
그 위로 즐거운 듯 두 마리의 까치가 날라다니며 전선에 앉고.
목 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햇볕.
이제 막 푸르기 시작한 작은 산들의 연두색 양탄자들.
적당하고 조용한 오전의 소음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으로 수십년은 더 살면서 온갖 일을 겪을 사람들,
자연과 동물과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피해를 줄까 하고 적의 괴멸만을 고민하는 사람들.
주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런 개들, 주인을 물어죽이는 매정한 동물들.
시끄럽다.
시끄러워.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복잡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오늘 보이는 오전의 세상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롭기만 하다.
마치, 사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정신없고 다양한 세계가 펼쳐지지지만
멀리서 쳐다보는 바다와 하늘은 그저 평화로워 보이는 것처럼 -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지만 닥치기 전까지 늘 잊고 사는 것이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