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다
【 기억 재생기 】 - 다시 보고 싶은 21세기
2007년 4월, 봄, 지금으로부터 딱 1년전
나는 핸드폰을 4번 잃어버렸다. 10년 안에. 4번. 많은건가? 적은건가? 상대적인 것이겠지만.(웃음)
처음에는 공중전화 박스의 전화기 머리 위에 올려놓은채 친구와 신나게 싸돌아 댕기며 놀았었다.
핸드폰이 있는데도 왜 공중전화 박스에 찾아갔는지 기억은 없다.
다행히도 나는 어느 순간, 퍼뜩 핸드폰이 생각나서 헐레벌떡 뛰어가서 직접 수거했었던게 핸드폰 분실 첫 경험.
아마도, 핸드폰이 막 대중화 되기 시작한 98년도 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만 해도 공중전화는 흔했다는 뜻. 난 어릴 때부터 공중전화를 좋아했다.
다이얼식 빨간 전화에서부터 요즘의 회색-버튼 카드 전화기까지.
빨간 전화기에 동전이 찰그락~찰그락~ 들어가는 소리와 손가락 끝을 끼어 드르륵~ 돌리는
다이얼 소리를 특히 좋아했다.
한국은 공중전화를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있으니 무용지물이 된
과거의 유물들은 사라지는게 자연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외국인에게 참 배려가 없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장기간 체류해서 핸드폰을 구입하거나 공항에서 렌트폰을 빌려쓰는 경우라면 괜찮을지 모르나,
모든 외국인들이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래서 공중전화를 보물 찾기 마냥 힘겹게 하는 외국인을
볼 때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거기다 전화카드도 모든 편의점에 충분히 있지 않은 곳에서는 더더욱 -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웬디님의 페이퍼를 보다가 생각이 나서 이렇게 연결글을 쓰고 있는데,
공중전화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20세기의 '통신 문화' 였다면,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안될까요?' 하고 주변인에게 핸드폰을 빌리는 모습이 21세기의 '통신 문화'인 듯 싶다.
그리고 두 번째 핸드폰 분실했던 것은 아마도 2001년도 였던 것 같다.
내 핸드폰을 주운 사람이 전화번호부에 저장되어 있던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 중 내 직장 동료가
받았더란다. 그래서 착한 직장 동료는 늦은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핸드폰을 받으러 나갔고,
대신 받아주었었다. 나는 그 핸드폰을 주운 사람도 동료에게도 너무나 고마워서 두 사람에게 식사 대접을 했었다.
그러나 '감사의 표시'로 대접하는 식사를 상대방은 무슨 오해를 했는지, 그 후 연락을 계속 주고 받는 '인연'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 '인연'은 허락하지 않았었다.
'친구'면 몰라도 '애인이 될지도 모른다' 라는 헛되고 불순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고 생각이 한심했기 때문.=_=
하지만 이렇게 핸드폰을 통해서 좋은 인연, 친구, 애인 사이가 된 사례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세 번째 잃어 버렸다가 다시 내 품에 돌아온게 바로, 작년 요맘때였다.
그 날은 화장한 어느 주말, 서울에 모임이 있어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잠깐 택시를 탔던게 사건의 발달이었다.
(바로 요 날이 '죽음의 백세주'를 기념하는 알라딘 오프 모임 첫 번째 였던 것. -_-;)
보통 핸드폰이나 지갑을 바지 뒷 주머니에 잘 쑤시고 다니는 나는 그 날도 핸드폰을 왼쪽 엉덩이에 업혀 놓은채
택시를 타고 내렸는데, 전철역 입구에서 시계를 보기 위해 엉덩이를 만지는 순간, 나의 아그가 없다는걸 깨달았다.
주인에게 버림 받았다고 잔뜩 오해를 했을 나의 핸드폰이 택시 뒷자석에서 울고 있을 생각을 하니 순간,
머리가 띵- 했었다. =_=
나는 부랴부랴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했다. 다행히 택시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는데 이미 다른 동네로 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죄송하지만 다시 와줄 수 없냐고 했다. 영업하는 택시인지라, 수고비를 드리겠다는 말을 덧붙여서.
그냥 와달라고 사정을 해도 와 줬을지 모른다. 한국의 보통 정서라면. 물론, 궁시렁 잔소리는 해댈테지만.
하지만 나는 잔소리 듣는걸 굉장히 싫어하는데다, 일부러 수고하시는 아저씨에게 사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해서 시원한 캔커피와 사례비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글쎄..10분쯤 기다렸을까?
아저씨가 오셨다. 나는 냉큼 가서 최대한 웃으며(평소에 잘 안 웃는 내가! =_=) 만원을 낀 캔커피를 드리며 인사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아저씨가 '감사합니다~' 하면서 활짝 웃는게 아닌가.
사례비로는 너무 큰 금액이었나? (긁적) 하지만 둘 다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좋은거 아닌가? (웃음)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나선데다 사례도 받았으니 아저씨는 그 날 기분이 좋았을 것이고
그 기분 좋은 흐름이 다른 손님에게로, 그리고 그 손님들은 또 다시 다른 이들에게
웃음 바이러스를 전달하지 않았을까?
또 한번 잊어 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 일의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에 있더라도 누구의 것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타게 찾고 있을 주인을 위해 기꺼이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잠시 미아가 된 핸드폰을 주인의 품에 안겨준다.
예전, 공중전화가 있던 시대의 매력과 로망은 사라졌지만, 핸드폰을 서로 찾아주고 빌려 쓰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따뜻한 연결 고리가 이어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지구인들은 알고 있을까? 모두 휴대용 안테나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걸로 은하계 밖 행성과 접선하려고는 하지 말라고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