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재생기 】- 다시 보고 싶은 20세기
1997년 4월, 어느 추운 날 밤 12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92년, 내가 14살 때,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 어른들은 내가 변호사나 검사가
꼭 되리라고 믿었던 사건이 있었다.
얄팍한 장사술로 부정을 저지르는 학원에 나는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 그들이 먹은 돈중 2/3를 토해내게 했었다.
그보다 1년 더 거슬러 올라가 1991년, 어떤 성인 남자를 '미성년자 폭행법'으로 경찰서에 끌고 가려고 했었다.
1992년, 15살 때, 사회를 비판한 나의 일기가 공개되는 바람에 교육자들과 주변 어른들이 나를 더욱 더 어려워했었다.
나는 우월감을 느꼈었지만, 16살까지는 그림 그리는 것에만 미쳐서 공부에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18살부터 막연하게나마 법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늦은 공부를 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쇠사슬에 나를 가둔 구속의 힘은 너무나 대단했었다.
결국, 19살 봄에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에 무리가 가면서 법학에 대한 공부는 접어야만 했었다.
가슴의 통증이 심각해지기 며칠 전 밤에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꽃샘추위'가 무엇인지 체감했던 일이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장시간의 공부를 마치고 밖을 나갔었다.
시간은 자정을 조금 넘은 -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시점
세상에, 명색이 봄인데 어찌 그리도 추울 수가 있는지.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목이 부러지는지 알았었다.
이제 그만 내년을 기약하고 물러가야 하는 동(冬)장군이 봄의 꽃을 시샘하여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 때, 의무적인 기분이긴 했지만 법학을 그대로 전공하여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그 좋아하던 그림 그리는 것도 뒤로 하고, 사회를 풍자하는 성장소설을 내겠다던 야심찬 계획도 덮고
14살 때부터 마음 한켠에서 나도 모르게 커져 갔던 '의무'를 이행하고자 그런 진로를 택했건만,
이도 저도 이루지 못하고 몸만 상한 19살을 맞았던 나의 잔인한 봄.
칼같이 차갑던 4월의 바람은 나의 목을 부러뜨렸고, 나는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죽여갔다.
신경성 스트레스가 원인인 통증이기에 심장을 보호하고자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 무엇에도 마음을 담아두지
않는 무감정/무관심의 상태로 몇 년을 살게 되었다.
이미 세상과 문을 닫고 살은 것은 13살부터이긴 했지만, 이미 20살에 죽을 뻔 하기도 했었지만.
영혼을 모두 태워 소진할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빠져드는 나의 일을 갖는 것에 늘 목마르던 나.
열어둔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든다.
올 해는 목이 부러지지 않고 방향을 조금 돌려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2008. 01. 23 - 세상 그 어떤 빛보다 밝았던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