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 반인간선언 두번째 이야기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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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하나밖에 없는 쌍둥이 동생인 월우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쌍둥이 형인 일우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과연 일우는 월우의 죽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탁자가 뒤집어졌다. 커피잔이 엎어졌고, 의자가 쓰러졌다. 동시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뿔테안경을 쓴 남자 한 명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곧이어 젊은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눈빛엔 살기가 가득했고 그것은 사람의 눈이 아닌 꼭 야생 동물의 눈만 같았다.

그의 이름은 주일우였다.

참 희한하게도 이렇게보면 잔인한 행동을 보이는 싸이코패스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은 누가 보기에도 희한했다.

오히려 경찰한테 붙잡아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마냥 경찰이 등장하니 더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한편 소년원에서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는 최누리 그리고 백영중과 문자훈은 주일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어느 정도까지요?

-네 동생 주월우가 죽었다는 거.

-단지 그것만인가요?

-아니.

-…….

-주월우가 죽은 게 사고사가 아니라는 것.

-…….

-동생이 살해당했다고 믿는다는 것.

-…….

-아닌가?


-주일우, 이러지 마.

-무슨 소리예요?

-내가 왜 이런 말 하는지 네가 더 잘알 거 아니야?

-뭘 말이에요?

-네가 이곳에 들어온 목적 말이야.

-…….

-문자훈, 백영중, 최누리…… 그 아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들어온 거잖아.

-……

-아니야?


그에게는 쌍둥이 동생인 주월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곁에는 월우가 없다.

참혹한 모습으로 물탱크 안에서 발견된 월우는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은 상태였다.

할머니와 살았던 일우, 월우 세 가족은 월우의 죽음 이후 한순간에 무너졌다.

월우가 시신으로 발견되자 할머니 또한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우는 오로지 복수를 위해 소년원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소년원에 들어가면 순조롭게 이루어질 복수라 생각했지만 일우의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소년원 내에서도 폭력이 폭력을 낳는 양산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교정 교사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넌 왜 안 짖어?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잘못한 게 없어?

-예.

……. 마지막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한희상에 손에 쥔 쇠파이프가 주일우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 쇠파이프가 주일우의 머리를 강타할 때 깜짝 놀란 최누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하지만 구타의 당사자 주일우는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였다.

……. 5분, 10분, 시간이 흐를수록 푸르른 바닥엔 주일우의 몸에서 터져 나온 검은 핏방울들이 사방으로 번졌고, 창백할 정도로 환한 복도엔 쉼 없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한희상의 거친 숨소리와 북을 두르리는 듯한 마찰음만 반복되었다.


이렇듯 교정 교사는 아이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극악무도하고도 잔학스러운 폭행을 휘두르고 있었다.

엄청난 구타를 당했음에도 독방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주일우는 구타하기 전의 한희상의 행동과 말을 생각해본다.

"여기서 너흴 도와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내가 생사여탈권을 쥐었다고. 그걸 명심해."


주일우는 이곳에서만큼은 비상식이 난무하며 양호 선생의 무성의한 응급 조치와 한희상에 대한 원장 선생의 절대적 의존도를 보며 잔혹한 세계 안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괴물이 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주일우는 동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이곳, 소년원에서 괴물이 되기로 다짐한다.

과연 일우는 하나밖에 없는 쌍둥이 동생인 월우의 죽음을 낱낱히 파헤칠 수 있을까?




쌍둥이 동생 월우가 죽은 후 복수를 위해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 형 일우가 소년원 패거리와 잔혹한 대결을 펼치는 액션 스릴러로, 꼭 현실에서도 있을 것만 같아 읽는 내내 마음 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꼭 영화로도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개봉일인 내일 맞춰 올릴까하다가 전날 급히 올려본다.


크리스마스 캐럴

개봉 2022.12.07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장르 드라마, 액션 | 러닝타임 131분

크리스마스 아침, 쌍둥이 동생 ‘월우’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단순 사고로 사건이 종결되자, 형 ‘일우’는 복수를 결심하고 ‘월우’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들렸던 목소리를 찾아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동생을 돌봐주던 상담교사 ‘조순우’의 도움을 받으며 비밀을 숨기고 있는 ‘손환’과 자신을 없애려는 ‘문자훈’, 그리고 무자비한 힘으로 군림하는 교정교사 ‘한희상’까지 폭력에 맞서 목숨을 건 싸움을 계획하는데…


OCN에서 사이비 종교를 주제로 크게 주목받았던 드라마 『구해줘』를 만들었던 김성수 감독이 처절한 복수극을 그린 영화인데 배우 박진영이 1인 2역을 하며 쌍둥이 형제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김성수 감독은 말한다.

"일우와 월우로 대변되는 이 사회에서 소외 당한 사람들, 약자들, 피해자들이 보여지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자기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분노가 넘치는 얼굴과 웃지 않고 싶은데 웃는 이미지가 책을 덮고 생각났다. 이 사회에서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 좋은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됐다. 영화를 통해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 속의 얼굴을 관객들과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적 대우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 짐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는 대상은 피해자, 약자, 소외 계층들이다.

폭행을 폭행으로 되갚을 수밖에 없는 영화적 설정이 참으로 암담했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담하고 암울하기에 괜스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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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7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주 후면 크리스마스 캐럴이 곳곳에!저는 지난 달 부터 줄창 듣고 있습니다 ^^

Kletos 2022-12-10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너무 씁쓸하더라구요.. 영화 끝나고도 한참을 앉아있었어요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 - 구글러가 들려주는 알기 쉬운 경제학 이야기
박진서 지음 / 혜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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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우리들의 삶이 곧 경제이기에, 경제는 현실이다.

인간의 물질적 삶을 조직하고 규정하는 수단인 경제!

우리들의 일상과 분리할 수 없는 경제!

알기 쉬운, 재미있는 경제학 이야기가 드디어 시작된다.


저자, 박진서는 학창 시절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시절 유일한 취미는 라디오에서 들을 수 없는 노래를 찾아 듣고, 신문 구석에 숨어 있는 기사를 들춰내 기억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나만 알고 있다는 철없는 자만심과 도취감에 빠져 그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했다.

경제학자가 멋져 보여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경제학자의 힘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경제학자들의 사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들을 제대로 알아야 내 생각을 스스로 가두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본격화된 4차 산업혁명도 결국은 경제학자가 이데올로기의 틀을 제공하고 인간의 미래 또한 그들이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1991년 7월부터 지금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하고 있다. 섬유 수출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운 좋게 IT 업계로 직장을 옮기면서 에릭슨엘지, IBM, Brocade, Amazon Web Service 등을 거쳐, 현재는 Google Korea에서 클라우드 관련 일을 하고 있다.




Ⅰ 경제학자들은 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할까


- 주요 대학의 이른바 일류 경제학자의 연구일수록 외국 학술지를 지향해 한국 경제의 현실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 한국 경제학계는 대부분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외국 학술지 게재를 지향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핍돼 있고 학문 재생산 능력도 상실했다. (…) 이런 이유로 한국의 경제학은 관료나 기업들과 진정으로 대화하지 못하며,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 문제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로 자처하기 힘들다.


어쩌면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경제학의 하청 업체일지도 모르겠다.

연세대 경제학과 홍훈 교수는 앞서 적어놨던 내용을 포함한 논문을 발표했었다.

한국 경제학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닌 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오롯이 공부하기보다 외국 대학으로 진학하여 그곳의 사정을 반영한 학문을 배우고 오지 않는가.

홍훈 교수는 훗날 이런 말도 남겼다고 한다.

"한국 현실을 말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학계의 중심에 있거나 이런 내용이 연구나 교육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 경제학 연구와 교육이 한국 경제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학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사람이 더욱 적다."


2007년 한 학술 대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 한국 금융 시스템 문제, 소득분배에 관한 논의,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해 논의되었었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시선을 접할 수 있었던 저자는 그 때를 통해 '그 많던 경제학자들이 모두 다 어디로 간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주류 경제학자들이 강조하는 균형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을 덧붙였다.

"고집스러움! 굴복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입니다."

그녀의 비결은 겸손한 노력이 아닌 굴복하지 않는 고집이었다.

엘리너 오스트롬, 그녀는 정치학 박사로 여성 최초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어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잘 몰랐었는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에서 연구했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발견한 엘리너 오스트롬, 그녀는 경제학계에서만큼은 고집스러운 비주류였다.

공유지의 비극은 사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들에 의해 공유 자원이 고갈되어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즉, 공중 화장실의 화장지가 우리집 화장실의 화장지보다 더 빨리 고갈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후 많은 이들이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할 때 예견되는 환경의 악화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사용했으며, 이 이론은 인간의 이기심이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했다.

앞서 그 허상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공유 자원을 개개인에게 사유화시켜 공유 체제를 끝장내는 것이나 공유지의 비극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는 개인들 간의 협력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니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의 공권력에 맡기자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는데, 엘리너 오스트롬은 외부의 힘이 아닌 공유 자원을 사용하는 이들이 함께 자치적으로 문제 해결의 방식을 찾고 제도화하는 제 3의 길을 제시하였다.

그녀의 주장은 이랬다.

"공유 자원은 그 자원과 삶을 같이 하는 지역 공동체의 주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가장 좋은 방안입니다."

비록 공중 화장실의 화장지와 우리집 화장지 간의 소비 차이에 대해 완벽히 설명하지 못했어도 집단 구성원들이 오래 활동하고 공유 의식을 가지게 되면 숲, 들판에 열린 과일 같은 공유 자원이 고갈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합리적인 개인들 간에도 협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해냈다.

이렇듯 비주류 학자들의 자발적 의무는 경제학의 시야를 넓혔으며, 진리가 결코 하나의 학문으로 완성될 수 없듯이 철학, 정치학 등 다른 사회과학과 동떨어진 채 홀로 설 수 없다.


경제학의 의무는 비주류 학자들을 도외시하고 다른 학문들과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하는 것이다.




Ⅱ 경제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성장 기반도 다잡았다. 운도 따랐다. 때마침 세계적인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까지 겹치면서 한국경제는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매년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향한 발판도 마련했다. 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1인당 GDP는 1980년 1,714.1달러에서 1988년 4,754.5달러로 2.8배 늘었고, 만성적 무역 적자도 흑자 구조로 바뀌었다. 한국 경제는 지속 성장 궤도로 접어들었고, 중산층도 두터워졌다. 부가가치가 높은 자동차·전자·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성과도 정경유착과 각종 권력형 비리로 결국 빛이 바랬다.


숫자만 놓고 보면 흠잡을 곳 없어 보이지만, 21세기의 눈으로 지난 시대를 돌아볼 수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은 오롯이 숫자나 통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이 인간의 삶을 성장시키기 위함이라면 숫자보단 그 시절을 살아내었던 평범한 이들의 작은 역사를 더욱 더 소중히 여겨야 할 필요가 있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곁에 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텼던 것이지 눈부신 경제 발전때문에 버텨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 GDP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 GDP = 소비 + 투자 + 정부지출 + ( 수출 - 수입 ) >>

GDP는 Gross Domestic Product의 약자로, 한 나라의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 동안 생산한 재화,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합한 것을 의미하며, GDP 공식을 바탕으로 매해 6월이나 7월에 세계은행에서 전 세계 205개 국가의 GDP 순위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4위를, 2014년에는 13위를 차지했고 2015년, 2016년에는 11위까지 올라갔다가 2017, 2018년에는 12위로 한 계단 내려왔다.

(참고로, 2021년 기준 전 세계 GDP 1, 2, 3위는 미국, 중국, 일본순이다.)

이렇듯 GDP는 현대 경제 영역에서 힘이 센 개념이자 측정 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며, 로렌조 피오라몬티의 『GDP의 정치학』에서는 GDP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 숫자'라고 표현하였다.


수십 년 동안 GDP의 주문이 공적 토론과 미디어를 지배해 왔다. 나라들은 GDP에 따라 순위가 매겨졌고, 국력에 대한 지구적 정의는 GDP에 근거했으며, 지구적 거버넌스 기구들의 접근권도 GDP 성과에 따라 부여되었고(예컨대 G8 또는 G20 회원국은 그들의 GDP에 따라 선별된다) 개발 정책들은 GDP의 공식에 따라 만들어지고 집행되었다.


『GDP의 정치학』에서 나오는 서론 중 일부이다.

그렇다면 탱크와 미사일의 개수보다 GDP 수치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력하게 인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탱크와 미사일은 실제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위세를 떨치지만 GDP는 평화로운 시기에 소리 소문 없이 일상에 스며들어 삶의 질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즉, 피오라몬티는 GDP가 경제 성과를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선전 도구가 되는 순간 나라의 불평등이 심화되며 복지 정책 또한 후퇴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Ⅲ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


공리주의의 대부인 제러미 벤담은 영국에서 태어났는데 법률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라 3살 때 역사책을 읽고 5살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깨우쳤으며 15살에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였다.

한 세기 후, 인도 동부 한 지역의 부유한 가정에서 아마르티아 센이 태어난다.

9살 때 학교 교정에서 굶주림으로 인해 착란 상태에 빠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었는데, 훗날 옥스퍼드 대학의 강단에 섰을 때도 그 시절 보았던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19세기 벤담이 옥스퍼드 대학의 교정을 거닐며 공리주의의에 대한 믿음을 세운 것과 20세기에 아마르티아 센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리주의를 비판한 것 모두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공리주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보다 개인이 상품을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주관적인 만족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허나 벤담과 달리 센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 중시하였고 공리주의를 합리적 바보라 비판하며 경제 영역에 철학과 윤리를 호출해 빈곤과 불평등, 기회의 공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빈곤의 의미는 무엇일까?

필요한 상품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소득 상태를 일컫던 말이 빈곤이었다.

그러나 센은 "빈곤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다. 잠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다."라고 주장하며, 본인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을 빈곤으로 규정하였다.

즉, 빈곤은 당장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더욱더 비극적으로 만드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라 강조한 것이다.

오래 전, SBS 스페셜에서 '돈'과 관련된 주제로 미국인들의 극명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한 여성이 그런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 공화국이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것인데 정치인들은 탐욕스러워졌어요…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었던간에 우리 아이들에게서 빼앗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이 바뀌어도 여전히 학교에 갈 수 없고 어떤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으며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현실,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진정한 의미의 빈곤이라 외쳤던 센의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이렇듯 센은 GDP가 현실적 경제문제와 고통을 숨기는 주범 중 하나라 생각한다.

경제학은 한 국가가 연간 생산한 가치의 총액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센은 빈곤층이 얼마나 가난한지, 그 정도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줄 수 있는 종합지표를 만들었는데, 센 지수를 활용해 한국 사회를 분석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한다.

즉, 아직도 센 지수가 주류 경제학에서 외면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시장원리를 중심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할 때, 센은 시장 원리와 더불어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을 통해 빈곤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센은 "빈곤 문제에 국제적 관심이 모아지는 계기가 된 게 무엇보다 기쁘다."라는 말을 남겼었다.


인간에게 경제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자가 되려는 것 또한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결국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 추구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공감한다면 센코노믹스를 더 이상 경제학의 변방에 두어서는 안 된다.

센코노믹스를 경제학의 중심에 둔다는 것 자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며, 경제가 해야 할 본연의 임무 중 하나인 자유의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이 곧 경제이기에, 경제는 현실이다.

경제는 인간의 물질적 삶을 조직하고 규정하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일상과 분리할 수 없다.


140여 년 전, 헨리 조지는 독학으로 경제학을 터득했던 인물이다.

경제가 발전하는데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부동산 문제때문이라는 걸 최초로 논증한 경제학자이기도 하며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만으로 빈곤 탈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었다.

몇 년 전,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대해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혹시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읽기 전이나 후에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산업 불황의 원인과, 빈부격차에 대한 탐구와 해결책 , 『진보와 빈곤』 ▶ https://blog.naver.com/shn2213/221563608012

앞서 독학으로 경제학을 터득했다고 언급했듯이, 우리도 그처럼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기울인다면 충분히 터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롯이 돈으로 움직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중요한 것이 경제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비주류 학자들에 대해 무지했음을 반성하며 경제는 결국 마인드맵과 같이 모든 분야에서 연결지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현실의 삶을 통해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게 만드는 '거대한 힘'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우리의 경제적 조건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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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청약의 모든 것 -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이 선보이는 대한민국 주택청약 바이블
한국부동산원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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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꿈꾸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내 집 마련이다.

재산이 많거나 고소득자인 경우를 제외하곤, 내 집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이 바로 '청약'이다.

수입이 생기면 모두가 청약 통장 하나쯤은 만들어 두는데, 생각보다 청약에 대해 생소한 이들도 많은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유형별 신청자격과 당첨자 선정방식 그리고 청약홈 시스템 메뉴의 설명까지 다 담은 책이 있으니, 바로 『주택청약의 모든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은 1969년 4월 25일 부동산 시장의 안정과 질서유지, 소비자 권익보호와 부동산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토지·주택 등의 가격공시를 위한 조사·산정과 검증, 부동산 거래·가격·임대 등 시장동향 관련 통계의 조사·관리, 부동산시장 불법행위 조사지원 및 정부정책 지원 등 국민에게 신뢰받는 최고의 부동산 전문기관이 되고자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20년 2월 1일, ‘믿음 가는 청약, 쉽고 편리한 청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약홈(www.applyhome.co.kr)을 오픈,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Ⅰ 내 집 마련, 청약이 답이다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국민의 주거 안정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사실상 좁은 국토이기에 모든 국민이 주거생활에 만족할 순 없다.

그래서 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정부는 주택공급 물량과 가격을 조절하는 동시에 한정된 주택을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대상을 정하는 방식으로 주택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법 또한 정해두었다.

청약제도란, 주거 제도를 향한 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열망으로 탄생하였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다.


🏠 1963년, 최초의 정부 공급주택인 '공영주택'

최초의 주택공급제도는 1963년 제정된 「공영주택법」이다.

저소득자이면서 무주택자, 분양대금을 상환할 수 있거나 임대료를 지급할 수 있는 대상으로 공공주택의 일환인 공영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공급제도여서, 단순 추첨 방법으로 입주 대상자를 선정했다.


🏠 1970년,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약부금제도 도입

1970년대에 들어서자 산업화, 도시화로 인하여 도시의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1972년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에 근거하여 1977년 8월 18일 「국민주택 우선공급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여 공급 순위를 설정하고 국민주택청약부금 가입자에게 주택 분양 우선권을 부여하여 주택을 공급했다.

비로소 주택공급제도에 순위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셈이다.


🏠 1978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으로 청약제도의 기틀 마련

1978년 5월 10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었다.

공공주택에만 적용하던 주택공급제도가 민영주택까지 확대외었고 입주자저축(국민주택청약부금, 주택청약예금, 재형저축) 제도를 시행하는 등 본격적인 청약제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민영주택 최초의 일반공급 1순위 자격은 입주자저축에 가입하여 일정 횟수 및 금액 이상을 예치한 자였으며 국민주택의 경우 1순위 해외 취업 근로자(기능공 및 일반노무자)로서 영구불임 시술자, 2순위 영구불임 시술자, 3순위 해외 취업 근로자 순이었다.

또한, 철거민, 해외 취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특별공급도 최초 등장하였다.


🏠 1980년대, 신도시의 등장 그리고 본격적인 규제의 시작

1980년대 주택시장 규모가 커지고 부동산시장이 급변함에 따라 주택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정부 정책이 수도권의 주택난 해소를 위한 부동산 투기 억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제도 또한 규제 중심으로 개편, 강화되었다.

대표적으로 소형 공공주택에 대한 소득제한 및 민영주택의 채권입찰제, 전매제한 및 재당첨 제한 기간 연장이 있다.


🏠 1990년대, 외환위기 등 경제불황 극복을 위한 청약 자격 완화

1990년대 초반에는 금융실명제, 토지거래허가제도 등으로 부동산시장이 안정됨에 따라 주택정책이 시장자율화 및 규제 완화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외환위기로 야기된 경제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분양가를 전면 자율화하고 전매제한을 폐지하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였다.

그리고 민영주택 청약 자격을 세대주에서 20세 이상 성인으로 변경하여 청약 자격을 대폭확대하였다.


🏠 2000년대, 주택청약종합저축·가첨제의 등장 : 청약제도 다양화

2000년대 초반에는 외환위기로 위축되었던 주택시장이 저금리로 인한 가계대출확대, 부동산 규제 완화, 대규모 재건축 사업 추진으로 빠른 속도로 과열되었다.

이렇다보니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지정제도, 분양가상한제 및 전매행위 제한제도를 재도입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또한 투기과열지구나 공공택지 내 전용면적 85㎡ 이하 민영주택의 75%를 무주택 세대주에게 우선공급하는 등 청약 자격을 강화했다.

2007년에는 투기를 방지하고 실수요자에게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수, 입주자저축 가입 기간을 점수화하여 높은 점수순으로 입주자를 선정하는 가점제가 도입되었다.

2009년 5월, 주택청약 기회를 확대하고 입주자저축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민주택과 민영주택으로 분리되어 있던 청약통장 유형을 하나로 통합한 주택청약종합저축을 신설했다.


🏠 다양한 세대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한 노력

낮은 출산율, 무주택 청년의 증가 등 사회 변화에 따른 수요계층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여 2017년 8·2대책으로 규제지역 내 가점제 비율을 확대(투기과열지구 75%→100%)했다.

2018년도에는 추첨제를 통해 당첨자를 선정하는 경우에도 무주택자를 우선적으로 선정하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서울시 내 전체 청약 당첨자 중 무주택자가 98.6%에 달하는 등 실수요자 중심의 청약시장으로 재편되었다.

또한 가첨제 당첨자 중 오랫동안 무주택으로 지내온 4050세대의 비중이 약 81%를 차지하여 2017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민영주택 신혼부부 및 생애최초 특별공급 물량을 최대 30%까지 확대하여 2030세대에 보다 많은 청약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 등 소득 요건에 따른 청약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득 및 자산 요건을 완화해 현재 신혼부부 특별공급과 생애최초 특별 공급의 2030세대의 당첨자 비중은 50%를 웃돌고 있다.




Ⅱ 주택청약의 첫걸음


주택청약은 청약통장에 가입하고 순위와 일정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가능하다.

청약통장에 가입하면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홈페이지를 통해 청약 신청뿐 아니라 본인이 가입한 청약통장의 순위 확인 및 가입일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총 9개의 은행에서 1인 1계좌 기준으로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이 가능하다.

(9개 은행은 다음과 같다. 하나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DGB대구은행, 부산은행, 경남은행이다.)

가까운 영업점을 직접 방문하거나 모바일 앱을 통해 가입이 가능하며 종류에 따라 청약할 수 있는 주택이 달라지므로 통장별 특징과 성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청약이 일반 주택 구입과 다른 점은 신축주택을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양권을 매수하거나 재건축, 재개발 단지의 조합원이 되는 것도 내 집 마련의 방법이긴 하지만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청약은 공공택지 및 일부 지역 민간택지에서 공급하는 주택이라 실수요자의 자금부담을 덜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고 있어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청약은 입주자 모집 공고 이후 입주까지 약 3년의 시간이 걸린다.

계약금 납부 이후 주택이 건설되는 동안 중도금을 4회 이상 나누어 납부하고 입주 시에 남은 잔금을 납부할 수 있어 분양대금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 마련이 가능하다.

차이는 있겠지만 중도금은 개인이 대출 상품 알아볼 필요 없이 시공사가 보증하여 지정한 은행에서 집단대출 방식으로 납부하고 일부 단지는 무이자 대출을 진행하기도 한다.

입주 시 중도금 대출 상환금과 잔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일부는 주택담보대출로 상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주택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다.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은 청약 준비이기에, 청약홈에 들어가면 막상 생소한 단어에 접할 수도 있겠다.

청약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주택의 종류이다.

주택 종류에 따라 신청 자격과 당첨자 선정 방법이 다르는데, 책에서는 민영주택, 국민주택 그 중에서도 공공분양주택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에 주목해야 한다.

주택은 크게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으로 나뉘는데 이 안에서도 종류와 성격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분양주택은 누가 공급하느냐에 따라, 건설 자금을 어디에서 조달하는지에 따라 민영주택과 국민주택으로 나뉜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추위를 막고 짐승을 피하기 위해 동굴이나 움막으로 집을 지어 살았던 것이 그 시초가 아니겠는가.

내 집 장만 염원은 어쩌면 그 옛날보다 더 간절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산이 많거나 고소득자인 경우를 제외하곤 수도권에 집 장만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혼과 출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 집 마련에 있어서 관심두어야 할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청약이다.

나 또한 20대에 들어서고 수입원이 생기자마자 적금과 함께 청약을 들었었는데 아마 국민 대부분이 적금과 함께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청약일 것이다.


청약에 대해 1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청약 바이블과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청약의 기본 개념을 제대로 익히고 여건에 맞는 유형에 집중 공략하는 것이 포인트인만큼, 청약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한번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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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미국 미술사 다시 읽기 - ‘타자’로의 초대
김진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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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20세기는 미국 미술의 세기였다.

그만큼 미국 미술의 영향력과 위상이 매우 드높았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국제 미술계를 이끌어 나갔었다.

궁금하다. 20세기 후반의 미국 미술은 과연 어땠을지 말이다.

드높았던 위상과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때 그 시기로 여행을 떠나보자!


저자, 김진아는 현재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로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이론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미국 현대 미술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주립대 강사, 홀린스 대학 초빙조교수를 지냈다.

전공 영역은 현대 미술사와 문화이론이며, 문화적 정체성과 타자에 주목한 연구, 공공미술, 전시회와 담론, 상호매체적인 예술 양상 등을 탐구해 왔다. 그중에서도 본 저서는 저자가 가장 오랫동안 주목했던 타자 관련 연구들을 집대성하면서도, 일부의 미술 현상을 새롭게 조사하고 채우면서 완성한 결과이다.




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미술과 타자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타자'에 대해 잠시 설명하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타자'는 기존 미술계의 권력에서 밖으로 밀려난 자들 혹은 억압된 자들을 뜻하며, 대표적으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흑인, 여성, 라티노, 성소수자 등 소수자 집단들을 의미할 수 있다.


미국과 미국 미술의 대전환점을 맞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이다.

전쟁이 일어나던 중, 미국은 어느새 세계 최대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으며 종전 후 냉전 체제가 성립되자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의 리더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계는 여전히 유럽 미술을 따라가는 추세였다.

많은 미국 작가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교육받고 활동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다보니 세계 미술을 주도한 것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 미술계였다.

그렇게 종전이 되고 2년 후, 미국이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있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추상 작업들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초현실주의나 유럽에서 일어난 추상 형식을 더 벗어난 급진적인 추상 미술이 소개되었기 때문이었다.


1947년 잭슨 폴록은 이제는 전설이 된 드리핑 기법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순수 추상 작품을 내어놓았다. 윌렘 드 쿠닝도 야성적이고 파괴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작업으로 돌풍을 일으켰으며, 곧 바넷 뉴먼, 아쉴리 고르키, 마크 로스코, 클리포드 스틸 등도 함께 부상했다.


여전히 구성적 요소가 보였던 유럽의 모던 아트와는 달리 미국 화가들은 자유분방하고 야성적이어서, 이는 사회적인 메타포로 연결되어 계층적 사유의 타파라 주장되기도 하였다.

즉, 미국의 평등과 민주주의의 완벽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유럽 추상회화가 저택의 거실에 걸리기 맞는 이젤화라 불릴 수 있는 규모였다면 잭슨 폴록의 전성기 그림은 2m에서 6m에 이르렀었다.

거대하고 거친 화면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색면들은 꼭 광활한 미국 땅처럼 느껴졌으며 뉴욕 출신은 드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뉴욕에 모여 활동하고 있었기에 이들을 '뉴욕화파'라고 불렀다.

문화적 배경과 개성은 달라도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시기에 서로 의기투합하며 작업 방향을 함께 모색하였다.

또한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휘트니 등 미국의 젊은 근·현대미술관들이 새로운 미술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기 시작했다.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한국처럼 혈연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닌, 동화의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미국인으로 거듭남을 의미했다.

20세기 말까지도 지속되었으며, 이는 미국을 하나로 묶는 역동적이고 자랑스러운 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동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 프로테스탄트 윤리였다.

즉, 이민자들은 이 세 가지를 습득하고 지킴으로써 진정한 미국인이 되기를 요청받는다.

모든 문화가 섞이는 형상과 포괄적인 문화 수용성을 떠올리게 되는 용광로 개념은 실제 20세기 말 부상하는 다문화주의나 상호문화주의 등과는 대조적인 함의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는 앵글로색슨족의 언어와 종교인 영어와 기독교 아래에 위치하는 주변 문화 또는 하위문화로만 기능할 뿐 결코 주류 문화는 될 수는 없다는 암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열린 문화적 성격이라 강조되었던 '수많음으로 하나 됨'이라는 용광로 메타포는 비유럽권 문화를 식민화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미국주의'를 함축하는 것이다.



Ⅱ 여성 미술가들의 등장


민권운동 시기, 흑인과 치카노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주류 미술계의 배척에 대해 적극 항의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고유의 미학을 추구하면서 공동체 벽화나 해당 공동체만의 분리주의적 실천을 전개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에 운동으로서의 미술 실천이 사그라져 정치적인 예술 활동은 이어졌어도 그 전과는 달리 훨씬 산발적이고 덜 일관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제 2세대 페미니스트 미술 담론은 1세대 페미니즘 미술을 본질주의라 매도하였고 흑인과 치카노 미술가들 사이에도 공동체적 관심을 꼭 반영하던 경향은 약화되었다.

60년대 후반 탈미니멀리즘 경향과 다채로운 형식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확대되면서 70년대는 특정 매체나 장르로 당대의 미술을 지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를 다원주의(pluralism) 시대라고 부른다.

80년대 미술에서는 유독 사진 작업이 크게 부상하고 텍스트가 삽입되거나 텍스트가 중요한 매체로 등장한다.

기존에 있던 이미지나 작품을 이용하는 방식인 전용 또는 차용, 패스티쉬, 복제 등도 크게 유행한다.

이러한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 중 여성 작가들이 선구적으로 주목받는 사례가 많았고 특히 「옥토버」지로 대표되는 비평가와 미술사가들의 지지가 있었다.

1980년대, 주요 전시회에 포함된 동시대 여성 미술가들의 비율 자체는 남성에 비해 매우 낮았으나 그 이전보다는 높아지긴 했다.

바버라 크루거, 신디 셔먼, 셰리 레빈, 제니 홀저, 메리 켈리 등 여성 작가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제니 홀저는 1980년대 초 휘트니 비엔날레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개인전, 1989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90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관을 대표하는 최초의 여성 작가로 참여했고,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까지 거머쥐면서 역사적인 쾌거를 올렸다.


바바라 크루거는 1970년대 전후 여성 미술운동의 여파 속에서 구슬, 리본, 실 등을 이용해 만든 벽 설치 작업과 회화 작업을 했고, 197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하는 등 일찍 데뷔한 편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방황하다가 1970년대 말 큰 흑백 사진에 간결하고 대담한 텍스트 구문을 결합한 작품으로 돌아와 새 출발을 알렸다.


1980년대 말, 혁신적인 여성 미술가들은 주요 전시회에서 남성 작가들 사이에 한두 명식 끼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동시대 미술을 선도하는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위치로까지 오르게 된다.

초기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제도권 미술계와 상업화 현상을 비난하며 분리주의적인 전시에 임했다면, 신예 작가들은 주류 미술관에 입성했고 심지어 유명 상업 화랑에도 발을 들여놓는다.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는 물론 미술도 알아갈 수 있는 책이니 읽고 나면 나 자신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1장은 1947년부터 1960년대 중반 시기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주요 미술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추상표현주의 사조와 그 담론에서 어떻게 미국 문화가 정의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2장, 3장, 4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시기, 활발히 전개되었던 흑인 미술운동, 치카노 미술운동, 페미니즘 미술운동에 주목한다.

5장은 1980년대 부상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새로운 타자로서의 여성 미술가들에 초점을 맞춘다.

6장은 1980년대 후반 『환상의 미술: 라틴아메리카, 1920-1987』전, 라티노 미술을 다뤘던 최초 대규모 전시인 『미국의 히스패닉 미술』전, 이에 대한 대항적 전시로서 개최된 『치카노 미술: 저항과 확언, 1965-1985』전에 나타난 쟁점을 논한다.

7장은 1990년대 전후로 에이즈에 관한 사회적 편견과 정부의 소극적 대처에 항의하며 성 소수자뿐들 아니라 여러 미술인이 함께 펼쳐 나갔던 미술 운동 양상을 고찰한다.

8장은 1989년 이후 시기로 다문화주의 논쟁이 사회 전반과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9장은 1990년대로 아시아계 미국인 미술가들의 출현 등에 관해 서술되어 있다.


이렇듯 세계를 제패한 1950년대 전후의 추상표현주의가 어떻게 타자 미술가들을 그늘에 머무르게 했는가를 시작으로 이들이 장차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어떠한 질문과 도전장을 던져 나갔는지, 그리고 이들이 주류 미술계에서 어떻게 부상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으며 각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서술되어 있어 보다 깊이있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역사는 물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까지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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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벌써 마흔이 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 42
김혜남 지음 / 메이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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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정신분석 전문의로,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바쁘게 살았던 저자였는데, 그런 그녀가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게 된다.

청천벽력같은 진단에 아무 것도 안 한 채 천장만 바라보며 한 달을 보냈지만, 아직 죽은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미루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간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한다.

과연 그녀가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저자, 김혜남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 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다.

경희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인제대 의대 외래교수이자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비롯해,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과 나 사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등 10여 권의 책을 펴내 130만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또한 2006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받은 바 있다.




명색이 정신분석 전문의로 30년 넘게 일해 오며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온 사람으로서 이처럼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될 때마다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내일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나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스스로를 닦달하지 말고,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 말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당신은 충분히 즐겁게 살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은 늘 응원할 것이다.

정신분석가인 융의 표현을 빌자면 마흔에는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나 또한 마흔이 넘었을 때 마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럴 때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마흔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을 추려 정리한 이유다.

하루하루 잘 버텨 내고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외로운 당신에게 내 이야기가 조그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_저자의 말




Ⅰ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깨달은 인생의 비밀


"파킨슨병입니다."

2001년 2월, 강의가 있던 어느 날 저자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게 된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생산하는 뇌 조직 손상으로 인해 손발떨림과 근육 경직 그리고 행동이 느려지고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대개 65세 이후부터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고작 마흔세 살이었다.

아직까지 치료법이 없어 희귀성 질환으로 분류되어 발병 후 15-17년 정도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저자가 60세 전에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의사여서 어떤 병인지 잘 알았기에 더 끔찍하게 다가와 꼼짝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한없이 천장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는 거지?'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인데, 벌써부터 걱정하느라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지 저자는 문득 깨닫게 된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오곤 하는데, 신이 아닌 이상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후의 시간은 오롯이 내가 만드는 것이기에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똑같은 12년이라도 그 결과가 확실히 다른 것처럼…… 그것이 내가 2001년 2월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깨달은 삶의 진실이다.


병이 조금식 악화되어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도 미뤄뒀지만 결국 증상이 악화되는 바람에 저자는 병원 문을 닫고 요양을 위해 제주도로 내려오게 된다.

나홀로 선흘리에 있는 한 집에 머물며 치료에만 집중하니 조금씩 호전되는 기세가 보였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점점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것이었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내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이대로 실례를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화장실 문을 바라보는 대신 발을 가만히 쳐다보았고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떼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2초 만에 갈 수 있는 화장실을 5분 걸려 도착했지만, 도착해서 볼일 봤으니 목적은 달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저자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 한 발짝이구나.'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일단 한 발짝씩 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것이 시작이며 끝인 것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씩 떼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Ⅱ 환자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일곱 살 난 꼬마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를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나요?"

"기다려 봤니?"

"아니요."

꼬마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뒤 꼬마는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는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어릴 때는 마냥 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수식어가 많이 붙을 정도로 꿈이 많았다.

그러다 한 살, 두 살 먹고 나니 현실을 깨닫고 그저 돈만 많이 버는 것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고 해서 아이 때 느꼈던 달콤했던 모든 순간들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른으로서의 지혜와 힘을 가진다 해도 '건강한 어른'은 어린아이로 되돌아 갈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어른은 떠날 수도 있고 혼자 남겨질 수도 있어야 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 사랑도 하고 기댈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 있으며 성실하다고 느껴야 하며 늘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사람이 아닌 자기 인생을 결정짓고 책임질 줄 아는 씩씩하고 능동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며 여러 각도에서 인생을 폭넓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양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하는 능력과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배우고 이룰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포기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적응하고 꿈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것이 슬픈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수많은 한계 속에서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으면 한다고 말이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을까.'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일이 참 많다. 최선을 다했다해도 후회되는 일 한 두개는 품고 사는 게 인생이다.

후회는 고통스러우면서도 달콤하다.

과거 실수만 아니었어도 크게 달라졌을 현재를 가정법으로 상상함으로써 자존감을 회복시키고자 하는데에 있으니,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로 일할 때이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는 한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성장하여 결혼해서도 폭력적인 남자와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둔 여자가 알코올중독자인 남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과거'라는 우주복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성장하고자 몸부림치고 있기에 도돌이표처럼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면 그 문제로부터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

과거 속에서 살 것인가, 현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것인가.

현재의 고통이 과거에서 연결되었음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마음 속엥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지금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과거의 일이 지금의 심리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과거의 슬픔을 인정하고 슬픔을 이겨 낸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분명 행복해질 것이라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정신분석 전문의로,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그녀에게 닥친 파킨슨병.

그리곤 그녀는 깨닫게 된다.

스스로를 닦달하며 살아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너무 많이 놓쳐 버렸다는 사실을.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이 없는데도 세상은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직 죽은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미루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하다 그간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한데 모은 것이 바로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다.


어린 시절 수영장에서 놀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큰일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수영장을 가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 개조된 차량이 뒤에서 치는 바람에 붕 날라간 적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뒤쪽에서 나는 오토바이, 자동차 소리에 저절로 몸이 떨린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차량사고로 인해 다친 아빠에게 달려간 적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구급차 소리가 들릴 때면 밤에 자다가도 발작하듯이 벌떡 일어났고 구급차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요동쳤다.

이를 포함하여 작고 큰 모든 사고들을 다 예측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며 애쓰고 노력하였다.

과거에 머물다 보면 그 굴레에 갇혀 계속 허우적거릴 뿐이고 일단은 하루하루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어떤 길이 정답인지 우리는 알 수 없기에,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어떤 길로 가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나의 길, 정답의 길로 만드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다.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순간도 없다.

즉, 완벽한 때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빈 구석이 많은 것이 삶이고 이를 채우는 재미로 사는 것 또한 삶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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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1-27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열심히 살다가 저렇게 또 병을 얻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고 얼마나 억울했을까 막 그런 마음이 드네요 그걸 어떻게 견뎌냈는지가 너무 궁금하네요

2022-12-16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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