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의 길 - 미중 패권 경쟁에 맞서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박승찬 지음 / 체인지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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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후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한 저자의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관점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 박승찬은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중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지원센터장,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장,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 중국창업론 객원교수 등 다양한 곳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통해 3,000개가 넘는 우리 기업의 대중국 진출을 직접 현장에서 지원하고 있다.

현재도 칭화대학교 한국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으며 전 세계 칭화대학교 동문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사업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중국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Ⅰ 미중 신냉전, 어떻게 볼 것인가?


원치는 않아도 미중 양국은 갈수록 극심한 대립 체제를 보일 것이라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특히 2018년 미중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을 두고 의견이 매우 분분한 상태이다.

미중 충돌은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과의 충돌 사례와는 성격이 다른 편인데, 그 이유는 바로 이렇다.

당면한 시대 상황이 다르고 두 나라 모두 전쟁이라는 시나리오를 원치 않을 뿐더러 핵이라는 살상 무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면전 전쟁으로 치달을 확률이 높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신냉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국은 성장한 경제 규모와 글로벌 파워 만큼의 힘의 공간을 얻고자 하지만 미국을 추월해 패권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은 생존의 법칙을 습득해 주변국과의 충돌 조정, 해양 굴기, 금융 굴기를 통해 힘을 비축하는 등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중국이 패권의 발톱을 숨기고 힘을 비축하는지에 대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모델스키의 패권 사이클과 100주년 주기론'을 알아야 한다.

모델스키의 패권 사이클 100주년 주기론을 살펴보면, 역사 속에서 세계 패권국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도전국이던 프랑스, 독일, 소련도 뚜렷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세계 패권국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의 공통점]

1. 기존의 패권 국가와 큰 충돌이 없는 우호국이었거나 전쟁이나 갈등이 있어도 그 패권 지위를 물려주고 일어났다.

2. 접경한 주변국과의 충돌이 별로 없거나 우호국 또는 평정된 상황이었다.\

3. 금융 및 해양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도전국인 프랑스, 독일, 소련의 공통점]

1. 기존 패권국에 도전하며 계속 마찰을 일으켰다.

2. 접경한 주변국과의 충돌이 매우 잦으며 그러다 보니 국가 자원을 계속 주변국에 소모해야 했다.

3. 대륙 국가이며 금융에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미국과 신형 대국 관계를 원하면서 힘의 균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인도와 필리핀, 일본 등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이 매우 잦으며 중국은 러시아와 비슷한 대륙 국가이고 금융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을 이를 토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양국 간 성장 속도의 차이 때문에 도전국(중국)의 국력이 패권국(미국)의 국력보다 강해지는 세력 전이 이론에 비춰볼 수 있다는 점이 미국 신냉전 이해의 핵심이다.

과거에 미소 양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준비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일차원적 냉전을 펼쳤다면 미중 충돌과 격돌은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 등 다양한 영역을 두고 벌이는 것이기에 다차원적인 신냉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미중 신냉전 시대에 대한 대안이 없어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의 삶과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국내 언론 및 전문가들이 미국 신냉전에 대한 서로 다른 세 가지 시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글로벌 패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둘째,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새로운 패권자로 등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셋째, 미국 양국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경쟁과 충돌, 협력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쟁적 협력자 관계로 보는 시각이다.


「한비자」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전국시대 초나라 시기 창과 방패를 상인이 말하기를 '내 방패는 아주 견고하여 어떤 무기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창은 매우 날카로워 꿰뚫지 못하는 물건이 없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가 묻기를 '그럼 당신의 그 예리한 창으로 당신의 견고한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 상인은 대답하지 못하고 달아나버렸다.


창은 미국을, 방패는 중국을 비유해보려고 한다.

창이 방패를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답하지 못하고 달아나 버린 것처럼 즉, 미국 신냉전은 누가 이길 지 예측할 순 없다.

창이 반드시 방패를 이긴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보다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이 더 버틸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일 때, 201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프린스턴대학, 컬럼비아대학의 공동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미국보다 중국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종 승리는 결국 중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무역전쟁은 경제 파워가 아닌 미중 양국의 정치 시스템 차이에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폴 브라켄 교수는 미국은 금융의 창과 군사의 창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전략 수립이 필요하며 경제전쟁에서 중국이 대응 전략으로 미국의 국채를 팔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에 대한 의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할 때 이런 말을 했었다.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업가였기에 분명 중국입장에서 고율의 관세 부과는 중국 경제를 더 힘들게 할 것이라 전망했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왜 이러한 맹신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바로 최적 관세 이론때문이었다.

(최적 관세 이론이란, 거대 수입국이 자국의 부담을 상대 국가에 넘길 경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중국처럼 큰 나라가 보복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니 미국 기업들도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도 손해 보는 이론이었던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세를 높여 대중국 무역 의존도를 낮추려고 했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렇게 해봤자 여전히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공급망 문제를 알았기에 트럼프식 최적 관세 이론은 실패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역 관세의 창이 아닌 안보와 체제의 창으로 중국을 겨누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되고선 개최된 미중 고위급 회담은 여느 때처럼 구체적 사항은 비공개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공개로 진행되었고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졌었다.

백악관 국가 악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양국 간 갈등을 추구하지도 않지만, 힘든 경쟁도 환영한다."

그러자 외교부장 왕이 또한 이렇게 답하였다.

"미국 패권주의의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

저자는 이 회담을 통해 정치 및 경제적 관점에서 그 속내를 들여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먼저 정치적 관점에서 미중 양국 모두 자국 내 지지율 상승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회담을 실패라고 볼 순 없는 것이 당시 무역협상 세부 논의 방향 및 글로벌 환경 문제 등은 양국이 어느 정도 접점을 맞춰갈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Ⅱ 미중 경제 안보 전쟁의 미래는?


전 구글 회장이자 미국 국방부 혁신 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에릭 슈미트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미국인이 여전히 중국에 대해 구시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미국은 이제 신흥 기술 분야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빼앗아가려는 중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슈퍼컴퓨터, 5G·6G 통신, AI 등 3대 영역의 차세대 산업에서 중국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 AI의 원유이며 빅데이터의 핵심 인프라는 5G·6G 통신이다. 그리고 이를 수집하고 가공, 분석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이 세가지가 있어야 4차 산업혁명 기술이 함께 연동되어 새로운 첨단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구조이다.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시스템인 미국은 글로벌 혁신을 극대화하며 개방적인 접근으로 성장한 반면, 중국은 사회적 통제 강화, 국제적 영향력 확대, 군사적 역량 강화 등의 전략적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목표를 설정하고 강력한 정책적 드라이브로 기술 경쟁력을 키워왔으니 견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슈퍼 컴퓨터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빠르게 해결책을 마련하기에 4차 산업혁명에서 핵심 경쟁력이다.

미중일 3국이 고성능 슈퍼컴퓨팅 기술 개발을 두고 각축적은 벌이고 있는데, 참고로 한국은 삼성전자 SSC-21 슈퍼컴퓨터가 1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중국의 슈퍼컴퓨터는 산업적 목적을 넘어 군사 및 안보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 미국은 중국 슈퍼컴퓨팅 기술 역량 제고에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자국 주도의 GPU 기반 슈퍼컴퓨팅 생태계에서 중국을 배제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슈퍼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와 메모리, 운영체제 등 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슈퍼컴퓨터 기업 제재 실효성에 대한 반론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인텔, 마이크론, IBM 등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CPU와 메모리, 소프트웨어 등 가장 많이 구매하는 기업이 바로 중국 기업인데 이를 팔지 못하게 하니 이 손실을 떠안는 것은 바로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웨이 타이후 라이트는 자체적으로 리눅스 기반의 선웨이 26010 프로세서와 선웨이루이스 운영체제를 탑재한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미국 주도의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기존 대미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미국의 중국 슈퍼컴퓨터 기업에 대한 거래 제한은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퇴출과 중국의 기술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중 충돌은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러서는 동맹 중심의 안보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중국과 반중국의 정치·경제적 프레임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제재에 맞서 기술 민족주의와 디지털 보호주의 정책으로 정면 대응하면서 단순 충돌을 넘어 제3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서 미국 기업과 투자자들은 중국 경제가 중국공산당의 정책 우선순위에 의해 좌우되고 통제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데이터 제국이라는 점이다.

데이터의 확장은 AI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는 향후 군사 및 국가 안보를 지배하는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패권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중국은 견제해야만 한다.

2020년 8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틱톡 사용금지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일이 있었다.

국가 안보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그 이유였는데 현 대통령인 바이든 또한 중국 주요 통신장비 기업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은 이를 보며 국가와 데이터 안보를 명분 삼아 대대적인 반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충돌은 전 세계 글로벌 벨류체인을 뒤흔들고 있으니 우리도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테크 경쟁은 데이터 구축이 핵심이다. 데이터는 곧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양국 간 데이터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은 더욱 본격화될 것이다.




Ⅲ 국익의 길을 찾아서


시카고대학 교수인 존 조셉 미어샤이머가 그런 말을 했다.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폴란드와 한국이다. 강대국들에 포위되어 있는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이 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니 우리는 전략적으로 사고해 미중 갈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생존과 직결되기에,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과는 다르다.

IMF도 극복한 대한민국이지만, 장기불황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을 과거의 대한민국과 동일시할 순 없다.

분단국가임에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세계 중심 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비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WTO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무역 순위에서 한국이 세계 8위를 차지했었다. 수출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5위의 무역 강국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 파이어파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군사력 순위 6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누리호 발사 등을 고려하면 세계 4위의 항공 우주 생산 거점 국가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눈부실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겠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세계 8위의 강대국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를 강대국 대비 약소국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약소국이 아니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국력 수준이 강대국과 약소국의 중간 정도에 있으며 자국의 이익을 근간으로 강대국 압력 및 강요를 거부하며 글로벌 다자주의와 거버넌스를 통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니 중견국이 아닌 중견 선진국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맞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규범과 가치, 자국의 이익을 근간으로 한 목소리 낼 수 있는 중견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 예상하고 있겠지만 바로 정치와 국가 리더의 역량이다.

이념적 대립, 중미경중 현상, 여야의 정치적 대립 등은 우리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어 제대로 뒤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탄탄한 상태가 아니기에 복잡하고 다양한 국면을 국가 리더인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

균형적인 시각과 국익의 관점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하며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리더는 과거의 실수를 기반 삼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예지력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더욱이 이러한 리더가 필요하다.


"국가의 안정과 위기는 어떤 정책을 내느냐에 달려 있고, 존속과 멸망은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정상국가들의 모임인 G7에 대한민국이 초청된 것은 단순히 동맹 강화가 아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양국은 지정학 및 지경학적 측면에서 한국을 전략적 자산으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우리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잘 관리하고 운영한다면 이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가지고 있어야 그 어떤 강국도 우리나라에게 함부로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면 나오는 단어가 바로 국익이다.

국익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의 안전과 발전을 위하여 국민이 전체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이익으로 규정되고 있다.

나아가 군사 안보, 경제적, 문화적으로 국가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국민이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기에 결국 국가는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한국의 국익은 바로 이렇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엄청난 경제 성장을 기반으로 글로벌 중견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미중일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여러움 속에 처해 있으니 매번 요동치고 있다.

미중 양국의 강대국 사이에서 바람직한 국익과 가능한 국일을 나누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말했듯이 동맹의 가치와 국익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최선의 국익 선택을 위한 다양한 선택의 기준을 펼쳐놓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결론은 그 어느 국가를 선정하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없고, 자칫 잘못하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중 양국이 우리나라를 절대로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중 양국과의 긴밀한 소통과 국익에 기반한 면밀한 연구와 분석 없이는 전략적 자율성을 찾을 수 없다.


빠르다! 지금의 시대를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난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모두 접할 수 있었던 90년대생이기 때문에 얼마나 사회가 빠르게 급변하는지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아직도 아빠가 사용했던 삐삐부터 휴대폰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지금은 MP3도 모르는 세대들이겠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많이 정보를 획득할 수 있지 않았다.

전자사전, MP3, CDP, PMP는 물론 폴더폰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그간 사용했던 전자기기들을 유물처럼 아직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것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자연스레 주제가 생성된다. _"전자기기의 발전"

MP3이전에 CD를 넣고 들었던 CDP 그리고 전자사전과 PMP는 공부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필수품이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이전에는 모든 것을 '직접' 찾아봐야 했기에 영어공부를 하려면 사전이 필요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이전에는 MP3에 노래 파일을 넣어 들을 수 있었다.

3G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5G이다. 이 얼마나 빠른 것인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제는 1년이면 강산이 변할 정도이다.

이렇듯 5G 시대도 정착되지 않았는데 벌써 한국과 일본은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6G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고 있다.

6G이다! 6G는 현재 국제적 이니셔티브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빠르면 2023년-2024년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 표준 선점은 곧 국가 경제 발전과 미래 안보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재빨리 선점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2G는 유럽이, 3G는 일본이, 4G는 미국이 선점하였고 5G는 중국이 선점해 시장을 장악하였다.

(5G는 한국이 5G 상용 서비스를 먼저 시작했지만 5G 보급률은 중국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

6G는 한국과 중국이 주도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분위기라 미국 입장에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G는 특히 지상 통신과 위성통신의 통합된 형태이다. 이러다보니 위성통신 기술 개발에 6G 표준 결정이 핵심이라 모두가 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군사 및 국가 안보를 지배하는 핵심은 곧 데이터의 확장이기에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사실 대한민국의 정치와 국가 리더의 역량은 국민들이 만족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국익을 위해 강대국들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는 커녕 내부 분열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목표삼아 일해야 하는데 어쩐지 개개인의 이익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니 결속해도 모자랄 판에 대립하고 분열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분통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정치와 국가 리더의 역량이야말로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이전과 달리 뉴스에 너무 소홀한 것 같아 반성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렇게 국내·외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해 알고 갈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얼마나 유익했는지 모른다.

전후 상황을 잘 알아야 핵심 사건에 대해 자연스레 이해도가 높아지니 연령대에 상관없이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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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개정판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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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꽤 오래 전에 한 매거진에서 초파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작디 작은 초파리의 영향력이 꽤나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그 때 나는 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20세기의 생물학과 유전학의 상징은 초파리이며, 초파리를 빼놓고 생물학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초파리가 어떻게 생물학의 역사를 대변하는지 이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 마틴 브룩스는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비평가로서 수많은 대중 과학서를 집필하였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8년간 초파리를 연구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손에 잡히는 유전학Get a Grip on Genetics》과 《무엇이 위대한 아이디어일까?-유전학What’ the Big Idea?-Genetics》 《극단적 조치-프랜시스 골턴의 빛과 그림자Extreme Measures-The Dark Visions and Bright Ideas of Francis Galton》 등이 있다.




유전학의 새로운 역사 -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운 만남


모건은 자신도 그 논쟁에 끼어들까 생각하다가 마개가 느슨한 병이 눈에 띄자, 손을 뻗어 그 병을 집어 들었다.

마개를 단단히 막고 나서 병을 불빛 아래롤 가져가 소인국 같은 그 안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초파리들은 일상적인 일에 열중해 있었다. 어떤 놈은 다른 놈 위에 올라타려 애쓰고 있었고, 어떤 놈들은 이미 뒤꽁무니가 서로 붙어 있었다. 모두가 몰두한 짝짓기 게임에서 벗어나 가장자리에 홀로 머무는 녀석들도 몇 마리 있었다.

모건은 초파리들이 자신들의 일상의식에 몰입한 채 어쩌면 저렇게 바깥 세상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는 병을 도로 내려놓고, 다음에 발표할 중요한 논문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오는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를 생물학계의 총아로 만든 사람이며 1910년부터 1915년까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자신의 연구팀과 함께 초파리를 수십억 마리나 번식시켰었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광란 그 자체였을지 몰라도 6년이란 기간동안 모건과 그의 연구팀은 온갖 노력 끝에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운 것이었다.

모건과 초파리의 만남은 곧 두 기회주의자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험과학에 광적으로 열중한 키가 크고 긴 턱수염을 가진 남자, 실험적인 짝짓기에 광적으로 열중한 작은 몸에 온몸이 털로 뒤덮인 동물 - 목적은 달라도 열정적이었던 이 둘의 결합은 결국 실험실에서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


역사적으로 알아야 할 부분이 있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미국 생물학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 바로 남북 전쟁이다.

남북 전쟁 이전까지의 생물학은 신학을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쟁 후에 독일의 생물학을 모범 삼아 새로운 생물학을 도입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박물학이 이전의 생물학, 즉, 신이 만든 작품들에서 에서 패턴을 찾으려는 것을 포기하려고 하자 새로운 학문으로 변하게 된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의 무대를 박물관에서 대학의 새로운 학과와 연구소로 옮기게 된 것이다.

존스홉킨스, 하버드, 시카고, 코넬 대학교와 같은 혁신적인 대학들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게 되면서 실험생물학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새로운 생물학의 발견으로 생물학에서 실험 연구가 실용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886년, 스무 살의 모건은 존스홉킨스대학교에 들어가 전통적인 박물학을 선택하였고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바다거미의 분류를 택하게 된다.

그의 연구는 무미건조하고 기술적이어도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광범위한 생물학적 견해를 가진 이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만남으로 인해 모건은 실험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박사학위를 마친 모건은 브린모어대학교의 생물학 부교수로 발령받게 되고 여기서 자크 로브와 한 팀이 되어 일하게 된다.

(자크 로브는 독일 출신의 생리학자로, 실험생물학에 탄탄한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로브의 적극적인 권유로 모건은 유럽으로 가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데 특히 해양생물학 연구소이자 전 세계 생물학자들의 메카인 동물학연구소를 방문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나폴리 동물학연구소는 모건의 실험생물학의 거대한 잠재력을 깨닫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그의 연구 경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폴리 동물학연구소에서는 온갖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스위스, 미국에서 연구자, 교수, 객원 강사, 조수, 학생 등 생각과 교육 배경이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마치 만화경이 돌아가듯이 달이 바뀔 때마다 장면이 바뀌었다. 그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생각들과 비판적 견해들의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든 깊은 영향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특히나 시간을 들여 연구한 주제는 바로 '재생'이다.

지렁이를 가지고 실험을 계속했지만 결국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다.

그렇게 1904년 여름, 그는 대학원생 제자였던 릴리언 샘프슨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여름동안 스탠퍼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를 하면서 이색적인 허니문을 보내게 된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브린모어대학교를 떠나 컬럼비아대학교로 옮겨 가기로 결정하게 된다.

학생 시절에 몰두했던 기술적인 방법을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이제는 실험과학을 열렬하게 옹호하며 자신의 연구에 헌신적이다.

무엇보다 38세 무렵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험생물학자로 인정받았으니 안 떠날 이유가 없었다.

드디어, 초파리를 만날 때가 된 것이다.


모건은 초파리 실험에 비교적 늦게 참여한 셈이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실험실에서 데뷔한 지 7년이 지난 1907년에 처음 만났으니깐.

초파리는 크게 주목받는 대상은 아니지만 꽤 믿을 만한 실험동물이었다.

당시 새 대학원생을 받는 시기어서 퍼낸더스 페인이 들어오게 되었다.

페인은 모건에게 동굴에 사는 물고기가 실명하는 쪽으로 진화하는지 조사하고 싶다고 의견을 내놓았었다.

19세기 초, 프랑스 생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는 생물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진화한다고 주장했었다.

즉, 환경변화는 눈의 필요를 없앨 수 있으니 페인이 모건에게 제안한 실험은 라마르크식 진화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될 수 있었다.

실험적으로 검증할 만한 가치는 있지만 시간과 비용의 제약으로 인해 동굴물고기를 대상으로 하는 게 마음에 걸렸던 이들은 그 대상을 초파리로 결정하게 된다.

페인은 빛은 차단시켜 49세대에 이르는 초파리를 번식시켰지만 큰 변화를 발견할 순 없었다.

그러나 모건은 실험 결과보다 방법을 훨씬 중요하게 여겨 초파리를 자신의 연구실에서 정식 실험동물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른다.

초파리는 과학계의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파리와 관련된 실험을 통해 이룬 과정과 성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 지도의 작성은 거대한 한 걸음이었다.

스터티번트, 브리지스, 멀러 그리고 모건!

모건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초파리는 멘델의 유전 이론을 염색체설과 결합하여 유전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제시했으며 초파리 번식을 유전자 지도 작성 기술로 발전시켰다.

그들 모두 새로운 유전학 분야의 개척자였다.



진화유전학의 탄생 - 초파리 실험


이전까지 보조 역할에 불과했지만 1970년대는 초파리의 전성기였다.

독일의 한 대학교 작은 분자생물학 연구실, 발생생물학자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와 에릭 위샤우스가 초파리 연구를 재개했었다.

그런데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1만 km 이상 떨어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진행하였던 행동의 유전학적 연구에서도 초파리가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이를 이끈 인물이 바로 과학자 시모어 벤저였다.

1970년대, 초파리의 대중적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인물이 바로 시모어 벤저였다.

초파리가 짝짓기에 탐닉하는 동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짝짓기에만 몰두하는 뇌가 없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초파리의 지적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훈련만 적절히 시키면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한 것이었다.

그의 실험 과정에 따르면 초파리의 기억은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된다고 한다.

세 시간 뒤에 시험을 반복하면 일부 초파리는 기억을 잃은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렇다고 장기 기억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초파리가 기억을 오래 간직하게 하려면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초파리의 기억은 신기하게도 사람의 기억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여졌다고 한다.

특히 중간에 적당한 휴식 간격을 두고 반복 훈련을 할 때 기억을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었다. 휴식 시간이 매우 중요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휴식없이 훈련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 기억은 오래 남지 않는다.



짝짓기를 둘러싼 진화 게임


초파리 생물학자 트레이시 채프먼의 초대로 기묘한 실험을 보게 되었다.

특히나 트레이시는 초파리의 성생활 연구 중 정액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과학자이다.

강한 조명이 비치는 투명한 샌드위치 포장 상자 안을 지켜보는 트레이시를 보며 그 앞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덩달아 살펴보게 된다.

상자 안, 수백 마리의 초파리가 줄지어 기어다니며 대부분의 초파리는 이미 짝을 지었는데 암컷이 앞서 가면 수컷은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

수컷의 시선은 알이 들어 불룩한 암컷의 크림색 배에 고정돼 있었다.

수컷들은 얼른 교미를 하고 싶어 안ㄷ날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암컷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질 않는 것을 보니 짝짓기를 둘러싼 양성 간의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광경도 목격하게 된다.

한 수컷이 한 암컷 뒤를 따라 상자 안을 돌아다니다가 반대 방향에서 다른 암컷이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자 잠시 멈춰 선 수컷은 어느 쪽을 택할지 생각하게 된다.

마음을 정하고 방향을 바꾸려는 그 순간, 이미 두 암컷은 무리 속으로 사라지고 수컷은 텅 빈 플라스틱 조각 위에 홀로 남는다.

트레이시의 이 모든 실험은 초파리 성생활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정액의 이미지가 크게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단순히 정자를 운반하는 무해한 매개 물질이 아닌 초파리의 정액은 끝없는 짝짓기 전쟁에서 사악한 화학 무기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초파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며 한낱 작은 생물일지라도 그들도 마찬가지로 다 계획이 있음을 깨우칠 수 있었다.

흘리듯이 봤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초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한 매거진에서 본 기억이 있다.

해외잡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타이틀 위주로만 스윽 보고선 제대로 본문을 읽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책을 보고 나니 초파리가 생물학과 깊은 연관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던 부분인지라, 과학이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고 자세히 보지 않았던 한때의 무지했던 나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지나가고 날아다니는 벌레에도 온몸에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무서워하지만 쏙쏙 파헤치며 이야기 하나하나 읽다보면 참 신비롭게 느껴지니 아이러니하다.

크게 어려울 것 없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생물학에 관심있어 하는 학생들에게도 꼭 추천해주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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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03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파리 초딩 숙제(방학)로 키워 봤습니다 생각 보다 영리한 곤충!(꼬꼬마 시절 곤충 전문가 였음) 하나님 계신 곳 태풍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서울 지금 시각 바람 소리 무섭

2022-12-16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9-03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은 책도 다양하게 많이 읽으시는거 같아요~!! 초파리 저는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저런 역사가 있었군요 😅

하나의책장 2022-12-16 19:58   좋아요 1 | URL
제가 정-말 못 하는 과목이 과학이었는데, 과학책의 재미를 맛보고 나서는 재미있는 주제로 신간이 나오면 꼭 읽고 있어요😚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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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탄생 이후 100여 년 동안 한 번도 절판되지 않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원조!

소설이어도 예나 지금이나 속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일기가 최고이다.

100여 년 전이지만, 영국 지방 소도시의 일상이지만 현실감 넘치는 주인공들이 가득해 생동감이 넘친다.

생동감 넘치는, 100여 년 전 영국 여인의 일상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E. M. 델라필드의 본명은 에드메 엘리자베스 모니카 대시우드, 결혼 전 성은 드 라 파스튀르로, 1890년 잉글랜드 남동부의 서식스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스 혁명기에 잉글랜드로 이주한 백작 가문의 후손이며 어머니는 유명한 소설가였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데번주 엑서터의 간호 봉사대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1917년 첫 소설 를 발표했다.

1919년 토목기사인 아서 폴 대시우드 대령과 결혼한 뒤 잉글랜드의 데번주 켄티스베어에 정착하여 지역 사회의 주요 인사로 활동했다.

진보적 정견과 페미니즘을 기치로 내세운 영국의 주간지 <시간과 조수>에 꾸준히 기고했고 1927년 이 주간지의 이사진에 합류했다.

1929년부터 <시간과 조수>에 연재된 자전적 소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으며 이후 세 편의 속편을 더 발표했다.

1943년 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1월 8일

남편 로버트가 화덕을 보더니 멀쩡하다며 통풍 조절판을 꺼내보라는 뻔한 제안을 한다. 요리사는 몹시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낼 것 같다.

…… 본머스에 갈 준비를 하던 중 남편이 다락에서 여행 가방을 꺼내다 구근 식물 화분 세 개를 깨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하실에 내려놓은 줄 알았다나. 어쨌든 거기 있을 줄 전혀 몰랐단다.



11월 11일, 본머스

로빈이 조금 마른 것 같아서 양호교사에게 얘기하자 그녀가 밝게 대꾸하길, 어머,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이번 학기에 오히려 살이 쪘는걸요. 그러곤 새 건물을 짓는다고 떠들어 댄다.

의문: 왜 모든 학교가 6개월에 한 번씩 새 건물을 지어야 할까?



11월 13일

흥미롭지만 다소 불편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특정 장소의 존재 여부를 놓고 비키와 긴 설전을 벌인 탓이다. 비키는 그 특정 장소를 "지 그리고 옥"이라고 부른다. 현대적인 부모인 나는 그런 곳은 없다고,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비키는 있다고 우기며 성경을 들이댄다. 나는 어느 때보다 현대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영원한 천벌을 받는다는 이론은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 지어낸 거라고 타이른다. 그러자 비키가 바락바락 대든다. 자기는 그런 얘기를 들어도 전혀 겁나지 않는다고. 오히려 지옥을 계속 생각하고 싶다고. 교착 상태에 이른 것 같다. 제멋대로 생각하라고 내버려두는 수밖에.

의문: 현대의 아이들은 현대인이 되기 싫은 걸까? 그렇다면 현대의 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11월 19일

너무나 힘든 이틀을 보내고 있다. 뜻밖에도 시시 크래브가 엄격한 식이조절으 하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로버트는 시시에게 넌더리를 낸다. 렌틸 콩과 레몬 따위를 급조할 수 없어서 부엌도 몹시 어수선하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마드무아젤은 식이요법 얘기를 자꾸 꺼내며 몇 번이나 이렇게 소리친다. "아, 몽 두 생 조제프!" 불경한 말인 것 같아서 그만하라고 당부한다.

("아, 몽 두 생 조제프!"는 "어머나, 성 요셉이여!"를 뜻한다.)



12월 1일

비키에게 엄마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그 애의 대모가 3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다고 얘기하자 아이가 대뜸 이렇게 묻는다. "와, 그럼 내 선물 사오는 거야?" 아이의 탐욕에 혀를 내두르며 투덜거리자 마드무아젤이 하는 말, "시 라 생트 비에 르주 르브네 쉬라 테르, 마담. 세 스레 노트르 프리트 비키."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게다가 무드무아젤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비키를 두고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스 프티 데몽 앙라제."

의문: 프랑스 사람들이 언제나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 라 생트 비에 르주 르브네 쉬라 테르, 마담. 세 스레 노트르 프리트 비키."는 "성모 마리아께서 이 땅에 환생하셨다면 아마 우리 예쁜 비키가 그분일 거예요."를 뜻한다.)

("스 프티 데몽 앙라제."는 "성난 꼬마 악마 같으니."를 뜻한다.)



12월 12일

남편은 길 잃은 새끼 고양이를 절대 거둘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있는 부엌 고양이만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그러나 비키가 애원하자 조금씩 누그러진다. 이제 새끼 고양이가 수컷이냐 암컷이냐에 따라 운명이 갈릴 판이다.



12월 16일

…… 레이디 복스가 찾아와서 말하길, 자기는 햇살이 필요해서 다음 주에 남프랑스로 떠난단다. 그러더니 내게 같이 가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씹다 뱉은 껌처럼 늘어져 있다면서. 좋은 의도였을 테지만 어쩐지 매우 부적절하고 모욕적인 비유처럼 느껴진다.

레이디 복스가 묻는다. 그냥 기차를 타고 프랑스를 달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여름 태양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면 좋지 않겠어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으련다. 레이디 복스의 머리에는 비용이라는 문제가 들어갈 자리조차 없는 것 같다.

메모: 여성회 토론 주제로 흥미로울 듯. '상상력과 상속받은 재산은 양립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하니 사회주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 떠나면서 레이디 복스는 남프랑스 여행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한 번 더 호소한다. 나는 예의상 망설이는 척하며 마음이 바뀌면 바로 연락하겠노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나도 그녀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의문: 우리가 위선이라는 도덕적 일탈을 하는 이유는 주로 상대의 눈치 없는 고집 때문이 아닐까?



크리스마스 날

하인들을 쉬게 해주려고 저녁은 차가운 칠면조와 크리스마스 푸딩으로 떼운다. 앤젤라가 구근 식물을 보더니 어째서 구근 식물이 크리스마스에 꽃을 피울 거라 생각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자고 제안한다.



12월 27일

윌리엄 부부가 떠났다. 막판에 앤젤라가 작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지난주에 주간지 <시간과 조수> 작품 공모에서 '지식인'이라는 필명으로 1등을 했는데 혹시 알고 있었냐고 묻는 게 아닌가. 당연히 몰랐지만 축하해 준다. 나도 응모했는데 당선되지 않았다는 말을 삼킨 채.

의문: 이 공모전의 편집자들이 언제나 문학성을 예리하게 평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중한 업무로 판단력이 흐려질 때도 있지 않을까?

…… 집으로 오는 길에 얌전하게 행동한 비키와 로빈을 칭찬해 준다. 하지만 나중에 마드무아젤에게 들으니 비키의 파티 드레스 주머니에서 초콜릿 비스킷이 왕창 나왔다고 한다.

메모: 이런 행동은 예절과 위생, 정직성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며 현명하지도 않다고 비키에게 말해주는 게 좋을까?



2월 12일

레이디 복스가 내게 아이들의 안부를 묻더니 모두를 향해 내가 "얼마나 완벽한 엄마인지 모른다"고 덧붙인다. 그때부터 모두들 자연스레 나와 대화하기를 꺼린다. 레이디 복스는 계속해서 남프랑스 얘기를 떠들어 댄다. 자기가 그곳에서 써먹은 이러저러한 재담을 열심히 해석해 주면서.

여기서 피할 수 없는 의문: 정당방위의 살인이라고 해도 자식들의 앞길에 큰 걸림돌이 될까?



4월 2일

하워드 피츠시몬스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어설프게 이 두 주제를 오가며 분위기를 더없이 어색하게 만든다. 이 파괴의 마지막 결정타는 내 손에 쥐어진다. 어쨌든 바버라에게 차에 우우와 설탕을 넣을지, 빵을 먹을 것인지 따위를 물어봐야 하니까.

메모: 요리사에게 코딱지만 한 스펀지케이크 조각을 왜 들여보냈는지 무어볼 것. 먹고 남은 음식이 틀림없는데 이 스펀지케이크를 처음 본 지가 열흘도 더 된 것 같다. 그리고 맛없어 보이는 작은 록 케이크는 왜 계속 내오는지도 물어볼 것.



6월 1일

레이디 프로비셔가 요즘의 치과 진료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갑자기 모두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빵을 먹느라 바쁜 로버트를 제외하곤 다들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메모: 손님을 초대했을 때 먹먹한 정적이 흐르면 이런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하면 좋을 듯.

……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묻는다. 이런 기후에서 혹시 아름다운 푸른색의 '그란디플로라 매그니피카 수페르비엔시스'(어쨌든 이와 비슷한 이름이었다)를 제대로 키운 적이 있느냐고. 내가 없다고 짧고 솔직하게 대꾸하자 눈에 띄게 안심한다. 혹시 이 부인은 평생 그란디플로라 매그니피카 수페르비엔시스가 이 기후에 적응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내 정원에서는 그 귀한 식물이 잡초처럼 잘 자란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메모: 이런 망상에 자주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것. 영양가도 없고 사람들 앞에서 멍한 인상을 주기 쉽다.



6월 23일

…… 점잖게 당황하는 여주인의 얼굴을 보니 내 재치 있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계속 후회를 곱씹고 있는데 어느새 화제가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에 관해서는 모두들 한마음이 된다. 미국인들은 확실히 개방적이지만 전쟁 빚은 어쩔 셈이냐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금주법은? 싱클레어 루이스는? 에이미 맥퍼슨은? 남녀공학은? 모든 논의가 끝날 무렵 우리 중 아무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모두들 뚜렷한 주관을 가졌고 다행히 모두가 서로의 관점에 동조한다.

의문: 도덕적 용기가 남다른 사람이 여기서 갑자기 실험 정신을 발휘해 파격적인 의견을 제시한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예를 들면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예의범절이 뛰어나다거나 그들의 이혼법이 훨씬 더 발전된 형태라거나, 등등. 이런 심리적 폭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싶지만 로버트가 없는 자리라면 더 좋을 것 같다.




때는 1929년 말, 잉글랜드 지방 소도시에서 살고 있는 한 여인의 일기이다.

남편 로버트, 아들 로빈, 딸 비키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

지적이고 여유로운 생활이 매일같았으면 좋겠지만 로버트는 무뚝뚝하고 약간의 신경질적이며 아들과 딸은 꽤나 말썽꾸러기들이다.


현대적이고 지적인 여성의 삶을 갈망한다.

넉넉지 못한 생활이었기에 음식과 드레스를 장만하기 위해 보석을 전당포에 맡기고선 전전긍긍하고 문학을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때문에 사교모임에서 그 작품이 나올까봐 전전긍긍한다.

앞서 말했듯이, 갈망한다.

갈망하지만, 로버트가 말도 안 되게 신경질을 내고 아이들을 혼내고 싶을 정도로 말썽을 부려도 집안의 평화를 유지하고 싶어 일단은 참아 본다.

갈망하지만, 춥고 습해도 무조건 산책해야 하는 귀족 문화가 참 이해하기 어렵다.

갈망하지만, 남편의 고용주인 레이디 복스가 매일같이 찾아와서 염장을 지를 때면 겉으론 웃고 있어도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기를 쓴다.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감정들은 물론 속마음까지 모조리 일기장에 담아낸다.


물론 소설이라 할지라도 예나 지금이나 속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일기뿐이다.

100여 년 전, 영국 여인의 일상이 담긴 일기였지만 현실성있게 묘사되어 꽤나 재미있게 읽었었다.


일기 형식의 소설을 읽고나니, 책상 옆에 있는 책장에 눈길이 절로 갔다.

글쓰기 노트와 몇 개의 다이어리, 캘리그라피 노트, 드로잉 노트 그리고 일기가 꽂혀있는 책장이다.

올해 일기장을 꺼내 기분좋았던 순간이 언제였었는지 뒤적여보았다.

아, 찾았다!

일기장에 쓴 그대로 일부분만 그대로 써보려고 한다.


두 번째 생일


호수 산책을 마치고 N의 집에 들어와 다들 한숨 돌리고 자리를 잡았다.

그 말인즉슨, 또 다른 수다의 장이 열림을 의미했다.

N과 A가 부엌에 들어간 사이, J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뒤로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 짧은 1-2초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갔는지 모른다.

내가 내 친구들 생일을 까먹었을 리는 없는데 혹시 내가 어떤 기념일을 잊어버렸던 건가?

J 생일은 가을인데, 이상하다.

근데 J는 왜 나를 보고 손뼉을 치는 거지?

어쨌든 N과 A가 케이크를 들고 오니 내 옆에 있는 J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덩달아 손뼉 치며 옹알이하듯이 입을 오물거렸다.

(지금 생각하니 눈만 똥글거리며 덩달아 손뼉치던 내 모습, 참 웃기다.)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지난 생일날, 아파서 침대에 누워 눈만 껌뻑거리며 하루를 보냈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었는지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해 줬던 것이었다.

케이크를 들고선 노래를 불러주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너무 놀라 심장이 쿵쾅거리기까지 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이렇게까지 깜짝 놀랐던 생일파티는 처음이었다.

N, A 그리고 J, 잊지 못할 순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잊지 못할 순간 만들어준 N, A 그리고 J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꼭 준비해줘야겠다.

……

코로나로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게 남 얘기인 줄 알았는데 가뜩이나 병치레 중에 코로나까지 걸려서 큰일 날 뻔 했으니 생일이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생일날, 엄마에게 영상통화가 왔었다.

엄마가 '우리 하나, 생일 축하한다.'라고 했을 때, 얼마나 입술을 깨물고 참았는지 모른다.

끊자마자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베개를 흠뻑 적셨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울컥한 순간이었다.)

……

새벽 3시 넘어서까지 울고 웃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히려 그 많은 일들을 다 얘기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지만, 친구들 말대로 이 날을 두 번째 생일로 정해야 할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의무적으로 썼던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쭉 일기를 쓰고 있다.

나처럼 잘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삭히는 타입인 이들에게는 일기야말로 털어놓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어린 시절에 썼던 일기를 모아놓고 보면 얼마나 웃긴지 모른다.

'어린아이였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감탄사와 함께!

남의 일기 읽어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으니 나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만 추려 책을 내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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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8-30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의 일기인데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군요. 학교는 왜 매번 건물을 지어대는가에서 웃음이 ㅎㅎ 하나님 일기 저도 보고싶어요 *^^*

하나의책장 2022-12-16 20:00   좋아요 0 | URL
예나 지금이나 학교 건물 올리는 건 똑같나봐요😚
가끔씩 어린 시절에 썼던 일기 보면 정말 웃겨요.
때묻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썼던 일기장, 한 번 꺼내서 올려봐야겠어요ㅎㅎ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해석
백승영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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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책 중 하나일 것이다.

차라투스트라, 니체 그리고 니체 철학.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해석이 담아져 있으며, 우리가 긍정의 철학으로의 길로 갈 수 있게끔 안내해준다.


저자, 백승영은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후,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자,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 니체학회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차라투스트라


이란 북부 출신의 예언가인 그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고 절대 유일신 숭배를 주장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지도자이다.

이전에 있던 관습들이 있기에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기보다는 체계적인 형태로 재편한 것이 옳다고 표현되며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근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한 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의지에 세상이 따른다고 주장한 바를 보면 이원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원론에 가까우며 어느 정도 유일신 사상을 지녔다고 파악하는 것이 맞다.

그에 대한 정보가 현저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알렸던 것은 역시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향이 크다.

"신은 죽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가 10년간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내용을 담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내었다.

실질적으로 이는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라고 하기보단 니체가 그를 인용해 자신의 사상을 내비친 것이 더 정확하다.

참고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책의 영감을 받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 라는 교향시를 발표했다.



◈ 니체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목사였던 니체는 첫째 아들로 태어난다.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엄숙하고 진지해 소년 시립초등학교에 함께 다녔던 급우들이 그를 '어린 목사'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니체는 학교를 옮겨 피아노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굉장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니체는 수업료 면제를 받으며 다닐 수 있었던 수도원을 마다하고 '돔 김나지움'에 다니게 된다.

창의성이 높았던 그는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내면적으로 매우 고독했다고 한다.

휴학할 정도로 심한 두통을 앓았으며 이후 증세가 악화돼 정신착란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평생 반복되었다고 한다.

수학에 매우 취약했던 반면에 그리스어와 라틴어 논문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니체는 굉장히 생각도 많고 (내면적으로) 고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교시절의 반항기질이 대학교 때까지 흘러가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에 빠졌었다.

결국 신학과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덕분에 철학과 연을 맺게 된다.

군대생활을 하던 도중 다치는 바람에 제대하게 되면서 스승의 추천을 받아 스물네 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고전어 교수로 초빙된다.

이후 1870년에 전쟁이 일어나 위생병으로 지원했다가 심한 이질에 걸려 곧 제대하였고 이때부터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도덕이 삶을 죽인다면서 전근대적 철학과 도덕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서양에서의 기독교 사상은 이랬다. (참고로 로마제국 이후 유럽은 그리스도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가진 것이 없고 아픈 자들을 축복하는 반면에 가진 것이 많고 힘센 자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 영원히 저주를 받는다고.

이것이 바로 노예도덕이다.

도덕을 단순히 반대하기보다는 새로운 도덕을 확립시키고자 했던 니체, 그의 사상은 20세기의 철학자들에게 많은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차라투스트라』 1부는 <차라투스트라의 서설>과 <차라투스의 말>로 구성된다.

<서설>은 10개 절을 갖고 있고 <말>은 총 22개 장이 엮여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차라투스트라의 서설>로 시작하는데, 이는 총 10절로 형식적인 서문 대신 『차라투스트라』의 서문 역할을 한다.

핵심사유들로 간단하게 스케치되며 스토리라인은 '차라투스트라의 산에서의 하강(1) -> 신의 죽음에 대한 고지와 소통의 실패(2) -> 위버멘쉬에 대한 가르침(3) -> 당위로서의 위버멘쉬와 그 위험(4) -> 소통의 실패와 인간말종에 대한 가르침(5) -> 사이비 자유정신의 추락(6) -> 차라투스트라의 불완전한 지혜와 소통의 실패 및 그의 책임회피(7) -> 세 가지 유혹과 극복(8) -> 차라투스ㅡ라의 새로운 지혜, 창조자(9) -> 인간을 창조자로 만드는 영원회귀 사유(10)에 대한 인식'의 순서로 전개된다.

이 중심에는 소통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염원이 놓여 있다고 한다.

자신의 지혜를 전수함으로써 사람들이 깨우치기를 바랐지만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깨우친다.

사람들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선결과제라는 것을.

이러한 존재가 바로 창조자이며, 인간이 창조자가 되기 전에 차라투스트라가 원하는 소통은 불가능하며 위버멘쉬로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위버멘쉬는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신체적 존재이며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존재이자 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다.

여기서의 개념은 힘의 의지와 허무주의 그리고 영원회귀 사유와의 정합적 구도를 완성시키는 매개 개념으로 사용된다.


<서설>의 1절은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을 그리는데 하강의 이유가 관계론의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니체는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과 차라투스트라의 높은 산에서의 10년의 차이를 주목하라고 한다.

산은 생명력이 풍부한 공간이자 넓은 시야를 갖춘 해방과 자유의 공간인데 광야는 생명력 측면에서 산과 비교할 수 없으며 인간에게 있어서 살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공간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지혜의 차이를 결과로 보여주며 니체는 자신의 철학적 사상이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능가한다고 누설하려 하는데 이는 말그대로 자신만만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을 두고선 심장의 변화때문이라고 묘사하지, 정신이 변했다거나 생각이 변했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을 신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로지 정신적인 존재도, 육체적인 존재도, 의지적인 존재도 아니며 정신성과 육체성과 의지가 어우러져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통일체다.

우리가 자신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총체적인 모습인 것이다.

니체의 이런 생각은 인간을 정신성과 육체성의 두 단위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원론적 인간 이해 전체를 겨누지만, 특히 정신성을 인간의 핵심으로 보는 '이성중심적 인간관'에 대한 반박이다.

심장이 멈추면 육체도 죽지만, 정신도 죽는다. 아니, '나' 전체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심장의 변화는 곧 '총체로서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 신체이기에 내적변화는 행동으로 곧 표출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이유를 태양에게 말하며 축복해 달라고 요청한다.

"시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그대여. 나를 축복해 달라! 그대의 환희를 온 누리에 되비추어 줄 이 잔을 축복해 달라"

시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태양이라 표현한 것은 니체의 의도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지혜가 태양과의 협동작업의 결과였듯이 행복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관계론적 시각이 전제되어 있으며 시샘하는 신에 대해 의도적으로 대비하였으며 태양이라는 지상의 자연물을 초월적 존재인 신의 자리에 대체시키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가 신에게 축복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니체에게 있어서 초월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창작물에 불과했다.

시샘 없는 태양은 "대지에 충실하라",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데 차라투스트라의 이러한 태도는 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로서 믿음, 겸손, 지적 겸양 등을 가르치며 축복도 신에게 요청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겸손하다.

초월세계와 신을 믿는 자의 모습은 차라투스트라는 현실세계와 인간을 믿는 자가 이렇게 다른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나라를 알리는 선지자라는 자화상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교육자라는 자화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3절에서 차라투스트라의 두 번째 메시지가 전달된다.

'인간은 위버멘쉬로 살아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현재 모습은 사람답지 않으니 지금의 모습을 뛰어넘어 더 나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정언정 주장 하나를 가르침이라며 불쑥 제시한다.

이는 19세기 유럽인들에 대한 일침으로, 니체에게 유럽인은 데카당이며 니체는 정신의 병리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니체는 출발점은 인간의 각성이기에 이를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소크라테스처럼 등에의 역할을 자처하게 한다.

이것이 일차적인 이유였다면 사실상 이는 인간 일반에게로 향하는 가르침이었다.

앞서 위버멘쉬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듯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 간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고 지녀야 할 과제라고 니체는 생각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버멘쉬의 이 기본적인 속성을 충족시킨다. 물론 이것이 위버멘쉬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위버멘쉬로 사는 첫걸음을 떼고 있는 셈이다.


9절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지혜를 얻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새롭게 얻은 지혜를 진리라고 부르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새로운 지혜가 서사 전체를 전개시키는 핵심요소라고 강조한다.

인간이 '창조자'라는 것은 줄타기 곡예사가 아닌 줄 타는 춤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리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수행하려는 건강한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는 창조자라는 조건의 의존한다.


10절에서는 인간을 창조자로 결단하게 만들 때 필요로 한 영원회귀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차라투스트라의 독백이었던 9절에서 그는 혼자였고 여전히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니체는 자유정신, 자율적 의지, 창조자라는 지혜만으로 아직 차라투스트라의 진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설정을 염두에 두고 10절을 시작한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은 시작되었다."



◇ 차라투스트라의 말


서문 역할을 했던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뒤에는 1부의 본문이 따른다.

1장 앞에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1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를 아우른다. 『차라투스트라』 2~4부의 시작에는 제목이 따로 없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부 및 최종부>라고만 되어있다.


1부에서 인간의 건강한 모습으로 제시하는 창조자는 "위험하게 살지어다!"를 모토로 삼으며, 정신의 자유를 발휘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기, 극복 과정을 견디기, 그 과정에서 명랑성과 용기를 잃지 않기,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쟁취하기, 내적-외적 싸움을 창조적 힘으로 활용하기, 허영기나 대중성을 벗어버리기, 패배의식을 버리고 저항하는 것들로 수행한다.

이것이 자율적이고도 주권적인 인간의 모습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긍지, 용기와 의지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창조자의 모습이 위버멘쉬의 한 측면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는 1부처럼 총 22장으로 엮여있으며, 차라투스트라의 자세와 새로운 시작의 이유를 간단히 제시하면서 2부의 문이 열린다.

2부의 시작이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의 위기와 사람들이 처한 위험때문이었다면 그 끝은 차라투스트라 자신의 위험때문이며 그 위험을 타개할 성숙된 지혜의 필요성이 3부를 여는 계기가 된다.

2부는 니체의 시대비판을 다루고 있다.

니체 철학의 대명사인 '힘에의 의지' 개념이 중심축으로 작동하는데 전면에 세워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3부는 총 16장으로 영원회귀 사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원회귀 사유는 니체 스스로 "사유 중의 사유"라고 할 정도로 니체 철학에서는 물론 『차라투스트라』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허무주의 극복을 위한 사유실험의 형태, 매 순간의 영원성 확보, 힘에의 의지로서의 세상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가능성 확보 등의 양태로 제시되는데 이 면모들이 잘 어우러져야 인간을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노래'를 부르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들려는 차라투스트라의 과제가 비로소 수행된다.

1-2부에서 묘사된 자유정신에는 명령자의 엄중함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2부 말미에서 자신이 지혜와 진리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자의 엄중함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가시화시켰다.

인간에게 위버멘쉬로 결단하라고 명령하는 자세로 영원회귀 사유를 입에 올린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자기극복을 담은 3부는 이를 왜 필요로 하고 어떻게 발휘되는지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으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 가지 위대한 (독일인에 의해 발견된) 철학적 관점들.

생성과 발전이라는 관점.

인간 삶의 가치라는 관점(독일 염세주의의 불쌍한 형식이 극복된다).

나에 의해 결정적인 방식으로 한데 모아진다.

모든 것은 되어가고 영원히 다시 회귀한다. 탈출은 불가능하다."


니체는 영원회귀 사유가 생성과 발전, 인간 삶의 의미라는 문제와 연결되고 이를 한꺼번에 해명하려고 했다.

생기존재론과 관련한 측면을 보면 영원회귀 사유는 생기존재론을 이론적으로 보충해서 완성시키고 있다.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각인한다. 이것이 가장 최고의 힘에의 의지다. 모든 것이 회귀한다는 것은 생성의 세계가 존재의 세계에 극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고찰의 정점."

이원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내재적 필연성을 확보해 무조건적 긍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니체는 생기존재론을 최고의 이론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생성이 영워니 지속된다는 것이 보증되어야 한다.

그것이 언제든, 위나 아래에 힘에의 의지 생성 외에는 다른 존재방식이 없으니 이후 생기존재론은 보증된 이론일 수 있었고 비로소 고찰의 정점일 수 있었다.


양적으로 불변하는 고정된 힘의 크기를 지녀도 결국 질적으로는 변화한다.

힘의 양의 성장과 감소는 대응관계를 형성하는 변화를 보이지만 유한한 양의 힘에의 의지의 싸움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진행되기에 한 번 형성된 특정한 힘질서의 관계는 반복된다.

즉, 힘에의 의지의 관계세계가 그 세계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될 가능성은 없다.

이렇듯 영원회귀가 확실하면 세계는 생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는데 이는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니체 철학에서 실제로 회귀하는 것은 단 하나 힘에의 의지다. 자신의 본성으로의 회귀라는 양태로.

힘에의 의지의 본성은 항상 힘상승과 지배를 추구하는 것인데 이는 본성에 맞게 의지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본성에 충실하게 자신의 힘을 사용하면 또 다시 본성에 충실한 움직임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본성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점이다.

니체는 영원회귀 사유를 사유실험의 형태로 제시하면서도 실존적 결단을 요청한다.

이를 간절히 바랄 정도로 삶의 주체가 될 것인지 그 반대가 될 것인지를.


유의미한 삶의 영원회귀를 선택하는 주체는 바로 위버멘쉬이기에, 영원회귀 사유는 우리를 위버멘쉬로 결단하게 하고 각성시키면서, 허무주의를 극복해 내는 실천적 기능을 하게 된다.




니체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에 요구되는 것은 학문적 객관성과 보편타당성을 위해 모든 개인적 요소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원칙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자신의 삶을 철학적 방식으로 행해지는 '큰 해방'으로 해석했고 깊이 묶여있던 인식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것이 그의 삶이었다.

이를 믿었기에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니체는 자유로운 사고를 구속하는 감옥이 확신이며, 이는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라고 말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공부하며 읽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대학교 때, 교양으로 철학수업을 들었던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한 번에 슥- 읽고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한 달 동안 곱씹으며 읽고나니 이제야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요점정리를 다 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인상깊었던 부분들만 서술해보았는데, 글쓰기노트에 적어가면서 읽었던 것을 썼기 때문에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니체를 알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알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읽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도중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선 이해했으니깐.

무엇보다 굉장히 세심하고 구절 하나하나 해설이 잘 되어있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이 함께 올라가야 할 부분이 있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평을 쓸 때,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를 조금 더 보충해 쓸 예정이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그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철학이라 하였다.

역시 철학은 재미있어도 참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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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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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 생물학적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남긴 말과 글 속에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아침 저녁으로 쓰고 있는 말과 글 속에도 똑같이 문화 유전자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도 우리가 남긴 말,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말들은 마치 AGCT처럼 서로 얽히고 결합되면서 내가 없는 세상, 우리가 없는 그 세상에도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해간다는 것이죠.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이야기를 펼쳐볼까 한다.


저자, 이어령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Ⅰ 원숭이


제주도 근방에 야생종 원숭이가 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물원갔던 게 20살? 21살? 20대 초반이었으니 원숭이 안 본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렇듯 한국에는 없는 그리고 중국하고의, 일본하고의 차이를 나타낼 때 볼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원숭이이다.

원숭이는 나를 타자와, 남과 구별하는 나의 의식이자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선생은 말한다.

인간과 비슷하기에 남을 놀릴 때 원숭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즉, 원숭이와 어떻게 다르냐로 자신이 사람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 있어서는 외국이었던 겁니다. 원숭이가 없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면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을 객관화하고 나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중국 사람, 일본 사람만 겨우 알 정도로 폐쇄적인 생활을 해왔는데, 사람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은둔의 시간 속에서 개화를 맞이한 우리의 외국관이 바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선생의 말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에는 원숭이 엉덩이가 아닌 원숭이 항문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니깐 엉덩이 빨간 짐승같은 사람들이 사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우리보다 월등한 문명인이라는 것을 느껴 한쪽으로는 무시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본받아야겠다고 느낀 것을 의미한다.

과거 개화기때의 외국관이 잘 드러나는 대목인 것이다.

사극 혹은 시대극에서 왜놈, 양놈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4000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억압과 압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족이기에 가지고 있는 이런 오기가 한국 사람들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핵심적인 원동력인 것이다.



Ⅱ 사과


사과는 1901년 윤병수가 미국 선교사로부터 묘목을 들여오면서 유입되기 시작했다.

추운 지방에서만 나왔었기에 북한 원산 부근에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이 바로 1901년이다.

한쪽에서 선교사들이 직접 나무를 심어 키워봤지만 기후로 인해 다 죽어버렸는데 유일하게 사과 하나가 살아남았었다.

그것이 바로 대구 사과이다.

사과가 자랄 수 없는 고장임에도 품종 개량을 통해 대구가 사과의 명산지가 된 것이다.


사과는 단순히 먹거리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20세기 초 개화가 시작되던 때에 유입되었기에 서양 문명이 압축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담의 사과, 트로이 전쟁에 나온 파리스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윌리엄 텔의 사과로 서양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에서 사과 체험은 즉, 서양 체험인 것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사과는 지금도 이어진다. 바로 애플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이자 글로벌한 사과가 된 사과!

앞으로도 '사과'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Ⅲ 바나나


바나나는 과일의 단순한 개념과는 무언가가 다르다.

과거 수박, 참외와 같이 둥글둥글한 과일만 보다 기다란 바나나를 처음 접했을 때, 꽤나 놀랐다고 한다.

단순히 길기만 한 게 아니라 끝이 꼬부라져서 올라간 바나나는 우리 상식을 완전히 뒤바꾼 과일이었다.

대부분 바나나 나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파초과이다. 풀이 돌돌돌 말려 올라가서 딱딱해지는 것이다.

또한, 씨가 없다. 씨도 나중에 나오지만 줄기세포처럼 발아되니 그 싹을 잘라서 심는 것이 바나나이다.

인간의 역사, 서양의 역사, 정치, 경제-이 모든 것이 바나나 속에 있다.


문득 검정고무신의 한 회차가 떠오른다.

성철이가 바나나 먹었다는 자랑에 기영이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그렇게 성철이를 따라 바나나 먹으러 성철이 외숙모집 앞에서 추운 겨울 날씨에 한참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이웃집에 다 나눠주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말에 기영이는 결국 좌절하고 만다.

그렇게 병이 난 기영이는 아픈 와중에도 바나나만 찾는다.

당시 쌀 한 되가 아닌 쌀 한 말 값은 되었다는 바나나는 쉽게 먹지 못하는 비싼 과일 중 하나였다.



Ⅳ 기차


혹시 알고 있는가?

호두, 호빵, 호박과 같이 '호'자 붙은 먹거리는 전부 이란, 이라크와 같은 중동 지방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왔다는 것을.

개화기 때는 실크로드를 통해 곧장 들어오지 않고 미국, 유럽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

그래서 '양'자가 붙는 것이다. 한국 것에 '한'자가 붙는 한옥처럼.

기차는 인간이 만든 문명을 상징한다.

과거 기차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떠나는 수단이기도 했다.

대륙에 진출하려던 일본이 한국에 경인선 철도를 만들었었다.

미국이 이를 통해 들어오려고 하니 일본이 가만두지를 않았다.

거기다 만주까지 닿는 철도를 놓게 되었고 이후 러일전쟁, 청일전쟁이 연이어 발발했었다.

그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기차였다.

선생은 어느 누구에게는 지배의 힘이요, 어느 누구에게는 빼앗김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기차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고 읊조렸다.


지금 여러분과의 작별을 앞둔 그 어린아이에게 그 기차는 어떤 의미를 가진 기차일까요? …… 미래에 올 새로운 생명들, 새로운 세계들에 비록 나는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몇 가지 나의 글, 나의 언어들이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씨앗이 되고, 불씨가 되고, 그리고 작은 터널 속 빛과 같은 것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떠날 때의 모든 절망 소에서 남기고 가는 희망으로 오늘 이별을 얘기합니다.



Ⅴ 비행기


높이 날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자기 엔진이 필요한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쓰는 것은 코로나 시대에 당연한 일이다. '나'가 아닌 '남'을 위한 것이다.

본인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이유지만 남에게 병을 안 옮기기 위해 쓰는 것이 마스크이다.

이처럼 나눠야 할 경험의 가치, 이 모든 슬기를 합쳐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선생은 강조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올라 앞으로도 이렇게 100년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내가 여러분들과 헤어지는 인사말 '잘 있어'라는 말, '잘 가'라고 하는 그 '잘'이라는 말. 영어로 웰 다잉, 웰 에이징 등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웰'이라는 말, 그게 바로 잘 있어, 잘 가 할 때의 '잘'입니다.

그게 바로 어질 인이죠. 이게 있으면 잘 있고 잘 가게 되는 겁니다. 떠나도 그와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고, 잘 있으면 떠나간 사람을 마치 곁에 있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잘 있어, 잘 가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위기를 겪은 사람들을 옛날식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새 문명, 새로운 가치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생명의 가치가 제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접속과 접촉이 함께 있어야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 오늘보다는 내일 늘어가는 것. 생식되는, 불어가는 생명체가 증식하는 세계가 바로 생명자본이요, 우리의 밑천이 되는 세계입니다.


이별이 끝이 아니고 잘 있어, 잘 가, 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서로 헤어지는 인사말 속에 잘 있어, 잘 가, 라고 서로 웃으면서, 그리고 잘 가기를 원하고 잘 있기를 원하는 서로의 공감 속에서 죽음도 생명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헤어질 때와, 떠날 때의 인사말…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구전으로 전해진 이 동요는 자연스럽게 입에 익혀져 있다.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이라고 지금은 이어지지만 옛날에는 빠르면 토끼였다고 한다.

원숭이부터 백두산까지 그 어떤 맥락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단순히 한 사람도 아니고 어른들도 아닌 어린아이들의 상상력에서 고르고 골라 전해진 노래이다.

선생의 말처럼 생각해보면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백두산에서 백두산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우리 것이 아니다.

원숭이부터 살펴보자.

외교사절단이 원숭이를 보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대중 앞에 원숭이를 선보인 게 1909년이다.

그렇다면 원숭이를 본 시기를 감안한다면 1909년 이후에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이다.

원숭이, 먹거리인 사과와 바나나 그리고 문명 단계의 마지막인 비행기까지, 전부 미국에서 들여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백두산은 어떻게 들어간 것일까?

100년 동안 외세와 외국 물품들을 마주하고선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쫓아가지만 결국은 백두산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이 전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훗날 선생이 없는 지금부터 미래의 한국인들에게 과거의 경험과 꿈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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