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미국 미술사 다시 읽기 - ‘타자’로의 초대
김진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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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20세기는 미국 미술의 세기였다.

그만큼 미국 미술의 영향력과 위상이 매우 드높았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국제 미술계를 이끌어 나갔었다.

궁금하다. 20세기 후반의 미국 미술은 과연 어땠을지 말이다.

드높았던 위상과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때 그 시기로 여행을 떠나보자!


저자, 김진아는 현재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로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이론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미국 현대 미술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주립대 강사, 홀린스 대학 초빙조교수를 지냈다.

전공 영역은 현대 미술사와 문화이론이며, 문화적 정체성과 타자에 주목한 연구, 공공미술, 전시회와 담론, 상호매체적인 예술 양상 등을 탐구해 왔다. 그중에서도 본 저서는 저자가 가장 오랫동안 주목했던 타자 관련 연구들을 집대성하면서도, 일부의 미술 현상을 새롭게 조사하고 채우면서 완성한 결과이다.




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미술과 타자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타자'에 대해 잠시 설명하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타자'는 기존 미술계의 권력에서 밖으로 밀려난 자들 혹은 억압된 자들을 뜻하며, 대표적으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흑인, 여성, 라티노, 성소수자 등 소수자 집단들을 의미할 수 있다.


미국과 미국 미술의 대전환점을 맞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이다.

전쟁이 일어나던 중, 미국은 어느새 세계 최대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으며 종전 후 냉전 체제가 성립되자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의 리더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계는 여전히 유럽 미술을 따라가는 추세였다.

많은 미국 작가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교육받고 활동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다보니 세계 미술을 주도한 것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 미술계였다.

그렇게 종전이 되고 2년 후, 미국이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있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추상 작업들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초현실주의나 유럽에서 일어난 추상 형식을 더 벗어난 급진적인 추상 미술이 소개되었기 때문이었다.


1947년 잭슨 폴록은 이제는 전설이 된 드리핑 기법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순수 추상 작품을 내어놓았다. 윌렘 드 쿠닝도 야성적이고 파괴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작업으로 돌풍을 일으켰으며, 곧 바넷 뉴먼, 아쉴리 고르키, 마크 로스코, 클리포드 스틸 등도 함께 부상했다.


여전히 구성적 요소가 보였던 유럽의 모던 아트와는 달리 미국 화가들은 자유분방하고 야성적이어서, 이는 사회적인 메타포로 연결되어 계층적 사유의 타파라 주장되기도 하였다.

즉, 미국의 평등과 민주주의의 완벽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유럽 추상회화가 저택의 거실에 걸리기 맞는 이젤화라 불릴 수 있는 규모였다면 잭슨 폴록의 전성기 그림은 2m에서 6m에 이르렀었다.

거대하고 거친 화면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색면들은 꼭 광활한 미국 땅처럼 느껴졌으며 뉴욕 출신은 드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뉴욕에 모여 활동하고 있었기에 이들을 '뉴욕화파'라고 불렀다.

문화적 배경과 개성은 달라도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시기에 서로 의기투합하며 작업 방향을 함께 모색하였다.

또한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휘트니 등 미국의 젊은 근·현대미술관들이 새로운 미술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기 시작했다.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한국처럼 혈연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닌, 동화의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미국인으로 거듭남을 의미했다.

20세기 말까지도 지속되었으며, 이는 미국을 하나로 묶는 역동적이고 자랑스러운 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동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 프로테스탄트 윤리였다.

즉, 이민자들은 이 세 가지를 습득하고 지킴으로써 진정한 미국인이 되기를 요청받는다.

모든 문화가 섞이는 형상과 포괄적인 문화 수용성을 떠올리게 되는 용광로 개념은 실제 20세기 말 부상하는 다문화주의나 상호문화주의 등과는 대조적인 함의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는 앵글로색슨족의 언어와 종교인 영어와 기독교 아래에 위치하는 주변 문화 또는 하위문화로만 기능할 뿐 결코 주류 문화는 될 수는 없다는 암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열린 문화적 성격이라 강조되었던 '수많음으로 하나 됨'이라는 용광로 메타포는 비유럽권 문화를 식민화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미국주의'를 함축하는 것이다.



Ⅱ 여성 미술가들의 등장


민권운동 시기, 흑인과 치카노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주류 미술계의 배척에 대해 적극 항의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고유의 미학을 추구하면서 공동체 벽화나 해당 공동체만의 분리주의적 실천을 전개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에 운동으로서의 미술 실천이 사그라져 정치적인 예술 활동은 이어졌어도 그 전과는 달리 훨씬 산발적이고 덜 일관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제 2세대 페미니스트 미술 담론은 1세대 페미니즘 미술을 본질주의라 매도하였고 흑인과 치카노 미술가들 사이에도 공동체적 관심을 꼭 반영하던 경향은 약화되었다.

60년대 후반 탈미니멀리즘 경향과 다채로운 형식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확대되면서 70년대는 특정 매체나 장르로 당대의 미술을 지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를 다원주의(pluralism) 시대라고 부른다.

80년대 미술에서는 유독 사진 작업이 크게 부상하고 텍스트가 삽입되거나 텍스트가 중요한 매체로 등장한다.

기존에 있던 이미지나 작품을 이용하는 방식인 전용 또는 차용, 패스티쉬, 복제 등도 크게 유행한다.

이러한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 중 여성 작가들이 선구적으로 주목받는 사례가 많았고 특히 「옥토버」지로 대표되는 비평가와 미술사가들의 지지가 있었다.

1980년대, 주요 전시회에 포함된 동시대 여성 미술가들의 비율 자체는 남성에 비해 매우 낮았으나 그 이전보다는 높아지긴 했다.

바버라 크루거, 신디 셔먼, 셰리 레빈, 제니 홀저, 메리 켈리 등 여성 작가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제니 홀저는 1980년대 초 휘트니 비엔날레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개인전, 1989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90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관을 대표하는 최초의 여성 작가로 참여했고,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까지 거머쥐면서 역사적인 쾌거를 올렸다.


바바라 크루거는 1970년대 전후 여성 미술운동의 여파 속에서 구슬, 리본, 실 등을 이용해 만든 벽 설치 작업과 회화 작업을 했고, 197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하는 등 일찍 데뷔한 편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방황하다가 1970년대 말 큰 흑백 사진에 간결하고 대담한 텍스트 구문을 결합한 작품으로 돌아와 새 출발을 알렸다.


1980년대 말, 혁신적인 여성 미술가들은 주요 전시회에서 남성 작가들 사이에 한두 명식 끼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동시대 미술을 선도하는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위치로까지 오르게 된다.

초기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제도권 미술계와 상업화 현상을 비난하며 분리주의적인 전시에 임했다면, 신예 작가들은 주류 미술관에 입성했고 심지어 유명 상업 화랑에도 발을 들여놓는다.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는 물론 미술도 알아갈 수 있는 책이니 읽고 나면 나 자신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1장은 1947년부터 1960년대 중반 시기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주요 미술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추상표현주의 사조와 그 담론에서 어떻게 미국 문화가 정의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2장, 3장, 4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시기, 활발히 전개되었던 흑인 미술운동, 치카노 미술운동, 페미니즘 미술운동에 주목한다.

5장은 1980년대 부상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새로운 타자로서의 여성 미술가들에 초점을 맞춘다.

6장은 1980년대 후반 『환상의 미술: 라틴아메리카, 1920-1987』전, 라티노 미술을 다뤘던 최초 대규모 전시인 『미국의 히스패닉 미술』전, 이에 대한 대항적 전시로서 개최된 『치카노 미술: 저항과 확언, 1965-1985』전에 나타난 쟁점을 논한다.

7장은 1990년대 전후로 에이즈에 관한 사회적 편견과 정부의 소극적 대처에 항의하며 성 소수자뿐들 아니라 여러 미술인이 함께 펼쳐 나갔던 미술 운동 양상을 고찰한다.

8장은 1989년 이후 시기로 다문화주의 논쟁이 사회 전반과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9장은 1990년대로 아시아계 미국인 미술가들의 출현 등에 관해 서술되어 있다.


이렇듯 세계를 제패한 1950년대 전후의 추상표현주의가 어떻게 타자 미술가들을 그늘에 머무르게 했는가를 시작으로 이들이 장차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어떠한 질문과 도전장을 던져 나갔는지, 그리고 이들이 주류 미술계에서 어떻게 부상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으며 각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서술되어 있어 보다 깊이있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역사는 물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까지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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