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 함께 농사를 짓다보면 풀을 대하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가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바로 풀 베기와 풀 뽑기다. 


풀 베기는 말 그대로 낫이나 예취기를 이용해 풀을 잘라내는 것이다. 풀 베기는 보통 풀 하나 하나를 잘라내지 않는다. 풀 무더기를 자른다. 속도전이다. 쭉쭉 쳐 내려간다. 뭉텅이로 잘려 나가는 풀들은 마치 사람이 상처를 입을 때 흘리는 피에서 냄새가 나듯 풀 잘린 냄새가 난다. 어떤 풀을 베든 그 냄새는 비슷비슷하다. 마치 어떤 사람의 피 냄새든 모두 비슷하듯 말이다. 


하지만 풀을 뽑는 것은 다르다. 풀을 뭉텅이로 잡고서 뽑으려고 하면 잘 뽑히지 않는다. 하나 하나 손으로 움켜쥐어야 한다. 풀 하나 하나를 손으로 잡다보니 손아귀 안의 풀이 어떤 풀인지를 알게 된다. 이름을 모르더라도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가 눈에 보이고 손에 감각되어진다. 즉 풀을 뽑으면 그 풀이 손에 느껴져 새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뿌리채 뽑히며 내뿜는 냄새는 피비린내 같은 풀냄새가 아니라 풀 고유의 향이 난다. 풀 저마다의 향을 내뿜는 것이다. 


베어진 풀은 다시 자라난다. 우리가 상처를 받고 피를 흘려도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뽑혀진 풀은 뿌리에 흙을 머금은채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언젠가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풀이 자신의 향을 세상에 내뿜고 사라지듯, 우리는 나만의 향을 뿜어내고 돌아갈 것인지 모를 일이다. 풀이 뿌리를 흙에 내리듯, 우리는 온 몸에 나의 향기를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 흙으로 돌아갈 때 나의 향이 드러날 것이다. 다른 누구와도 똑같은 향이 아닌 나만의 향을 갖는 일은 오늘 하루 온몸으로 내가 행한 것들로 이루어진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날, 세상을 향해 내뿜을 그 향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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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7월 6일 흐림 21도~29도


올해 블루베리 수확량은 지난해 양보다 많아졌다. 작년에는 3주 정도 수확하고 나서는 더이상 딸 것이 없었는데, 올해는 여전히 딸 것들이 있다. 수확량으로 따지면 1.5배는 나올듯 싶다. 


하지만 안타까운건 말라죽어가는 나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줄기마름병이라 생각하고 말라가는 가지들을 잘라주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젠 완전히 말라죽을 때까지 지켜보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듯싶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그루나 되는 블루베리의 굵은 가지를 쳐내야만 한다. 



지난해와 다른 것은 올해 중간에 토탄을 준 것 뿐이다. 세상에 100% 좋은 것은 없는가 보다. 토양의 산도를 낮추고, 양분을 공급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노렸지만, 이게 독이 된 건 아닌가 추측해본다. 혹여 토탄에 병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토탄으로 인해 과습해서 생긴 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과습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가정하에 풀은 일부러 베지않고 있다. 장마기간 쏟아지는 비를 풀들이 조금은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과 말라가는 나무의 차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어쨋든 죽어가는 나무들이 다시 살아날지 알 수 없지만, 이젠 지켜보는 수밖엔 없을 듯하다. 이 장마를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블루베리 잎에 사뿐이 올라앉은 개구리가 희망의 전령사이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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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6월 30일 맑음 20도~28도


요즘 아침 저녁으로 블루베리를 따느라 다른 곳을 둘러볼 시간을 못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풀은 정말 부지런히도 자라고 있다. 상추를 심은 곳 주위로는 상추보다 키가 큰 풀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고추는 자랄 생각을 않는데, 고추를 둘러싼 풀들은 열심히도 키를 키운다. 풀과 함께 키우는 요령은 도라지로부터 배워야 할 성싶다. 


 

도라지를 심은 곳 주위에는 풀을 찾아볼 수 없다. 도라지가 허리춤만큼 자라면서 풀이 자리를 못 잡은 것이다. 도라지가 자라는 초기, 즉 4월 경 도라지 주위의 풀들을 깨끗이 뽑아냈다. 도라지가 무릎 이상으로 자랐을 때 한 번 더 풀을 뽑아주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는 방치 상태. 하지만 이미 허벅지만큼 자랐던 도라지는 풀과의 싸움에서 쉽게 승리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세상에 홀로 내던져져도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옆에서 살짝 도와주면 된다. 다 자랄 때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칠 필요는 없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도와주고, 그 힘을 갖추는 순간 스스로 일어서도록 두면 될 일이다. 도라지가 스스로 자라는 것 마냥.



그러다보면 어느덧 아주 예쁜 도라지꽃을 피워낼 것이다. 



황기도 도라지처럼 쑥쑥 자라나더니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황기도 마찬가지로 무릎깨까지 자랄 때까지만 주위의 풀을 뽑아주고, 다음부터는 손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풀과의 싸움에서 초반에 작물이 자리를 잡고 자랄 때까지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바로 그점이 어렵다. 초반 풀과의 싸움을 지지해 줄 시간과 힘을 나누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뒤늦게 심은 상추와 고추는 오히려 풀과의 싸움에 뒤져 혼쭐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얼른 풀들을 정리해주면 큰 도움이 될 테지만, 블루베리에 온 신경을 쏟는라 여력이 없다.(물론 핑계다) 내가 감당할 만큼만 심겠다며, 올해는 대폭 텃밭 작물을 줄였음에도 역부족임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풀만큼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것도 있다. 복분자다. 한쪽에선 열매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새 가지를 뻗어내고 이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복분자 주위 풀들도 한껏 키를 키워내보려하지만, 복분자의 성장세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다. 


도움을 주어야 할 시기가 있다.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손길을 주는 것. 그것은 때를 놓치고 뻗는 손길보다 수십 배 강력한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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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6월 24일 맑음 16도~28도


지난해에는 미국흰불나방이 블루베리 가지 하나에 알을 놓아서 홀쭐날 뻔했다. 미국흰불나방의 번식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초기에 발견하고 가지를 잘라낸다음 처리를 해서 더이상 번지진 않았다. 이것 말고는 다른 벌레 피해는 그다지 없었다. 


올해는 벌레들이 꽤나 많이 늘었다. 특히 나무에는 피해가 가지 않지만 일하는데 번거롭게 만드는 모기는 왜 이리 웽웽 데는지....



블루베리를 따다가 잠깐 멈칫했다. 사과독나방 애벌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독성을 지녔다.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서 장갑을 낀 채 쪽가위로 떨구어냈다. 이름처럼 사과나무에 가 있지 왜 블루베리에 와 있는거니?

사과독나방외에도 갈색날개매미충 약충도 꽤 많이 보인다. 선녀벌레도 눈에 뜨인다. 이런 약충과 애벌레는 나무가지나 열매를 흡즙해서 피해를 준다. 혹시 가지마름병인줄 알고 있는 것 중의 일부는 약충들이 가지를 흡입해서 생긴 피해도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약을 치지 않고 블루베리 키우기! 올해까지는 잘 견뎌내고 있지만, 점차 벌레가 늘어나는 추세가 심상치않다. 잘 버텨주라! 블루베리야~. 좀 더 신경을 써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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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6월 23일 소나기 16도~23도


묵으면 좋은 것이 있지만, 묵을 수록 안 좋은 것들도 있다. 대부분의 씨앗은 묵으면 묵을수록 싹을 트는 능력이 떨어진다. 2년 전 수확했던 금화규의 씨앗은 지난해 거의 100%에 가깝게 싹을 틔웠는데, 올해는 절반도 채 싹을 틔우지 못했다. 


게다가 직파한 싹들과 봄에 모종을 심었던 것들은 모두 두더지 피해를 입었다. 5월 이후로 물을 주지 않고 땅을 내버려두니까 겨우 두더지들이 보이지 않는듯하다. 그래서 늦었지만 금화규 씨앗을 파종하고 모종을 키웠다. 



겨우 건진 모종 4개를 밭에 옮겨 심었다. 풀들이 자라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과연 풀을 이겨내고 잘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금화규 또한 풀 못지않게 잘 자라기에 믿어본다. 한여름 노란 꽃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고. 금화규는 꽃뿐만 아니라, 잎, 줄기, 뿌리까지 모두 약용으로 쓸 수 있다. 올해 조금이라도 잎과 꽃, 뿌리를 차나 요리로 이용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늦었지만 힘을 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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