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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쥐스킨트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대부분 일상속에서의 탈일상들이다. 너무나 근접한 우리네 삶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세심하게 써내려가는 글 속엔 어느덧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삶의 진실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때론 그런 삶의 진실조차도 나에게는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의 간결하고 날아갈듯한 문체로도 나의 이 무게를 덜어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쥐스킨트를 읽을 땐 또하나의 다른 생각으로 책을 접하게 된다. 그냥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을까 하는 삶의 한 방식, 방법으로서의 실용서로 말이다.

이번 <깊이에의 강요>에는 전부 세편의 단편과 한편의 에세이가 들어있는데,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삶의 방편이 들어 있다. 그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그냥 흘려버려. 그게 때론 너를 위해 좋을거야'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쓰고 사는 한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순 없다. 혼자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계속되는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 관계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피드백이 이루어졌을 때 사회는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때론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단 말이야.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그래서 갈등도 생기고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때문에 힘들어하고, 그 와중에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낄때가 있단 말이야. 그래,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다들 그래. 누군가의 무심한 말한마디, 행동 하나에 자신은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야. 결말이야 뻔하지 않겠어. 그렇게 온 몸을 걸었으니 결국 사그러들 수밖에.
그래, 때론 그냥 흘려보내는 거야. 그들이 뭐라고 지껄여대든 그냥 흘려보내는 거야. 내가 왜 그들의 안개같은 말에 휩싸여 나의 길을 잃고 헤매야 되는 거냐구. 그냥 놔둬버려. 그러면 머지않아 안개는 사라질 거야. 안개가 사라진 후에 나의 길을 가자구. 잘 봐, 얼마나 잘 보이니. 그래, 그냥 흘려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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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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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세간엔 느림에 대한 이야기가 유행이다. 그 유행의 끝을 좇아 책을 읽었음직도 하지만 이미 느려터질대로 느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마음이 한가닥 있어 아직 접하지는 못했다. 막연히 노장사상의 흐름과 맞물려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여유를 갖고 때론 나태해져보는 것도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일 것이라고는 생각해본다.

이런 선입견을 갖고 바라본 느림에 대한 생각에 어찌보면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이 몰입에 대한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물론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꼭 정반대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바로 옆에 서 있는 동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나에게는 항상 이런 한마디 표현이 책을 읽었다는 자족감을 주기때문에 자주 시도하는 습관임을 밝혀두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겨라' 정도일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차라리 게임에 지더라도 웃으면서 질수 있기를 당부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내가 그 게임자체를 즐겼으니 승부자체가 무슨 상관이랴? 하는 정신. 그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순간 그 결과에 상관없이, 아니 그 결과 자체를 생각도 하지말고 그냥 그것을 즐겨 몰입을 하다보면 그것이 바로 삶의 질을 한 층 높여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비록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어찌보면 행복이라는 감정도 자기연민이나 자기방어적인 수단으로 생겨난 조작된 것일 수도 있음을 상기한다면 결코 그것이 행복과 연관되지 않더라도 가치가 있는 행위가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무래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선 먼저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하겠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이란 느림에서 생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몰입과 느림은 이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것이 나태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에서 함정에 빠져서는 안될 것 같다.

웃으면서 질 수 있다는 것, 웃으면서 진다는 것, 생각만 해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깨위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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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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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흔히 어디어디가 결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절대 이런 말이 없다. 즉 몸에서 느끼는 통증이라는 것도 그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면 그 지각또한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가 그 결린다는 것을 말할 상대가 없다면 그 언어라는 것 또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누군가가 결린다는 말을 들어주고 그 말에 대해 어떤 행동(가령 침을 놓는다거나)을 취해 주었을 때만이 결린다는 말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소설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소설 <포세시옹-소유라는 악마>는 언뜻 보기엔 추리소설로 보이지만 단순히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언어와 지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범죄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적 심리상태와 행동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앞에서 말한 언어가 지각을 유도하고 그것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 필요한 말을 경청하는 사람의 자세에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속 몇 대목을 살펴보자.

언어를 자극하는 것은 지각이 아닙니다. 그 반대예요. 언어가 지각을 유도하는 것이지요.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육체에 앞선다는 것을 인정할 용의는 있었다.
말이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말은 경청하는 사람의 사랑에서 생성된다.

이런 소설의 메시지는 이야기의 전체 구도속에서도 드러난다. 목을 잘린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은 미궁에 빠져있다. 화자인 기자이자 사립탐정은 점차 범인의 폭을 좁혀 나가고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범죄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된다. 이 범인은 바로 죽은 여자의 아이를 자신의 사랑으로 키우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 가정교사였다. 언어능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를 어머니는 애정을 갖지 못하고 더군다나 아이를 미워하는 새로운 남자에게만 정신을 쏟고 있자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어렸을 적 사랑하던 동생을 잃고나서 말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그녀는 그 아이를 통해 동생을 찾게되고 그녀의 이런 사랑은 아이에게 말(언어)을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도 많은 소설속에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속의 사랑은 대부분 개인적 감정 상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것도 장밋빛이거나 그 장미속의 가시만을 이야기 할 뿐이다. 반면 포세시옹은 사랑이라는 소유욕이 가지고 있는 악마적 성격과 함께 그것이 가져다 주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관계속에서만(이것은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관계로 보아도 된다.) 이루어진다는 것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선사하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아,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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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bee 2006-09-2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인밝히기는 스포일링입니다.
 
21일 만에 시나리오 쓰기 - 친구 매스컬처 시리즈 1, 마음으로 영화 쓰는 법
비키 킹 지음, 이지영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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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하는 것이 인생이다. 엎치나 매치나.

이것은 영화 뤽베송의 '서브웨이' 첫 장면에 등장하는 자막이다. 영화 속 주인공 렘브란트는 지하철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성사시키고 죽어간다. 밴드만들기. 그게 자신의 꿈이었으며 결국 그것을 해낸다.

시나리오 쓰기. 이건 나의 꿈이기도 하다. 대부분 호흡이 짧은 시나리오 몇편에 그쳐버리고 있지만 언젠가 장편에 꼭 도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천을 하지는 못한체 세월만 훌~훌~. 실천하지 못하는 삶,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것인가? 그런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됐고 과감히 지폐를 건넨 대가로 나의 안방에 이 책을 꽂아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의 인생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됐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곳에서 출발한다. 누군가 이 책을 읽었다면 바로 그 순간 벌써 시나리오는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 기간이 21일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나의 게으름을 매일매일 탓하며 허송세월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 관심을 가진 그 순간 나의 시나리오 작업은 벌써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 쓰여진 대로 그대로 따라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 책에 쓰여진 방식대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행동할 수 있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성공할 수 없듯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21일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할 순 없으리라.

그러나 책을 집어든 순간 나는 벌써 한걸음 시나리오를 향해 내걸었으며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일단 한줄 쓰여진 시나리오는 그 시나리오의 주인공들의 아우성에 의해 계속 쓰여져 나갈 수 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힐 수 있는 세세한 일에 대한 조언이라고 하겠지만 보다 더 큰 것은 시나리오라는 것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는 것이다. 내 자신의 시나리오 속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임을 자각하는 그 순간 나의 시나리오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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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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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귀신이야기가 최고다. 오싹한 귀신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열대야는 저만치 사라져간다. 그런데 꼭 귀신이야기라고 해서 납량물일 이유는 없다. 사랑의 따스함이 온건히 가슴에 와 닿는 동화같은 귀신이야기도 있는 법.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에 나오는 단편들이 바로 그렇다.

어렸을 때 죽어버린 아이가 귀신이 되어 성장한 모습을 차례차례보여주는 '철도원', 망자가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죽은 이의 편지가 마음 속 깊은 암흑으로부터 뚫고 나와 빛이 되는 '러브레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대신해주는 '백중맞이' 등등.

<철도원> 속 단편 주인공들은 저마다 아픈 현실속에서 살아가다 망자를 맞이한다. 그들은 망자를 보면서 절대로 무서워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그 망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로하고자 나타난 것이기에. 망자의 이러한 사랑은 그들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의 망자에 대한 이해로 더욱 빛나게 된다. 왜 그들이 현실 속에 나타나 자신을 돕는지를, 위로하는지를 깨달아 주기 때문에 그들의 출현은 빛을 발한다. 서로간의 자리를 이해해주는 사랑의 정신이 소설 전체에 깔려있어 그 따스함을 책을 잡고 있는 손끝에서 바로 느낄 수가 있다.

아~, 사람에 대한 사랑이란 이렇게도 따스한 것이구나. 죽어서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미움과 한이 가득찬 귀신이 되기 보다는 애정과 관심을 갖는 귀신이 된다는 것. 소설이 직접적으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귀신이 될 수 있다면 죽는것조차도 두렵지 않을듯 싶다. 가슴 한 켠을 따뜻이 적셔주는 동화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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