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킬러:죽음의 여왕>. 액션. 청불. 미국. 126분. 2024년. 오우삼 감독. 1989년 개봉했던 <첩혈쌍웅>의 리메이크작. 1990년 전후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를 점령했던 홍콩 느와르가 35년 만에 같은 감독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 '첩혈쌍웅'은 당시 홍콩영화를 사로잡았던 서극이 제작을, 오우삼이 감독을, 주윤발이 주연을 맡았다. 35년이 지난 지금 파리를 배경으로 경찰과 킬러의 대립과 우정은 어떻게 변주되었을까.
2. 사전정보없이 보다가 '뭐야, 첩혈쌍웅이잖아'라고 외쳤지만, 감흥은 예전만큼은 아니다. 성당 안 비둘기의 비행, 쌍권총, 슬라이딩 액션, 잦은 슬로모션. 오우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홍콩식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외치는 듯하지만, 비장미도 재미도 떨어진다. 당시 홍콩 반환을 앞둔 암울한 분위기와 맞물린 애조 띤 이야기가 현재 파리에서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3. 영화도 유행이 있는 듯하다. 1990년 전후로 홍콩영화는 개인적 기준으로 '영웅본색'류와 '천녀유혼'류로 나뉘어 아시아를 집어 삼켰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홍콩영화는 그 힘을 잃었다. 영웅본색류의 영화도 일종의 총을 든 무협영화로 볼 수 있겠는데, 의리와 사랑이라는 무협에 대한 로망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2000년대에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과 같은 대서사를 담은 철학적 이야기와 시각적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CG를 활용한 무협영화가 보는 즐거움을 무기로 선을 보였지만 관객의 마음에 들어서지는 못한 듯하다.
4. 아무튼 오우삼 감독의 새 작품이라는 반가움과 '첩혈쌍웅'의 리메이크라는 그리움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했지만, 좀처럼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세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은 이토록 힘든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