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란다에서 키우던 바질 화분을 관찰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불과 20센티미터의 차이로 햇빛을 더 많이 받은 화분이 그렇지 않은 화분보다 2배 이상 더 크게 자란 것이다. 이 단순한 관찰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장과 발전 역시 외부 환경, 즉 햇빛의 양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우리는 환경의 공정성, 즉 모든 사람이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이런 환경의 공정성은 사회가 건강하고 균형있게 발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빠드리지 않아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화분의 바질은 비슷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만, 만약 그 개체의 특성에 차이가 있을 때 즉 어떤 개체는 훨씬 빨리 자라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고, 다른 개체는 성장이 더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반대로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어떻게 차등을 두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답하기 이전에 먼저 공정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까 싶다. 공정성은 단순히 모든 사람이 똑같은 조건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각자가 필요로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진정한 공정성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햇빛을 조금 더 받아야 하는 늦게 자라는 바질이 있다면, 그에게는 더 많은 햇빛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결과의 평등을 목표로 하는 과정의 공정성이다.
그러나 공정성의 기준을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정성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각자의 필요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의 성장 속도와 필요를 고려해 환경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키가 빨리 자라는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쉬운 체제라 생각된다. 물론 숲이 형성되는 것처럼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는 행위가 키가 큰 나무를 만들고, 그 경쟁에서 뒤처진 개체는 차라리 그늘에서 잘 자라는 성질로 바뀌어 조화를 이루듯, 사회가 조화를 이룬다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구조가 점점 더 강화되고,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크다면 이는 분명 공정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똑같이 햇빛을 받아 키가 큰 유전자의 바질이 키가 더 커진다면 이는 공정한 <능력주의>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이 정말 공정한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개인적으론 공정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결과에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균형을 최소화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교육 분야에서 모든 학생이 같은 교육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학습 속도가 다르거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있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개별화 된 지원이 필요하며, 이는 단순히 같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결국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개인의 필요를 고려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공정성은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을 갖도록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각자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햇빛을 조금 더 받은 바질이 더 크게 자랐던 것처럼, 사람도 각자의 외부 환경에 따라 성장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공정성을 정의하고 실현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각자의 필요를 고려한 환경 조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결과에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공정성의 척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능력대로 살아 그 결과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오늘 조금 덜 자란 바질의 화분을 키가 훌쩍 커 버린 화분과 자리를 바꿔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