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지역에 속하는 캄보디아에서는 논농사가 1년 3모작까지가능하다. 하지만 3모작 해서 거둔 수확량이 우리나라의 1모작 수확량보다 적다. 거름이나 비료를 주지않은데다 농약을 뿌리지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연이 키워준 쌀인 셈이다.  

 

캄보디아의 농민들은 모내기 한번 한 후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 피가 자라도 그냥 놔둔다. 만약 모내기 전날 부부싸움이라도 했다면... ^^;  모내기는 한달이고 두달이고 늦춰지기도 한다는데(믿거나 말거나). 

 

벌판을 지나다 보면 하얀 비닐조각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곤 한다. 과연 정체가 뭘까.  

밤이면 비닐조각이 묶여진 나무가지에 불이 켜진다. 이 불을 보고 벌레들이 달려들다 비닐에 부딪혀 주르륵 미끄러진다. 그래서 아래로 떨어지면 물을 담아놓은 그릇에 풍덩. 날이 새면 사람들은 물 위에 떠 있는 벌레를 건져 올린다. 이 벌레를 가지고 튀기면 맛있는 간식거리가 된다. 시장에선 이 벌레튀김을 판다.  



어렸을 적 튀겨먹던 메뚜기를 캄보디아에서 만났다. 즉석에서 계속 튀겨대는데 누가 이걸 다 먹을지...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 가족이 한입씩 먹어보지만 좀처럼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캄보디아 시장에서 팔고 있는 고기들. 정육점인 셈이다. 파리가 달려들고 뜨거운 기후인데도 신기하리만치 고기가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캄보디아의 황토라고. 가이드의 말로는 우리 황토보다도 더 우수한 성분이 많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곳의 땅은 노랗다 못해 불그스름했다. 



씨엠립의 유러피언 거리에서 보게된 음식점 메뉴판. 처음엔 그림들이 그냥 캐리커처인줄 알았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악어도 캥거루도 타조도 뱀도 다 고기로 파는 것들이다. 노란 머리의 서양인들이 굽고 있는 고기의 정체가 궁금했다. 도대체 뭘 그리 맛있게 먹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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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란 역시 무서운 거다. 캄보디아의 동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도 모르게 가난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였다.  



사원에서 자라는 새끼 고양이가 너무 앙상했다. 먹을 게 충분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해서일까. 그래도 힘차게 뛰노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앙코르와트 잔디밭에 원숭이가 나타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먹는데 정신이 팔렸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연밥에 얼굴을 파묻은 모습이 게걸스럽다. 그래도 관광객들은 때 아닌 원숭이 출연에 반갑기만 하다.  

 



 캄보디아에서 자라는 소들은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 물소는 자체 온도 조절 능력이 있어서 괜찮지만 다른 소들은 더위에 지쳐 뼈와 근육만 앙상하다. 이 소는 사원 입구에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게 마치 인도의 소같다. '나를 받들라' 



술집 간판에 게코가 붙었다. 모기나 곤충을 잡아먹는 도마뱀 종류인 게코는 캄보디아에서 흔하다. 손가락만한 것에서 크게는 주먹만한 것까지. 벽에 착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 거미보다 더 실력파 같다. 이젠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게코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 



새빨깐 벼슬에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이 닭은 싸움닭이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기를 정도니 얼마나 닭싸움이 흔한지 짐작이 간다. 옆에 병아리들은 누구의 새끼인지 궁금하다. 이 병아리들 중 어떤 놈은 앞으로 싸움닭으로 키워지겠지? 한편 캄보디아에서는 예전부터 돼지도 싸움돼지가 있다고 하니... 싸움돼지 모습은 사원의 벽면에 새겨진 부조에도 나온다.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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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미국사회 전역에 만연해 있는 속임수 문화를 반영한다. 원래 속임수는 들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 때문에 그런 행동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인이 많은 분야에서 갈수록 속임수에 기대고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해 점차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다들 그렇게 할 때 또는 다들 그렇게 한다고 여겨질 때 속임수 문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유시장의 도덕률이 확산되면서 사기의 유혹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경쟁이 미덕이라면, 탐욕도 미덕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많은 극한 행동 또한 미덕이다. 원칙적으로 힘이 곧 정의다 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현재 우리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으며, 신종 사기 대부분이 소득과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성공하는 계층의 막강한 영향력은 레오나 험슬리가 하찮은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규는 자신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을 낳았다. 이러한 오만은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만들어낸 그릇된 망상에 근거한다. 아울러 현실에 근거하기도 한다. 성공하는 계층은 항상은 아니더라도 속임수를 쓰고도 종종 피해간다. 첩멀을 ㅂ맏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 대한 여론을 유리하게 돌려놓은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데이비드 사이먼이 엘리트의 일탈이라고 명명한 행동을 저지르고 나서 명예를 회복하는데 드는 수고는 최근 들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손익계산만을 문제 삼는 상업주의가 부자와 유명인사의 성취를 찬양하면서 언론의 임무를 비판 어리 ㄴ취재보다 선정 보도에 치중하게 만든 결과다.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에게 속임수를 써서라도 수익을 올리라는 압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싶은가? 답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안정 앞에서 정직성을 희생한다.  

사회과학자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의 원인을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갑론을박해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과학기술의 변화와 세계화가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학자들은 기업을 인ㅅ핵하고 야비하게 만들고, 결국 형평법 폐지로까지 이어진 성과주의 사업 전략을 비난하기도 한다.  

 

승자와 패자 사이의 극심한 격차는 개인ㅇ츼 정직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승자가 그 어느 때본다 큰 몫을 책기고, 패자는 일자리를 잃거나 돈을 벌어보야 생활비에도 미칯지 못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대가를 치러햐 하는 사회에서 점점 많은 사람이 승자가 되기 ㅜ이해선 무슨 짓이든 기꺼이 하려고 든다. 이는 속임수 문화는 이해하는 데 매ㅔ우 중요한 요소다. 실패에 따르는 대가가 클수록, 시어스의 수리공이나 오늘날의 수많은 변호사처럼 심한 압력을 느낄 수록 속임수의 유혹은 강해진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뒫따르는 보상이 클수록, 속임수가 갑부로살아가느냐 그날 벌어 그날 살아가느냐의차이를 만들어낼수록 그 유혹은 강해진다. 상황 인식이 이런 식일 경우 사람들은 정직성 따위는 쉽게 내팽개칠 것이다.  

자유방임주의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은 원래 당연하지만 모두가 부자가 된다면 더욱더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큰 폭의 소독 격차는 자기가 버는 돈의 액수에 만족해야 마땅한 사람들의 정직성에 도 악영향을 미친다.  

돈, 사회적 지위, 행복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개념, 즉 사람들은 급료 액수보다 경제 서열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에 더 많이 신경쓴다는 개념을 뒷받침해준다. 생물학자와 건강 전문가의 연구 결과 역시 서열이 낮을 수록 자긍심에 피해를 입기 쉬우며, 스트르스에0 노출될 확률이 높아 건강을 해칠 염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장기간에 걸쳐 수천 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영국의 한 유명한 연구는 음식을 주의하고 금연을 했는데도 지위가 낮을 수록 빨리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스트레스와 낮은 업무 권한이 수명을 단축시킨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불신의 증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왖지만,학자들이 불신을 불평등과 연관시킥시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둘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느 ㄴ견해는 어느 정도는 상식에 근거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고, 체계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경우 세상을 비관하면서 원망에 사로잡히기 쉽다. 반대로 신뢰의 감정은 미래를 낙관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품을 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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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를 가나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다. 씨엠립에 위치한 동양 최대의 인공호수에서 엄마와 함께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물장난에 한창이다. 바다까지는 겨우 200km도 안되지만 도로가 발달되지 않아 13시간 가량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에겐 이곳이 바다요 모래사장일테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나 또한 어느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웃음은 강력한 행복 전염체다.  



학교앞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섭섭하이(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니 아이들이 함박웃음이다. 고무줄 놀이가 우리와 비슷해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학교의 전경. 멀리서 보면 참 근사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 문명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안 풍경. 마치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시킨다. 그래도 아이들의 얼굴엔 구김살이 없다.  



 주택가의 아이들 또한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멀찌감치 도망갔지만 기어코 한 컷 잡아냈다.^^ 물론 이 다음 장면은 휙 뒤돌아서서 도망가는 모습이지만. 



앙코르 와트에서 오수를 즐기는 아이. 엄마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올려 놓고 자는 모습이 평온하다. 이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엄마와 함께 시장에 나온 아이의 뒷모습. 달콤한 열대 과일을 한 입 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가 보다.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도 엄마에게 매달리지 않는 것이 참 순박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적지 입구와 출구마다 아이들이 "원달러"를 외치며 관광객들에게 다가온다. 아무리 사양해도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거나, 탈 것에 오르기 전까진 끈덕지게 따라 붙는다. 아이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면 도저히 지폐를 꺼내지 않을 순 없지만 그래도 꾹꾹 참는다. 그래도 이런 아이들은 물건을 팔고서 원달러를 요구하지만 가끔 생짜로 구걸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이들이 커서 자활의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국가 또는 사회라는 이름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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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2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사진, 참 좋아요.
정말 구김 없어뵈는 얼굴들이에요.

잉크냄새 2009-06-2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네요. 아이들 웃음도 해맑고.
동남아든 인도든, 박시시를 요구하는 아이들에게 대처하기 난처한건 마찬가지군요.

2009-06-24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9-06-25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얼굴처럼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