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vN 수목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호구 육동식(윤시윤 분)이 우연한 사고로 정신을 잃고 줍게된 살인 일기장을 보고 자신을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고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2. 드라마를 끌고 가는 동력은 주인공 육동식의 착각에 있다. '나는 연쇄살인마다'라는 생각에 육동식은 악한 행동을 하고자 한다. 즉, 연쇄살인마답게 행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동식을 알고 있던 주위 사람들은 그가 마음 여린, 그래서 항상 남에게 당했던 호구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행동을 선의로 받아들인다. 육동식의 행동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 즉 본인은 악랄하다고 생각하고, 타인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 차이가 사건을 만들고, 드라마의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3. 자아란 바로 기억이라고 말하는 영화는 수없이 많다. 특히 [공각기동대]는 기억의 조작을 통해 자아가 바뀔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토탈리콜]이나 [블레이드러너] 등도 기억과 자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가 바로 나인 것이다.

 

 

4. 그런데 이 기억이란 것이 참 수상하다. 인간의 기억은 믿을게 못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발표한 연구에서는 9.11 테러 사건때 어디서 누구와 이 사건을 보았는지를 기억해보라고 했을 때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전혀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음을 보여준다. 기억의 서로 다름을 보여주는 영화들도 많다. 일본영화 [라쇼몽]을 비롯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강원도의 힘][오! 수정] 등-은 기억이라는 것이 자기 중심적으로 곡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5. 그럼 믿을 수 없는 기억들로 이루어진 나라는 정체성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나답게 살아간다는 말은 가능한 일일까.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말하고 있다. 육동식이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내가 연쇄살인마라고 생각하는 그 '나 다움' 때문이라고. '나 다움'에 얽매여 있는 삶. 그것이 바로 고통의 진원지일지 모른다. 나 다움을 정의하지 말고, 나 답게 살려 애쓰지 말자. 그 나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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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2]를 보고 있자니 힘에 대한 생각이 든다.

 

장태준 의원(이정재 분)은 "힘이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시즌 1에서 힘을 얻기위해 무릎을 꿇어가며 보좌관에서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다. 이 힘의 근원은 바로 '법'이다. 시즌2에서는 국회의원이 되어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뜻을 펼치려 한다. 하지만 법무부장관인 송희섭(김갑수 분)이 걸림돌이다. 송희섭은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왜 되고자 하는지는 드라마 속에서 나오진 않는다. (정말 궁금해~ 그냥 잇속때문일까?) 시즌2는 장태준과 송희섭의 대결이 한 축을 이룬다.

 

 

 

송희섭의 뒤를 봐주는 사람은 영일그룹의 명예회장이자 삼일회 수장인 성영기(고인범 분)다. 성영기는 기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정치인들의 후원금으로 쓰며 삼일회라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 돈의 힘을 통해 정치인들을 주무른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법보다 세다. 송희섭은 성영기로부터 도움을 크게 받지만, 한편으론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이 관계정리에 사용하는 힘은 '법'이다. 송희섭과 성영기의 대결이 또 한축이다.

 

 

하지만 성영기는 도리어 장태준을 살해하는 장면에 송희섭을 데리고 가 공범으로 만들어버린다. 법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와함께 자신을 방해하는 장태준 또한 제거하는 1석2조의 효과를 노린다. 이 때는 그야말로 힘의 원초적 형태라 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다.

 

 

세상은 힘의 형태를 달리해왔다. 아마 원시형태적 삶에서는 물리적 힘, 즉 폭력이 가장 강했을 것이다. 이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음지에서다. 폭력을 함부로 행사했다가는 법을 저촉함으로써 벌을 받게된다. 즉 법이 물리적 폭력 앞에 있게됐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막강한 힘을 갖는다. 원칙이야 법이 우선이지만 돈은 법도 폭력도 쥐고 흔든다. [보좌관2]에서 성영기가 송희섭에게 큰 소리를 치고, 송희섭이 눈치를 보는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돈은 어디서 이런 힘을 얻었을까. 누가 돈에게 이런 힘을 준 것일까. 역사 이전부터 힘을 발휘했던 물리적 폭력은 그 힘을 잃었을까. 법의 힘은 무소불위해야 하는 것인가. 드라마가 보여주는 힘의 대결이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찰개혁은 힘이 어떻게 배분되어져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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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은 종영됐고, [유령을 잡아라]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모두의 거짓말]은 기업체의 환경오염이 소재로, [유령을 잡아라]는 조현병자의 범죄를 소재로 삼고 있다. 두 드라마의 소재와 이야기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한 가지 공통되는 모티브가 있다. 바로 침묵하는 다수이다.

 

2. 방관자 효과(제노비스 신드롬)라는 말이 있다. 1964년 미국의 뉴욕주 퀸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도와달라는 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울려퍼졌지만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신고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또는 신고 후 벌어질 귀찮음이나 피해 등을 생각하며 주저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불특정 다수가 있을 때는 특정한 한 명을 지정해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 사건의 경우엔 그런 도움 요청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방관자 효과를 보여주는 영화도 한 편 있다. 바로 목격자다.

 

 

3. [모두의 거짓말]에서는 기업체의 폐수 방류로 마을 사람들이 암에 걸리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피해자도, 이 폐수 방류에 동참했던 자들도 모두 침묵했다. 그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이 사건에 목소리를 냈다면, 이런 처참한 일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행한 사람들에게 그에 마땅한 벌도 가해졌을 것이다.

[유령을 잡아라] 에서는 조현병의 노숙자가 한 소녀를 위협했을 때 주위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저지했다면, 소녀의 죽음을 막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모른척 했다. 연쇄살인범 유령은 침묵한 이들을 죽음으로 앙갚음했다.

 

 

4. 왜 사람들은 침묵할까. '방관자 효과'와 함께 생각해 볼 것은 선각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데릭 시버스(Derek Sivers)의 TED강연 '어떻게 운동은 시작되는가'(How to Start a Movement)는 리더십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선각자가 되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1)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갑자기 춤을 춘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은 '웬 미친놈?` 이라 생각한다. (3)하지만 누군가 일어나서 그 사람과 같이 춤을 춘다. 즉 동조자가 나타난다 (4) 처음 춤을 춘 사람들은 선각자가 된다. 하지만 아무도 따라 하지 않게되면 결국 미친 사람이 된다.

 

 

5. 방관자 효과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한 사람을 지정하는 것도 어찌보면 동조자를 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촛불'이라는 경험을 했다. 한 개의 촛불은 꺼지기 쉽다. 하지만 촛불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그것이 점차 수를 늘리기 시작하면 그 촛불을 꺼지지 않는다. 한 개의 촛불이 켜질 때, 우리가 그 옆에서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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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드라마 [보좌관]이 시즌2로 돌아왔다. 시즌2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역할- 물론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정책을 위해 자료조사를 하고 지역구 여론과 숙원들을 살피는 등-을 보여주었던 시즌1의 매력을 이어가는게 힘들어 보인다. 시즌1에서 보여주었던 보좌관의 역할에 새롭게 보태어 보여줄 게 그다지 많지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즌2는 시즌1의 또다른 축이었던 권력과 이권을 둘러싼 암투, 그리고 힘을 가져야지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장태준 의원(이정재)의 활약상이 주된 흐름으로 나타난다.

 

 

시즌2가 진행되면서 장태준 의원이 정의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가 등장했다. 송희섭 법무부 장관과 이창진 주진화학 대표와의 커넥션을 폭로하며 그 힘을 배가시킬 무기는 바로 환경오염이다. 아직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거나 이야기가 전개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향을 엿볼 수는 있다.

 

 

 

 

 

종반을 향해 치닫는 OC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도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모든 사건 뒤에 감추어진 비밀은 바로 수십 년 전 벌어졌던 제철소의 폐수방류다. 지금의 중국을 비롯해 한창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국가들이 환경보다는 경제발전에 치중하듯 우리 또한 그랬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폐해는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기에, 오직 잘먹고 잘 살자는 목표 아래 경제발전에 치중한 것이다. 환경오염은 불특정 다수가 그 피해를 보지만 경제적 발전을 통한 이득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이익을 위해 오염을 저지르는 행위는 양심에도 크게 거리낄게 없는 듯 보였다. 모두가 앞만 보고 뛰어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서야 사람들은 깨우치고 있다. 환경오염이 불특정다수에게 먼 훗날 드러나는 폐해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리고 나의 자식들에게 닥쳐올 재앙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처리하는 비용이 만만치않기에 현재도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의 거짓말]이 과거의 오염을 감추려 한다면 [보좌관2]는 현재에도 벌어지는 오염의 유혹을 말하고 있다.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이익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트럼프 치하의 미국을 비롯해,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를 대하는 일본의 자세 등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전지구적 차원의 환경오염, 지구온난화는 결코 한 국가, 기업,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이들은 한 발 짝 뒤로 떨어져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 모양이니, 기업이나 개인은 어떻겠는가. 당장 내 몸이 편해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경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에서 지속가능하면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환경오염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쉬어선 안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조금 손해본 것 같다 여겨지더라도,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모두의 거짓말]과 [보좌관2]는 이익 앞에 오염을 눈감는 일을 보여주고 있다. 또는 힘 앞에서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비쳐주고 있다. 과연 우리는 눈감지 않고 외면하지 않으며 이런 사태를 예의주시할 수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기업의 환경오염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온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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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란 책을 팔고 사는 가게를 말한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유통은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다. 서점이라고 다르겠는가. 문을 닫는 서점들이 많다. 2007년 3247곳이던 동네서점은 2017년 2050곳으로 10년 사이 1/3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기류 속에서도 새롭게 서점을 열거나, 긴 역사를 자랑하며 꿋꿋하게 버텨내는 곳도 있다. 물론 이런 서점들은 이제 책만 사고 파는 거래의 장소가 아니다.

 

 

서림, 서원 등등 서점의 이름도 다양하다. 책의 숲, 책의 정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진 이름들일 것이다. 이제 서점은 치유지, 예술터, 교육관, 낭송의 장소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동네에서 살고 싶은 이유로 서점이 꼽힐 수 있을 정도의 문화적 교류의 중심이 되는 곳도 있다. 이번 <백투더 북스> 4편은 전국의 이색적인 동네서점들을 찾아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거리, 서울 혜화동 동양서림, 속초 동아서점 등 오랜 시간을 버텨온 곳의 변천사와 진주의 진주서점, 부산의 인디고 서원 등의 다양한 활동을 담아냈다. 서점의 다층적 역할과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발길이 더 많이 서점으로 향하도록 해 줄듯 싶다.

 

 

특히 개인적으로 눈여겨 본 점은 대전의 <도시여행자>서점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높아진 임대료로 기존의 소규모 상인들이 떠나는 현상)으로 인해 운영의 어려움을 맞이한 곳이다. 아직 앞으로의 구체적 계획을 말하진 않았지만, 소유에서 공유의 개념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사례가 될듯 싶다. 서점의 월세 또는 건물의 매입을 다수의 대중이 공동출자나 펀드 형식을 통해 공공의 자산 형식으로 해결하고, 서점 운영자는 콘텐츠 기획자로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다.

 

 

모든 서점이 이렇게 운영될 이유나 필요는 없겠지만,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사람들로 북적이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이런 서점이 전국 면단위 마을에 들어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람들로 북적이게 될 이 서점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작은 병원, 작은 이발관 등이 들어서 옆에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소멸'이라는 단어는 사라지지 않을까. 시골의 작은 서점이 문화와 교육, 치유의 역할을 해내 줄 수 있다면, 아이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곳에도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려올 성 싶다. 너무 세상을 간단히, 어설프게 바라보는 것 같지만, 동네서점이 시골 부흥의 '넛지'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

 

 

나는 '이 서점 때문에 이 동네에 살아'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매력적인 동네서점들이 많이 들어서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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