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F를 좋아하는데다 브래드 피트 주연이라면 믿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그런데 흥행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누가 흥행성패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저 결과가 나오면 이래저래 분석을 내놓을뿐.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고, 격정적 액션이나 감정의 굴곡보다는 정적인 흐름에 마음이 가는 사람들에겐 강추. 할리우드식 액션과 사랑을 원하는 이들에겐 비추.

 

2. 달을 여행하고, 화성엔 지하기지를 구축했으며, 태양계 끝까지 유인 우주선을 보낼 수 있는 가까운(?) 미래가 배경. 달은 아직 명확한 소유권, 즉 경계가 없기에 약탈이 자주 벌어진다.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 분)가 화성으로 갈 우주선을 타러 가는 길에도 약탈자가 따라붙는다. [애드 아스트라] 영화 중 가장(유일하다고도 할 수 있는) 동적인 액션신이 등장한다. 마치 진짜 달에서 자동차 추격과 총격이 벌어진다면 이러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리얼한 장면. 극의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눈요기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우주에서 유영이라거나 우주선 속에서의 움직임은 [그래비티]를 연상하게 만든다.

 

 

3. 줄거리는 이렇다. 로이는 우주 안테나에서 해왕성으로부터 온 '써지'로 사고를 겪는다. 그런데 이 써지는 태양계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 써지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막아야만 한다. 그런데 이 써지를 일으킨 사람이 로이의 아버지라고 한다. 로이는 이제껏 자신의 아버지가 우주의 지적생명체를 찾아 떠난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죽은 영웅으로만 생각했다. 과연 로이는 아버지를 만나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4.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 희망과 갈등이라는 두 시선 중 갈등을 극대화한다. 그가 리마 프로젝트를 위해 우주로 떠난 이유도 아마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 대한 '희망'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사명을 막는 인간에 대해 가차없는 결단을 내린다. 인간은 희망이 없기에.

 

 

5. 반면 로이는 외로움 속에서 자신에 갇혀 살았다. 타인의 시선만을 신경쓴다. 그래서 얼굴엔 거짓미소가 가득차 있다. 타인과 '함께' 공감을 하며 살아가는 법을 잘 모르는듯하다. 아버지를 막아서려 해왕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에 몰래 타면서 예상치 못한 살인을 저지른다. 지금의 사건은 미래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사명을 위해 나아간다. 아버지도 아들도 사명을 위해 동료를 희생시켰다. 하지만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아들은 우연치않게.

 

 

6.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손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망막한 우주(우리의 삶),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잡는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진 희망이다. 함께 잡은 손에서 인간은 희망을 키운다. 외로웠던 로이가 아버지를 잃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이 또한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는 이 손을 뿌리쳤을 것이다- 힘차게 잡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손이 바로 희망의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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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른 시리즈 세번째. [백악관 최후의 날] [런던 해즈 폴른]의 뒤를 잇는 작품.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던 사람들, 할리우드식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강추.

 

 

2. 영화 초반부 대통령 암살을 위한 드론 테러 장면이 압권. 마치 스텔스기를 닮은듯한 폭탄 드론이 눈길을 끈다. 영화 후반부 병원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총격신도 긴장감 있게 잘 표현됨. 물론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할리우드식 액션 장면에 거부감이 없다는 전제하에.

 

 

3. 할리우드 영화에서 등장하는 미국의 적은 누굴까.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적이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 구소련에서 중동의 국가들, 때로는 북한이었다가 남미로 넘어가고.... 이번엔 다시 러시아가 등장했다. 물론 자의적이 아닌 타의적. 즉 러시아를 이용하려는 세력들의 농간이긴 하지만.

 

 

4.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내부의 적은 항상 배신의 칼날을 휘두른다. 결국 배신이란 먼저 믿었던 상대라는 점에서 내부에서 발생할 수밖에. [앤젤 해즈 폴른]을 이끌고 가는 이야기의 핵심은 배신에 있다. 한 축은 대통령, 또다른 축은 주인공인 경호원 쪽. 세상에 믿을 사람은 있을까.

 

 

5. 전쟁을 원하는 자, 평화를 원하는 자의 대결인 셈. 왜 누군가는 전쟁을 원하는가. 전쟁이 주는 공포로 누가 이득을 취하는가. 남북이 갈라져 있는 우리에겐 이 질문만큼은 현실에 가져와야 할듯. [런던 해즈 폴른]에서는 권력을 얻고자 하는 이와 전쟁이 일자리인 용병들이 전쟁을 원하는 자로 나온다. 미 대통령은 평화의 길을 걷고자 하지만, 측근의 반란으로 죽음에 이를뻔한다. 우리는 누가 평화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가. 평화의 길로 향하는, 또는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앤젤이 추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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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미터2는 전작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 재난영화에서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무리한 요구사항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개연성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면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이번 속편은 개연성은 무뎌졌지만, 대중적으로는 더 가까워졌다고 보여진다.

 

 

전작은 수중 속에서의 방향상실, 산소부족이 가져오는 환각작용 등 그야말로 물 속에서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질 만한 사건을 긴박감 있게 잘 표현해냈다. 이번 속편은 에어포켓과 조류라는 새로운 소재를 가져왔지만 극의 긴장감을 올리는데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반면 고대도시의 유물이 바다 속에 잠겨있다는 설정으로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과, 이젠 다 끝났으려나 하는 순간에도 사건이 계속 벌어진다는 점에서 대중의 흥미를 끌만한 부분이 있다. 게다가 공포영화의 법칙이라 할 만한, 먼저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거나, 남을 끝까지 도우려 하는 이에겐 구원이 펼쳐지는 권선징악적 전개도 무난하게 펼쳐진다.

 

 

47미터가 전편의 과감한 도전에서 속편의 무난함으로 변한 것은 아무래도 영화제작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47미터를 각본, 감독했던 인물이 똑같이 47미터2에서도 각본과 감독을 맡았지만, 1편은 영국에서 2편은 미국에서 제작됐다. 이 차이가 영화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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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수상한 이 영화 <경계선>을 보고 있으면 역겨운 감정을 느낍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소위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과는 멀리 떨어진 모습들을 보게 될테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걸 역겹게 느끼고 있다는 그 감정이 부끄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선을 무너뜨립니다.
 
또한 남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념도 여지없이 깨뜨립니다. 도대체 이 작가, 감독의 상상력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몸 속엔 모두 남성과 여성 호르몬이 함께 흐르고, 단지 그 비율의 차이가 성을 가른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만듭니다. 상대에 따라 성이 바뀌는 것인지, 외면과 내면의 성은 다른 것인지, 참 오묘한 캐릭터를 만들어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닙니다. 영화 초반부에선 그냥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어찌보면 추한 몰골의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과 비슷한 이를 만나면서 자신의 감추어진 특성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주인공 티아와 상대자 보레는 트롤이라는 종족입니다. 이들은 후각을 통해 감정을 읽습니다.
 
티나는 세관 직원으로 후각을 통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불안한 감정을 읽어냅니다. 한번은 아동포르노를 메모리 카드에 몰래 들여오려던 한 남자를 잡아냅니다. 그리고 이 영상을 통해 범행이 저질러지는 곳을 찾아내게 되죠. 그런데 이 사건은 보레와 연결되어 있고, 또한 트롤이라는 종족이 살아가는 비밀도 함께 엮어 있습니다.  
 
보레는 인간이 기생충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자신들의 아이까지도 해할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보레의 '아이 바꿔치기'라는 범죄는 마땅함을 얻습니다. 하지만 티나는 보레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티나는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인가요?”라고 반문합니다.  
 
아이까지도 범죄에 이용하는 것도, 누구도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도 모두 인간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춤을 춥니다. 티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선도 악도 아닙니다. 이런 경계선은 티나에게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인간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트롤로서 티나답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 길이 비록 외로운 길이라 할 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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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성 2020-11-1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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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조커의 탄생기라는 이번 <조커>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영화 <블랙스완>의 거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튼 분명 비극적 인생임에도 일종의 코미디였다고 평가하는 조커의 인생 변환점을 잘 표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모방범죄를 낳을지도 모르는 조건, 즉 사회경제적 환경의 개선에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 아동학대라는 비극

요즘 뉴스에 들어가는 소식 중에 하나는 '아동학대'다. 실제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친부모로부터 일어난다. 조커의 '코미디'같은 인생의 시발점은 어머니의 아동학대다. 그로인해 뇌손상이 일어났고,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웃음이라는 병과 과대망상증을 갖게 됐다. 시도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은 사회생활을 힘들게 만든다. 항상 웃는게 좋은 건 아니다. 웃음에도 때가 있다. 부적절한 때에 터져나오는 웃음은 비아냥이나 조롱, 업신여김, 무시로 읽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이런 웃음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카드를 들고 다니며, 오해를 풀고자 한다.

 

 

◆ 이해, 배려없는 지옥

타인의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가늠하는 것이 이해이고, 그 이유를 인정해주는 것이 배려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즉각적 대응을 하기가 일쑤다. 타인의 설명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이해와 배려를 잃어버린 것이다.

조커를 대하는 사람들은 조커가 자신의 웃음병을 설명할 시간조차 주지않거나, 혹 그 사정을 알더라도 인정 또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우리의 태도에서 친절을 버리게 됐을까. 친절한 태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 분노로 뒤끓는 사회

영화 속 고담시의 시민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 건드리면 터질 준비가 되어있다. 버스 안에서 아이를 웃겨주려 하는 조커의 선한 행동에도 아이의 엄마는 화부터 낸다. 아이들은 상점홍보 알바를 하는 조커에게 린치를 가하고, 지하철에서 성희롱하던 금융인은 웃고 있는 조커에게 폭력을 가한다. 분노는 꼭 빈곤층에게서만 끓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빈자와 부자간의 인식의 격차도 커지고, 서로 간의 이해가 멀어지면서 상대를 향한 분노는 걷잡아질 수 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 방아쇠는 언제 당겨지나

분노 속에 놓여진 자에게 총이 주어졌다. 아무리 무엇인가를 해보려해도 바뀌지 않는 삶. 희망은 부서지고, 절망만이 가득한 도시. 자신의 꿈을 조롱하는 사람들. 자신을 인격체로 보지않고, 밟고 넘어갈, 또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 마치 벌레 취급하는 세상. 그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자들에겐 나 또한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마음. 그것의 극한이 조커의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게 만들었다. 꼭 방아쇠를 당기는 방법밖에 없는지는 현실 사회가 논의해야 할 부분일 테고, 영화는 그렇게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 <조커>영화의 핵심은 음악

이번 <조커> 영화의 백미를 계단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는 그가 변했음을 보여주는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꼽는 이도 많다. 거울 앞에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꼬리를 치켜올려 웃는 모습을 만드는 장면도 뺄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조커>영화 속 이런 장면들보다 음악이 훨씬 중요해보였다. 이번 영화에서 음악을 빼 버리면 그야말로 흐리멍텅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야기의 흐름, 또는 분위기, 그리고 의도조차도 모두 음악 속에 녹아있다. 눈을 감고 음악만 듣고서도 <조커>의 심경이 어떤지를 짐작할 정도다. 음악에 비중을 많이 둔 영화였다고 평하고 싶다.

 

 

무엇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분노는 어떻게 다스려져야 할까. <조커>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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