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조커의 탄생기라는 이번 <조커>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영화 <블랙스완>의 거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튼 분명 비극적 인생임에도 일종의 코미디였다고 평가하는 조커의 인생 변환점을 잘 표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모방범죄를 낳을지도 모르는 조건, 즉 사회경제적 환경의 개선에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 아동학대라는 비극

요즘 뉴스에 들어가는 소식 중에 하나는 '아동학대'다. 실제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친부모로부터 일어난다. 조커의 '코미디'같은 인생의 시발점은 어머니의 아동학대다. 그로인해 뇌손상이 일어났고,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웃음이라는 병과 과대망상증을 갖게 됐다. 시도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은 사회생활을 힘들게 만든다. 항상 웃는게 좋은 건 아니다. 웃음에도 때가 있다. 부적절한 때에 터져나오는 웃음은 비아냥이나 조롱, 업신여김, 무시로 읽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이런 웃음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카드를 들고 다니며, 오해를 풀고자 한다.

 

 

◆ 이해, 배려없는 지옥

타인의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가늠하는 것이 이해이고, 그 이유를 인정해주는 것이 배려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즉각적 대응을 하기가 일쑤다. 타인의 설명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이해와 배려를 잃어버린 것이다.

조커를 대하는 사람들은 조커가 자신의 웃음병을 설명할 시간조차 주지않거나, 혹 그 사정을 알더라도 인정 또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우리의 태도에서 친절을 버리게 됐을까. 친절한 태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 분노로 뒤끓는 사회

영화 속 고담시의 시민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 건드리면 터질 준비가 되어있다. 버스 안에서 아이를 웃겨주려 하는 조커의 선한 행동에도 아이의 엄마는 화부터 낸다. 아이들은 상점홍보 알바를 하는 조커에게 린치를 가하고, 지하철에서 성희롱하던 금융인은 웃고 있는 조커에게 폭력을 가한다. 분노는 꼭 빈곤층에게서만 끓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빈자와 부자간의 인식의 격차도 커지고, 서로 간의 이해가 멀어지면서 상대를 향한 분노는 걷잡아질 수 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 방아쇠는 언제 당겨지나

분노 속에 놓여진 자에게 총이 주어졌다. 아무리 무엇인가를 해보려해도 바뀌지 않는 삶. 희망은 부서지고, 절망만이 가득한 도시. 자신의 꿈을 조롱하는 사람들. 자신을 인격체로 보지않고, 밟고 넘어갈, 또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 마치 벌레 취급하는 세상. 그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자들에겐 나 또한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마음. 그것의 극한이 조커의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게 만들었다. 꼭 방아쇠를 당기는 방법밖에 없는지는 현실 사회가 논의해야 할 부분일 테고, 영화는 그렇게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 <조커>영화의 핵심은 음악

이번 <조커> 영화의 백미를 계단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는 그가 변했음을 보여주는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꼽는 이도 많다. 거울 앞에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꼬리를 치켜올려 웃는 모습을 만드는 장면도 뺄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조커>영화 속 이런 장면들보다 음악이 훨씬 중요해보였다. 이번 영화에서 음악을 빼 버리면 그야말로 흐리멍텅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야기의 흐름, 또는 분위기, 그리고 의도조차도 모두 음악 속에 녹아있다. 눈을 감고 음악만 듣고서도 <조커>의 심경이 어떤지를 짐작할 정도다. 음악에 비중을 많이 둔 영화였다고 평하고 싶다.

 

 

무엇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분노는 어떻게 다스려져야 할까. <조커>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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