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상류엔 맹금류>

 


나는 오래전에 제희와 헤어졌다. 헤어질 무렵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나눈 대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즈음엔 제희네까지 갈 일이 있어도 안에는 들르지 않고 집 앞에서 헤어졌다. (65)

 

 

나는 오래전에 제희와 헤어졌다. 수목원 나들이가 있고 이 년쯤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헤어질 무렵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을 계기로 헤어지게 되었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날의 나들이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86)

 

 


황정은 소설집 『아무도 아닌』을 읽었다. 단편 전부를 읽은 건 아니고, <상류엔 맹금류>, <상행> 그리고 <명실>을 읽었는데, 2014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상류엔 맹금류>가 좋았다. 전에 읽고 다시 읽으니 좋은 건지, 이 작품이 내게 맞는 작품이라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류엔 맹금류>가 좋았다.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이 부분이 좋았다.


 

제희네 부모님은 비탈 위쪽을 단념하고 근처 식물원이나 둘러보자고 말했다. 피곤해 보였고 나들이에 관한 의욕도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느리게 이동했다. 나는 비탈을 다 내려온 곳에서 아까는 보지 못 했던 안내판을 보았다. 맹금류 축사라고 적힌 안내판이 화살표 모양으로 비탈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뒤처진 채로 그 앞에 한동안 서 있다가 일행에게 돌아갔다.

위쪽에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86)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이 단락이 주는 충격이 좋았다. 제희네 가족과의 수목원 나들이. 제희네 아버지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고, 자동차 안에서는 에어컨디셔너를 켜나 마냐 문제로 입씨름이 벌어졌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이 너무 많아 산책길에 어울리지 않는데도, 제희네 어머니는 다 필요한 거라며 몽땅 가지고 가야한다고 고집했고(75),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짐을 쌓고 내리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던 제희는 고무줄을 당기다가 수리 발톱처럼 생긴 금속 고리에 복사뼈를 다쳤다. 제희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제희를 카메라에 담아보려 했지만, 누군가는 앵글 바깥에 있어 결국 무궁화와 반송, 당단풍을 찍었다. 늙어버린 제희네 아버지와 그를 원망하는 제희네 어머니.

 


깎아낸 산비탈과 야트막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 이르러, 제희네 어머니는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제희네 아버지가 동의했다. ‘는 그게 싫었다. 무엇보다도 직관적으로 그 장소가 싫었고,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로 가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곳을 찾아보자고 했다. (83) 하지만, 결국 그 계곡 어디쯤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게 되는데그 다음이 이렇다.

 

 


위쪽에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86)

 


 

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생각한다. 만약 가 제희네 부모님과 함께 맹금류 축사 아래서의 점심 만찬을 마음껏 즐겼더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편이 모두에게 좋지 않았을까. 그러는 게 옳지 않았을까. (87) 그리곤 생각한다.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87)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부딪히는 순간이 있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내 마음이 흘러가 그에게 가 닿았다는 뜻이고, 내가 그 사실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내 몸을 떠나 그에게로 흘러가버렸다는 걸 눈치챘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와 상관없이, 서글프고 외로운 일방통행일지라도,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음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다. 극적으로 연출된, 영화같은 장면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움찔대는 그런 순간 말이다.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는 왜 안 되는가,의 문제다. 제희와 제희네는 무뚝뚝해 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인데 (87),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고, 그리고 좋은 사람들인데. 그런데도 제회와는 헤어졌다. 무슨 일 때문인지도 기억나지 않은 채로 그렇게 헤어졌다. 수목원 나들이에서의 그 사소한 어긋남이, 불편함들이 나와 제희를 멀어지게 한 걸까. 제희네 아버지의 사람 좋은 웃음이, 제희네 어머니의 억지가, 계곡 바닥 돌의 노란 줄무늬가, 맹금류 축사 안내판이, ‘와 제희를 헤어지게 한 걸까. 모른 척 마주 앉아 웃어 주지 못한 나 때문인가. 등지고 앉아 먹지 않는 나, 그런 나를 눈치 챈 제희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는 제희와 헤어졌는가.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7-06-12 0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마치 칼이 꽂힌 듯 찍으셨군요.

단발머리 2017-06-12 14:59   좋아요 0 | URL
사진 찍을 때는 그 생각을 못했는데, 말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책 뒷면입니다. ㅎㅎㅎ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날에는 아내들이 대개 여자였다. (31)

 


아내 가뭄이라는 제목을 문장으로 바꾸면 우리는 모두 아내가 필요하다혹은 여성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쯤 되겠다. 전통적으로 아내란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이다.(30) 아내가 집 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주기에 결혼한 남자는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있는 남자는 직장에서 미혼의 남자보다 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아내의 도움으로 남자는 더욱 안정적으로 자신의 일에, 자신의 인생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첫 아이의 출생과 함께 신체 리듬은 육아, 정확히는 수유 간격에 따라 맞추어지고,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자동적으로 ‘1순위가 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는 일에 소홀한 무책임한 사람으로,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소홀한 무심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20년 동안 여성 대졸자 수는 남성 대졸자 수를 크게 앞질렀다. 1985년에 앞지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체 대졸자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 또한 직장에서 어느 정도 끈질기게 버텨 경력 사다리를 반 정도 오른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중간 관리자의 45퍼센트를 차지한다. 하지만 회사 중역에 이르면 여성의 비율은 고작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 증권 거래소 200대 기업의 CEO 중 여성의 비율은 게일 켈리(오스트레일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웨스트팩은행의 CEO)가 휴가 중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2~3퍼센트를 왔다 갔다 한다. (68)

 

 


전체 대졸자의 60퍼센트가 여성이고, 또 많은 수의 여성들이 직장에서 일하지만, CEO를 비롯한 최고위 자리에까지 올라서는 여성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이 남성보다 일을 못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야망이 적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불성실하기 때문에? 아니다. 남성이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여성도, 그 일과 관련해 노력과 실력을 갖춘 여성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결혼하고, 똑같이 취업해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여성 CEO의 비율이 2~3퍼센트라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성에게는 아내가 없다라는 것?


 







일하는 여성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 많은 여성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더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가정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을 가정에만 묶어두려는 여성의 신비가 약화된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문제는 여성이 직장에서 일하는 만큼또는 여성이 직장일 때문에 가정의 일을 돌보지 못하는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남성들이 채워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여성을 직장으로가 서서히 자리잡아가는 반면, ‘남성을 가정으로는 여전히 먼 일처럼 보인다. 결국, 일하는 여성은 이중 노동에 시달린다. 직장에서 일하고, 가정에서 일한다. 생계부양자로서 일하고, 아내로서 일한다.


 





많은 여성들, 특히 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업무 경쟁이 치열하고 스트레스가 많은데, 집에 오면 집안일도 내 차지고…… 남편 짜증과 비위 맞추기에 지쳤다.”며, “나도 마누라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페미니즘의 도전>, 103)

 

 


그 다음은 악순환이다. 미뤄둘 수 없고, 기다려 줄 수 없는 육아의 특수성 때문에, 여성들은 좀 더 책임 있는 전임제 일자리보다 탄력적 근무가 가능한 임시직, 시간제 일자리에서 일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그래야만 가정일과 직장일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었다. 여성들은 아버지-남편-아들 (혹은 오빠나 남동생)의 법적인 지배 아래 있었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미국에서는 1920, 대한민국에서는 해방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가장 최근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나라는 2015년 여성의 선거 참여를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다. 이게 끝은 아니다. 여자는 취업할 수 있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퇴직해야만 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로 그랬다. 44년간이나 유지되던 기혼자 퇴직법’, 여성에게만 적용되었기에 정확히는 유부녀 퇴직법은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1946년에야 폐지되었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많은 불평등들이 하나씩 바뀌어 가고 있다. 앞으로도 갈 길은 무척이나 멀어 보이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반세기 전에 그랬듯이 함께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새로운 전국적 운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40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은 이제 30시간이 돼야 할 테고, 합쳐서 주 80시간을 노동하면 안 되는, 아이를 키우는 남성과 여성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노동하는 부모들에게는 하루 6시간 노동이 알맞고, 젊은 남성과 여성은 교육과 심화 훈련의 기회를 노동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0세가 넘는 사람들은 집안일만 돌보기보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계속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좀더 많은 일자리가,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게 새로운 성공의 기준이 주어져야 한다. (<여성의 신비> , 16)

 

 

남성과 여성, 아이와 노인이 함께 행복한 사회에 살기 원한다는 데에 모든 사람들이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권위적이고 자신의 주장만 말하는 아빠와는 누구도 저녁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피곤에 절어 무력감에 빠져있는 엄마와는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항상 그립지만, 어린이집 차에서 내렸을 때 두 팔로 맞아주는 아빠가 서있다면 아이는 활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같이 키우며,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는, 다시 또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모두 행복한 이 시간 속에서, 혼자만 울고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이리저리 1 3, 혼자만 뛰어다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혼자 속앓이 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식구들 모두 웃을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해야 그게 진짜 행복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17-05-3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_ 좋음. 오늘 글 짱 좋음.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단발머리 2017-05-30 17:22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아내가 필요하지요~~
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야나님이 좋다고 하니 나도 좋네요. 헤헤
 
루슬란과 류드밀라 비룡소 클래식 7
푸슈킨 지음, 카랄리코프 그림, 조주관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에서 제일 먼저 소개된 작가가 푸시킨이고, 책 제목을 비룡소 클래식에서 본 것 같아 찾아보니, 이 책이다. 다짜고짜 첫날밤.

 

 

여러분! 속삭이는 사랑의 소리가 들리는가?

달콤한 키스 소리가 들리는가?

마지막으로 신부의

더듬거리는 수줍은 말소리가 들리는가?

신랑은 이미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으려고 가까이 다가섰다.

이때 갑자기 … (19)

 


 






신부 류드밀라는 밤안개보다 더 검은 그림자와 함께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딸을 잃은 대왕은 류드밀라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그녀를 아내로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미 그녀는 루슬란의 아내인데.... 그녀를 짝사랑하던 기사 3명과 그녀의 남편까지, 한꺼번에 네 사람이 길을 떠난다.









질투의 화신들인 기사들과 결투하고, 머리통과 대결하고, 핀란드 노인의 도움을 받아 난쟁이 마법사 체르노모르에게서 아내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 루슬란. 한 번의 위기를 더 겪은 후에 잠자는 류드밀라를 마법에서 해제시키고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오래오래 행복하게.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사랑과 모험이야기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작가의 이야기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이야기. 사랑과 질투, 명예 회복을 위한 결투 신청 그리고 죽음. 푸시킨은 정말 아내를 그렇게 사랑했을까. 사랑. 사랑 때문이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5-2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시킨이 자존심이 센 성격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랑과 명예, 두 마리 토끼를 되찾고 싶어서 결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


단발머리 2017-05-30 14:31   좋아요 0 | URL
나탈리아가 니콜라이 1세와도 썸싱이 있고 해서, 사실 푸시킨이 많이 예민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사랑과 명예 중에,
사랑과 진지한 대화, 일테면.... 너는 날 사랑하지 않냐... 를 먼저 나눴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입니다. ㅠㅠ
 
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민적정치』 는 정치인에게만 맡겨 두기에 너무나 중요한 정치’(드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 정치의 아쉬운 점을 말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더해 그 해결책을 고민한다.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위해 저자는 다양한 책읽기와 사색, 그리고 타인과의 의견 교환을 제안한다. (31) 하지만 그보다 더욱 강조하는 것은 바로 지금, 한국 정치에서 세월호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앞에서 길게 세월호를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월호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국가가 버린 국민의 삶이 얼마나 참혹해지는지 보여 주는 사건. 그러니 우리 정치의 회복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우리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했던 과정을 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재건을 확인할 것이다. 진상 규명 과정들이 낱낱이 투명하게 밝혀질 때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수장되는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우리의 이 처참한 아픔들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55)


2014 4 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가 침몰했고, 국가는 국민들을, 어린아이와 수학여행중인 고등학생들을, 선생님들을,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이게 세월호 참사의 전부다. 세월호 사건은 놀러가다가 교통사고 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국민 전체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남겼다. 세월호 이후 내수 시장이 침체에 빠지고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는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갑작스러운 죽음 역시 도처에서 일어나지만, 전 국민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고 골든타임의 1, 1초에 가슴 졸이는 일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우리 모두 상처 입었고 두려웠다.


김밥 도시락과 음료수, 과자와 돗자리를 가방에 넣어줄 때마다, 세월호를 생각한다. 그 아이들도, 몰래 쥐어준 용돈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게 수학여행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지 못 했다. 숨막히는 입시 위주의 교과와 성적이 주는 엄청난 부담감 속에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교복 입은 아이들은 히히히 웃고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 가방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노란 리본을 보며 세월호를 생각한다. 그 아이들도, 교복을 입고는 그렇게 환히 웃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 했다. 세월호의 아픔은 우리 시대를 꿰뚫는다. 아무도 세월호가 갖는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치의 회복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의 말이 옳다. 철저한 사건의 진상규명만이 우리의 후회와 슬픔, 그리고 아픔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다. 오직 그것만이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국가란 무엇인가이게 나라냐의 질문, 가장 정치적이며 가장 서민적인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혹은 사회적 주요 사건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지식은 저자의 전공이 정말 정치학이 아닌 기생충학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다. 책 곳곳에 숨어있는 촌철살인 유머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특히 2012년 대선 직전 색깔론에 대한 칼럼은 정말 최고다. 저자의 전공과 정치학적 혜안의 절묘한 조화가 그의 칼럼 좌변기의 꿈에서 아름답게 꽃피는 광경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용기와 기백에 감탄했다.


착한 대통령은 아무나 욕한다. 일개 검사와 마주앉아 토론하겠다는 대통령에게는 예의에 어긋나는 말도 쉽게 던진다. 장관도 아니고, 수석도 아니고, 청와대 기술직 직원들과 마주앉아 밥 먹는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이라는 최소한의 호칭조차 빼버리는 게 언론이란다.


하지만,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언론사 사장을 불러다 조인트 까는 정권의 대통령, 정권과 반대되는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세월호를 추모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출판사를, 언론사를 친절하게(?) 따로 관리하는 정권의 대통령에게는 침묵의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는게 언론이다.


만약 언론이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성실히 이행했다면, 국가 운영 전체를 마비시켰던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감시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언론, 세월아 가라~ 힘이 빠지는 정권 말기만을 기다렸던 언론은 암흑의 시간에도 건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던, 가장 졸렬한 정권에게도 당당했던 서민의 기개를 본받아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권리이자 책임이다라는 문단에서 저자는 국민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대통령을, 국회의원을, 기타 공직자를 부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금배지의 전횡과 특권을 방관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자고 말한다. 감시와 견제, 관심과 애정만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시선을 국민들의 시선과 일치시킬수 있는 방법이라 말한다.


홍대 프리허그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그 행사가 수도권에서의 마지막 유세인줄 알았는데, 대선 전날 광화문 유세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말에 혼자 외출하고, 엄마가 또 나간다는 말에 어색한 분위기 만들어질 찰나.


딸애에게는 어버이날 선물 특별히 준비한 거 없으면, 선물을 이걸로 하자고 했다. 아롱이에게는 참치김치볶음밥을 만들어놓았다. 남편에게는 카톡을 보냈다. “여보, 오늘까지만내일은 가정으로 돌아올께요.”


그 다음날부터는 가정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웬걸, 이런 아름다운 사진들이 주의를 끈다. 관심과 애정. 나는 관심과 애정을 쏟으려 한다. 거짓말과 말 바꾸기, 유체이탈 화법과 불통의 정치가 이제 막 변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안구정화 서비스, 진정한 소통, 찾아가는 민원 해결 서비스, 상식의 상식화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자고로 진정한 서민정치, 서민적정치의 시작이다.


시작이다. 이제부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7-05-19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갈 때 잘 다녀오라고 등 두드려주던 동네 꼬마도 인상 깊었져~

단발머리 2017-05-19 11:20   좋아요 1 | URL
요즘에 문대통령님 사진 찾는게 제 일인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말씀하신 사진 못 봤어요.
찾아볼 것이야요~~~~~ 헤헤^^

2017-05-19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했다
WAM (Wives and Mothers)
여성의 신비 이매진 컨텍스트 6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 이매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완벽한 교외 주택 단지에 거주하며 행복한, 혹은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업 주부들. 여성의 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는 가정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여성의 신비에 사로잡힌 전업주부들에 대한 면담과 연구를 통해 저자 베티 프리댄은 여성의 신비시작점과 그것이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과정, 그리고 여성의 신비 신화의 직접적인 수행자이자 피해자인 여성들의 삶을 조망한다.


677, 이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많은 수의 10대 소녀들이 조혼을 통해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소녀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채로, 혹은 대학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로 결혼했다. 아이를 낳았고, 계속해서 또 아이를 낳았다.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여성들은 생각보다 행복하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괴로워했다. 우울감을 호소했고, 공허함을 느끼고, 불완전하다는 기분이 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다. 진정제를 복용하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져 아이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왜 그럴까. 교외 전원 주택, 능력 있는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 안정적인 소득이 주는 경제적인 만족감, 자유로운 여가 시간. 그럼에도 왜 그녀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무력감에 빠져드는 것일까.



오늘날 여성 문제의 핵심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문제, 즉 여성의 신비 때문에 영속화된 성숙을 방해하고 기피하는 문제라는 것이 내 논제다. 또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가 당시 여성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문화 구조가 여성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발전시키려는 기본적인 욕구, 즉 성역할에 의해서도 전혀 제한 받을 수 없는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이 내 논제다. (150)



저자는 여성의 신비로 인해 가정과 가족들에게만 그 임무가 인정된, 오직 그 임무에만 한정된 여성으로서의 삶이 그녀들을 옥죄고 있다고 판단한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만 그 정체성이 규정될 때, 삶의 무력감,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들에게 이런 여성의 신비를 가르치고 유통시킨 건, 그녀들의 유일한 읽을거리였던 여성지였고, 대부분의 여성지는 이제 막 전쟁터에서 돌아와 따뜻한 가정의 품을 원했던 남자 편집자들의 이상형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극대화되었다.(111) 여성의 신비가 갖는 힘은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나왔다. (196) 프로이트는, 여성은 남성의 사랑을 받기 위해, 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자의 사랑에 의해 존재하는 어린아이 같은 인형으로 보았다.(203) 프로이트 이론은 미국의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보여줬고, 프로이트 이론에 의해 과학적인 종교로 격상된 여성의 신비는 여성을 단순화시키고, 과잉 보호하고, 생활을 제한시키고, 미래를 부인하게 했다. (228)


소녀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에서는 소년들과 다른 교육을 받았다. 여성지향적 교육자들은 소년들을 잠재력을 가진 사람, 문화 속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격려했지만, 소녀들에게는 성적 판타지를 자극했다. 여성성의 이미지, 즉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순응적인 사고 및 행동을 소녀들에게 강요했으며, 여성 정체성 결핍의 해결책으로 조기 결혼을 제안했다.(290)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식,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노력 없이 가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여성들은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주체성, 목표, 창조력, 자아실현, 심지어 여성에게 부족한 성적 희열까지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은의 주방용품을 사용할 때, 특별한 가스렌지 세척제를 사용해 티없이 깨끗한 가스렌지를 새롭게 창조해냈을 때, 자신의 가치도, 인생의 목적도 찾게 되리라 믿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즘의 이유와 여성의 좌절이 생기는 실제 이유 모두가 주부의 역할에서 오는 공허감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회의 중요한 역할과 그 결정은 집 밖에서 일어나고 있고 여성은 이 역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며, 그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다. (402)



전업주부 여성들이 하루 종일 몰두하는 주부의 역할, 집안일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무한히 계속되는 일이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이며,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여성이 하는 일, 즉 가사는 그녀에게 어떤 지위도 줄 수 없다. 그것은 사회의 어떤 일보다 낮은 지위이다.(447) 집안일의 피로에 대한 주부들의 호소에 대해 의사들은 피로가 아니라, ‘권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416)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가정이라는 좁은 벽 속에서 제한된 일을 반복하게 되었을 때, 여성들의 허탈감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결과가 이어졌다. 아이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과잉 보호 때문에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에 대한 보고 또한 있었다. (338)


그녀들을 고통 속에 몰아 넣는 건 일상이다. 지루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일상 때문에 그녀들은 공포를 느낀다. (513) 인간으로서의 욕구, 즉 먹이와 성, 생존의 욕구처럼 지극히 본능적인 지식의 욕구와 자아 인식의 욕구가 계속해서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514)


편안한 포로수용소에 갇혀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사는 여성들에게 저자는 새로운 인생 계획을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자율성과 자기인식, 그리고 독립성, 개성,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를 가진 여성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530) 인간사회에 공헌하는 창조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543) 인간의 전 생애라는 관점에서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라고 제안한다.



한 인간의 전 생애라는 관점에서 설계의 첫번째 단계는 가사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없고, 가능한 빠르고 능률적으로 해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여성 지향적 교육의 산물인 여성으로서는 가장 힘든 것인데, 결혼에 대한 여성다움의 환상적 틀이 부과한 과잉 찬미의 장막을 걷어 버리고 진정한 실체를 보는 것이다. (557쪽)



저자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급지도자 혹은 자원봉사 지도사로서 일하기 보다는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가 되라고 제안한다. 또한 여성에게 금지된 일, 즉 예술이나 과학, 정치나 전문직을 장기적인 차원에서 계획하고 계속 그 일을 해나가는 여성들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문제로 고통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566) 하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는 냉정한 충고를 건넨다.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듣고 보고 읽는 데에 돈을 내기 싫어하는 수준인 아마추어나 동호인들은 그 사회 내에서 실질적인 지위를 얻을 수 없으며, 실질적인 인격적 주체성도 갖지 못한다. 그런 지위나 주체성은 노력하고 지식을 얻고 전문가가 되려고 하며 전문적 지식을 쌓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567)



저자는 직업여성이 갖는 죄의식 증후군과 다른 주부들의 적의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말하며,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은 정규대학과 종합대학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588) 이를 위해 대학의 학부과정이나 석사과정이 시간제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야말로 주부들이 단순히 아마추어로 끝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교육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602)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 진정한 자신이 되라고, 남성, 어린이와 함께 정원과 생물학적인 역할 뿐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창조하는 일과 인간의 모든 지식에 관한 책임과 열망 또한 나누어 가지라고, 여성 자신에 대한 탐구를 이제 시작하라고, 그녀는 말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 지난 여성들에게,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하라는 저자의 마지막 제안은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그녀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제안은 독자를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주문과 같다. 그녀의 주문은 마법 주문이어서, 그녀의 책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는 예전의 자신, 교외의 전업주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살고 있던 지역에서 따돌림을 당해 도시로 이사가야 했고, 결국에는 완벽하게 바뀌어 버린 자신의 삶처럼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성적 차별에 반대하는 법률을 강제하지 않는 회사에 대항해 싸웠고, ‘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an)’을 창설했다. 이후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또는 개량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고전으로서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다. (옮긴이, 676)



이 책이 오늘날까지 빛나는 이유는, 책 속의 인용 부분, 가정이라는 벽에 갇혀 절망하고 방황하는 숱하게 많은 여성들의 고민과 갈등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민들이 바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미술이니 조각이니 문학 등의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는 행복한 주부상은 여성의 신비에 물든 환상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 그것은 여성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다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집이 아닌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한다. 또는 자기 아이들에게 그녀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성급하게 프라이버시의 공간과 시간을 요구하다가는 귀신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음도 감수해야 한다. … 차라리 9시부터 5시라는 시간의 확실한 구별이 직업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데 있어 더 훈련하기 쉽고, 덜 외로울 것이다. 전문직업 세계의 일부로 나타나는 어떤 자극과 새로운 친교 관계는 집안에서 가정주부라는 물리적 제한에 얽매여 놓으려는 여성에게는 있을 수 없다. (570쪽)

사회의 주류에 참여함으로써, 그 사회를 형성하는 모든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발언권을 행사함으로써 여성이 완전한 인간의 잠재력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성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완전한 정체성과 자유를 갖기 위해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621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7-05-06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64441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했다>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70294
<WAM (Wives and Mothers)>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99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