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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비 ㅣ 이매진 컨텍스트 6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 이매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1963년, 다른 여성들처럼 부엌 바닥 왁스칠을 하면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 저자 베티 프리댄은 처음에 이것을 자신만의
문제라고 느꼈다. 자신에게 뭔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 규정되는 자신의 삶에 등장하는 의문부호를 지각(서문과 감사의 말, 47쪽)하고 나서 그녀는 스미스대학을 졸업한 지 15년이 지난 동창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하게 되고,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그녀가 아는 여성들의 일관된 증언, 그리고 심층 면접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된다. 주니어나, 재니, 에밀리의 엄마로서, 아니면 B.
J.의 부인으로서 삶을 향유하더라도, 여전히 스스로 각자 고유한 권리를 지닌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이나 사상을 감춘 채 살아야 했던 미국 여성들의 불안과 갈등에 대해 그녀는 ‘이름 없는 문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교외의 멋진 저택에 사는 주부.
젊은 미국 여성들이 꿈꾸는 자화상이며, 전세계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여성들. 건강하고 아름답고 유식하며, 자기 남편과 아이, 집에만 관심을 두는 여성들. 가정주부이자 어머니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그녀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
침대를 정리하면서, 식품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의자 커버를 씌우면서, 아이들과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아이들을 소년단과 소녀단으로
태우고 다니면서, 그리고 밤에 남편 옆에 누워 있으면서 이 조용한 물음 – “이것이 과연 전부일까” – 을 자신에게조차 던지기 두려워했다. (54쪽)
여성들은 이것을 표현하려고 할 때, 공허함을 느낀다고, 불완전하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진정제를 복용한 여성들도 있었고, 아이들에게 굉장히 화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때때로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집을 뛰쳐나가기도 하고,
집안에 처박혀 울기도 한다고 했다. 청바지 차림을 한
23세 된 어머니의 이야기다.
왜 이렇게 불만스러운지 스스로 물어봐요. 내겐 건강하고 착한 아이들이 있고, 아름다운 새 집과 충분한 재산이
있어요. 남편은 전자기술자로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에요. 남편은
이런 감정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요. 내게 아무래도 기분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고 하면서 주말에 뉴욕에
가자고 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게 아니에요. 난 항상
우리가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혼자서는 책을 읽을 수 없어요. 아이들이 낮잠을 자면 내 시간이 한 시간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이럴
땐 아이들이 깨기를 기다리면서 집 안을 돌아다닐 뿐 아무것도 못해요. … 어느 날 아침 깨어나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게 된 듯한 기분인 거죠. (65쪽)
프리단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고통 속에 있는 여성들은 교육 수준의 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1950년대 이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많은 여성들이 의사를 찾아갔을 때, 이 문제를 조사한 어느 의사는 놀랍게도 ‘가정주부 피로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성인에게 필요한 수면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인 하루 10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며, 그네들이
실제 집안일에 소모하는 에너지는 개인 능력의 한도까지 혹사 시킬 정도의 양은 아니라는 걸 알아냈다. 그렇다면
왜 그녀들은 이런 무기력감에 사로잡히게 된 걸까.
저자는 1949년 이후
<레이디즈 홈 저널>, <맥콜>, <굿 하우스 키핑>, <우먼즈 홈 컴패니언>등의 각종 여성 잡지들이 편집 방향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남성 필진들에 의해 ‘여성의 신비’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여성의 신비는 여성의 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가 자신의 여성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99쪽), 주부를 모든 여성의 이상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성의 신비’에 의하면, 자기 완성이란 단지 하나의 의미, 즉 어머니, 아내, 주부라는
의미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을 걸치고 요리,
빨래, 청소 그리고 아이 낳는 일에 억압되고 길들여진 존재 양식을 모든 여성이 본받아야
한다고 강제했다.
여성지의 주부 주인공은 ‘정숙한
부인형’, 혹은 ‘관능적인 창부형’ 뿐이었다. 이전에 간간히 등장하던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 즉 자기 이야기를 갖는 독립된 주체인 여성 주인공이 사라져버렸다. 여성은
오직 남편과 아이들을 통해서만, 또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여성지들을 통해 ‘직업-가정주부’라는 미국 여성의 새로운 이미지가 신화로 굳어졌다. 누가 이러한 거짓
신화를 만들어 냈는가.
나는 어느 날 아침 한 여성지의 편집실에서
실마리 하나를 찾아냈다. 그 편집자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여성으로, 저 옛날의 여성상이 만들어지고 있던 즈음을 지켜본 사람이다. 의지에 찬 직업여성의 옛 이미지는 여성 필자와 편집자들이 주로 창조한 반면, 현모양처인 새로운 여성상은 주로 남성 필자와 편집자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111쪽)
젊은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고 나서 많은 여성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새로 등장한 남성 필자들은 자신들이 그려왔던 신화적 여성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모유 수유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여성은 아이를 낳는 순간에만 성취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여성 잡지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됐다.
하필 왜 여성 잡지일까? 여성
잡지의 그런 기사가 무슨 문제인가?라고 묻는다면.
결혼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나 대학을 그만둔 젊은 주부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여러 의식조사들이 알려 주고 있다. 잡지만 읽는다는 것이다. (109쪽)
그렇다. 당시의 미국
여성들은 잡지, 그 중에서도 여성 잡지, 여성만을 위한 여성
잡지, 여성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한 잡지만을 읽었다. 그리고, 그 잡지의 편집 방향은 이제 막 전쟁터에서 돌아와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져줄, 혹은 어루만져줄 것으로 예상되는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만을 그려냈다. ‘여성의 신비’에 몰두하는 모습만을 미화했다. 남성에게 이상화된 여성의 모습. 남성이 보고자 하는, 보고 싶은 여성의 모습. 오직 가정에만 몰두하는 여성. 남편과 아이들을 통해서만 자신을 규정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런 여성. 그런 인간 말이다.
구운 감자요리는 세계만큼 크지 않으며, 거실 마루바닥을 청소하는 일은 충분한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지력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 일이 아니다. 여성은 헝겊 인형이나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인간의 자신의 사고력으로 사상과 비전을 세우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면서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음식과 섹스가 필요하지만, 사랑할 때, 인간으로서 사랑할 때,
그리고 과거와 다른 미래를 발견하고 창조하고 계획할 때 비로소 한 사람, 한 인간일 수
있다. (131쪽)
여기까지가 1장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들>, 2장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 133쪽까지의 요약 정리다. 나는 이제서야 막 시동이 걸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급박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수 있지만, 현재 시각 오후 2시 13분. 이제 청소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구운 감자요리가 세계만큼 크지는 않지만, 집안의 미세먼지를 해체 시켜야 할 책임이 내게는 있고, 내게 아이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엄마, 배고파!”를 외치는 작은 새끼새의 배를 채워줄 책임도 내게 있다. 이 모든 걸 무시하고, 읽고 적고 쓰고 싶지만, 이 모든 걸 무시하고 읽고 적고 썼을 때, 내가 얼마만큼 행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
일단, 지금은 청소를
한다.
구운 감자요리 대신 밤죽을 끓이고, 바닥 왁스칠 대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