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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그래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작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녀의 ‘그래도’가 얼마나 용기 있는 말인지, 그녀의 ‘그래도’가 얼마나 희망을 주는 말인지,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구작가>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중퇴

싸이월드 스킨작가 2008년~2013년

<내가 되고 싶은 나> 미술 선교 프로그램 진행 2012년~현재

2013년 겨울, ‘망막색소변성증’ 판정 후 책 작업에만 몰두 중

현재는 시력을 잃게 된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소리를 잃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그림이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리를 못 듣는 자기 대신 소리를 잘 들어주었으면 하고

귀가 큰 ‘베니’ 토끼 캐릭터를 만들었다.

‘베니’ 그림으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베니’ 그림으로 그림 작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 그녀는 시력도 잃게 되는 병에 걸렸다.

소리가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살던 그녀는

지금 빛까지 사라지게 되는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슬프지 않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아직 따뜻한 손이 남아 있고,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입술,

그리고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가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다가와 있는 내일이, 너무 간절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불행해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늘 웃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세상에 도전장을 낸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거절에 거절. 잿빛의 세상에서 절망에 빠질 뻔 했던 그녀는 블로그를 열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많은 이름 중에서 그녀에게 떠오른 이름 하나. ‘구작가!’ 그녀의 소망을 담은 이름, ‘구작가’를 걸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싸이월드에서의 성공,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 때 누렸던 기쁨도 잠시. 그녀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싸이월드의 하락.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 무척 바쁘다가 갑자기 한가해진 그녀에게 긴 공백이 찾아온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내가 되고 싶은 나>라는 미술 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하던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다. 이제는 소리도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 미안해>라는 꼭지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소리내는 걸 잃어버릴 까 입 주변에 설탕을 발라주며, 딸의 손을 목에 얹고 소리의 떨림을 가르쳐주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곧 빛을 잃어갈 딸을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절망하고, 세상을 미워하고,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 누군가를 원망할 법도 한데, 그녀는 다시 일어선다. 그녀에게 허락된 빛의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다. 버킷리스트 하나하나를 실천하는 그녀는 너무나 멋지고 대견해서, 가까이에 있다면 한 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녀의 소망 중 하나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하는 것과 ‘어셔증후군’ 환자를 위한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는 것이다. 소망이 이루어진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나도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바란다. 그녀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마지막으로 <한겨레 21>에서 보았던 그녀의 사진을 올려본다. 그 전에는 안 보였던 사진인데, 책이 눈에 들어오니, 그녀의 사진도 눈에 들어온다. 너무도 이쁜 모습의 구작가.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기를,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꼭 씩씩하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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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4-22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질문 할수 밖에 없고
˝신따위 됐어!˝ 라고 할법도 한데
오히려 종교에서 많은 힘을 얻은거 같더군요.

술마시고 읽어서 인지, 읽는 내내 통곡(?)을 했었네요.
저는 책을 덮고 쓰담쓰담하고 꼭 안아주었어요.
그 마음이 구작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요....

단발머리 2015-04-23 15:4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아무개님은 많이 우셨구나.
저는 진짜, <엄마, 미안해>해서 너무 미안한 거예요.

구작가 어머니께도 미안하고, 울 엄마도 생각나구요.
나두 엄마인데. 나는 왜 이런가 하면서요......
아무개님 예쁜 마음, 구작가에게 잘 전해졌을거예요.
... 그럼요...

cyrus 2015-04-22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이 정말 대단합니다. 눈이 불편한데도 색칠까지 다 하는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니까요.

단발머리 2015-04-23 15:4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구작가님 이렇게 예쁜 마음이니 병이 천천히 진행되었으면, 치료법이 얼른 개발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그림은 너무 따뜻하고 포근한 거 있죠.

테레사 2015-04-2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슬퍼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못 사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5-04-23 15:51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신간평가단을 통해서 이 책을 읽었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뭉쿨한 장면이 여러군데 있지만, 구작가는 얼마나 씩씩한지요.
마지막 장에, 같이 행복하자고, 자기도 행복할 거라 하는데, 정말 많이 고맙더라구요.
구작가한테서 위로받았어요.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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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난 아버지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가수, 지금은 예순에 가까운 이 여가수가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말하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나이 사십에 바람을 피워 가정을 버렸다.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런데 내 나이가 아버지 나이쯤에 이르자, 그 때의 아버지가 조금 이해되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바람을 피웠다는 그녀의 아버지보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는 그녀의 말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이해되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었다. 이제 내 나이도 얼추 그 근방에 가까워지는 찰나, 이젠 나도 그 아버지가 이해되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그 여가수도 이해된다.

그 아버지, 아니 그 남자가 이해된다. 그건 그 남자의 행동이 박수 받고, 환영받고, 케익 자르고, 촛불 켜고, 폭죽 터뜨릴 일은 아니지만, 그도 역시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거다. 만약, 그렇게 못 하겠다면, 계속해서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정죄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필립 로스가 이렇게 말한다더라.

이 사악한 새끼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 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102쪽)

 

(두 번째 줄 ‘씨발놈들’ 밑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어, 그 단어의 철자 혹은 표현이 올바르지 않다고 말해준다. 나도 어쩔 수 없다. 번역자가 쓴 표현 그대로다. 빨간 줄은 운명이다.)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해 아들들은 분노한다. 문제는, 계속 분노한다는 데 있다. 청년이었을 때는 너무 젊고 분노가 강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 했고, 시간이 지나서는 나이가 들어 분노가 강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 했다. (98쪽) 가정을 버린 아버지,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아들들의 분노는 지속된다. 계속된다. 멈추지 않는다.

외려 그가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들이 지금까지도 집요하고 또 진지하게 격분하면서 그를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그의 일을 그렇게 처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일을 자기들 식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변함없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자세는 그럼 용서받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그 결과가 덜 해로운가? 그는 이혼을 하여 가족을 깬 미국 남자 수백만 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고 그가 그들의 어머니를 때렸는가? 그들을 때렸는가? 그들의 어머니를 부양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그들을 부양하지 못했는가? (99쪽)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그들을 도왔지만, 그들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어머니와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일생 동안 아들들에게 탄핵받아온 일흔 하나의 이 남자는 말한다. 변함없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너희들의 자세는 용서받을 만한 것이냐? 그 결과가 덜 해로운 것이냐?

 

 

2. 가장 훌륭한 아내를 가장 엉망인 아내와 바꾸어 버리는 것

피비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 창백하고 어여쁜 젊은 여자는 외모는 부드러웠지만 침착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목소리도 변함이 없었다. (43쪽) 

 

아들들을 버리고, 가정을 떠나 새로 맞이한 두 번째 아내 피비는 말 그대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완벽한 여자가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그녀는 완벽한 아내였다.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갔던 이 남자는 현명하고 용감한 그녀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멈출 수 없는 힘 때문에, 멈춰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이 남자는 피비를 버린다. 오십대의 자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새로운 한 여자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그는, 모든 걸 알아버린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그가 선택한 여자는 자신이 소유한 생물적 특성으로 그의 생존 본능에 노골적인 우위를 점한 사람이었다.(118쪽) 전적으로 에로티시즘의 영역에서만 대담함을 드러내는 사람이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에로틱한 모든 것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재능을, 오로지 그 재능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130쪽)

이번의 그의 아내 ―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다 ― 는 피비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으며, 비상시에는 외려 위험 요소에 가까웠다. 물론 수술하는 날 아침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이동용 침대 옆에서 따라오면서 두 손을 비틀며 울더니 마침내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어쩌라고?”

그녀는 젊고 미숙했다. 따라서 뭔가 다른 말을 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남편이 살아나지 못하면 자기는 어떻게 되는 거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한 번에 하나씩 하자고.”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선 날 좀 죽게 해줘. 그런 다음에 내가 가서 당신이 견디도록 도와줄 테니까.” (50쪽)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그래서 그는 인생 말년을 이렇게 혼자 지내고 있다.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 낸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엄마를 버리고, 자신의 가정을 내던지고 떠나간 아빠를 아직도 살뜰히 보살피는 소중하고 예쁜 딸, 낸시. 낸시 밖에는 아무도 없다. 그 소중한 낸시도 자신의 삶에, 일에, 아이들에 치여 그 삶이 곤궁하다 보니, 그는 외롭다. 더 외롭다.

이 소설을 읽어가는 중에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나는 내 안의 유혹, “고것 참 쌤통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했다. 나는 사실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택했고, 사랑이 식어버린 이전의 여자들을 버렸다. 자신에게 행복과 안락함을 주던 가정을 버렸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나는 그에게, “메롱!”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억눌러야 했다. 나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사랑을 선택했고, 그리고는 혼자가 되었다. 그는 욕망을 선택했고, 그리고는 외로웠다. 결국에는 그렇게 살게 된 거다. 

 

 

3. 유혹이 가능한 나이

젊음에 대한 그의 찬사와 동경을 이해한다. 열 일곱과 열 여덟, 열아홉과 스물, 스물 하나와 스물 둘, 스물 셋과 스물 넷의 싱그러움은, 활기는, 생명력은 이미 그것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절망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그에게서 불과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엉덩이에 두 손을 얹고 서 있었다. 몸은 땀으로 축축했다.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아주 작은 생물체였다. (136쪽)

 

새로운 여자를 만날 기대를 가지고 그림 교실을 열었지만, 자신 또래의 과부에게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 하는 이 남자. 욕망의 화신. 욕정의 구현체. 욕망 그 자체. 뜨거운 이 남자는 이십대 후반의 그녀에게 도전한다. 이전에는 그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걸 기억(166쪽)하면서 말이다. 결과는...

그녀는 전화하지 않았다. 산책을 나가서도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다른 널빤지 길을 따라 조깅을 하기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로써 마지막으로 크게 한 방 터뜨려보겠다는 그의 갈망은 꺾여버린 것이다. (140쪽)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 이제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매력을 발산할 수 없다는 것, 이제는 죽음이 더 가깝다는 것을, 기분 좋게, 무리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늙어간다는 것, 거울 속의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에 유쾌해 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아무리 피하려 해도, 부인하려해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누구나 속수무책이고, 누구나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이기는 건 결국, 시간뿐이다.

신은 허구라고 믿는 그가 유일하게 믿는 것, 그의 유일한 위로. 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뼈가 말한다. (177쪽) 

 

그의 어머니는 여든에 죽었고, 아버지는 아흔에 죽었다.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저는 일흔하나예요. 당신네 아들이 일흔하나라고요.” “좋구나, 네가 살아 있구나.” 그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되돌아보고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것은 속죄하고, 남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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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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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이 많은 집

어느 집이나 가게 되면 제일 먼저 보는 곳은 서재. 자연스럽게 책 쪽으로 눈이 간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집에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다른 집에 가면 ‘어린이 도서관’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어린이용 책들을 보게 되지만, 어른들이 읽는 책, 아빠가 보는 책, 엄마가 읽는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집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아니다. 어른이 볼 만한 책을, 웬만큼이라도 가지고 있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에서는 어른이 볼 만한 책, 어른이 읽는 책 구경을 원 없이 할 수 있다.

 

 

 

 

 

 

 

2. 츠바이크! 아, 츠바이크!

책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의 책 이야기, 서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 책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면 ‘츠바이크의 재발견’이다. ‘츠바이크’라고 한다면 《초조한 마음》의 츠바이크이며, 《낯선 여인의 편지》의 ‘츠바이크’ 아닌가. ‘함께 읽고 싶은 책’에서는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는데 츠바이크의 책이 자주 보인다. 눈이 번쩍 뜨이는 기쁨의 소식이다.

 

가장 걸작은 역시 ‘평전계의 레전드’라고 할 만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도스토옙스키를 쓰다》다. 평전이나 전기라고 하면 보통 시간 순서에 따라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늘어놓는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츠바이크는 다르다. 도스토옙스키의 일생을 사실에 근거해 다루면서도 특유의 섬세함을 발휘해 인물 내면을 잘 묘사해서, 읽다보면 평전이라기보다는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187쪽)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만큼 독특한 평전을 쓰는 작가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츠바이크가 쓴 평전이 베스트셀러 소설 못지않게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다. 츠바이크는 살아 있는 동안 소설 몇 편과 그것보다 몇 배나 많은 평전을 남겼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비운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다룬 책이다.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덕분에 실제 역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츠바이크 특유의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가 더해진 완벽한 평전이 됐다. (304쪽)

 

 

《어제의 세계》는 최고의 전기 작가로 꼽히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회상록이예요. 츠바이크는 전기를 쓰려고 많은 책과 자료를 참조했는데, 이 작품은 자료를 참조하지 않고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 썼다고 해요. (331쪽)

 

 

3. 책을 다루는 자세

가끔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폭력은 무조건 나쁘지만,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의 인트로 내지 전주가 될 수 있어 더욱 나쁘다. 애인은 사랑으로만 대해야 한다. 애인은 사랑으로만 대해야 하지만, 책을 다루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책 좋아하는 분들 중에 결벽 증세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도 심하지는 않지만 그런 부류예요. 일단 책을 보면서 밑줄을 긋지 않고요. 책을 접거나 구기는 걸 싫어해요. 요즘에는 좀 덜하지만 한때는 그런 게 싫어서, 다른 사람 손 타는 게 싫어서 책을 거의 빌려주지 않았어요.” (199쪽)

 

습관을 물어보셨는데, 책을 읽을 때 반드시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중요한 대목을 표시하는 거죠. 독서를 ‘연애’에 비유했는데, 그렇게 해서 “책을 읽었다”라는, “내가 ‘연애 상대’를 이만큼 잘 파악했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를 남기는 셈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것도 아주 기만적인 생각이겠죠. “내가 너를 모조리, 속속들이 이해하고 말리라” 하는 집착이기도 하고요. 어떤 표시를 남겼다고 해서 그게 곧바로 이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요. (323쪽)

 

나는 ‘절충형’인데, 웬만해서는 줄을 치지 않고 책을 읽는 편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것이 되면, 내 책이 되면, 내 사람이 되면, 물론 줄을 친다. 예전에는 색연필을 선호했지만, 요즘은 볼펜으로 줄을 친다. 볼펜, 검은색 볼펜으로 줄을 친다.

 

 

4. 진짜 책을 사랑한다면

이제 가장 인상 깊었던 문단을 적어본다. 책을 ‘소유’하는 것은 가방을 ‘소유’한다거나, ‘옷’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폼나고, 더 고상한 것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세상을 더 밝게, 더 희망차게 만드는 지식과 지혜는, 그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책을 미리 사 두었다가 선물하는 이 분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래야겠다, 슬쩍 다짐해본다.

 

많은 책을 읽다보면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럴 때는 마치 금맥을 찾은 것처럼 기쁘다. 허섭 씨는 그런 책이 있으면 보통 십여 권씩 따로 사뒀다가 마음 맞는 사람에게 읽어보라며 선물하는 걸 즐긴다. 학사재 구경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교무실 한쪽에 있는 선반 문을 여니, 그렇게 한꺼번에 사둔 책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다. 허섭 씨는 내게도 책을 주고 싶다면서 하드커버 책 몇 권을 꺼냈다. 2001년 두레출판사에서 펴낸 일곱 권자리 《다석사상전집》이다. 이 책은 워낙 좋아해서 얼마 전 자기 돈 백여 만 원을 들여 열 질을 사뒀다고 한다. (18쪽, 젖은 책 다림질하는 노자 덕후, 국어 교사 허섭씨)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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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3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3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5-03-2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나면
왠지 독서의지가 더 불끈불끈 달아오르는거 같아요.

츠바이크의 책들은 저도 보관함으로....
이분 참 묘사력 대단하시더군요.
초초한 마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단발머리 2015-03-23 10:29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불끈불끈하기는 한데, 아... 저는 빨리 못 읽어요.
빨리도 못 읽고, 많이도 못 읽고, 잠도 많고, 체력도 저질이고... 에이 참...

츠바이크 책 중에서, 저는 일단 마리 앙투아네트 책을 읽어보려고요. 많이 기대대요.
[초조한 마음]은 진짜 걸작이죠. 한 손에 들고 빛의 속도로 읽었던 기억이... ㅎㅎㅎ

다락방 2015-03-2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고 싶었었는데...집에 있는 것도 같고..... 있겠죠? 흐음. 집에 가서 살펴봐야겠네요. 이젠 집에 무슨 책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ㅠㅠ

단발머리 2015-03-24 07:16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은 이미 알고 있는 책이군요. 저는 이제서야 봤어요. 일단 보관함에 넣어야겠어요.

집에 책이 많으시죠~~ 무슨 책이 있는지도 모르신다니... *^^* 저는 책이 많지 않기도 하고, 사실 많이 구매하지 않아서 책이 뭐가 있는지는 대충 아는데, 문제는 책을 너무 느리게 읽어서요. 안 읽은 책이 집에 참 많아요 : )

icaru 2015-03-23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연필로 줄쳐 가며 읽어요... (도서관 책은 당연 예외) 그게 일종의 책갈피 노릇을 해 주기도 해요 휴,ㅜ) 줄친곳까지 읽었다는 표시..
어제의 세계는 온다리쿠의 소설제목이기도 한데, 아항... 온다여사가 츠바이크 작품에서 제목을 가져온 모양이네여~
오~책이 많은 집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것을 엮은 책인가요? 세번째 서재 사진이요
왓... 저기 왼쪽책장에 유에스비 상용화되기 전 시절 디스켓 넣는 케이스함 아닌가요? 향수어려요!!!

단발머리 2015-03-24 07:20   좋아요 0 | URL
저는 또, 온다리쿠를 처음 듣습니다. 소설가겠죠~~ 일본사람? ㅎㅎㅎ

제가 책 설명을 잘 못한 것 같아요. icaru님 말씀대로 이 책은 윤성근씨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걸 엮은 책이거든요. 그러니까, 사진도 여러 집에서 가져왔구요.
세번째 사진 아래있는 거 네모난거 말씀하시는 거죠?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잘은 모르겠네요.
저도 A드라이브 세대입지요~~~~~~~

서니데이 2015-03-24 07:26   좋아요 0 | URL
온다 리쿠 는 우리나라에도 소설이 많이 번역되어 나와있어요,

서니데이 2015-03-23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가지고 있어요, 근데 가지고 있는 걸 잊어버리고 있다 지금 생각났어요^^;
이 책에 츠바이크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나요^^ 단발머리님, 좋은하루되세요

단발머리 2015-03-24 07:22   좋아요 1 | URL
우아, 이 책 많이 유명한가봐요. 마리 앙투아네트 가지고 계신분이 여러 분이네요~~

이 책에서 `함께 읽는 책`이라고 소개하는 게 있는데, 여기저기서 츠바이크가 보이더라구요.
저도 책 세 권을 찜했어요. 읽어보리라 하면서요^^

서니데이 2015-03-24 07:28   좋아요 0 | URL
아마 마리앙투아네트 에 관한 책은 예전에도 출간된 적이 있어서 보신 분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저도 아주 오래전에 조금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얼마전에 신판을 샀던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03-24 07:43   좋아요 1 | URL
아하... 서니데이님 말씀듣고 자세히 봤더니, 전에는 이 책이 상하로 나왔군요.
개정판은 한 권 짜리구요.
사실, 저는 도서관에 검색해봤는데, 없어서요. 살까 살까 하고 있어요. ^^

서니데이 2015-03-24 08:3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 책은 제가 본 책은 아닐거 같아요, 아주 오래전이라서 아마 인터넷 검색은 안나올 것 같거든요, 근간에 한번 더 나온적이 있나봐요, 지금 책은 아직 읽기전이라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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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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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으니까 선글라스를 챙겼다. 책을 두 권 넣고, 아이패드와 이어폰도 챙겼다. 미루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여름 내내 미루고 미루던 일이었다. 더는 미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섰고, 그 곳에 도착했다.

세월호 사건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광화문 광장. 한쪽에 가서 이름을 적고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작은 천을 받아왔다. 앞쪽은 옷핀으로 달 수 있었지만, 등은 누군가 도와주어야 했다. 저쪽을 보니 두 명의 여자분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 스티로폼 장판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어야 어울릴 법한 차림새였다. 다가서며 말했다. “저, 죄송한데 이것 좀 달아 주시겠어요?”

두 명 중 한 명이 쾌히 도와주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3시간을 앉아있었다. 둘째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단식을 한 건 아니었다.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진상 규명을 원하는 국민들이, 일반 국민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알아야 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말 힘들게, 힘들게 읽었다. 여러 번 책을 덮었고, 그리고 여러 번 눈물이 났다. 이 글을 썼던 사람들, 이야기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힘들었다는 내 말은, 너무 사치스러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잃은 이 분들의 고통에 비하면.

체육관에서 한사람 한사람 줄어가는데 그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초조하고...... 내 딸이 유실됐나, 인원이 줄어드니까 머릿속이 온통 다 그런 생각밖에 안 나. 막상 내 딸이 나왔는데 나머지 유가족들을 못 보겠더라고. 여기 누구 엄마, 여긴 누구네, 여긴 선생 그다음에 나, 이렇게 넷이 다 같이 모여 있었어. 그중 나만 나왔어. 생각해 봐. 다 안 나온 중에 나만 나왔다니까. 그날 미지 데리고 오는데 그간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얼굴을 볼 수가 없더라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지금도 다 안 나왔어. 그 사람들이 어깨 툭툭 치면서 축하한다고 그래. 근데 거기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냐고, 그 상황에서.“ (53쪽, 2학년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 씨 이야기)

 

옛날에 어른들이 자식 앞세우곤 못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이 다 맞아요. 공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겠다고 운동하는 걸 보면 우리 아이들은 열일곱에 죽었는데 하면서 분노가 막 치밀어올라요. 누가 마흔살에 죽었다고 하면 아 20년만, 우리 딸로 23년만 더 살았으면, 그렇게밖에 말이 안 나와요. 우리 승희는 없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듯 돌아가고 사람들이 웃으며 돌아다니는 걸 보면 화가 나고. 억울하고 용납이 안 돼요. 왜 하필 내 딸이 그 나이에 죽었는지.... (78쪽, 2학년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 씨 이야기)

 

 

 

설마했던 부모들은, 끝까지 국가를 믿었던 부모들은, 망망대해 넓은 바다에서, 골든타임(이제는 아무나, 아무 상황에서나, 자기 편한대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어 버려 그 사용이 꺼려지는 그 골든타임) 동안 아무 일도,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국가를 본다. 해경과 언딘. 그리고 거짓말하는 언론을 본다. 지상최대의 구조작전,이라고 쓰는 언론을 본다. 구조하지 않고, 구조하고 있다고 말하는 국가와 언론. 

자식이 죽었을거라고, 이제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부모들은 자식의 ‘몸’을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마지막으로 아이의 모습을 눈에 간직하고 싶어, 부모들은 자식을 기다린다. 아들과 딸을 기다린다. 그리고, 아이가 나온 부모에게 말한다. 축하한다고, 축하한다고 말이다.

땡볕에 부모들은 거리로 나온다. 청와대로, 국회로, 그리고 광화문으로 나간다. 대통령은 외면하고, 여당은 거짓말을 지어낸다. 야당은 무능하고, 국민들은....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한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다들 그렇게 살지 않냐고. 왜 너만 유난을 떠느냐고 말이다.

한 학교가, 한 마을이, 한 동네가 완벽하게 붕괴되었다. 하나의 완벽한 우주, 완전한 하나의 우주인 아이들이 그렇게 죽었는데도,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구조를 받지 못 해 죽었는데도, 시키는대로 했다가 죽었는데도, 이 나라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는 그만하라,고 말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옆에서 많이 기다리고 기다렸다. 분향소와 단원고, 장례식장을 오가며, 가끔 진도도 다녀오면서 그렇게 말없이 부모들과 함께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유가족들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이 아프고 힘든 이 시간들은, 잊혀져서는 안 되기에, 기억되고 또 기억되어야 하기에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읽는 시간 내내 많이 어렵겠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 시간들을 통해, 그 절절한 시간들을 통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온 세상을 잃어버린 부모들이 다시 환하게 웃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더 이상 절망가운데 있지 않도록 힘을 보탰으면 한다. 그것은 이제 영영 떠나버린 그들의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순덩어리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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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5-03-2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1년 이 얼마남지않았습니다.

단발머리 2015-03-23 09:34   좋아요 0 | URL
네, 달걀부인님~~
정말 1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봄이 오네요. 아무 일도 해결이 안 됐는데, 벌써 봄이예요....
아이들한테... 미안해요.
 
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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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나는 잘 우는 편이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눈물을 글썽이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금방 눈물을 글썽인다. 혼자서도 잘 울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잘 운다. 교회는 다른 곳보다 ‘눈물’에 대해 관대한 편이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우는 편이라 눈물대비용 손수건을 항상 챙기는데, 언젠가는 2층 유아예배실에서도, 4층 본당에서도 화끈하게 울어버리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요즘에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하야~~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은 아닌데, 이 단편을 읽다가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책을 읽던 장소는 지하철이었는데, 나는 손에 책을 들고 있어 급하게 탈출하는 눈물들을 어쩌지 못해 혹시 내가 아끼는 이 소중한 책이 눈물에 젖을까 순간 당황했다.

눈물을 쏙 뺀 구절은 이렇다.

그는 아이들이 태어난 뒤의, 중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처음으로, 그러니까 아일린은 열여덟, 그는 열아홉 시절의 일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불타오르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이마를 닦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는 입술을 적셨다.

“계속해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나는 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 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 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한테도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거. 바로 그 얘기 말이우.” (253쪽)

 

칼라일은 홀아비다.

칼라일은 버림받은 홀아비다.

칼라일은 아이가 딸린 버림받은 홀아비다.

어려서 만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직장 동료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던 칼라일은 사정을 전해 들은 아내의 친절한(?) 주선으로 아내 새애인의 어머니 집안일을 돕던 웹스터 부인을 소개받고 그녀에게 아이 돌보는 일을 부탁한다. 그녀 덕분에 엉망이었던 집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칼라일은 돌연 가슴이 조이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열이 난다.

웹스터 부인이 챙겨준 약을 먹고, 웹스터 부인이 가져다준 시리얼을 먹고 나서, 일어날 힘을 회복한 칼라일은 그녀에게 말한다. 자신과 자신의 아내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이 세상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사랑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렸다.

여름 동안, 아일린은 아이들에게 몇 장의 카드들과 편지들과 자기 사진들과, 집을 나간 이후에 그린 펜화 몇 개를 보냈다. 그녀는 또한 칼라일에게 이 문제 - 이 문제 -를 이해해달라며, 하지만 자신은 행복하다는 내용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행복. 마치 행복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투로군, 이라고 칼라일은 생각했다. (227쪽)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누구보다 더 아끼는 자신의 유일한 그 사람이 “이제 내 인생을 찾겠다”고 떠나갈 때, 그 사람을 아직 사랑하는 사람의 실망이란 어떠할까.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사람을 기다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의 절망이란 어떠할까.

칼라일,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애쓰는 남자.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 옷을 세탁해서 다리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근교로 나가 기름종이에 싸온 샌드위치도 먹고 같이 꽃도 따는 칼라일. 아이들을 슈퍼마켓에 데려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고르게 하는 사람, 칼라일. (225쪽) 자기 혼자 행복하겠다고,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를 기다리는 칼라일.

칼라일은 아내가 돌아올거라 믿었다. 아니,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녀와의 사랑은 너무나 소중해서 그것을 버려두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집을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는 웹스터 부인을 앞에 두고, 이제 곧 헤어지게 될 웹스터 부인을 앞에 두고 칼라일은 말하고 싶어한다. 그는 말하고 싶어한다. 자신과 자신의 아내에 대해,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이다.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254쪽)

 

웹스터 부인에게 자신의 심정을 모두 털어놓고 나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칼라일은 비로소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젠 끝났다. 행복했던 순간과 마찬가지로 지옥 같은 이 순간도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는 이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을 떠나갔다는 것을, 이제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칼라일의 아내를 이해한다. 그녀에게는 완벽한 하나의 사랑이 있었고, 그리고 또 하나의 완벽한 사랑이 그녀를 찾아온 것일테다. 그 사랑 역시 열병처럼 그녀에게 찾아왔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이해한다. 이해는 하지만, 그녀의 뻔뻔한 모습은 정말 별로다. 아이를 버려두고 떠난 그녀는 너무 당당하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그녀가 얄밉다.

칼라일은 이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웹스터 부인 덕택이다. 그녀는 많이 배운 사람도, 실연당했을 때 이루어져야 하는 치료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칼라일이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스피린 한 개와 시리얼 한 그릇,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말하고 싶어하는 칼라일에게 귀기울이는 마음이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시간을 열어 주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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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0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5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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