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 버사는 제인의 분신인가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080436)

[다락방의 미친 여자] 로체스터를 믿을 수 있는가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148038)



<여느 글>에서 임옥희는 스피박의 중요한 주장을 질문으로 정리한다. "여성으로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우리는 몇 명인가."



<1장, 철학의 정신분석: 칸트, 헤겔, 마르크스 오/독하기>에서는 철학이 역사의 신비화와 신화에 복무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79쪽). 2장 <문학: 영혼을 발명하는 서사>에서는 영국 제국주의 기획의 문명화 사업과 문화적 재현에서 영문학의 역할을 밝힌다.(80쪽) 스피박은 서구 개인주의를 영혼 형성soul-making의 관점에서 연구하는데, 이는 곧바로 19세기 부르주아 개인주의와 연결된다.



귀족사회에서처럼 미래가 보장된 신분, 그런 신분을 뒷받침해 줄 인맥과 같은 사회자본이 없더라도 혼자 힘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고 그 결과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부르주아 개인주의였다. 1장에서 보다시피 칸트는 영혼이 없는 야만인들을 문명화시키는 것이 제국의 소명이라고 보았다. 그런 제국주의 기획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와 유사한 단계에 이를 수는 있다. 반면 토착 하위주체 여성은 이런 담론의내부에서는 빈 공간이자 공백이 된다. (82쪽)


19세기 영문학의 대표작격인 『제인 에어』와 그것을 다시 쓴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와 키플링의 단편을 새롭게 해석하고,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쓴 존 쿳시의 『포Foe』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에 알라딘 서재의 '먼댓글' 서비스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고객센터에서는 스팸 메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했는데, 알뜰살뜰 그 서비스를 이용해왔던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비언 고닉은 『끝나지 않은 일』에서 자기 표절에 대해 말하는데, 그 말에 100% 동의한다. 같은 이야기를 쓰고 다시 쓰면서 이야기는 더 확실해지고, 더 견고해진다. 이제는 먼댓글을 이용할 수 없어서, '제인 에어'에 대한 페이퍼를 먼댓글 모양으로 만들어 맨 위에 달아둔다.



<3장, 역사: 아카이브의 문학적 재해석과 젠더의 문제들>에서는 정신분석학의 전이 개념을 이용해 유럽을 타자의 위치에 세운다. 세계를 해석하는 중심이며, 주체로서만 존재할 거라 여겨지는 서구는 타자가 된다. 스피박의 언어로이제 서구는 분석의 대상이 된다.


유럽을 타자의 위치에 세우는 한 방식으로 그녀는 역사를 방법론적으로 정신분석하고자 한다. 그것은 역사를 문학으로 읽어내는것이나 다를 바 없으며 사료와 문서보관소의 권위를 물신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다. 항상 주권적 주체였던 유럽을 타자의 위치에 세우고, 타자의 입장에서 주체를 분석할 수 있는 한 방식이 정신분석학에서의 전이transference 개념이다. 전이는 분석가analyst와 분석 주체analysand의 위치를 전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124쪽)



136쪽의 <사티: 역설적인 여성의 주체 구성의 장?>은 내 생각에, 이 책에서 제일 문제적이고 논쟁적인 부분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고산 지대 인도의 왕국인 시르무르의 라자(왕)인 카람 프라카쉬는 영국인들에 의해 폐위되었다. 카람 프라카쉬의 뒤를 이어 그의 어린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라니(여왕)가 섭정을 하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식민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낯선 백인 남성은 궁궐에 침입하여 남편을 폐위시키고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낯선 백인 남성의 보호를 받게 된다. 라니가 자신은 남편과 일심동체라며 불에 타 죽겠다고 하자 지오프리 버치 대위가 그녀를 만류한다. 왕국과 어린 아들을 생각하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가부장제/제국주의 사이에 포박된 라니의 위치에 대한 스피박의 논고다.


사티에서 여성의 몸은 이데올로기의 전쟁터가 된다. 『리그베다』와 같은 힌두 경전은 자살을 엄격히 금한다. 이때 사티는 자살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스피박이 말했다시피 과부의 자기희생 관습은 신성한 행위로서 예외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여성이 목숨을 끊어도 될 만큼 신성한 자리는 어디인가? 스피박 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성이 자신의 고유한 자아의 파괴를 통해 자살이라는 명칭을 폐기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죽은 배우자의 화장용 장작더미 위이다." 그래서 라니가 사티를 하겠다고 선포하자, 버치 대위는 그녀의 모성을 자극하면서 만류한다. 사티라는 관습을 놓고 벌인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영국은 사티가 여성을 살육하는 것으로 규정 지음으로써 여성을 살육의 대상으로 구성한다. 그리하여 영국의 백인 남성은 이런 살해의 현장에서 인도 남성으로부터 인도 여성을 구출하는 교양 있는civil 신사가 된다.(139쪽)



힌두교 가부장 담론에서 사티는 인정되지만, 강제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스피박은 이 행위에 있어서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에 집중하는데, 영국의 인도 침략 이후 사티가 불법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여성 주체가 강제가 아니라 자유의지로 스스로 희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사라졌다는 부분을 강조한다. 사티를 이교도적인 제의 혹은 미신적인 '반인권' 범죄로 재구성한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토착식민 엘리트들의 주장을 병렬한다. 즉, 사티를 자기희생의 민족주의적 전통으로 낭만화하는 말들, 타고르의 시에서 표현된대로 '애국적인 벵골 할머니들'에 대한 찬미를 소개한다.


사티에 대해 이전에 알고 있던 정보, 그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판단은 이 지점에서 멈춰진다. 사티가 여성 주체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는 말인가? 이를 통해 여성이 금기시된 자살에 영광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사티 금지와 처벌은 제국주의 남성을 구원자로 만들기 위한 책략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에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그것이 문화와 관습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반대한다. 여성의 생명을 앗아가는 사티와 같은 관습에 문화 상대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외부인이다. 미개한 관습으로부터 당신들을 구해내겠다고 나선 백인 남성들을 옹호할 생각이 없고, 그들의 주장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제1세계 백인 여성 페미니즘에 빚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나는 스피박이 무얼 말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여성'이어서 만들어진 환경과 조건 때문에 불합리함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고 있고, 마리아 미즈의 말처럼 내가 제3세계의 어린 여성이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의 남성들과 연대함으로써 그들의 착취에 동조해왔음을 알고 있다.



식민지배를 받고, 전 세계적인 규모의 불운한 전쟁을 겪었지만, 2005년 시작으로 GDP가 세계 10권 내외인 국가(올해는 13위를 기록했다)의 국민으로서,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서의 질문을 이어가 보겠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검사하는 사람은 있다고 한다(그 이름도 아름다운 잠자냥님^^).



"여성으로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우리는 몇 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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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6-10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면하고 싶은 문제를 단발머리님께서 계속 제기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먼댓글(트랙백) 기능이 막혔나요? 아직 메뉴는 있는 것 같은데...

단발머리 2024-06-10 16:29   좋아요 1 | URL
궁금한게 많은 나이입니다 ㅎㅎ 읽어주시는 덕분에 더 열심히 쓰고 싶어집니다. 감사해요, 건수하님!


아쉬운 마음에 먼댓글에 대한 알라딘 답변 남겨둡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 고객센터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담당부서 확인 결과, 송구하게도
먼댓글을 통해 스팸 댓글 달리는 등의 문제가 있어
현재 닫아 둔 상태에서 점검 중이라고 합니다.
이후 서비스를 재개 여부나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아
상세한 안내가 어려운 점 양해 말씀드립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4-06-10 16:38   좋아요 1 | URL
이 글에 테스트로 해봤더니 흔적이 안 남길래 안 되는가 보다 했었어요.

답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네요 먼댓글.. 단발머리님이 먼댓글 달아주시면 신났었는데.. ^^

단발머리 2024-06-10 16:5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많이 아쉽기는 해요. 느낌이 다시 서비스를 재개할 거 같지 않아서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ㅋㅋㅋ 저렇게 먼댓글처럼 만들어서 링크를 넣는거에요.
곧 신나는 시간 돌아옵니다! 개봉박두🤗

2024-06-11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6-11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검사하는 잠자냥! ㅋㅋㅋ
감사하는 공쟝쟝! ㅋㅋㅋ
먼댓글 아쉬워요. 저는 나의 열등함을 우월함에 의탁하고자 하는 심리에 그러면서 타인의 열등함을 박해하고자 하는 심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탈식민과 페미니즘은 연루되어 있어요. 그러나 근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진 못하고요. 신자유주의와ㅜ여성의 불편한 만남처럼. 제국주의와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 생각해요! 이 모든 게 너무 재밌어요!
쭉- 이어가 보도록 해요. 쉽게 찾지 맙시다. 그렇게 해요! 😎

단발머리 2024-06-12 22:25   좋아요 1 | URL
탈식민과 페미니즘, 근대, 제국주의, 식민주 남성성이 재미있지는 않지만 조금 더 알고 싶기는 해요.
그러나! 쉽게 찾지 맙시다!
에 제가 ‘싫어요‘한 거 들리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쉽게 찾을거에요. 메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