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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평점 :
교정 및 교열 20년의 내공이 확인해주듯 책 속 틀린 문장의 예들이 아주 구체적이다. 실제로 내가 자주 쓰는 문장들이 ‘틀린 문장’의 예로 등장한다. 아주 자주.
제일 먼저 피해야 할 표현은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다.(18쪽) ‘것’을 뺀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한다’에 ‘-는, 따위’를 붙이면 무슨 간접 화법처럼 보이는데(실제로 ‘사랑한다라는 것은’이나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은’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몹시 어색하다.
사랑이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라고 써도 문제는 없다. 일부러 ‘것은’과 ‘것이다’를 반복해 써서 강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습관처럼 반복해서 쓰면 문장이 어색해진다. (34쪽)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아주 기본적인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주격 조사 ‘이,가’가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보조사 ‘은, 는’이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제,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가령 ‘모두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모두’는 주격 조사 ‘가’가 붙어 주어의 자격을 갖는 반면, ‘집’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집‘은 보조사 ’은‘이 붙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80쪽)
산 너머 산. 편리함 때문에 ‘로부터’를 고집해서 사용하다 보면 이런 문장을 쓰게 된다.
몇몇 죄수들이 담 한쪽에 난 구멍으로부터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 몇몇 죄수들이 담 한쪽에 난 구멍을 통해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아무데도 없었다).
그들이 정보원으로부터 얻어 낸 것은 허위 정보였음이 밝혀졌다.
― 그들이 정보원에게 얻어 낸 것이 허위 정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07쪽)
첩첩산중. 두 번 당하는 말도 자주 쓰고 있다.
둘로 나뉘어진 조국
― 둘로 나뉜 조국
그때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 그때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생존자의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 생존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123쪽)
설상가상. ‘-는가‘ 역시 자주 쓰는 표현이다.
‘-는가’는 “현재의 사실에 대한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다. “‘있다’, ‘없다’, ‘계시다’의 어간,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막연한 의문이 있는 채로 그것을 뒤 절의 사실이나 판단과 관련시키는 데 쓰는 연결 어미“는 ‘―는가’가 아니라 ‘―는지’이다.
나는 이 도시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이 도시가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그 힘이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았다.
― 나는 이 도시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이 도시의 힘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다. (177쪽)
점입가경. ‘시작하다’ 역시 즐겨하는 표현이다.
놀람, 슬픔, 어색함, 민망함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은 시작과 끝을 명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작하다’를 붙이면 어색하다.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했다.
― 사람들이 놀랐다.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 갑자기 슬퍼졌다.
마음에 들거나 후회하거나 알아채거나 하는 심리적인 변화는 ‘시작하다’와 어울리지 않는다.
소개받은 여자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 소개받은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벌써 그 일을 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 나는 벌써 그 일을 한 걸 후회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챘다. (185쪽)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히도록 한쪽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인 형태’로 구성되었다.(10쪽) 각 장 앞부분에는 이메일을 통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고 물었던 함인주라는 가상의 인물과 물음에 답하는 저자의 답변이 교차로 등장한다. 문장과 문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신경전 내지는 문장에 대한 정의와 이해, 그리고 오해에 대한 대화가 흥미진진했다. 중간에는 ‘호러적’ 장치도 준비되어 있어 쉽게 놀라는 나 같은 사람은 아주 작게 ‘엄마야!’를 부르기도 했다.
문장의 시선과 내가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나 자신의 거리에 대해, 그들 사이의 긴장감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문장을 생각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여기 있고 내가 가야 할 곳이 저기 빤히 보이는데
나는 왜 저곳에 가지 못하는가. 내가 갈 수 없다는 걸
나는 아는가? 아니면 모르는가? 안다고 하면 내 의지는
위선이 되고 모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 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죠.
마음으로는 이미 수도 없이 건너가 버린 그 거리를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는 겁니다. ...
문장의 시선은 결국 거리를 좁히려는 나의 의지와
당겨지지 않으려는 풍경 사이의 긴장감이 만드는 것
아닐까요.
―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