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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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망하고 싶었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었다. 나는 누군가 원망하고 싶었고, 그래서 아무나 원망했다. 마음 깊이. 나는 누군가를 원망했다.  

 

나는 아가씨를 원망했다.

아가씨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그렇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선생님을 요령 좋게 챙겨주어 선생님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면서(218), 동시에 일찍 집으로 돌아온 K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의 방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도망치듯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19). 선생님이 초조해지지 않도록 그에 대한 애정을 조심스레 드러냈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아가씨도 어쩔 수 없었다. 아가씨는 대가를 치뤘다. 평생 선생님의 마음 속 응어리진 깊은 어둠을 의식한 채 살았고, 그 어둠의 이유와 실체에 대해 끝까지 알지 못 했다. 결국에는 세상에서 의지할 단 한 사람 선생님을 잃었고,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 버린 선생님의 뒤편에 혼자 서 있어야 했다. 아가씨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난 ‘K’를 원망했다.

그가 어려움에 익숙해지면 점차 그 어려움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혼자 정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201). 입 밖으로 꺼낸 말대로 행동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스스로를 파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성격이 아니라면 좋았을 것을(201). 그가 발견한 자신 이외의 세계 속 주인공이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K와 아가씨가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K가 조금만 덜 침착했으면 좋았을 것을. 선생님에게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가씨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선생님에게 고백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K도 어쩔 수 없었다. K는 대가를 치뤘다. 남의 생각을 거리낄 만큼 약하게 생겨먹지 않은 K조차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갈팡질팡했다. 자신이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것을 부끄러워했다(238).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이면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과 아가씨가 결혼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주머님을 통해 들어야했고, 그 결혼을 축하해 주어야만 했다. 앞날의 희망이 없어 자살한다는 유서에도 아가씨의 이름은 쓸 수 없었고 그렇게 서둘러 죽음을 택해야 했다. K도 어쩔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어서. 그래서 난 '선생님'을 원망했다.

 

만약 그 남자가 내 인생행로를 가로지르지 않았다면 아마 자네에게 이런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낼 필요도 없었을 거야. 나는 어이없이 악마가 지나는 길 앞에 서서 그 순간의 그림자로 인해 일생이 어둑어둑해진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네. 고백하자면 나는 스스로 그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였어.(188)

 

선생님이 K를 그의 하숙집으로 이끌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K와 함께 살면서 함께 향상의 길로 나아가자고 제안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197). 두 모녀와 K를 연결시키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03). 아가씨와 K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그렇게 맞닥뜨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아가씨에 대한 마음을 K에게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211). 아가씨와 K가 점점 더 친해져갈 때, K에게 하숙에서 나가달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220). 아가씨의 애정에 좀 더 확신을 가졌다면 좋았을 것을. 아가씨에게 직접 마음을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224). 일본인, 특히 일본의 젊은 여자는 그런 경우 상대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만한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25).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K에게 그 자리에서 같은 의미의 고백을 했다면 좋았을 것을(229). 나아갈지 물러서야 할지 망설이는 K에게 정말 물러설 수 있느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38). K에게 바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40). 사랑에 빠져 버린 K를 비겁하게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41). 그에게 각오가 있느냐고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41). 하지만,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은 대가를 치뤘다. 이상한 느낌에 K를 불렀고,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K를 마주해야 했다. 아주머님, 아가씨, K의 아버지와 형, 연락을 받고 올라온 지인들, 신문기자들에게 그가 왜 자살했을까 하는 질문을 들어야만 했고, 마음 속 비밀을 감춘 채, 누구에게나 똑같은 대답을 해주어야만 했다. 아가씨(아내)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중간에 서 있는 K를 의식하며 평생을 살았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다.

한 사람이 겪는 고통의 양이란 건, 다른 사람은 감히 측정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치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 한 마디 때문에 긴 밤을 꼬박 새우며 끙끙댈 수도 있다.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나는 결심을 실행하지 못 하는, 이런 극단적인 상태로까지 상황을 방치한 선생님의 행동에 분통을 터뜨렸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되고 말았다.

스스로를 파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성격의 K는 그렇게 먼저 떠나버렸고, 아내는 끝까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남편의 깊은 비밀을 모른 채 완전히 하나될 수 없는 서로를 의식하며 살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아내를 순백의 사람으로 보존하려던 선생님의 바램은 그의 죽음으로 그렇게 끝났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보다 더 적은 양의 징벌을 받는다고 믿었는데, 생각을 고쳐먹는다.

어떤 사람,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만큼의 징벌을 받았다.

다른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징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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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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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에 대한 칭찬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책을 바로 구매하지는 않았기에 쇼코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얼마 전 시이소님의 페이퍼를 읽고 나서야 쇼코의 미소2014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까, 최은영의 등단작이기도 한 쇼코의 미소2013년에 발표되었고, 2014년 젊은작가상 본선에 오른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랬다. 나는 2014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구매해서는 대상작인 황정음의 상류엔 맹금류만을 쏙 뽑아 읽고 나서는 책장에 떡하니 꽂아두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쇼코의 미소에서, 나는 이런 문장이 좋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다른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268)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에 억지로 썼다.(271)

 

자신이 선택한 삶에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멸시하며 사는 삶. 특별하게 살리라, 꿈을 이루며 살리라 하는 다짐들. 가냘픈 꿈에 의지해 밀고 가는 삶. 결심과 계획이 하얗게 부서지는 서늘한 장면. 그런 것들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답답했다.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꿈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달콤한 일인가. 꿈 속에 살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게 될수록, 꿈꿀 때 기쁨을 느끼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꿈을 갖는 게 허황된 일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꿈은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멀리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고대하던 그 꿈을 이룰 수 있겠지만, 어떤 꿈은 영영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되고 싶었던 어떤 것을 생각해 본다. 뜨겁지 못했던 청춘의 시간들. 난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았구나. 나는 꿈을 좇으며 살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에 더 쓸쓸해지는 밤이다.

쇼코의 미소를 봐야하는데....

나는 소유의 넋두리에 감정이입해서는... 

 

이 울적한 와중에....

'젊은작가상'의 책표지가 내가 가진 책의 표지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상의 취지에 따라 출간 후 1년 동안은 보급가 5,500원에 판매한다고 하는데 그 때 구입했기 때문.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도 서둘러야겠다.

울적함을 달래는 소비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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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1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것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2014 황정은의 상류 ㅡ가 있던 5회작품집을 지금까진 최고로 칩니다!^^ 버릴게 없이 하나같이 다 좋았더라는!^^

단발머리 2016-09-19 09:00   좋아요 1 | URL
마치 그장소님 저를 보신듯...
아직 다 읽지 못 했거든요 ㅎㅎ
<창 너머 겨울>을 읽고 한 문단을 옮겨놓기는 했는데 아직 다른 작품은 시작을 못 했어요. 저는 단편읽는게 어려워요. 들어갔다 나와야하잖아요. 그게 힘들더라구요. 대하소설 10권이랑 단편집 2권 있으면 대하소설 10권을 먼저 읽을 판이예요.
그장소님 추천에 이 단편집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으려구요~~

[그장소] 2016-09-19 14:58   좋아요 0 | URL
좋죠~ 저도 대하소설과 놓고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대하소설은 몇날 몇시간을 통째로 주위를 지우고 빠져드는 맛이 있죠!마치 방학동안 외가에 다녀오듯이~반면 단편은 정말 걷다 편의점을 들리듯이 가까우면서 쉽게 다른 곳을 경험케 해주기도 하고요!^^
부디 즐거운 여행 하시길~^^ ㅎㅎㅎ

단발머리 2016-09-19 23:26   좋아요 1 | URL
여행 다녀오면 연락 드릴께요, 그장소님~~ ㅎㅎ

[그장소] 2016-09-20 00:23   좋아요 0 | URL
아하핫~ 네에 즐거운 독서여행 되세요!^^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에이바 2016-09-19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7회 샀어요. 작년 책은 정지돈이랑 이장욱 소설만 읽고 정리했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다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쇼코의 미소, 저도 읽어야 하는데요...ㅜㅜ

단발머리 2016-09-19 11:43   좋아요 1 | URL
ㅎㅎ 에이바님은 다 찾아서 읽고 계셨군요. 저는 황정음 읽고 싶어서 5회 사서는 진짜 황정음만 읽었다는...
책이 집에 있어서 덕분에 <쇼코의 미소>를 읽을 수 있었는데, 소설집 <쇼코의 미소>도 구입하고 싶어지기는 해요. 최은영이 좋아졌다랄까요^^

시이소오 2016-09-19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 하나 좋을 순 있지만 작품집이 전체적으로 좋긴 힘들잖아요?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는 좋지만 작품집으로는 아쉬웠던 반면 쇼코의 미소는 반대의 경우랄까요?

작가의 성장이 눈에 보여 더 좋았던것 같습니다. 단발머리님이 제 이름을 언급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단발머리 2016-09-19 23:2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시이소오님~~
그래서 저도 김금희의 소설집에서는 <너무 한낮의 연애>만 읽었답니다.
<쇼코의 미소>는 다 읽어보고 싶기는 하네요.

시이소오님 댓글에 제가 영광입니다. 시이소오님 페이퍼 보고서 어제부터 <인생의 모든 의미> 읽고 있답니다.
정리하신 페이퍼가 참 좋았는데, 저도 직접 읽고 싶어서요.
그 페이퍼에도 제가~~~
˝시이소오님의 페이퍼를 보고 이 책을 읽게 됐다.˝ 이런 식으로 ㅎㅎ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CREBBP 2016-09-2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런 건가요 저도 작년과 올해 싸게 구입해서 원래 싼가 했는데. 2014년 것도 사려먼 비싸겠군요.

단발머리 2016-09-26 11:36   좋아요 1 | URL
네... 출간 후 1년간 보급가로 판매하고요. 보통은 5500원 정도 하더라구요.
1년 후에는 정상가로 판매합니다. 2014년도 것도 정가는 12,000원, 실구매가는 10800원 정도요~
근데 위의 알라딘 이웃님들 증언이, 정말 2014 작품집은 대박이라고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그렇다는 것을 CREBBP님께 알려드립니다. ^^
 
페미니즘의 개념들
(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엮음 / 동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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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일을 코앞에 두고 메모한 것들을 서둘러 옮겨둔다. 요즘 내 인생의 가장 명확한 주기는 대출도서 반납일이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한다.

 

 

1. 문화유물론 : 마르크스주의에서 토대 못지않게 문화적 차원의 지배와 저항을 강조하는 전통 (109)

<문화연구에서 여성/여성주의 문화연구>

사회적 재생산(직장, 가정)에서 성적 불평등을 낳는 기제들에 관한 문제.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자기정체화 및 그것을 토대로 자본주의적 재생산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노동 계층의 젊은 여성들이 어떻게 또래의 남성들보다 더 적은 기회를 가져서 결혼을 이상으로 여기게 되는지, 주부들이 가사노동과 육아에서 어떻게 소외를 경험하는지 등의 문제를 탐구. (117)

 

 

일상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재현에서 계층, 인종, 성적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 특히, 다양한 종류의 여성 관객들 즉, 젠더·인종·섹슈얼리티에서 차이를 가진 여성 관객의 미디어 수용 문제를 다룸. (118

일상문화 특히 공간과 소비에서 여성의 진정성이 소외되거나 실현되는 것과 관련된 문제.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문화 환경에서 여성의 댄스, 패션, 대중문화 나아가 쇼핑센터와 같은 공간에서의 소비가 얼마나 욕망으로부터 소외되는지에 주목. (118)

 

 

2. 사랑 : 넓은 의미에서, 자신이 불완전자임을 자각하고 완전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아가려는 인간의 정신 또는 철학자의 정신인 에로스, 친구와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 사회적 공감이나 교감인 필리아’, 종교적인 무조건적 사랑.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나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실현되는 인간의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인 아가페등을 포함한다. (126)

<7읠 베일The Seventh Veil>이라는 영화의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는 삼촌이자 후원자인 남자, 니콜라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피아니스트로서의 직업적 성공과 사랑을 얻는다. 이와 달리 <빨간 구두The Red Shoes>의 여주인공 빅토리아는 애초에 스승과 사랑에 빠지지도 않으면, 자신이 선택한 남자에 의해 예술이냐 사랑이냐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결국 자살을 택한다. 요컨대 여기 제시된 세 가지 멜로드라마의 결론은 남자 예술가의 경우 여자의 희생을 통해 직업적 성공과 여자의 사랑 둘 다를 성취하지만, 여자 예술가의 경우는 흔히 정신적인 스승으로 제시되는 남자와의 동일시가 있을 때에야 성공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이다. (131)

 

 

3. 섹슈얼리티 : 광범위한 의미로 성역할, 성행위, 성적 감수성, 성적 지향, 성적 환상과 정체성을 정의하고 생산하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162)

1) 대체로 sex’은 여자와 남자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를 가리키기 위해 쓰이고, ‘성차/gender’은 여자와 남자를 사회적으로 구분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문화적 특성을 가리키기 위해 쓰인다. (167)

2)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를 핵심적인 정치적 사안으로 간주해왔다. 특히, ‘2물결 페미니즘의 등장과 함께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적인 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포르노그래피, 매매춘, 성폭력, 동성애와 레즈비어니즘 등과 같은 사안들에 대해서 페미니즘 특유의 뚜렷한 관점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정조대에서 재산법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여성을 가부장적 이성애 관계를 통해 한 남자에게 묶어두기 위한 엄청난 노력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68)

3) 남성에게 있어 성적 행위는 부추겨지거나 훈장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여성에게 있어 성적 행위는 명예를 잃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함으로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거나 생식력을 위협하는 질병에 걸릴 수도 있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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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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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및 교열 20년의 내공이 확인해주듯 책 속 틀린 문장의 예들이 아주 구체적이다. 실제로 내가 자주 쓰는 문장들이 틀린 문장의 예로 등장한다. 아주 자주.

제일 먼저 피해야 할 표현은 ·의를 보이는 것·이다.(18) ‘을 뺀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한다‘-, 따위를 붙이면 무슨 간접 화법처럼 보이는데(실제로 사랑한다라는 것은이나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은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몹시 어색하다.

사랑이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라고 써도 문제는 없다. 일부러 것은것이다를 반복해 써서 강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습관처럼 반복해서 쓰면 문장이 어색해진다. (34)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아주 기본적인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주격 조사 ,가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보조사 , 이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제,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가령 모두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모두는 주격 조사 가 붙어 주어의 자격을 갖는 반면, ‘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은 보조사 이 붙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80)

 

산 너머 산. 편리함 때문에 로부터를 고집해서 사용하다 보면 이런 문장을 쓰게 된다.

몇몇 죄수들이 담 한쪽에 난 구멍으로부터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몇몇 죄수들이 담 한쪽에 난 구멍을 통해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아무데도 없었다).

그들이 정보원으로부터 얻어 낸 것은 허위 정보였음이 밝혀졌다.

그들이 정보원에게 얻어 낸 것이 허위 정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07)

 

첩첩산중. 두 번 당하는 말도 자주 쓰고 있다.

둘로 나뉘어진 조국

둘로 나뉜 조국

그때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생존자의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생존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123)

 

설상가상. ‘-는가역시 자주 쓰는 표현이다.

‘-는가현재의 사실에 대한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있다’, ‘없다’, ‘계시다의 어간,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 ‘뒤에 붙어 막연한 의문이 있는 채로 그것을 뒤 절의 사실이나 판단과 관련시키는 데 쓰는 연결 어미는가가 아니라 는지이다.

나는 이 도시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이 도시가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그 힘이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았다.

나는 이 도시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이 도시의 힘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다. (177)

 

점입가경. ‘시작하다역시 즐겨하는 표현이다.

놀람, 슬픔, 어색함, 민망함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은 시작과 끝을 명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작하다를 붙이면 어색하다.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놀랐다.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슬퍼졌다.

 

마음에 들거나 후회하거나 알아채거나 하는 심리적인 변화는 시작하다와 어울리지 않는다.

소개받은 여자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소개받은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벌써 그 일을 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벌써 그 일을 한 걸 후회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챘다. (185)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히도록 한쪽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인 형태로 구성되었다.(10) 각 장 앞부분에는 이메일을 통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고 물었던 함인주라는 가상의 인물과 물음에 답하는 저자의 답변이 교차로 등장한다. 문장과 문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신경전 내지는 문장에 대한 정의와 이해, 그리고 오해에 대한 대화가 흥미진진했다. 중간에는 호러적장치도 준비되어 있어 쉽게 놀라는 나 같은 사람은 아주 작게 엄마야!’를 부르기도 했다.

문장의 시선과 내가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나 자신의 거리에 대해, 그들 사이의 긴장감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문장을 생각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여기 있고 내가 가야 할 곳이 저기 빤히 보이는데

나는 왜 저곳에 가지 못하는가. 내가 갈 수 없다는 걸

나는 아는가? 아니면 모르는가? 안다고 하면 내 의지는

위선이 되고 모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 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죠.

마음으로는 이미 수도 없이 건너가 버린 그 거리를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는 겁니다. ...

문장의 시선은 결국 거리를 좁히려는 나의 의지와

당겨지지 않으려는 풍경 사이의 긴장감이 만드는 것

아닐까요.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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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8-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어서 사봐야겠어요 :-) 서평만 봐도 부끄러워지네여

단발머리 2016-08-25 10:08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쓰는 문장들이 자주 나와요. ㅎㅎ
저도 부끄러운 시간을 이겨내야했습니다.
더위도 이겨내야 했는데 ㅠㅠ

다락방 2016-08-2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보고 싶은데 제가 이 책을 샀는지 안샀는지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모르겠어요 ㅠㅠㅠ

단발머리 2016-08-26 15:4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방에 가서 책장과 책탑을 헤치고 직접 찾아보고 싶은 이 마음~~~~ ㅎㅎㅎ
 
팻걸 선언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3
수잔 보트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제이미는 뚱뚱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팻걸(THE Fat Girl)이다.

핫칙스(Hotchix) 매장에서는 맞은편 부인복 매장으로 가보라는 점원들의 차가운 응대와 맞서야 하고, 학교 연극반에서는 서쪽 마녀를 비롯한 모든 악녀를 도맡아한다. 대학입학시험 준비도 해야 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학교 신문에 <팻걸선언>이라는 새로운 연재기사도 써야 해서 바쁘고 빡센 고3 생활이 눈앞에 선하다.

뭔가를 감추려는 듯한 남자친구 버크를 으르고 협박해서 듣게 된 소식은 변심했다는 말보다 더 청천벽력. 팻보이 남친이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쓰고 체중 감량을 위해 위 접합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뚱보 뚜엣으로 남자친구를 믿고 의지했던 제이미는 버크의 수술을 기다리며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위험한 수술로 버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버크처럼 수술을 받고 싶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뚱뚱하게 살 권리에 대한 <팻걸선언>은 지역신문에도 소개되는 인기를 누리게 되고, 전국 단위의 방송사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차고 야무진 그녀의 주장은 건강의 위협 요소인 비만을 옹호한다는 방송국의 악의적 방송으로 오해를 받게 되고 제이미는 위기에 처한다.

 

선택.

내가 뚱뚱하기로 선택했던가?

아주 어린 소녀 시절부터 평생 비만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했단 말인가?

매일매일, 의식적으로 뚱뚱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무얼 먹을지 선택한단 말인가?

잘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선택에 대해 더 잘 자각하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초래한 파문이 나를 익사시키려 할 때, 투덜거리며 낑낑거리지 않아야 한다. 물살을 더욱 잘 헤쳐 나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은밀하게 선택하는 나 자신을 파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77)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뚱뚱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비만으로 살기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선택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 삶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자신의 선택 때문에 무시당해서는 안 되고, 경멸 받아서도 안 된다. 제이미를 위한답시고 의사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하는 말들은 모두 제이미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다. 건강을 위해, 아름다운 외모를 위해, 대학 입학을 위해 살을 빼라, 살을 빼려고 노력하라,는 사람들의 말은 제이미에게 가해지는 명백한 폭력이다.

이제는 변해버린 모습, 날씬해진 자신의 모습에만 관심을 갖는 버크에 대해 제이미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고, 채찍을 휘두르며 서쪽마녀 에블린을 연기하는 그녀를 보러온 히스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한다.

날씬해진 남친 버크, 좋은 냄새 편집부장 히스.

다정한 남친 버크, 매력적인 남자 히스.

사랑해~라고 말하는 남친. 너 정말 멋져~라고 말하는 히스.

제이미의 선택은?

 

키스를 끝낸 뒤에도,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 동굴은 하나의 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섬에 살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세상의 모든 마감시간과 옳고 그름 따윈 지옥에나 가라지.

이제, 이제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나는 욕을 먹을 거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난 싸가지가 되지 않을 거다. 노노처럼 귀여워질 거다. 프레디처럼 각선미 있는 몸매를 가질 거다. 이상적인 제이미...... 온순하고 부드럽고, 받아들이기 쉬운 사람. (270)

 

이 책은 딸롱이 필독도서 목록에 들어있는 책이다. 필독도서를 찾아서 읽히지는 않았는데, 1년에 40여권 내외의 초등학생과는 달리, 중학생은 1년에 9권 정도라서 찾아서 읽어보라, 독서록도 좀 성의있게 써 보라, 잔소리를 하다가 나도 읽게 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뚱뚱해서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것만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팻걸, 부당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불편한 비행기 여행을 감수하는 팻걸,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팻걸.

그녀는 정말 멋지다.

 

평생 처음, 피곤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한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졌기 때문일지도.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일지도.

히스 때문일지도.

또는 내 선택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내 선택을 믿고 끝까지 가보는 거다.

난 팻걸이니까.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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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8-18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팻걸❤️ 당당하게 살래요~

단발머리 2016-08-18 20:37   좋아요 1 | URL
그대는 팻걸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사는게 멋져요~~~ ㅎㅎ

다락방 2016-08-19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제가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

단발머리 2016-08-19 08:17   좋아요 0 | URL
청소년도서라 주제를 무겁게 다루지도 않았고 통통 튀는 주인공 제이미가 매력적이기는 합니다.
다락방님은 자신이 원하는 걸 아는 멋진 사람이니까 패쑤하셔도 될듯요~~ ㅎㅎㅎ

cyrus 2016-08-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 너무 뚱뚱하다, 너무 말랐다, 다른 사람의 체형 가지고 수군거리고 쓸데없이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ㅠㅠ

단발머리 2016-08-21 22: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해요.
저는 다른 사람 외모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그치만....
급.... 혼자 반성 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