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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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망하고 싶었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었다. 나는 누군가 원망하고 싶었고, 그래서 아무나 원망했다. 마음 깊이. 나는 누군가를 원망했다.  

 

나는 아가씨를 원망했다.

아가씨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그렇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선생님을 요령 좋게 챙겨주어 선생님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면서(218), 동시에 일찍 집으로 돌아온 K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의 방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도망치듯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19). 선생님이 초조해지지 않도록 그에 대한 애정을 조심스레 드러냈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아가씨도 어쩔 수 없었다. 아가씨는 대가를 치뤘다. 평생 선생님의 마음 속 응어리진 깊은 어둠을 의식한 채 살았고, 그 어둠의 이유와 실체에 대해 끝까지 알지 못 했다. 결국에는 세상에서 의지할 단 한 사람 선생님을 잃었고,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 버린 선생님의 뒤편에 혼자 서 있어야 했다. 아가씨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난 ‘K’를 원망했다.

그가 어려움에 익숙해지면 점차 그 어려움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혼자 정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201). 입 밖으로 꺼낸 말대로 행동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스스로를 파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성격이 아니라면 좋았을 것을(201). 그가 발견한 자신 이외의 세계 속 주인공이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K와 아가씨가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K가 조금만 덜 침착했으면 좋았을 것을. 선생님에게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가씨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선생님에게 고백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K도 어쩔 수 없었다. K는 대가를 치뤘다. 남의 생각을 거리낄 만큼 약하게 생겨먹지 않은 K조차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갈팡질팡했다. 자신이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것을 부끄러워했다(238).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이면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과 아가씨가 결혼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주머님을 통해 들어야했고, 그 결혼을 축하해 주어야만 했다. 앞날의 희망이 없어 자살한다는 유서에도 아가씨의 이름은 쓸 수 없었고 그렇게 서둘러 죽음을 택해야 했다. K도 어쩔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어서. 그래서 난 '선생님'을 원망했다.

 

만약 그 남자가 내 인생행로를 가로지르지 않았다면 아마 자네에게 이런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낼 필요도 없었을 거야. 나는 어이없이 악마가 지나는 길 앞에 서서 그 순간의 그림자로 인해 일생이 어둑어둑해진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네. 고백하자면 나는 스스로 그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였어.(188)

 

선생님이 K를 그의 하숙집으로 이끌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K와 함께 살면서 함께 향상의 길로 나아가자고 제안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197). 두 모녀와 K를 연결시키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03). 아가씨와 K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그렇게 맞닥뜨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아가씨에 대한 마음을 K에게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211). 아가씨와 K가 점점 더 친해져갈 때, K에게 하숙에서 나가달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220). 아가씨의 애정에 좀 더 확신을 가졌다면 좋았을 것을. 아가씨에게 직접 마음을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224). 일본인, 특히 일본의 젊은 여자는 그런 경우 상대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만한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25).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K에게 그 자리에서 같은 의미의 고백을 했다면 좋았을 것을(229). 나아갈지 물러서야 할지 망설이는 K에게 정말 물러설 수 있느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38). K에게 바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40). 사랑에 빠져 버린 K를 비겁하게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41). 그에게 각오가 있느냐고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241). 하지만,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은 대가를 치뤘다. 이상한 느낌에 K를 불렀고,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K를 마주해야 했다. 아주머님, 아가씨, K의 아버지와 형, 연락을 받고 올라온 지인들, 신문기자들에게 그가 왜 자살했을까 하는 질문을 들어야만 했고, 마음 속 비밀을 감춘 채, 누구에게나 똑같은 대답을 해주어야만 했다. 아가씨(아내)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중간에 서 있는 K를 의식하며 평생을 살았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다.

한 사람이 겪는 고통의 양이란 건, 다른 사람은 감히 측정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치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 한 마디 때문에 긴 밤을 꼬박 새우며 끙끙댈 수도 있다.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나는 결심을 실행하지 못 하는, 이런 극단적인 상태로까지 상황을 방치한 선생님의 행동에 분통을 터뜨렸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되고 말았다.

스스로를 파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성격의 K는 그렇게 먼저 떠나버렸고, 아내는 끝까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남편의 깊은 비밀을 모른 채 완전히 하나될 수 없는 서로를 의식하며 살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아내를 순백의 사람으로 보존하려던 선생님의 바램은 그의 죽음으로 그렇게 끝났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보다 더 적은 양의 징벌을 받는다고 믿었는데, 생각을 고쳐먹는다.

어떤 사람,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만큼의 징벌을 받았다.

다른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징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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