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의 단편 <호>와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읽었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읽는 이유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내세를 믿고, 영혼 불멸을 믿는 사람이다. 믿음을 강제할 만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날라리 신자여서)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게 항상 궁금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내세를 믿지 않고, 죽으면 다 끝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 패턴, 그런 결정에 이르게 한 사고 과정 말이다. 내가 존경하는 유시민 작가님도, 내가 사랑하는 정희진쌤도 그렇게 말씀하시기는 했다. 그 확신과 거부의 매커니즘이, 나는 궁금하다.
겨우 몇 권 읽었을 뿐이지만, 죽음에 관한 책들은 그 장대한 연구와 두꺼운 두께로도 명확한 답을 ‘내어놓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죽음을 겪은 후, 이 세계로 돌아와 그 경험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에 임사 체험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돌고 돌아 한 바퀴 더 돌아 ‘죽음과 타협하라’라고 결론을 내놓는 책도 있다.
이와 관련해 뇌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죽음과 불멸에 대한 인간의 의식이 사실은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 때문이다. ‘자아’라는 통합된 실체 자체가 사실은 ‘허구’라는 주장도 있고,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라는 주장 역시 죽음의 해석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안하는 거라 여겨진다.
켄 리우의 단편 <호>의 카드 리뷰의 첫 장면은 이렇다. 하지만, 그 다음장, 그 다음다음 장, 그 다음다음다음장도 이 단편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는 닿지 않는다. 내가 꼽은 중요한 문장은 바로 여기다.
"이미 작동을 멈춘 틀을 신기한 것처럼 구경하느니, 차라리 그 틀의 작동 기한을 최대한 연장하는 게 낫지 않아요?"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어. 그래서 삶이 의미 있는 거잖아."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하는 거짓말이에요. 시인들이 영생을 구하려 애쓰는 이를 폄하한 건 아무 힘도 없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였고요. 하지만 우리는 이제 무력하지 않아요." (39쪽)
레이는 남편과 함께 노화를 중단시키는 수술(시술)을 받는다. 30세의 외모와 건강을 유지하게 된 레이. 그녀는 제2의 인생, 제3의 인생, 제4의 인생을 살아간다.
할 일이 필요했던 나는 대학으로 돌아갔다. 존 덕분에 나의 뇌세포는 쉬지 않고 저절로 재생되었다. 그렇게 결코 성숙하지 않았기에, 한편으로는 결코 호기심이 마르지 않았다. 나는 역사와 문학, 경제학의 박사 학위를 잇달아 취득하고 나서 의대에 입학했다. 그냥 재미 삼아서 한 일이었다.
배울 것은 너무나 많았고, 나의 끝나지 않는 학생 생활은 언제나 시작을 눈앞에 둘 뿐 실제로 시작되지는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나는 잠재력과 가능성과 첫걸음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았다. 악기를 배워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연습할 시간이 100년이라면 거장이 될 법도 했으니까. (44쪽)
알라딘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 ‘구입해 놓은 책을 다 읽으려면 영생해야 한다’, ‘알라딘에서 영생불사하자’ 기타 등등(‘다음 달에는 책을 조금만 사겠다’, ‘이게 이번 달 마지막 주문이다’) 인데, 만약 우리가, 내가, 그리고 당신이 레이가 받았던 수술을 받게 된다면, 이런 바람, 이런 소망은 모두 현실이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책을 모두 다 읽고, 정희진쌤의 모든 책과 글을 7번씩 필사하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와 수메르어를 마스터하고. 아니 에르노를 프랑스어로 읽고, 단테를 이탈리아어로 읽고, 사기를 중국어로 읽고, 하루키를 영어로 읽고. (하루키 책은 영어본이 제일 예쁘다) 레이의 선택은 무엇일까. 한없이 이어지는 풍요로운 삶을, 레이는 어떻게 감당해 냈을까.
나는 레이의 선택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흐름, 자연의 섭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거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소심하고 연약한 인간의 ‘무지한’ 선택일 수 있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처럼, 어쩌면 인류는 정말 신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인류는 벌써부터 신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닳지 않는 육체의 주인이 되어 20년 전, 50년 전, 100년 전, 23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더 성숙한, 더 훌륭한, 더 차분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 다시 100년을, 200년을, 300년을 살아갈 테고. 그런 인생 앞에 주어진 삶이란 무엇인가. 그런 인생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전력 중단? 핵전쟁? 권태? 외로움?
너무 졸린데 자기는 싫다. 눕기만 하면 곯아 떨어질거 같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우리 집에도 군만두가 있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