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 개정증보판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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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로 가는 여행이 가능할지? 빛보다 빠른 물체를 만들 수 있다면 타임머신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 시공간에 얼마나 많은 시공간이 겹쳐져 있다는 것인지, 우주 여행이 과연 가능할까 등등 많은 의문이 일어나곤 했었다.

 

이런 일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던지, 과학자들도 영화를 보면서 과학에 대해서 생각을 하나 보다. 정재승이라고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과학자가 젊은 시절에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초판은 1999년에 나왔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이 책에 나오는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347쪽)고 했는데... 지금 과학기술에 비하면 좀 오래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단지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만이 무어의 법칙을 따를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 컴퓨터와 관련된 기술 또 과학기술이 20년 전에 비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서는 스마트폰이 전세계인의 손에서 사용될 줄 몰랐을 거고, 당시 플로피 디스켓(아마 이게 무엇인지 지금 청소년들은 알지도 못할 것이다)이 쓰이던 당시에 그것보다 크기는 작지만 엄청난 양을 저장할 수 있는 이동식저장장치(USB)가 쓰이고 있는 지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니...

 

심지어는 화성에서 생활하는 영화(마션)까지 나왔으니 지금 읽으면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감을 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에 나오는 과학에 대한 탐구를 막지는 못한다.

 

오히려 지금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을 수도 있다. 중국은 달의 뒷면을 촬영하여 보내주고 있기도 하니, 과학기술의 발달 역시 무어의 법칙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조금 오래 되었더라도 이 책은 영화에 나오는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 점이 영화를 좀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마찬가지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따분한 사람, 오로지 실험실에 박혀서 연구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덤으로 알려주고 있고.

 

세상이 발달하게 만든 것은 상상과 과학이 아닐까 한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같이 상상이 과학을 이끄는가, 과학이 상상을 이끄는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둘은 함께 할 때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단지 상상이라고 했던 것들이 과학의 힘으로 현실이 되고, 과학은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더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상과 과학은 우리 세상을 발전으로 이끄는 두 힘이고, 이 둘이 잘 드러나 있는 매체가 바로 '영화'다.

 

영화는 상상과 과학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화란 예술 자체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영화가 우리에게 이렇듯 가깝게 다가오게 된 것에도 과학기술에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영화의 내용을 이루는 것들 중에 과학과 관련이 안 된 것이 거의 없으니,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영화는 과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지금은 말이 안 되는 내용이 영화에 나오더라도 이것이 영원히 말이 안 된다는 말은 될 수 없다. 과학자는 지금 영화를 지금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비과학적이라고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몇몇 과학자들은 영화에 나온 상상을 기반으로 자신의 과학을 발전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과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다시 상상은 과학을 추동하여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화는 이 둘의 모습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훌륭한 영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도 하고.

 

참으로 많은 영화들, 그리고 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이 책에 나온다. 딱딱하게만 여겨온 과학을 일상으로 데라고 왔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과학에 대해서 가깝게 여기게 해주는 책이다. 과학을 실험실 또는 책상 위의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여러 군데서 나오기도 했지만 우리가 뀌는 방귀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사실... 방귀를 참으면 몸에 좋지는 않다는 것(236쪽)도 나오지만, 방귀로 연료를 개발할 생각으로 징용자들에게 억지로 고구마를 먹이고 ...방귀를 수거했다는...일제시대 일본군들의 만행도 나오니...(234쪽)

 

과학이 이처럼 어렵지 않다는 것,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상상 속에서서 과학이 실현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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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기의 시네마법정
홍승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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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은 학년말에 시간 때우기로 소비되는 재료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때 학교에서 소설책을 읽으면 공부 안 하고 뭐하고 있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지금은 50-60대가 된 사람들 학창시절이 그러했으리라. 이와 비슷한 일이 영화에도 일어나고 있으니, 영화를 학교에서 보면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짓한다는 소리를 들으리라.

 

소설과 영화. 시간을 죽이는 그런 재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설을 많이 읽고 자란 세대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듯이,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란 세대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단 증거 또한 없다.

 

하긴 요즘은 영화도 지겨워서 못 본단 소리가 나온다. 뭐,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1시간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이나 걸리는 영화를 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 못지 않게 재미도 있고 생각할거리도 제공하고, 다방면으로 유익할 수 있는 매체이다. 어떤 목적을 지니지 않고 영화를 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다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융합이든 통합이든 이런 말 대신에 그냥 영화를 보면 아무 생각없이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없다. 마음 속에서 어떤 울림을 받든, 아니면 도대체 왜 이딴 영화를 만든 거야 하고 비판을 하든, 또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비평하든, 영화 내용에 대해서 생각을 하든, 감독의 표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보태든 어떤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를 매개로 하여 다른 것들과 연결이 된다. 자연스레 융합, 통합이 된다. 이 책은 그런 영화의 속성 중에서 '법'과 연관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가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일은 법정에 가지 않는 것이겠지만, 법정에 가지 않기 위해서도 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영화 속 많은 주인공들은 이렇듯 법과 마주치고 있다. 그런 마주침을 통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총 6부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성'에 관한 것에서 거대 권력과 제도로, 그리고 인권, 표현의 자유로 나눠 영화를 통해 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에 나온 법정이나 또는 법과 관련 있는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기에 영화와 법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쟁점을 잡아 자기 생각을 정리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온 다음에 시간이 많이 흘러 더 많은 쟁점들이 나왔겠지만,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들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판결이 바뀐 것이 있을 것이고 사람들 의식이 변해서 옛날 법체계에 불과해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겪었던 일들을 지금도 우리 역시 겪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 대해 간접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만 많은 영화, 많은 사례들을 다뤄서 조금 소략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를 좀더 집중해서 자세히 풀어나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반인들이 법에 접근하기 쉽게, 법을 무슨 딴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런 글쓰기 방식을 택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영화 속에서 법조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하는 행동이나 대사 중에 실제 법원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들을 알려주고 있고, 주를 통해서 자세한 사항을 안내해주고 있다. 아마도 그런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면 더 많은 참고자료를 찾는 수고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각 영화와 법에 대한 설명을 하는 글이 끝난 다음에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제시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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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의 아니메 미학 에세이
박인하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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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멀어졌는데 한때 애니메이션, 아니 아니메라고 하는 일본 만화영화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매니아처럼 일부러 찾아 보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상당히 앞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웹툰이 인기를 끌자 이를 영화로 만든 경우가 많은데, 강풀 만화라든지 최근에 '신과 함께'와 같은 경우와 같이 웹툰으로 먼저 연재가 되고 인기가 많아지자 영화로 만드는 경우가 꽤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일본은 우리와 달리 만화로 인기가 있는 작품을 영화가 아닌 아니메(애니메이션)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연기하는 것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했을 때 좀더 풍성한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만화에서 표현된 내용을 애니메이션이 좀더 잘 옮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영화로 만들었을 때 등장인물이 지닌 성격으로 인해 많이 제약되는 경우를 보아 왔기 때문이 아닌가 하기도 하고.

 

하여튼 일본과 우리는 좀 방향이 다르지 않나 싶은데... 아니메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도 계속 아니메가 만들어지고 있고 나름 인기도 끌고 있고.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애니메이션 하면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보는 장르로 치부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드물다는 생각을 하고.

 

이 책은 15년쯤 전에 나온 책이다. 이때쯤만 해도 애니메이션이 꽤 인기가 있었을 때고, 이 책에는 구체적인 분석은 없고 그냥 이름만 언급되고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 일본 아니메에 대해서 분석한 책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미학을 8가지 코드로 정리해주고 있다.

 

종(끝), 영원, 하늘, 바다, 우주, 검과 피, 테크놀로지, 히로인과 섹슈얼리티

 

이렇게 여덟가지다. 이 중에 종(끝)이 처음에 나온 것은 일본 아니메가 패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 어쩌면 일본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욕망을 아니메에 투사한 것은 아닐까 한다.

 

종말이 다가오는 지구, 인류, 그들을 구원하는 영웅. 그 영웅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결코 패망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할 것이다.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패배주의에 빠져들지 않게 만든 작품들이 바로 아니메가 아닐까.

 

이런 아니메는 그래서 영원을 추구하고, 광활한 하늘, 바다, 우주를 누비게 된다. 섬나라라는 특성을 지닌 일본이 섬을 벗어나는 환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니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섬을 벗어나게 해주는 기술이 바로 테크놀로지다. 일본은 이런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다. 테크놀로지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지도 모르지만 인류를 구원해주는 것 역시 테크놀로지다. 다만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점이 일방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라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사무라이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검과 피가 아니메의 한 코드를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여성 캐릭터들을 섹시하게 포현하는 것 역시 상업성을 살리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 아니메의 여성 캐릭터는 처음에는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점점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했고.

 

이 책에서는 '쇼타콘'이라고 해서 여성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어린 남성 캐릭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방적으로 한쪽만의 성적 환상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점들에 대해서 설명을 한 다음 1990년대 아니메의 새물결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지는 장르가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지속되고 있음을, 아니메가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어린이물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선과 악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게 아니메는 영화의 한 종류로써 계속 살아남고 변화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미술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진학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애니메이션 분야는 아직도 가능성이 열려 있는 분야일지 모른다.

 

아직은 일본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 것이 사실이니까. 수많은 인기 만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해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림 실력만이 아니라 기술과학에 대한 지식 못지 않게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 아니메에서 보여주는 선과 악에 대한 해석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이 책에서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이 영화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으려면 아동-청소년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왜 일본 아니메가 인기를 얻었는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또 책을 읽으며 과거를 여행하는 듯한, 예전에 봐왔던 애니메이션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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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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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든가, 언어에 이데올로기가 있을까, 없을까를 가지고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예전에 사회주의권에서도 이런 논쟁이 붙었던 걸로 알고 있다. 말이 지니는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언어 자체에 이데올로기가 있다, 아니 언어는 중립이지만 사용하는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지니게 된다는 관점이 있었다.

 

그렇게 기억한다. 도대체 언어는 어떤 존재인가? 언어가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언어는 이미 존재하는 순간 사람들, 사회, 환경, 즉 시공간과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언어가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지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언어를 사람이나 환경에서 떼어놓고 언어 자체만을 보면 그 언어는 생명을 잃는다. 그냥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러므로 언어에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자체에 있는지를 따지지 말고 언어는 이미 사용된 순간, 세상에 나온 순간 이데올로기를 지니게 된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요즘 자주 회자되는 '갑질'이라는 말에는 있는 자, 횡포, 약자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어떤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바로잡아야 할 일이라는 사실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언어는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나라에서 떠돌아다니는 '종북, 퍼주기'라는 말도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이러니 언어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지를 살피는 일은 언어를 잘 쓰는 지름길이 된다.

 

이 책에 쓰인 작은 제목은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다. '톺아보다'가 낯선 언어일 수도 있다.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톺아보다 : 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

 

별 도움이 안 된다. 톺아보다를 찾았는데, 톺아란 말이 또 나오니, 참... 그러면 '톺다'는 말을 찾아야 한다.

 

톺다 :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

 

이런 뜻이겠거니 한다. 톺다란 단어는 세 개가 있고, 이 중에 톺다1에 두번째 풀이가 바로 위에 찾아적은 풀이다.

 

사전도 안 친절하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가 사전을 찾아가면 어휘 공부를 하겠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제대로 된 사전을 만들면 어문 규정은 사라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어문 규정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을 통해서 말을 익혀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조차 이러니 언어 공부를 사전을 통해 하기는 힘들다.

 

어문 규정보다 사전이 필요한 이유를 대고 있는 항목이 바로 '자장면, 짜장면'이다. 현실 발음을 무시한 규정에 얽매인 그런 표준어 규정으로 사람들이 '자장면'을 쓰게 강제했던 시절이 있었다. 외래어 규정에 의하면 '자장면'으로 쓰고 [자장면]으로 발음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부분에서 줄다리기는 규정과 실제 생활 사이의, 관과 민 사이의 갈등이다. 누가 우선해야 하는가?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에서 언어생활에서 국민이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규정에 얽매여 실생활과 동떨어진 언어생활을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지금도 많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써서는 안 될 말, 그 말이 바로 '각하'라는 것. 그것도 '대통령 각하'라니... 요즘은 '대통령 님'으로 쓰고 있지만, '각하'란 말의 연원을 따지면 참 부끄러운 말이다. 왕도 아니로 겨우 신하들에게 쓰던 호칭을, 그것도 일제시대에 조선총독에게 부여되었던 칭호를 쓰다니... 이것저것 다 떠나서 '민주공화국'이라는 나라에서 신분제 사회에서나 쓸 법한 칭호를 쓰다니... 그건 안 될 말이다. 여기서 끝났으면 이 책이 제대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없었을텐데... 한발 더 나아간다.

 

그렇다. '대통령'이라는 말도 문제다. 국민의 의사를 대표한다는 사람에게 '다스린다'는 말이 들어가는 '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것. 그냥 사람들을 대표할 뿐인데... 그것도 특정한 기간만. 이 용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고치지 않으면 지금처럼 촛불을 대신해서 정권을 잡은 정부조차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밖에 많은 말들이 나온다. 여성이 직업을 가졌을 때 붙이는 '여(女)-'자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으니 더 언급하지 않으련다. 다만, 그런 여성에게, 분명 남녀 모두에게 해당할 텐데도 이상하게 여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 '기혼, 미혼' 칸에 대해서 이 책이 잘 지적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언어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야 한다. 이제 언어는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언어는 밖으로 나온 순간 이데올로기를 띤다. 내가 어떤 의도를 하던 하지 않았던 언어는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잡는다. 그 자리에 이데올로기가 빠질 수가 없다. 그러니 언어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작동할지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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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 바이킹의 신들 현대지성 클래식 5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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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다시 읽고 있다. 여러 나라 신화를 읽었지만, 기억 속에 많이 남아 있지 못하다. 읽고 잊어버리고, 또 읽고 잊어버리고...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기억에 더 오래 남았을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또 읽었던 우리나라 신화나 그리스로마 신화는 쉽사리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데... 아마도 뇌의 많은 부분이 비어 있을 때 채웠던 지식이라서 그랬는지, 뇌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어른이 되면서 읽은 신화는 기억 속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 않는다.

 

다른 일들이 자꾸만 신화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로 들어와 신화를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읽었던 신화가 신비로움, 경이로움을 자아내었다면, 어른이 되면서 읽은 신화는 그런 것들을 걷어내고 과학과 합리라는 이름으로 무언가 해석을 하려고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신화를 읽으며 신화 속에 빠져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를 자꾸만 현실로 가져오려고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실, 신화는 신들을 빙자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인간들이 꿈꾸던 것들을 신들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 것 아니던가. 그러므로 신화는 곧 우리들 이야기임에 확실한데...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신화를 통해서 우리 삶을 다시 보기가 힘들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신화는 필요하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한, 신화는 인간과 함께 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신화 역시 사라지겠지. 다른 생명체가 나타나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또 신화라고 한다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이야기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결이 다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인간이 끊임없이 등장해서 신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살아가는데, 이 북유럽 신화에는 인간의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신들의 이야기, 신들이 인간처럼 생로병사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신들에게 적대하는 세력인 거인족이 있고, 재주는 있으나 다른 세계에 살며 신들에게 물건을 만들어주는 난쟁이들이 나온다.

 

거인족과 신들은 갈등 관계에 있고, 또 신들도 서로 반목하기도 한다. 신들의 종류를 두 종족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 북유럽 신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에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이 전쟁을 하다가 휴전을 하고, 서로 신을 파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 신화의 앞부분에 나오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신들은 전쟁을 한다. 티탄족과 올림푸스 신의 전쟁... 북유럽 신화도 역시 신과 거인의 전쟁이 나오니, 비슷하다고 해야 할 수 있고. 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은 불사의 존재다. 그들은 죽지 않는다. 늙지도 않는다. 그래서 신이다.

 

한데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은 스스로의 힘도 힘이겠지만 다른 물건의 도움을 받아 더 강해지고, 또 늙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세상에 신이 죽는다. 발데르라는 신이 죽는 과정은 아킬레스가 죽는 과정과 비슷하다.

 

또한 마지막 전쟁, 라그나뢰크에서 신들은 거의 대부분 죽어간다. 거인족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이 죽음 이후 다른 시대가 다시 시작한다. 역사는 순환한다. 그렇다. 하나만이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할 수 없기에 더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북유럽 신화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나온 이야기일테니, 그들의 호전적인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신들은 계속 다른 존재들과 갈등을 한다. 그것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리라.

 

그렇게 신들은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를 이룬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우리 삶을 생각하게 된다.

 

문명의 정점에 올랐다고 했을 때, 정점에서 내려올 일만 남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이 이대로 계속 존속하기는 힘들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라그나뢰크에서처럼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신화를 읽는 이유가 바로 현실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라면... 북유럽 신화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 책 276쪽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에는 역시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큰 소리로 알려주거라! 이 말을 새기는 자들은 번성하리니! 듣고자 하는 자에게만 들려주거라!' (276쪽)

 

불경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한다. 성경에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한다. 그렇다. 듣고자 하는 사람, 들을 귀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들, 그것이 바로 경전이고 또 신화다.

 

그런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 좀더 듣고자 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화이지 않을까 싶다. 경전보다 철학책보다 더 들을 수 있는 자세를 지니게 하는 것이 신화니 말이다.

 

우리게에 좀 생소하지만 그래도 영화 '토르'나 '어벤져스'를 통해 알려진 천둥의 신 토르와 악당 로키를 접한 사람에게는 친숙한 신화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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