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순례.


  예전엔 동네에서 헌책방을 쉽게 만났는데, 어느 순간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 헌책방을 만나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산책하듯이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에 헌책방은 없다.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헌책방에 간다. 그런 헌책방도 또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책에 헌 책 새 책이 있을까마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밀려나게 된다. 


  하긴 도서관에서도 좀 오래 된 책은 개방된 서가에 있지 못하고, 보존서고라고 해서 사서들이 가서 찾아와야 하는 곳으로 밀려가니... 


가끔 알라딘에서 헌책을, 아니 알라딘은 중고서적이라는 말을 쓰니, 중고서적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책들은 그냥 폐휴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이 버려지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헌책방은 책이 버려지는 일을 최소한 막는 역할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 읽었던 흔적을 헌책에서 발견하고 아, 이 사람도 이 부분을 생각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드는데...


이번에 구입한 헌책은 [전봉건 시전집]이다. 전집이니까, 전봉건의 시를 모두 (과연 모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발표된 시들은 다 실었을 테니) 모아놓은 책.


전봉건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피아노'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했던 시.


피아노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들었다.


남진우 엮음, 전봉건 시전집. 문학동네. 2008년. 49쪽.


음표들이 막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리고 다른 시들... 같은 제목에 다양한 변주를 한 시들... 돌과 6.25.


'돌'은 56편이 있고, '6.25'는 59편이 있다. 마지막 숫자가 56과 59니.


이 중에 돌 52를 보면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돌 52


햇살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바람을 만나 바람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비를 만나 비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나무를 만나 나무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어둠을 만나 어둠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새를 만나 새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강물을 만나

강물에게 말을 하면서 갔더니

돌을 만났다.


이제는 내가 말을 들을 차례다.


남진우 엮음, 전봉건 시전집. 문학동네. 2008년. 655쪽.


하아, 말하기보다 듣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돌을 통해서 깨우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의 형태를 달리해서 그냥 직설적인 말하기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집, 헌책방에서 만났으니,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행복. 가격 또한 아주 싸니, 이 또한 행복 아닐까 하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책을 만나야 하는데, 인터넷으로 만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서점에 가서 종이책을 만지는 일, 헌책방에 가서 책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는 일을 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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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깊어가는 만큼 내가 성숙해질 수 있을까?


  자연이 내게 거는 말들을 나는 들을 수 있을까?


  나무가 하는 일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제 잎들 색깔을 변하게 하는 것도, 세월에 따라 자신을 맞추는 방법인데,

그렇게 세월에 자신을 맞춘 나무들을 변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 아니 나무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계절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면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바꾸지 않으면 그 나무는 살아갈 수 없다.


  노자가 그랬던가. 죽음은 딱딱하고, 삶은 부드럽다고. 딱딱함은 경직됨이니 이는 변화를 거부함이요, 오로지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독선일 뿐.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자연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단지 자연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사람은 그렇게 자연 속에서 살아가니까. 우리 역시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가끔은 그것을 잊고 자연을 마치 없어야 할 것처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시집에 시인이 뭐냐고, 시가 뭐냐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선생님의 말이 있다.


"시는 뒷냇물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거란다. 그리고 살구꽃이 피어 있을 때의 마음을 받아 적는 거란다. 또 보리밭 위로 날아오르는 종달새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거란다. / 그때 뒷냇물이 살구꽃이 보리밭이 종달새가 너희들에게 무슨 말을 걸어올 거야. 그걸 받아 적는 게 시라고 한단다. / 모든 사물들은 다 말을 하고 있단다. 그 말을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지." (김명수, 77편, 이 시들은. '강 6'에서. 녹색평론사. 2022년. 29-30쪽)


시인의 자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강 6'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 그렇다. 바로 이런 시인들. 꼭 시를 쓴다고, 시를 발표한다고 해서 시인이 아니다. 사물의 말을 듣고 그것을 받아 적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인이다. 


그 사람이 받아 적은 것이 시다. 그런 시인들이 많은 사회는 좋은 사회다. 누가 누구 위에 있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누구 할 것 없이 함께 어울리는 그러한 사회일 것이다.


하여 그런 시인들이 있는 사회는 평화로운 사회일 것이다. 단지 인간들만의 평화가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평화.


아름다운 세상일 텐데... 가을,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자연이 형형색색 가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열매들과 함께. 이 시집을 읽고, 적어도 자연이 건네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열고 지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시인이 따로 있지 않고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된다면 그 사회는 참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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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편]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짧은 시에 그토록 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니... 


  시란 말의 절제, 그 절제 속에서 더 많은 말들을 하는 것.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과연 할 말을 다할 수 있을까?


  '찰나'라는 말, 시간은 한없이 짧을 수도 있는데, 그 짧음이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빛이 파동이냐 입자냐 하는 논쟁이 있었듯, 시간이 연속이냐 불연속이냐는 논쟁도 있을 수 있지만 어느 하나로 정할 수 없는 것이 빛과 시간 아니겠는가.


시도 마찬가지다. 무어라 딱 정해서 하나의 틀에 가둬둘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시 아닌가. 그래서 서정춘의 시를 읽으면 짧은 시 속에서 더 긴 인생을, 더 많은 삶을 만나게 된다.


시인의 말이 마음에 치고 들어온다.


'아하, 누군가가 말했듯이 / 나도 "시간보다 재능이 모자라 더 짧게는 못 썼소." (5쪽)'


하, 더 짧게 못 써도 좋다. 황지우의 '묵념, 5분 27초'처럼 아예 백지가 되지 않아도 좋다. 서정춘의 시는 충분히 짧다. 그리고 충분히 길다.


첫시 '랑'에서 말한 것처럼, 서정춘의 시는 시와 우리를 이음새 좋게 이어지고 있다. 시랑 나랑 우리랑 사회랑 세계랑 우주랑, 이렇게 이어주고 있는 시들을 읽으면 짧음 속에서 긴 여운을 느끼게 된다. 좋다. 그 말밖에는.


 랑


랑은

이음새가 좋은 말

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

사랑하기 좋은 말


서정춘. 랑. 도서출판 b. 초판 1쇄. 9쪽.


이렇게 우리는 이어짐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서정춘의 이 시가 더 마음에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최근에 겪었던 탄핵 정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 이어져 있었던지... 시인 역시 시를 통해 또 행동을 통해 함께 이어져 있었기에 이러한 '랑'을 노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2016년 탄핵 정국을 시인은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2016년 10월 26일부터였다

광화문 촛불 혁명 광장에서

내 촛불이 힘껏 빛나 보였을 때

나여, 그날만은 비로소 시인이었다


서정춘. 랑. 도서출판 b. 초판 1쇄. 31쪽.


하아, 우리 모두는 이때, 그리고 반복된 탄핵 정국에서 시인이었다. 우리는 모두 '랑'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시도 짧고 수록된 시도 많지 않지만, 그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시집이다. 읽으니 그냥 마음에 물결이 인다. 너랑 나랑 우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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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로 '캣츠'의 원작. 원제는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이라고 한다.


  시 '황무지'로, 아니 황무지의 한 구절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작가.


  그가 쓴 고양이에 관한 시집.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이 고양이들이 바로 우리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제 멋에 겨워 사는 사람들. 정말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사는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들도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이들 고양이의 삶을 어떤 삶이 더 좋고 어떤 삶은 안 좋은지 이야기하지 않고, 그 삶들을 누리는 모습을 표현한 시들.


어떤 고양이는 교양이 있고, 어떤 고양이는 즐기고, 어떤 고양이는 사고를 치고, 어떤 고양이는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 등등...


뭐 삶을 생각하지 않아도 이 시집에 나오는 고양이들을 만나는 재미만도 쏠쏠하다. 그 중에 특별히 정이 가는 고양이도 있을 테고.


고양이가 사람을 집사로 선택한다고 하는데... 그런 점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기도 하고, 도시 주변에서는 들고양이들도 많이 보이고.


자기 삶을 나름대로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이 고양이들의 모습에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으니...


재미있게 읽으면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문학이 주는 즐거움일 수 있음을, 이 시집을 읽으며 느꼈으니...


또 시집 뒤에는 영어 원문이 있어서 번역한 시와 비교하면서 읽어도 좋고... 그리고 첫시와 마지막 시를 생각하면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도 좋다.


첫시는 '고양이 이름 짓기'이고 마지막에 실린 시가 '모건 고양이, 자기 소개하다'인데 사실 첫시와 어울려 끝시라고 할 수 있는 시는 이 시 바로 앞에 실린 '고양이에게 말 걸기'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짓는 것은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상대와 관계를 맺는 처음이 된다. 그냥 "저기요."라고 불분명한 호칭으로는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확한 이름, 아니 상대가 원하는 이름을 부를 수 있어야 함은 관계맺기의 기본이다.


'말로 할 수 없는, 말로 하되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 깊고 불가해한 단 하나의 이름'('고양이 이름 짓기'에서. 12쪽)을 아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을 모르고 대충 이름을 붙이거나 부르면 관계는 좋아질 수가 없다. 


그러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려면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인정을 받는 과정을 '고양이에게 말 걸기'라는 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설령 이름을 안다고 해도 함부로 먼저 부르지 말 것. 왜냐하면 아직 친한 관계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먼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즉 자신의 호의를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


'고양이에게 믿을 만한 / 친구로 인정받으려면 / 존경의 표시가 필요하니까요'(고양이에게 말 걸기'에서. 80쪽)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도 그렇지 않은가. 무턱대고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요즘 말로 '스토킹'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이름과 관계 맺기에 실패한 경우다.


그러니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의 마음이 열리길 기다리고, 그 다음에 서로가 원하는 이름들로 관계를 맺어가는 것, 우리 사람 사회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이 '캣츠'라는 시집, 고양이의 이야기지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뮤지컬 '캣츠'를 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 만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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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나온 시집이라 그런지 알라딘에서 찾을 수가 없다. 알라딘이 설립되기 전에 나온 책이니, 상품으로 등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지금은 절판이 되었을 것이고... 검색해 보니 알라딘 중고에는 한 권이 있다. 판매자 중고로 뜬다. 그런데 값이!


  지금 구할 수 없는 책들, 한때 사람들에게 사용가치로 다가왔던 책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교환가치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 책이 화폐처럼 교환가치가 우선이 되면, 책은 아무에게나 다가가지 못한다.


  이 정도로 세월이 흐른 책은 도서관에서도 퇴출이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만나기 힘들어지니, 사용가치는 줄어들지라도 교환가치는 높아지기 마련.


자본주의 사회의 희소성 원칙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우연히 헌책방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시영이란 시인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이시영 시인은 짧은 시들을 쓰는 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시집 역시 짧은 시들이 많다. 


그래 많지 않은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녹여내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표현되지 않은 언어 사이에서 사람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치도록 하는 것. 그것도 시인이 할 역할이지 않을까 싶고. 그런 역할을 잘하는 시가 내게는 사용가치가 높은 시인데...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는 '가을 꽃'(12쪽)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첫행에 '진리의 길은 멀다 친구여'라고 되어 있다. 그냥 길이 먼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길이 먼데, 시인은 그런 진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이 시집에 시인에 관한 시는 두 편이 있다. 한 편은 한글로 '시인' 또다른 시는 한자어로 '詩人'. 그리고 '詩를 쓰려면'이란 시가 있다. 이 세 편의 시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겨울 나무'란 시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우선 시인이란 시 두 편을 보자.


     시인


삶이 경이인 사람

언제나 새벽 바다에서 애기처럼 돌아오는 사람

돌아와 설레는 발자욱을 남기고 사라지는 사람

해지는 저녁 바다가 밀물져 오면

쓰라린 갈매기 몇 마리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사람

넘치는 밤 파도와 맞서 싸우는 사람

밤새워 늙은 섬처럼 일하는 사람


이시영, 길은 멀다 친구여. 실천문학사. 1988년.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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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人


일하는 사람만이 세계의 기쁨나무를 후려쳐

쫙 벌어진 기쁨의 알밤 열매 거둘 수 있고

일하는 기쁨을 아는 사람만이

한겨울 시린 노고목(老枯木)의 밑뿌리를 도타이 감싸

이듬해 봄

그 오랜 등걸에서도 어린 새순이 자라게 한다


이시영, 길은 멀다 친구여. 실천문학사. 1988년. 31쪽


이런 사람이 시인이다. 어렵지 않은 말로 시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는데, 그런데 시인 자신은 어떤 시를 쓰고 있나? 과연 자신이 시인이라고 정의하는 존재에 걸맞는 시를 쓰고 있나 반성하고 있다.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연상시키는 그런 시인데...


  詩를 쓰려면


시를 쓰려면

온몸에 저를 실어

산 같은 무게로 바위 같은 몸짓으로 활활 타오르는

넋의 푸른 숨결이 있어야 할 터인데

어느 날 만년필 끝에서 쉽게 풀어지고 씌어지는 나의 시여

너에게는 피의 냄새가 없다

말의 탐욕만이 있을 뿐

관념의 허상만이 있을 뿐

살아 있는 사람의 노여움 긴 긴 입맞춤이 없다

그 몰아치는 폭풍 속의 서늘한 눈빛이 없다


이시영, 길은 멀다 친구여. 실천문학사. 1988년. 39쪽.


윤동주는 일제시대, 그 엄혹했던 시절에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라고 자신의 의지를 다잡고 있는데... 


이시영 시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시가 시대에 맞서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하고 있다. 이 반성이 반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앞의 '시인'이란 두 시에서 말했듯이 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인은 냉혹한 세상에 따스한 온기를 전달하려 한다.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그것을 버티고 새순을 내게 하는 일... 힘든 존재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것. 그런 자세를 지닌 사람. 시인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이런 시인들이 있음은 당연하고...


하여 이 시집에서 '겨울 나무'란 시가 바로 이 세 시를 아우르지 않나 싶다. 


 겨울 나무


나무는 

겨울 나무는 옷 모두 벗고 아랫도리 벗고

영하 12도의 아파트 광장에 서서

아직도 제게 남은 온몸의 더운 기운을 

언 땅에 주고는

밤 하늘에 저렇듯 엄연하구나


이시영, 길은 멀다 친구여. 실천문학사. 1988년. 20쪽


이런 존재가 바로 시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존재를 작년 겨울(올 봄에)에 보았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 날씨에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어주던 사람들을. 아스팔트에 있던, 광장에 있던 수많은 시인들을.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시였음을. 그런 시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에 이르렀음을. 1988년에 발간된 시집. 1987년 민주화운동을 소환하고 있는 시들도 있는데, 그 시들과 작년(올초) 상황이 겹쳐지는데...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의 온기가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듯, 87민주화운동을 거친 시대의 온기가 이싱영 시인을 통해서 전해지고, 그것이 2024년-2025년 광장의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로 우리 사회를 따스하게 했다면, 그것이 지나친 억측일까?


이래저래 이 시집은 내게는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가 훨씬 높은 그런 시집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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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03 0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랫도리 벗고 영하 12도의 날씨에 광장에 서 있다는 표현이 정말 날카로운 시인의 시선입니다.

kinye91 2025-11-03 09:15   좋아요 0 | URL
네,맞아요. 이런 시인의 시선을 만날 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