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이 아닌 네트워크


  이번 호에 실린 글 중에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이야기하는 글의 제목이다. 광역시와 도를 통합하겠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런 통합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문제제기.


  통합이 자칫 독점으로 갈 수 있고, 다양성보다는 단일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래서 통합보다는 다양한 지역들의 네트워크가 더 바람직하다고... 다양성이 확보되면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어느 힘센 지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글.


이 글을 세계에 적용하자. 지금 세계는 전쟁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미국과 이란-레바논 전쟁. 후자를 과연 전쟁이라고 해야 하는지, 일방적인 침공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고, 트럼프조차도 이는 전쟁이 아니라 군사작전이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이 전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한 나라를 폭격하는 행위가 단순한 군사 작전이라고? 이 상태가 바로 힘센 자들이 다른 곳들을 통합하려 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강자의 논리만 내세워 약자를 핍박하는 것. 자칫 통합이란 이런 식으로 강자에게 흡수되는 약자들의 모습을 지니게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각종 전쟁(자기 말대로 군사작전)을 벌이는 이유도, 약자들과의 협력 네트워크가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을 자신들에게 통합했을 때 미국의 이익이 더 커지기 때문이고, 지금까지 지녀왔던 패권을 잃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나라들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통합을 바라는 자, 결코 네트워크로 주체성을 지니면서 협력을 하는 상태를 원하는 자가 아니다. 그런 자이기에 자신의(그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기득권을 지닌 자들의 이익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미국 시민들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통합하려는 모습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한다.


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통합이 아니라 네트워크다.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인데,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을 매달기 위한 줄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종을 매달 구멍에 맞는 하나의 쇠줄은 종을 지탱하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고. 


그렇게 굵은 줄 하나로는 매달 수 없었는데, 작은 줄 여럿을 꼬아 놓으니 종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다는... 굵은 줄 하나를 통합이라고 보면, 작은 줄 여럿이 꼬여 있는 것은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몇몇 강대국으로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나라들이 서로 네트워크로 협력할 때 인류를 위해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자, 바로 트럼프다. 그는 세계를 미국이라는 나라로 통합하려 한다.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왜 그럴까?


통합은 성장주의의 토대


통합을 하려는 이유는 덩치를 키우려는 것이다. 왜 덩치를 키우는가? 바로 성장을 위해서다. 큰 것이 더 클 가능성이 많고 작은 것은 큰 것에 병합당할 수 있기에 덩치를 키우는 것. 그래서 통합은 바로 성장주의의 토대다.


많은 언론에서 성장률, 성장률한다. 성장률이 적으면 경제가 어렵고 마치 나라가 위험에 빠질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성장이 안 된다면 우리가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과거에 비해 지구는 전체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행복해졌는가? 평등해졌는가? 성장의 과실을 있는 자들이 거의 독식하지 않았던가. 불평등이 더 늘고, 사람들은 더욱 바쁘고, 힘들게 살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는 상태. 


게다가 통합이 무조건 내쪽이 되어야 한다는 강압으로 나아가니, 그렇지 못한 존재들은 그 선 밖으로 추방당하고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성장을 추구해온 결과 아니던가.


바로 성장하기 위해서 통합을 하고, 통합을 하면 거기에 들지 못하는 존재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의 반복. 미국이 패권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이 지지부진하다고 여기는 트럼프는 미국의 성장을 위해서 통합, 관세든 전쟁이든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런 미국식 통합이 트럼프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이번 호에 실린 '페트로 달러와 기후위기'라는 글에 잘 나와 있다.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겠다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정을 맺었다는... 이게 무슨 짓인지...세계적으로 거래되는 화폐조차도 통합을 하려 한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서였으니... 각 나라가 석유를 거래하는 화폐를 자국의 화폐로 해보라. 달러가 패권을 유지할 수가 없다. 페트로 달러를 통합이라고 한다면, 각국의 화폐를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이런 성장을 위한 통합이 결국 군사력까지 동원해 세계를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성장주의는 제로섬 게임


바로 이렇게 통합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한 곳이 플러스(+)가 되면 다른 곳은 마이너스(-)가 된다.


다 같이 성장하지 못한다. 뭐 함께 성장한다 치자. 그건 인간에게만 해당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제국주의부터 인간도 함께 성장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인간의 성장이 자연의 소멸로 가고 있지 않은가. 자연자원을 파괴하면서 인류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지구만으로 부족하니 이제는 달에서 자원을 얻자는 주장도 나오고, 화성에도 이주를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인류의 성장은 다른 존재들의 쇠퇴로 이어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이 제로섬 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 인류가 머리를 맞대어도 신통치 않을 판에, 인류끼리도 성장을 위해서 서로를 갉아먹고 있다. 미국의 성장을 위해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트럼프 행정부처럼. 


이제 이런 성장주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통합을 주장하기보다는 네트워크를 주장해야 한다. 통합이 아니라 연합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덩치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작은 덩치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나라끼리도 연합, 한 나라 안에서 지역끼리도 연합. 그리고 그 지역은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의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소규모 지역들이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면 그것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 호를 읽으면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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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쓴 이 시들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경찰들의 강제 진압, 희망버스 등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들이 시에 담겨 있어 읽으면서 우리가 겪어왔던 일들을 떠올릴 수가 있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첫 번째로 실린 시를 보면 이 시집에서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제목이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이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는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약자의 편에 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그들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님을...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우리는 당신들의 집과 건물이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를 대하는 당신들의 인성도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삶과 생활이

더 윤택하고 빛나길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도

환하고 기름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노예나 종이 아닙니다

당신과 나의 권리는 서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바르게 정돈하고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쓸겠습니다

당신은 닦으십시오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비. 2022년. 10-11쪽.


시에서는 너와 나를 가르지 않는다. 우리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위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너가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나'는 존중받고 싶지만, '너'는 굳이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 시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치워야 할 쓰레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누르려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공동체의 생활에 필요없는 치워야 할 존재다.


그러므로 시인은 당신들은 제발 그런 존재가 되지 말라고 한다. 당신들은 쓰레기니까 치워져야 한다가 아니라, 당신들도 우리와 같이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을 하는 존재라고 한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나와 나의 구분은 없다.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 함께하지 않고 방해하는 존재는 치워야 한다. 


이런 의미를 지닌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있다. 세상의 불의를 참지 않고 고치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런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사회의 불의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백신'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장 오래된 백신'(104-105쪽)에서 시인은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을 살게 해주는 '사랑과 연대'. 이것들이 충만한 세상이라면 시인이 원하는 대로 '큰 의미 없이도 우리 모두를 살리는 / '물결'이나 '바람결'이나 / 조용한 '숨결' 같은 것도 느껴보며 / 조금은 다른 삶의 결로도 살아보고 싶은 / 해 질 녘 우연한 그리움'(''결'자 해지'에서. 93쪽)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그리움이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는 시인에게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시인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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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4-26 0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잘봤습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kinye91 2026-04-26 06: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시집 제목은 맨 처음의 시 '가시'와 맨 끝의 시 '황토'와 연결된다. 제목에서처럼 시집은 기역부터 히읗까지 가나다 순으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관심 있는 시를 찾으려면 사전 순서를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집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이 시집을 읽으면 어떤 시를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 진다.


  봄을 맞아 식물들이 이제 막 새순을 내기 시작했을 때 그 성장을 돕는 봄비가 내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땅을, 식물을, 그리고 우리들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봄비. 그런 봄비와 같은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다. 


어느 시를 읽어도 마음이 촉촉해진다. 좋다. 더 말이 필요 없는 시집이기도 하다. 세상이 너무도 각박해지고 있는데,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고, 여기에 '부수적 피해'라고 할 수밖에 없는 - 군인이나 전쟁과 관련이 없는 인간들이 의도적이지 않게 피해를 입는 것을 부수적 피해라고 하지만, 사실 부수적 피해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이 입고 있다 -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현 상황.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명확한데...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누군가는 전쟁이 아니라 군사 작전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던데... 이것이 군사 작전이라면 도대체 전쟁은 무엇인가?


이 군사 작전으로 인해 전세계가 피해를 입고 있는데, 그 힘 있는 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사람, 나라가 없는 현실. 


세계화 시대가 끝났음을, 우리는 지구촌 주민들이 아니라 결국은 각자의 나라에 속한 국민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하고 있는 요즈음... 김용만 시인의 이 시집을 읽다가, 그 힘 있는 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 있다.


'힘센 짐승이라고 / 지 맘대로 내걸면 폭력 아닌가 / 집 찾아드는 오만 것들 / 자기 집이라 하면 안 되는가' ('밤마다 내려오는 별은 어쩌고' 중에서. 47쪽)


무얼 내거는가? 그것은 집의 이름, 일명 '당호'를 지으라는 사람들의 말로 자기 집임을 선언하라는 말에 시인이 하는 말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MAGA'라는 말에 들어 있는 폭력을 생각하게 되는데, 지구촌이 아니라 자기 나라만을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동을 막는 그런 행위. 시인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위를 당당하게 외치는 그 힘센 사람.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은 그런 힘센 사람에게, 시인의 이 시를 읽어보라고 하면 그는 읽을까? 읽기는, 이런 시를 읽을 사람이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


이렇게 시집 어느 쪽을 펼쳐도 좋다. 봄을 맞아 이런 구절 '가을은 빗속에 떠나고 / 봄은 빗속에 오더라'('먼 젖은 산이'에서. 39쪽)를 통해서 봄과 가을에 오는 비가 지닌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일기'란 시를 보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나'만을 중심에 놓고 다른 것들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이따만한 / 대보름달 / 앞산 위에 걸렸는데 //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 하마터면 쓸 뻔했다'('일기' 전문. 88쪽)


그렇지. 이 세상에 온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고,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는 없다는 것. 주위를 살피는 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 눈,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이기도 하고.


이렇게 인간은 인간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사람의 일'이란 시를 보면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진정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나무의 일은 하늘을 향해 바로 서는 것이고 / 땅의 일은 수평을 이루는 것이다 / 사람의 일은 수평과 수직을 지키는 삶이다 / 쉽지만 사람은 안 한다 // 나무와 땅을 괴롭힐 뿐 // 시멘트 매꼼히 발라버릴 뿐' ('사람의 일' 전문. 57쪽)


한글 창제 원리 중에 모음의 원리가 '천지인'이라고 했는데, 하늘과 땅, 그리고 둘의 사이에 있는 인간. 이러한 인간과 비슷하게 수직으로 서서 땅과 하늘을 연결해 주고 있는 나무. 그러한 나무를 받쳐주고 있는 땅.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지키는 일. 이들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는 일. 시인은 쉽다고 이야기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전혀 쉽지 않은 일. 생각을,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는 일. 


하지만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이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는 힘들어진다고 하니, 이제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겠지.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기도 했는데...


봄비처럼 다가온 시집. 시들... 메말라가던 마음이 조금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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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도서관에 간다. 책이 모여 있는 곳. 자신을 읽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곳.


  세상 모든 책들이 도서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너무도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인데... 도서관을 지구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에 수많은 생명, 무(비)생명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지구에서 영원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지구에서 영원히 자리를 차지하고, 계속 그와 비슷한 존재들이 나온다면 지구는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힘이라고,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우리나라지만 한때는 인구가 너무 많아진다고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도 했었다. 왜? 지구가 포용할 수 있는 인구에 한계가 있으니까. 지금이야 인구 소멸을 걱정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지만...


그러니 생명의 삶과 죽음은 지구에도 필수적인데,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책들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책들은 도서관에서 물러나야 한다. 다른 책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물러나고 들어오는 원칙이 있을까? 사람의 삶과 죽음에 어떤 원칙이 있을까? 신이 있어서 이래야 한다고 정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연 또는 우연에 따라 삶과 죽음에 이른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지구에서 생명들은 그렇게 오고 가고를 반복한다지만 도서관은 어떤가? 도서관마다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서 들어오고 나가는 책들이 정해진다. 그럼에도 도서관에는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보존되는 책들... 이미 절판, 품절이 되어 읽고 싶어도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을 도서관에서는 만날 수 있다. 그럴 때의 기쁨이란... 역시 도서관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 도서관에는 최근에 나온 책들도 있어야 하지만 선뜻 살 수 없는 책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개인이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이어야 한다.


이런 도서관, 주변에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근화 시집을 읽다가 '도서관'에 관한 시를 발견했다. 하, 이런 도서관. 세상의 중심이다. 그냥 좋다. 이 시.


  세상의 중심에 서서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책을 날마다 주워 와서

번호를 매기고

뜯긴 책장을 붙였습니다

나란히 꽂았습니다


캄캄하고 냄새가 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

조금 더럽고 안락해서

날마다 다른 꿈을 꿉니다


도서관이에요

책들은 하룻밤이 지나면

숨을 쉬고

이틀 밤이 지나면

입술이 생기고

사흘째 팔다리가 태어납니다

나흘째 사랑을 나누고

먼지가 가라앉습니다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혼자 길고 긴 산책을 합니다

멀리서 책을 한권 또 주워 왔습니다


이번에는 코가 없고

감기에 걸린 놈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함께 커피를 마시고

토론을 했습니다

불을 다 끈 도서관에서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구멍 난 내일을

헌신짝 같은 어제를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도서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이근화,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창비. 2021년. 2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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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하다. 시의 소재가 주로 달, 물, 산, 돌 등이니 잔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인의 두 번째 시선집이라고 하는데, 시인이 '근래에는 달과 별, 꽃, 무지개, 돌, 들에 마음이 빠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한 자연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이별과 만남, 삶과 죽음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습니다.'('시인의 말'에서)라고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자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없겠지. 자연처럼 순환이 인간이 지닌 운명임을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을 영원히 살겠다는 욕심을 버리겠지.


세상에 죽지 않은 인간들이 계속 지구에서 살아간다면 도대체 지구가 몇 개나 필요할까? 몇 개가 뭐야, 우주 곳곳에 있는 행성으로 이주해도, 그 행성들도 곧 포화상태가 되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이주하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결국 자연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인간도 역시 그러한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유한성을 거부하고 무한을 추구하는 인간들. 과학기술을 앞세워 영생을 추구하는 현재. 과연 우리는 자연에서 얼마나 멀어지려 하고 있는지.


자연에서 가장 멀어지는 것이 전쟁 아닌가. 무기, 온갖 무기. 이 무기들이 사람만 죽일까. 아니 지구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함께 죽인다. 그리고 쉽게 빨리 사라지지도 않는다. 전쟁이 남긴 상흔은 꽤 오래 간다. 상흔만이 아니라, 무기들이 남긴 오염들, 피해들 역시 복구하기 쉽지 않다.


하여 가장 반(反)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면 무기다. 최첨단 무기. 그러한 무기들이 지상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날아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파괴하는 전쟁. 이 전쟁은 그 자체로 반(反)자연적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킨 사람, 자연을 거스르는 사람.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 인간이 거주할 지구를 파괴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세계가 과연 그러한가.


말이면 다 말인 줄 알고 뱉어내는 힘센 나라 대통령이란 작자. 제 나라 영토에 폭탄이 떨어질 일이 거의 없다고 남의 나라를 폭격하는 사람. 주변 국가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사람. 그의 말은 폭탄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을 죽이는 그러한 폭탄들. 그 폭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강대국의 대통령이다. 이름을 말하기도 싫다.


시집을 읽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시집에서 어째서 그런 반자연적인 인간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바로 이 시와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는 자가 그 자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자가 이런 생각을 한 순간이라도 해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시를 보자. 제목도 '무지개'다.


    무지개


섬광이 터지고

사람과 사람 말 사이에

무지개 섭니다


저 무지개 걸어가려는 나의 무게는 너무 무거운 걸까요

내가 아무리 무게를 줄이려 하여도 한 마리 나비처럼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 위에 그어진 무지개 위에 누군가 손짓하여 걸어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면

오오 무슨 마술을 부려서라도 내 마음을 나비 한 장의 무게로 변신시킬 수는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 무지개 위에서

내가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설혹 원수를 만난다 할지라도

외나무다리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위에선


함께 부등켜 포옹할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리라


김선영, 누구네 이중섭 그림. 인간과문학사. 2013년. 119-120쪽


이럼 얼마나 좋을까.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 색색깔의 아름다운, 어느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다양함. 그리고 상대를 구속하지 않고 제 때가 되면 사라지는 그런 다리.


이 다리를 걷는 사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를 걸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절대로 말 폭탄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리라. 그리고 이런 사람은 자연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아니 우주라는 존재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제 때를 알고 갈 수 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일 텐데...


맑고 밝고 따뜻한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것과 반대되는 이 지구의 현실에, 폭탄의 다리가 아니라 무지개다리가 서로를 이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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