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어 수업 - 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
한성우.설송아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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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북한말에 대해서 책 한 권을 내다니. 그것도 '문화어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문화어는 북한의 표준어를 말한다고 보면 되는데, 평양말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문화어와 표준어는 많이 다를까? 많이 다르다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텐데... 우리나라가 분단된 지 70년이 넘어가지만 함께 해온 역사는 그것의 열 배가 넘으니... 아직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단계는 아니다.

 

가끔 남쪽으로만 국한하더라도 각 지방의 사투리들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말의 뜻은 정확히 모르더라도 말을 하는 상황에 따라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사실 표준어를 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표준어를 모두 알고 있지는 않다. 책을 읽더라도 모르는 낱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그 말들을 하나하나 찾지 않아도 전체적인 문맥에서 뜻을 유추해내고 의미 파악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북한말도 마찬가지다. 단어가 다른 것도 있지만, 그것들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큰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 통역을 동반하는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외교적인 수사가 필요한 정상회담에서도 통역없이 대화가 가능한 것이 남과 북이다. 그러니 자꾸 남북의 말이 다르다고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같은 점이 더 많다고 강조해야 한다.

 

이 책에서 계속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부분은 같다. 약간 다르다. 그 약간 다름을 가지고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자. 또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서로의 말을 잘못되었다고 하지 말자. 틀리다고 하지 말자. 누구네 말이 더 우월하다고 하지 말자.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에 따라서 언어가 약간씩 변화했을 뿐이다.

 

거기에는 우열은 없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만 남과 북이 철책선으로 가로막혀 서로 왕래를 하지 못하다 보니 생경하게 느낄 뿐이다. 우리가 가끔 텔레비전에서 듣는 지역 사투리들을 가지고 저급한 언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와 다르네... 할 뿐이다. 다름에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주 교류하다 보면 서로가 언어를 맞춰가게 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러니 언어의 통일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먼저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서로 교류해야 한다.

 

장벽없이 만나면 언어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서로 변해가게 된다. 그 점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어느 한쪽의 언어를 중심으로 상대방의 언어를 폄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강제성이나 인위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북한에서 실질적으로 방언조사를 할 수 없는 여건에서 생활 속에서 문화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가상으로 장면과 인물을 등장시켜 책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문화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남북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어야 한다. 철책선이 굳건히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이 스마트한 시대에, 지구촌이라는 시대에 남과 북이 각자 자기들의 세계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한다.

 

고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인이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표준어와 문화어 또 다른 지방언어들까지 다 포용하는 그야말로 대동소이한 우리말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의 교류는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이 책을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빼기의 언어정책이 아니라 더하기의 언어생활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 사람들을 뿔 달린 도깨비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난 지금, 이제는 그들의 말과 우리들의 말이 모두 우리말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에필로그(313-318)에서 이 책의 내용을 너무도 잘 정리해주고 있다. 다만, 문화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완전할 수는 없지만 우리말을 되도록 쓰려고 하고 있는 문화어에서 책의 맨앞과 맨뒤 이름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한 것은 좀 아쉽다. 그냥 머리말, 맺음말 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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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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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로 마음 먹는다. 마음은 먹지만 밖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자꾸 망설여진다. 걷기에 적당한 장소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마음은 늘 걷고 싶지만 실제 몸은 집 안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또 걷기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힘들다. 계속 걸어야 할까 망설이기도 하고, 도대체 왜 걷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때 멈추면 걷기는 중단되고 만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걷기의 인문학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처음 부분은 우리가 걷기를 시작하는 것만큼 편하지가 않다. 솔닛 자신이 걷는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내용이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 걷기 초반인 것이다.

 

참고 계속 읽기 시작한다. 읽기와 걷기는 이래서 비슷하다. 시작하기도 힘들지만, 시작하고도 처음은 더 힘들다. 이때를 이겨내지 못하면 도중에 멈추고 만다. 이 책은 읽어가면서 재미가 붙는다. 마치 걸으면서 점점 주변이 눈에 들어오고 재미가 있는 것처럼.

 

2부와 3부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걸을 때 어느 지점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책도 2부와 3부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원에 머무르는, 있는 사람들만의 걷기에서 정원 밖으로 나가는 걷기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유명한 시인인 워즈워스 남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걸은 거리가 만만치 않음도 놀랍지만, 당시 걷기는 정원 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기에, 정원 밖으로 걷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 이들의 걷기는 놀라운 걸음이라고 한다. 특히 동생인 도로시의 경우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제약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더 놀랍고.

 

정원 밖으로 나온 걷기는 이제 산으로 향한다. 등산 문학이 등장하고 보행을 위한 모임과 통행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부로 가면 근대의 걷기가 나온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 도시에서 이제는 걷기가 정치적 행위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행진, 시위... 우리는 이 걷기를 너무도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함께 모여 걷는 행위. 그것을 많이도 한 시민들이 바로 우리나라 시민들 아닌가.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보일배를 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극한의 걷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는 행위. 사회를 바꾸는 노력의 한 방편으로 걷기를 택하기도 했으니.

 

여기에 엄청난 거리를 걸은 사람들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토순례라고 하여 우리나라 남단에서 휴전선까지 걸은 사람들이 있으니... 걷기는 여러 이유로 실행이 되고 또 사람들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걷기는 개인의 행위에서 사회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걷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의 등장으로 우리는 걷기보다는 이런 기계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이동해주는 수단들이 나오면서 걷는 행위가 줄어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걷는 행위가 실내에서 실외로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헬스장이나 집안에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이용해 걷기를 대신하던 모습에서 도심에도 걷는 공간을 마련해서 걷는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대도시, 환락의 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가 이 책의 대미인 4부를 장식하는 것도 이 점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로만 접근이 가능할 것 같은 이 환락의 도시가 너무도 많은 자동차들로 인해 도로가 주차장이 되니 도심 한복판에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 그래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 새롭게 조성한다고 논란이 되고 있지만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어 그나마 사람들이 걷는 장소가 조금 생기지 않았던가. 또 차없는 거리를 시행하는 도로들도 있어서 점차 사람들을 걷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걷는길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걷게 하고 있지 않은가. 제주도 올레길을 필두로 하여 술마다 치유의 숲길이 만들어지고, 가장 붐비는 서울에도 둘레길과 성곽길을 만들어 걷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걷기는 사라질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직립보행을 한 이후로 걷기는 사라질 수 없음을, 또 두 발로 걷는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게 해 사회적 동물임을 인식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베카 솔닛은 이 책 [걷기의 인문학]을 통해 걷기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헤매면서 읽게 되지만 점차 읽기에 속도가 붙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걷기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자연 속 걷기도 좋지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에서 걷는 행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함을 생각한다. 직장인들이 출퇴근하거나 학생들이 등하교할 때 또 약속 장소레에 갈 때, 과연 걸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지, 여가를 내서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서 걸을 수 있게 생활을 재편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걷기의 인문학은 단지 걷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삶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삶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걷기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결국 이 책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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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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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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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혁명 - 약과 병원에 의존하던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
조한경 지음 / 에디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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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쉬운 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 건강에 관한 것은...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니, 여기에 한 가지 더 스트레스 덜 받으면 된다. 가능하면 아예 안 받으면 좋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너무도 단순하고 자명한 일인데, 건강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너무 쉽기 때문에 너무 어렵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너무 쉽기 때문에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 볼 때를 생각해 보자. 문제가 너무 쉬우면 이건 아닐 것 같은데 갸우뚱 하면서 맞는 답에 의혹을 갖고 다시 풀거나 다른 답을 고를 때가 많지 않았는가.

 

여기에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한 마디 더하면 그냥 넘어간다. 전문가에다가 주변에서 모두들 이것이 옳다고, 그것도 언론에서 그렇다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쪽에 가담한다. 병도 그렇다. 병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한다면 굳이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

 

그런데 병원에 가도 건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병을 치료하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병원에 가겠는가? 그래도 간다. 왜냐하면 병에 대해서 자신은 모르고 의사가 잘 알고, 알아서 치료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신화들이 합쳐진 결과라고 하는데... 현대의학을 지배하는 것은 제약회사라는 이 책의 주장은 그럴 것이다라는 심증에 물증을 더해주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자신들의 약을 팔기 위해 어떻게 로비를 하는지, 그 약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완화할 뿐이라는 것.

 

이것의 최종판이 바로 백신이다. 마치 백신 접종을 안 하면 인류에게 감염병을 전파시키는 인류의 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바로 제약회사의 로비를 받은 언론과 정치집단들이다. 이들만이면 그래도 그들이야 뭐, 본래 그런 집단이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의사협회라든지, 세계보건기구 같은 경우도 제약회사들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니, 참으로 참담하다.

 

자신의 건강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버린 꼴이다. 내 몸을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끔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그것도 많은 돈을 써버리면서 지내는 그런 상태가 바로 현대의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인 조한경은 아주 단순하다고 말한다. 우리 건강을 지키는 길은.

그것은 풍부한 영양 섭취, 즉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온갖 제초체로 길러진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 식품들을 먹어야 하고, 탄산음료와 같은 것들은 멀리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생협이나 한살림 등 유기농 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치유를 하려는 사람을 뭘 모르는 사람, 용감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병을 근원적으로 고치는 것이라고 한다.

 

영양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우리 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 몸을 어느 한 부분으로 조각내 증상만을 치료해서는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 몸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느 한 부분에 병이 들었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돌아볼 기회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부의 침입보다는 내부 환경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또한 잘 자야 한다. 잠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잠은 건강에 필수요소다. 잘 잔 잠은 보약보다도 좋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이 제대로 잠을 못 자고 학업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은 이들의 몸을 우리가 혹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지금 청소년들의 몸이 어떻게 무너져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잠을 잘 못자고 성장한다면 그들 몸에 다양한 이상 증세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 우리 어른들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말 안 해도 건강에 필수인 요소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던가. 엄청난 스트레는 몸의 균형을 깨뜨린다. 그러므로 충분한 수면, 명상, 복식 호흡 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이런 이야기에 이어 현대에 많이 발병하는 병들을 지금 의료계에서는 어떻게 치료하고 있고, 그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것들을 우리 생활습관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건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증상을 들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렇게 설명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읽은 것에 책임을 지라는 것.

 

지금까지 건강하지 못했다면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독자 여러분들의 책임이다. (342쪽)

 

당연하다.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예전에 한의사였던 김홍경이 쓴 책도 제목이 [내 몸은 내가 고친다]였다. 이렇듯 당연한 일을 의사에게 맡겨버리고 나 몰라라 했으니, 이 책을 읽은 다음 건강은 내 책임이다.

 

옆에 두고 찬찬히 읽으며 내 생활습관을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한 책이다. 우리 모두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내가 내 몸에 책임을 지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함을 깨닫게 한 책이기도 하다. 적어도 의료산업에 완전히 내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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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마음속 108마리 코끼리 이야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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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동화 [파랑새]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바로 곁에 있는 행복을 두고 우리는 너무도 멀리 나간다. 죽도록 고생을 하면서 행복을 찾지만, 그 행복은 늘 앞에만 있다. 다가가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절대 좁혀지지 않는 거리. 그것은 바로 외부에서 찾는 행복이다.

 

이 거리를 단 한번에 없애는 방법,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은 술 취한 코끼리처럼 어디로 갈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마음은 술 취한 코끼리가 아니다. 우리가 마음을 들여다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마치 술 취한 코끼리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아잔 브라흐마라는 서양 출신 승려가 쓴 마음에 관한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한다. 이 마음을 알면 행복을 찾으려 헤매지 않아도 된다. 행복은 바로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행복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마음은 불행도, 고통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주 커다란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마음에서 불행과 행복을 찾으면 어떤 것이 더 많을까? 아마도 행복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과 행복 중에 어느 것이 더 눈에 뜨일까? 그것은 불행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행복을 찾는 노력을 한다. 이미 자신은 행복한데 행복한 줄 모르고 행복을 찾는 것이다.

 

브라흐마는 이 책에서 이런 현상을 이렇게 말한다. 담을 쌓을 때 천 개의 벽돌을 썼다고 하자. 그 중에 998개의 벽돌은 아주 잘 쌓였다. 그런데 달랑 두 개의 벽돌이 좀 어긋나 있다. 자, 이 담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담은 멋있는 담일까? 망가진 담일까?

 

우리는 두 개에 주목해야 하는가, 아니면 998개의 다른 벽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마음이라는 넓은 곳에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 왜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행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단 말인가. 오히려 더 많은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지내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브라흐마가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 마음에 있는 수많은 행복들에 주목하자. 이 행복들에 주목한다는 것은 욕심의 자유가 아니라 욕심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욕심의 자유는 자신의 욕심을 채울 자유를 의미하고, 욕심을 채운다는 것은 늘 결핍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내 삶에서 결핍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하면 나는 늘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욕망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진만 빠지고 절망에 빠지기만 한다. 그러니 욕망의 자유는 곧 불행으로 가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해서 가는 불행에의 자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욕망을 없애는 것이다. 욕망을 없앤다는 것은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핍이 없겠느냐마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마음 속에 있는 다른 행복들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행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그것들로 인해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이 때 행복은 마치 화수분처럼 써도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 그러니 욕망의 자유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화수분을 얻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나, 문득 문득 내 삶에 대해서 불만이 이는 것은 결핍을 느끼기 때문인데, 이는 아직도 욕망의 자유를 버리지 못해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욕망의 자유에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 나아가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사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미루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다른 구절들도 다들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았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갈수록 덜 자주 실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255쪽)

 

실수를 덜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아, 내가 잘못했네 하고 인정하는 순간, 실수는 불행에서 행복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젊은 시절에는 실수한 줄도 모르고 지낸다. 그래서 실수를 해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더 빨리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실수를 줄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한 실수들을 깨닫는 순간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는 무엇일까?

 

이 책에는 세 가지 질문이 나온다. 옛이야기를 빌려 말하고 있는데...

 

1.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

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3.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보살핌과 배려. (169쪽)

 

너무도 당연해서 당연하게 잊고 지내는 일들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그저 편하다는 또는 가깝다는 아니면 바쁘다는 이유로 이 세 가지를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서 행복해지기는 힘들다.

 

이 세 가지와 함께 하는 것은 행복과 함께 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와 함께 하지만 늘 나와 함께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네 사람의 아내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인데...

 

죽음까지도 함께 하는 아내는 첫 번째 아내였다. 그렇다면 아내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 첫 번째 아내는 '카르마(업)'이다. 두 번째 아내는 '가족'이고, 세 번째 아내는 '재산'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네 번째 아내는 '명성'이다. (293쪽)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 죽음에 이르러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네 아내를 통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 욕망의 자유에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 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단지 알게 되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게 브라흐마가 이 책을 쓴 이유일 것이다.

 

뱀발

 

이 책에는 아주 재미 있는 제안이 있다. 202쪽에 말에 세금을 매기자는 제안. 직접 책을 읽어보라.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지금 국회를 보면 더더욱.

 

또 이 책에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비슷한 브라흐마가 겪었던 일화가 있다. 슬픈, 이렇게 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입시를 위해 공부 외에 다른 것은 뒤로 미뤄두어야 하는. 그렇게 행복을 계속 남겨두기만 하는 삶에 대해. (221-224쪽에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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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식탁 - 식물학자가 맛있게 볶아낸 식물 이야기
스쥔 지음, 류춘톈 그림, 박소정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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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할수록 자연에 대한 향수도 깊어진다. 사람이 자연과 떨어져 살 수는 없지만 어느새 우리는 자연은 자연, 우리는 우리라는 식으로 살아가면서 아련한 그리움으로만 자연을 대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론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아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식물들이 나온다. 그것들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온갖 효용을 들이대면서 식물들의 이로운 점을 말해준다.

 

자주 가는 음식점 벽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밥은 근원이 같다는 말로 풀이되는 말. 그러니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라는 말로 받아들였는데...

 

이 먹을거리로 병도 치유한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좋은 약효를 지닌 식물들이 이 책에 나올 것인가 하는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곧 이건 아니구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중국인이 쓴 책이다. 그러니 중국 식물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국 식물이라고 해서 무슨 국경이 있어 우리나라 식물과 완전히 다른 존재는 아니겠지만,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공연히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같은 식물이라도 어느 토양,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성분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식물 이름들이 너무도 낯설다는 것이다.

 

중국말로 식물을 이름지어 부르고 있으니, 알 수가 있나. 가령 첫식물은 은행이다. 이 은행이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고 또 먹기도 하니, 별 문제가 없는데, 은행 바로 다음에 나오는 식물 이름이 용규(龍葵)다. 자, 용규가 무엇인가? 알 수 있겠는가? 모른다. 한자로 표기해 놓아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름이다. 밑에 주를 달았는데... 아주 작은 글씨로 까마중이라고 되어 있다. 아하, 용규가 까마중이구나. 그냥 제목을 까마중이라고 하고, 괄호 안에 용규라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이름들이 주욱 나오니 읽어도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점이 많이 아쉬웠는데... 이런 책은 번역이 아니라 번안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림도 있지만, 사진 자료를 더 첨부했으면 훨씬 이해하기 쉬웠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실을 아는 즐거움이 있는데... 자, 중국어로 미후도(獼猴桃)라는 식물을 아는가? 중국 태생인데 외국에 나가서 더 유명해졌다가 다시 요즘에는 중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식물이라고 하는데...

 

중국에 흔하게 있었으나 원숭이나 먹는 과일이라고 해서 미후도라는 이름이 있다는 이 과일은 바로 키위다. 키위 하면 뉴질랜드를 생각하고, 그곳이 원산지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키위의 원산지는 중국이고, 뉴질랜드에서는 중국에서 종자를 가져다 성공적으로 재배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중국 학자가 쓴 글이니 그 점을 참조하더라도.

 

 그해(1904년) 이사벨은 델리시오사의 종자 한 봉지를 뉴질랜드로 가져갔다. 그녀가 가져간 종자는 미후도 세 그루로 자라 순조롭게 개화하고 열매를 맺었다. 이 세 그루가 현대의 미후도 산업을 일으킬 줄이야! 현재 전 세계 키위 공급량의 80%를 차지하는 품종인 헤이워드가 바로 이 델리시오사 세 그루의 후손이다.  (206쪽)

 

  1960년대 이전까지 델리시오사는 서양인들에게 '이창 구스베리 - 이창은 중국 후베이성 남부에 위치한 도시-' 또는 '차이니즈 구스베리'로 불렸는데, 썩 맛있는 과일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미후도라는 속칭은 더 수준 미달이었다. 양도, 귀도, 후도라는 이름 중에서도 맛있고 고급지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은 없었다. 과일 상인들은 필히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만 했다.

  그래서 맨 처음 작명을 위한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미후도의 상품명을 '꼬마 멜론(Mellonette)'으로 정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었다. 소리가 맑게 울리기도 하고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괜찮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과(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수입한 과류 과일에 중과세를 징수했는데, 과일 상인들은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별로도 진행된 힘겨운 작명 회의를 거쳐 결국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Kiwi'의 이름을 따서 미후도를 '키위 Kiwi fruit'로 부르게 되었다. (212쪽)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다양한 식물이 음식으로 쓰이고, 그것들이 어떤 효용이 있고, 또 독성이 있는 것은 어떻게 발현되는지도 이야기해 주고 있어서 식물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독성이 있는 식물을 우리가 먹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지도 잘 알려주고 있어서 많이 유용하다.

 

다만, 중국어로 식물 이름이 나오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 머리 속으로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다. 그래도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자연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것이나 막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약식동원이라고 또 몸에 좋은 식물이라고 해도 지나치면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번은 참조할 만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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