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은 맨 처음의 시 '가시'와 맨 끝의 시 '황토'와 연결된다. 제목에서처럼 시집은 기역부터 히읗까지 가나다 순으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관심 있는 시를 찾으려면 사전 순서를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집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이 시집을 읽으면 어떤 시를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 진다.


  봄을 맞아 식물들이 이제 막 새순을 내기 시작했을 때 그 성장을 돕는 봄비가 내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땅을, 식물을, 그리고 우리들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봄비. 그런 봄비와 같은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다. 


어느 시를 읽어도 마음이 촉촉해진다. 좋다. 더 말이 필요 없는 시집이기도 하다. 세상이 너무도 각박해지고 있는데,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고, 여기에 '부수적 피해'라고 할 수밖에 없는 - 군인이나 전쟁과 관련이 없는 인간들이 의도적이지 않게 피해를 입는 것을 부수적 피해라고 하지만, 사실 부수적 피해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이 입고 있다 -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현 상황.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명확한데...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누군가는 전쟁이 아니라 군사 작전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던데... 이것이 군사 작전이라면 도대체 전쟁은 무엇인가?


이 군사 작전으로 인해 전세계가 피해를 입고 있는데, 그 힘 있는 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사람, 나라가 없는 현실. 


세계화 시대가 끝났음을, 우리는 지구촌 주민들이 아니라 결국은 각자의 나라에 속한 국민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하고 있는 요즈음... 김용만 시인의 이 시집을 읽다가, 그 힘 있는 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 있다.


'힘센 짐승이라고 / 지 맘대로 내걸면 폭력 아닌가 / 집 찾아드는 오만 것들 / 자기 집이라 하면 안 되는가' ('밤마다 내려오는 별은 어쩌고' 중에서. 47쪽)


무얼 내거는가? 그것은 집의 이름, 일명 '당호'를 지으라는 사람들의 말로 자기 집임을 선언하라는 말에 시인이 하는 말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MAGA'라는 말에 들어 있는 폭력을 생각하게 되는데, 지구촌이 아니라 자기 나라만을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동을 막는 그런 행위. 시인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위를 당당하게 외치는 그 힘센 사람.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은 그런 힘센 사람에게, 시인의 이 시를 읽어보라고 하면 그는 읽을까? 읽기는, 이런 시를 읽을 사람이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


이렇게 시집 어느 쪽을 펼쳐도 좋다. 봄을 맞아 이런 구절 '가을은 빗속에 떠나고 / 봄은 빗속에 오더라'('먼 젖은 산이'에서. 39쪽)를 통해서 봄과 가을에 오는 비가 지닌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일기'란 시를 보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나'만을 중심에 놓고 다른 것들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이따만한 / 대보름달 / 앞산 위에 걸렸는데 //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 하마터면 쓸 뻔했다'('일기' 전문. 88쪽)


그렇지. 이 세상에 온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고,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는 없다는 것. 주위를 살피는 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 눈,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이기도 하고.


이렇게 인간은 인간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사람의 일'이란 시를 보면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진정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나무의 일은 하늘을 향해 바로 서는 것이고 / 땅의 일은 수평을 이루는 것이다 / 사람의 일은 수평과 수직을 지키는 삶이다 / 쉽지만 사람은 안 한다 // 나무와 땅을 괴롭힐 뿐 // 시멘트 매꼼히 발라버릴 뿐' ('사람의 일' 전문. 57쪽)


한글 창제 원리 중에 모음의 원리가 '천지인'이라고 했는데, 하늘과 땅, 그리고 둘의 사이에 있는 인간. 이러한 인간과 비슷하게 수직으로 서서 땅과 하늘을 연결해 주고 있는 나무. 그러한 나무를 받쳐주고 있는 땅.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지키는 일. 이들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는 일. 시인은 쉽다고 이야기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전혀 쉽지 않은 일. 생각을,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는 일. 


하지만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이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는 힘들어진다고 하니, 이제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겠지.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기도 했는데...


봄비처럼 다가온 시집. 시들... 메말라가던 마음이 조금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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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도서관에 간다. 책이 모여 있는 곳. 자신을 읽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곳.


  세상 모든 책들이 도서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너무도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인데... 도서관을 지구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에 수많은 생명, 무(비)생명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지구에서 영원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지구에서 영원히 자리를 차지하고, 계속 그와 비슷한 존재들이 나온다면 지구는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힘이라고,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우리나라지만 한때는 인구가 너무 많아진다고 산아제한 정책을 펴기도 했었다. 왜? 지구가 포용할 수 있는 인구에 한계가 있으니까. 지금이야 인구 소멸을 걱정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지만...


그러니 생명의 삶과 죽음은 지구에도 필수적인데,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책들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책들은 도서관에서 물러나야 한다. 다른 책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물러나고 들어오는 원칙이 있을까? 사람의 삶과 죽음에 어떤 원칙이 있을까? 신이 있어서 이래야 한다고 정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연 또는 우연에 따라 삶과 죽음에 이른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지구에서 생명들은 그렇게 오고 가고를 반복한다지만 도서관은 어떤가? 도서관마다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서 들어오고 나가는 책들이 정해진다. 그럼에도 도서관에는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보존되는 책들... 이미 절판, 품절이 되어 읽고 싶어도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을 도서관에서는 만날 수 있다. 그럴 때의 기쁨이란... 역시 도서관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 도서관에는 최근에 나온 책들도 있어야 하지만 선뜻 살 수 없는 책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개인이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이어야 한다.


이런 도서관, 주변에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근화 시집을 읽다가 '도서관'에 관한 시를 발견했다. 하, 이런 도서관. 세상의 중심이다. 그냥 좋다. 이 시.


  세상의 중심에 서서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책을 날마다 주워 와서

번호를 매기고

뜯긴 책장을 붙였습니다

나란히 꽂았습니다


캄캄하고 냄새가 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

조금 더럽고 안락해서

날마다 다른 꿈을 꿉니다


도서관이에요

책들은 하룻밤이 지나면

숨을 쉬고

이틀 밤이 지나면

입술이 생기고

사흘째 팔다리가 태어납니다

나흘째 사랑을 나누고

먼지가 가라앉습니다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혼자 길고 긴 산책을 합니다

멀리서 책을 한권 또 주워 왔습니다


이번에는 코가 없고

감기에 걸린 놈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함께 커피를 마시고

토론을 했습니다

불을 다 끈 도서관에서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구멍 난 내일을

헌신짝 같은 어제를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도서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이근화,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창비. 2021년. 2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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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하다. 시의 소재가 주로 달, 물, 산, 돌 등이니 잔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인의 두 번째 시선집이라고 하는데, 시인이 '근래에는 달과 별, 꽃, 무지개, 돌, 들에 마음이 빠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한 자연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이별과 만남, 삶과 죽음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습니다.'('시인의 말'에서)라고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자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없겠지. 자연처럼 순환이 인간이 지닌 운명임을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을 영원히 살겠다는 욕심을 버리겠지.


세상에 죽지 않은 인간들이 계속 지구에서 살아간다면 도대체 지구가 몇 개나 필요할까? 몇 개가 뭐야, 우주 곳곳에 있는 행성으로 이주해도, 그 행성들도 곧 포화상태가 되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이주하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결국 자연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인간도 역시 그러한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유한성을 거부하고 무한을 추구하는 인간들. 과학기술을 앞세워 영생을 추구하는 현재. 과연 우리는 자연에서 얼마나 멀어지려 하고 있는지.


자연에서 가장 멀어지는 것이 전쟁 아닌가. 무기, 온갖 무기. 이 무기들이 사람만 죽일까. 아니 지구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함께 죽인다. 그리고 쉽게 빨리 사라지지도 않는다. 전쟁이 남긴 상흔은 꽤 오래 간다. 상흔만이 아니라, 무기들이 남긴 오염들, 피해들 역시 복구하기 쉽지 않다.


하여 가장 반(反)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면 무기다. 최첨단 무기. 그러한 무기들이 지상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날아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파괴하는 전쟁. 이 전쟁은 그 자체로 반(反)자연적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킨 사람, 자연을 거스르는 사람.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 인간이 거주할 지구를 파괴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세계가 과연 그러한가.


말이면 다 말인 줄 알고 뱉어내는 힘센 나라 대통령이란 작자. 제 나라 영토에 폭탄이 떨어질 일이 거의 없다고 남의 나라를 폭격하는 사람. 주변 국가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사람. 그의 말은 폭탄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을 죽이는 그러한 폭탄들. 그 폭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강대국의 대통령이다. 이름을 말하기도 싫다.


시집을 읽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시집에서 어째서 그런 반자연적인 인간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바로 이 시와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는 자가 그 자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자가 이런 생각을 한 순간이라도 해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시를 보자. 제목도 '무지개'다.


    무지개


섬광이 터지고

사람과 사람 말 사이에

무지개 섭니다


저 무지개 걸어가려는 나의 무게는 너무 무거운 걸까요

내가 아무리 무게를 줄이려 하여도 한 마리 나비처럼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 위에 그어진 무지개 위에 누군가 손짓하여 걸어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면

오오 무슨 마술을 부려서라도 내 마음을 나비 한 장의 무게로 변신시킬 수는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 무지개 위에서

내가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설혹 원수를 만난다 할지라도

외나무다리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위에선


함께 부등켜 포옹할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리라


김선영, 누구네 이중섭 그림. 인간과문학사. 2013년. 119-120쪽


이럼 얼마나 좋을까.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 색색깔의 아름다운, 어느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다양함. 그리고 상대를 구속하지 않고 제 때가 되면 사라지는 그런 다리.


이 다리를 걷는 사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를 걸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절대로 말 폭탄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리라. 그리고 이런 사람은 자연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아니 우주라는 존재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제 때를 알고 갈 수 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일 텐데...


맑고 밝고 따뜻한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것과 반대되는 이 지구의 현실에, 폭탄의 다리가 아니라 무지개다리가 서로를 이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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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참 읽기 힘들다. 시라고 하기보다는 산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시들이 길다. 길고 행이 나뉘어 있지 않은 시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외국어가 왜 이리도 많이 나오는지... 외국어? 시집 제목이 '근무일지'인데... 노동하는 이야기일 텐데... 외국어라니?


  왜 외국어가 많이 나올까? 시집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이 시집에 나오는 사람은 노동자라고 하지만 정규직이 아니다. 비정규직이라도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일 저 일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하지 않으려 하는 일. 소위 3D업종이라고 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 그것도 일정한 일이 주어지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일해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체로 등장하니, 시가 짧을 수가 없다. 많은 것이 뒤엉켜 있는 작업장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작업장 아닌가.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근근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공간. 그들끼리도 소통이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그러한 모습이 많은 외국어로 시집에 나타나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삶을 표현하는데 정제된 언어로 세련되게 표현할 수는 없다. 혼돈, 아니 어지러움, 무어라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함. 이것이 바로 이들 노동의 세계다.


일하려 하는 데도, 일하는 데도 이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몸에 상처를 입히고, 손발이 잘려나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는다. 


시집 도처에서 그런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게 지금 우리의 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그림자 노동, 아니 감춰진 노동 현장이다.


직접 이런 곳에서 노동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노동의 현실. 그러한 막막함 속에서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이 시집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이 시집을 읽으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노동의 현실을 보게 되고, 우리가 이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되는 데는 이러한 노동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편리 속에, 화려함 속에 감춰진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하는 듯한 말.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단 한 문장으로 말한다. '살아가십시오' 


시집에 나오는 '오함마 백씨 행장'에서 죽어간 백씨처럼 죽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시인은 백씨와 같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노랗던 바나나마저 검게 타버려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어요. 백두영씨가 그랬던 것처럼.'('오함마 백씨 행장' 중에서. 111쪽)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죽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요소가 바로 이러한 노동들 아니겠는가. 그 점을 명심한다면... 보이지 않는 노동(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 시인의 말처럼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우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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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부식'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미 나이가 있는 사람이거나 한국 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부식이라는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가 그리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으니까.


  시집을 냈다는 사실을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보고서야 알았으니, 문부식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던 나도 그를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시인이 되기에는 너무도 험한 세상이었나? 시인 김남주가 시인보다는 전사로 불리기를 원했던 시대. 김남주보다는 약간 뒷세대이긴 하지만, 문부식 역시 그러한 시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개인의 서정을 꽃피우기에는 시대가 너무도 열악했다고나 할까.


  그에게 있던 서정이 활짝 피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먼저 그러한 토양을 지녀야 했다. 척박한 환경이 아니라 비옥한 환경.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토양, 그러한 시대가 되지 않으면, 서정이 풍부한 사람은 자신이 그러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일을 하려 할 수밖에 없다.


잠시 자신의 서정을 미뤄두고 더 많은 서정들이 피어날 수 있게 자신을 그 쪽으로 움직여간다. 그런 사람이었다고...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으련다.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이 시집 또한 30년도 더 전에 출간이 되었으니... 그리고 그가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하므로.


오죽하면 알라딘에 시집 제목은 나오지만 시집의 표지 사진이 나오지 않겠는가. 또 문부식이라는 이름도 역사의 뒤안길에 있지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권의 몇몇과 같이 언론에 나오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가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동자였다는 사실, 그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었다가 석방되었다는 사실은 이 시집을 읽는 데 중요하다. 다만 그 사건이나 문부식이라는 사람에 매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우리 역사 속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과거는 현재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현재에서 과거가 자꾸 자신의 자리를 내어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과거는 현재에 녹아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를 놓아두고 이 시집을 읽는 이유는, 그럼에도 과거의 문부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문부식.


이 시집에는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으로 감옥에 가서 지낼 때의 이야기가 많다. 그때의 감정, 그때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그때의 감정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어 당시의 상황이나 심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시들이 많다. 그런 시들 중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시가 있는데, 그 시는 '비'다.


    비


창살 속에 갇힌 나를

슬픔 속에 가두려 내리는가

소낙비

그대의 눈물되어

오늘은 수만 개의 창살로

꽂힐지라도

아직은 울지 않으리니

내 인생에 내린 창살로

아직은 울지 

않으리니


문부식, 꽃들. 푸른숲. 1993년. 초판 3쇄. 72쪽.


비와 창살, 슬픔과 눈물이라니...그렇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감옥의 창살 너머로 내리는 비를 보면서 비에서 창살을 느끼고, 내리는 비에서 눈물을 생각하는, 그렇지만 아직 울지 않겠다고, 견디겠다고... 견뎌내야 한다고 하는 다짐.


시인인지도 모르고 헌책방에서 보자마자 이 책을 산 이유는, 문부식이라는 과거 역사를 통해 알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를 그는 시를 통해서 어떻게 표현했을지, 김남주 시인과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인데...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의 감옥생활을 알 수 있었고, 그가 당시에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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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26-03-09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나와서 반가워서 댓글 남깁니다. 옛날에 훈련소 있을 때 혼자 조용히 읊조리던 노래였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JRQqnrOPBU8&list=RDJRQqnrOPBU8&start_radio=1

kinye91 2026-03-09 12: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